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회사가 양파껍질차를 개발한 까닭

주류시장이 최근 유행에 아주 민감한 곳으로 변하고 있다. 소주 시장은 저도주에 이어 과일 맛을 첨가한 소주가 전국을 강타했고, 맥주 시장은 수입 맥주가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위스키 시장 역시 도수를 낮춘 제품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와인은 가격을 낮추며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변화의 파도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주종이 있으니, 바로 전통주·막걸리 시장이다.

우포의아침(주)은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주 제조 업체다. 창녕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우포의아침(주)의 대표작은 창녕 양파와 오가피 열매를 사용해 빚은 전통발효주 '우포의아침'이다. 우포의아침은 2008년 제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 공식건배주로 선정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CJ 제일제당과 유통계약을 맺으며 매출을 늘리는 등 지역에서도 자리매김하며 전국에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명성에도 늘 고비에 직면하고 있다. 2010년 한류 열풍 등으로 막걸리 붐이 일며 반짝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그 외 전통주의 입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역 내 직거래 비중이 높은 특성상 매출 신장에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인 가운데 우포의아침(주)이 '파격'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지난 11월, 술이 아니라 양파껍질차를 출시한 것. 박중협(42) 대표를 만나 의중을 물었다.

밀주(농주)로 시작한 전통주 가업 잇는 2세대

우포의아침(주)의 역사는 박 대표의 할아버지인 고 박원우 옹이 정미소를 하면서 예로부터 조상이 마시던 밀주(농주)를 만들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대표는 어릴 적 누나와 정미소를 맴돈 기억과 농주·청주를 빚는 할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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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중협 우포의아침(주) 대표./김구연 기자

박 대표 부친인 ㈜맑은내일 박태식 사장이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자 지난 2003년 11월 전통술 제조회사인 '맑은 내일'을 설립하면서부터 본격적인 가업 잇기가 시작됐다.

경상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박 대표는 2000년 12월 말 국순당 중앙연구소에 입사해 개량된 전통주를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이때 국순당 대표 상품인 백세주와 별, 증류식 소주 개발에 참여했다. 하지만 1년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박 대표는 "그때는 그냥 술 만드는 것이 싫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대학 시절 호프 500cc를 마시고도 취하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2002년, ㈜무학으로부터 '국화주' 프로젝트 연구개발팀 책임연구원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서야 '술은 내 운명'임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4년간 ㈜무학에 근무하면서 현재 시판 중인 '국화면 좋으리(옛 가을국화)'를 개발하고 공장 설비라인까지 마무리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31세의 나이로 ㈜무학 중리공장 최연소 공장장으로 근무했다.

"차가운 느낌의 증류식이 아닌 따뜻한 느낌의 발효식 주류를 만들고 싶었어요. 일본 전통 청주인 와카타케야 사케와 같은 자기 집안만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술을 빚는 술도가가 되는 게 꿈이에요. 무학에서 근무하는 동안 제품 개발부터 공장 설비까지 정말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았죠. 제 꿈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고요. 전통주를 빚고자 4년 만에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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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중협 우포의아침(주) 대표./김구연 기자

인생사 새옹지마 '기회와 위기'

첫 번째 기회는 2006년이다.

당시 창녕군은 양파 시배지로서 양파를 이용한 각종 특화사업을 하며 그중 하나로 '술'을 선택했다. 여러 업체에 술 제조를 맡겼지만 특유의 양파 향을 제거하지 못하거나 성분을 살리지 못했다. 2008 람사르 총회를 앞두고 대표 브랜드주 개발 사업을 공모한 창녕군은 당시 창원에 본사를 둔 맑은내일(주)을 개발업체로 선정하게 됐다.

박 대표는 생양파를 사용하지 않고 양파를 쪄서 술을 만드는 방법을 선택했다. 특유의 매운 향을 제거하고자 오갈피 열매를 더했다. 그렇게 양파의 특유 향을 잡으니 맛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그게 '우포의아침'이다. 우포의아침은 양파를 20% 넣은 약주지만 화이트와인같은 감미로운 맛과 와인병을 연상케 하는 술병 디자인으로 호평을 얻었다. 람사르총회 공식 건배 주로 이름을 알린 이후 회사명을 우포의아침으로 바꾸고 마산에서 창녕으로 공장과 사무실을 이전했다.

두 번째 기회는 2010년이다.

당시 CJ제일제당은 '팔도 막걸리 유통'이라는 상생프로젝트를 추진했다. CJ제일제당은 전국 200개 막걸리 제조업체를 돌아다니며 세 곳을 선정해 유통 대행을 맡았다. 충북 제천 용두산조은술의 대강소백산생막걸리와 전북 전주 전주주조의 전주생막걸리, 그리고 경남에는 우포의아침의 우포생막걸리 3개 브랜드가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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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중협 우포의아침(주) 대표./김구연 기자

당시 월 매출 1000만 원이었던 우포의 아침 매출은 16배 급증해 2011년 월 1억 6000만 원을 기록했다. 현재, CJ제일제당 상생프로젝트에 선정된 3개 브랜드 중 지금까지 CJ제일제당 유통망을 활용하는 곳은 우포의아침 한 곳뿐이다.

