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이 태극마크 다는 날은 최고의 하루

운동이 하고 싶었던 학생 임용훈

"내 운동 모습을 보는 것만큼 완벽한 복습은 없다."

김해카누장에서 만난 경남체육회 임용훈 카누 감독은 "인간의 육체로 자연을 이겨내는 종목"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거창한 설명을 늘어놓은 데는 카누라는 종목의 특성 때문이다.

카누는 노로 젓는 작은 배를 이용한 경기다. 때문에 바람이나 물살에 매우 민감한 종목이다. 조정, 요트와 같이 '배'를 이용해 승부를 결정짓는 종목들처럼 카누도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환경과 맞서는 종목이다.

임 감독은 지난 2004년 경남체육회 창단부터 시작해 올해로 12년차 실업팀 감독이다. 과거 엘리트 선수 육성까지 포함하면 21년이라는 세월을 지도자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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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용훈 경남체육회 카누부 감독./박일호 기자

하지만 엘리트체육 지도자를 처음부터 꿈꿨던 건 아니다. 특히 유년시절과 학창시절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임 감독의 아버지는 구산면에서 양식업을 하셨는데 과거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교육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그래서 구산에서 마산으로 유학을 보내 공부에 매진하길 바랐다.

하지만 운동신경이 특출났던 그는 어릴 때부터 운동에 대한 갈증이 대단했다.

초등학교 유학 시절에는 축구부에 잠시 몸을 의탁하기도 했다. 마산동중에서도 엘리트 체육선수로 지내는 또래 친구들을 볼 때면 '나도 운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

그러다 창원중앙고에 입학한 뒤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처음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카누가 아닌 핸드볼이었다. 그러나 '공'이 아닌 '노'를 잡고 전문적인 운동을 시작하게 된 임 감독이다.

그러나 카누를 시작한 뒤 자신이 꿈꿨던 삶과는 동떨어졌다. 국가대표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었지만 지극히 평범한 선수였다. 열심히 노력한다면 반드시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고질적인 어깨 부상이 늘 뒤따랐다.

임 감독은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국제무대를 누빈 적도 없는 평범한 선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창원대 카누팀에 입단했지만 고질적인 어깨 부상 때문에 대학을 마치고 은퇴했다"고 과거를 담담하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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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용훈 경남체육회 카누부 감독./박일호 기자

운동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 고교부터 시작된 엘리트선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국제무대를 누빈 적도 없었지만 지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국가대표 총감독을 역임했다.

사실 임 감독은 체육학과가 아닌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래서 주변에는 은행에 취직한 선배들이 즐비했다. 그래서 그는 지도자의 길은 생각하지도 않았고 군대에서 경험한 경찰이라는 직업에 매료됐다.

"청와대 예하부대에서 군생활을 했어요. 잊지 못할 경험 때문에 제대 후 경찰공무원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터에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제 인생이 달라져버렸죠."

한 통의 전화, 인생의 터닝포인트

한 통의 전화를 건넨 주인공은 그의 은사다. 임 감독은 은사의 전화 한 통을 받고 창덕중으로 갔다. '딱 6개월만 선수들 도와주고 다시 경찰시험을 치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린 제자들이 눈에 밟혔다. 제자들을 뒤로 하고 내 살길을 찾기 보다는 조금만 더 선수들을 지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도자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창덕중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 그는 1995년 1월 창원여고 카누팀을 맡아 정식 지도자가 됐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아쉬움이 하나 있었다. 바로 경남에는 실업팀이 없다는 것.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까지 경남이 연계육성을 통해 좋은 선수들을 배출했지만 도내에 팀이 없어 외부로 다들 떠났다. 아쉬움이 컸던 그는 곧장 경남체육회를 찾아갔고 2004년 정식으로 창단하게 됐다.

팀 창단 후 초대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창원여고 제자 안지은, 배세영, 박효진을 불렀고 대학에서 윤은희를 스카우트 했고 해군참모총장배 2연패라는 업적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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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용훈 경남체육회 카누부 감독./박일호 기자

안지은과 윤은희는 국가대표가 돼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면서 전성기를 맞았고, 두 선수의 선전 속에 경남체육회도 함께 전성기를 보냈다.

임 감독은 "창단 첫 해에는 4명의 선수와 함께 팀을 꾸렸지만 지금은 두 명 뿐이다. 예산 때문에 선수를 줄인 것은 아니고 더 좋은 선수와 함께하고 싶다는 내 의지였다. 김국주와 전유라 두 명의 선수는 성실하고 기량도 출중하다"고 전했다.

김국주는 지난 2009년 국가대표로 이란에서 열린 아시아카누선수권대회 2관왕을 차지하는 등 K-1 200m에서는 국내 1인자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해 인천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는 4위를 기록해 입상대에는 올라서지 못했다.

김국주는 지난해 K-1 200m 경기에 나서 경남체육회 소속 선수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달기도 했다.

"국주가 국가대표팀으로 태릉선수촌에 입촌하면 유라 혼자 남는데 가끔 혼자서 훈련을 할 때 속도나 기록이 둘이 할 때보다는 나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내가 즐겨 쓰는 훈련방식이 있죠."

내 훈련 모습 보는 것이 최고의 훈련

그가 밝힌 훈련방식은 동영상 촬영이다.

임 감독은 세계대회 동영상을 보고 늘 공부한다. 그리고 공부한 내용을 자신만의 분석을 통해 결과를 도출해낸다. 결과를 도출해 낸 다음엔 김국주, 전유라 두 선수의 훈련모습을 스마트폰을 통해 촬영한다. 촬영 뒤에는 두 선수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지적하면서 서로 소통하려고 애쓴다.

"컨디션이 좋고 나쁠 때마다 나타나는 버릇이나 습관 같은 것도 있고, 선수들이 노를 저을 때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동영상을 통해 선수들과 의견을 주고 받는데 효과가 좋아요. 지도자들을 만날 때마다 늘 동영상을 촬영해 선수들에게 보여주라고 권유합니다. 나만의 지도 방식이죠."

또 하나 그가 강조하는 것은 '예의'다. 특히 선수들이 배에서 훈련할 때만큼은 그 부분을 가장 많이 강조한다.

"평소에는 오빠, 아빠처럼 장난도 치고 잘 지내는데 배를 탈 때만큼은 예의를 지키라고 늘 얘기해요. 이제는 애들이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어서 그런지 평소와 운동할 때는 확실히 선을 긋는데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그 때문일까? 올해 임 감독이 이끄는 경남체육회는 여느 해와 달리 시상대에 많이 서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전국대회 4연패에 성공하면서 명실상부 전국 최고 카누부가 됐다.

임 감독은 말한다.

"우리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는 날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입니다. 국주랑 유라가 태극마크를 달면 진짜 살 맛 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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