1. 명연기(1)

 

배우 정도는 아니겠지만 살면서 연기라는 게 필요하잖아.

딸에게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춘 연기력을 본 것은

6살 때가 처음인 것 같아.

 

외할머니 집에서 자던 딸을 안고 집으로 가는데

비가 막 퍼붓고 짐은 또 얼마나 많은지.

한 손으로 딸을 안고, 다른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앞뒤로 가방을 메고, 손가락마다 짐을 끼우고 걸었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딱 보이더라.

안긴 채로 말똥말똥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

기회다 싶어서 "잠깐 걸을까"라고 물었는데

아무 반응이 없는 거야.

다시 거울을 보니 눈을 질끈 감았더라.

미간에 약간 주름이 생길 정도로.

결국, 침대까지 안고 가서 눕혔어.

연기 끝내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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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연기(2)

 

딸이 갑자기 고양이를 안고 앞에 앉아서 곡(?)을 하더라고.

그것도 시선은 다른 곳에 두고.

 

"아이고 하늘아. 누나는 널 키우고 싶은데 아빠가 너 때문에 아프다네.

엄마는 아무 대책도 없고. 아이고 어쩌냐. 누나는 네가 좋은데."

 

물론 내가 최근 고양이 털 알레르기 진단을 받았어.

아이 엄마가 고민하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이런 식으로 시위(?)를 할 줄이야.

 

"예지, 서로 조심하면 돼. 아빠 괜찮아."

 

딸은 힐끔 쳐다보더니 하늘이와 방에서 깔깔거리며 놀더군.

초보적인 연기였지만 당할 수밖에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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