"사업 초기였고 위생과 품질 규격화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CJ제일제당에서 선발한 연구원과 품질관리원이 1년 반 동안 창녕에 상주하며 무상으로 품질 관리를 도왔습니다. 우포의아침이 도약하는 계기가 됐죠. 우리도 당시 끌어올릴 수 있는 최대치로 역량을 끌어올렸습니다. 당사는 2011년부터 CJ JAPAN을 통해 일본 3대 맥주사 중 하나인 일본 삿포로맥주 사에 막걸리를 납품하고 있습니다. 까다로운 일본 대기업의 품질 기준을 통과할 정도로 맛과 품질, 기술력이 우수하다는 뜻이겠죠. 이러한 기반이 그때 다져졌다고 보면 됩니다."

사양산업으로 전락한 막걸리시장 "늘 위기였다"

지역 농산물과 특수성을 담아 빚은 전통주는 지역을 벗어나기 힘든 태생적 한계가 있다. 지역마다 전통주가 있고 인정을 받고 있기에 특정 전통주가 전국적 입지를 다지는 일이 쉽지 않다. 유통망 역시 지역 내 직거래 비중이 높다.

전통주 우포의아침 역시 회사를 널리 알리는 계기는 됐지만 매출 상승을 이끌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CJ제일제당의 유통망을 이용한 우포생막걸리의 전국적 판매는 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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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중협 우포의아침(주) 대표./김구연 기자

aT(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가 운영하는 농수산식품수출지원정보(www.kati.net)에 따르면 막걸리 생산량은 2011년 44만 3151㎘(킬로리터)로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2012년 41만 6094㎘, 2013년 37만 8482㎘로 감소 추세다.

서울탁주제조업체의 장수막걸리가 막걸리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국순당(국순당우국생), 부산합동양조(생탁)이 뒤를 잇고 있다. 전국 800여 개 막걸리 제조업체 중 연 매출 10억 이상 회사는 손가락·발가락(20개) 안에 꼽힌다. 우포의아침은 20개 업체 안에 꼽힌다. 나머지는 연매출 1억·2억으로 영세한 업체다. 점유율 1·2·3위 업체가 막걸리 시장 매출의 90% 차지한다.

2010년 이후에는 막걸리 선도기업마저도 매출이 급감하며 시장 규모 자체가 축소되고 있다. '백세주' 히트로 2002년 매출액이 1000억 대를 기록한 국순당은 지난해 매출은 180억 원을 기록했다. 국순당은 올해 초 불거진 가짜 백수오 논란에 백세주가 휘말리면서 급기야 시중에 풀린 백세주 3종을 자진 회수하는 등 위기를 맞고 있다. 부산 지역 최대 양조장으로 부산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 보이는 생탁은 노예노동 논란으로 불매운동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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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중협 우포의아침(주) 대표./김구연 기자

"이제는 주류 문화가 유행을 만들고 유통 트렌드를 이끌어 가지만 막걸리 시장에는 트렌드를 이끌 업체가 없어 보입니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소주와 맥주시장에 편중돼 있고 당분간 주종 쏠림현상은 지속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 늘 전전긍긍했어요. 집에 월급을 제때 가져다줄 수도 없고 주말에도 늘 연구하고 기계 정비로 회사로 출근해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도 아니죠. 돈을 많이 벌고자 생각한 적이 없음에도 그만둬야겠다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전통주 사업을 고집하느냐는 질문도 받습니다. 딴 이유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전통을 이어가고 우리 농산물로 만든 술이 우수한 술임을 알려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양파껍질차'로 전통주 도약을 꿈꾼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우포의아침(주)은 수입쌀로 막걸리를 제조하고 이를 100% 국산으로 표기해 판매했다는 '쌀 원산지 표시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수입 쌀을 사용한 우포생막걸리 제품을 추가로 출시하고 추가 제품을 홈페이지 업데이트 하지 못한 것이 원산지 표시위반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박 대표는 제품상 원산지표시 위반이 아닌 홈페이지 관리 미흡을 원산지 표시 위반으로 볼 수 있는지를 가리고자 법원에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를 극복해야 하는 시점에 박 대표는 술이 아닌 '양파껍질차'라는 음료를 지난 11월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항노화산업박람회에서 처음 출시했다.

"우포의 아침은 연구원이 4명으로 21명 전체 직원 수에 비해 연구원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꾸준한 품질 향상과 새로운 제품 개발이 회사가 커가는 원동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숱한 국책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상품화에 대한 고민은 차순위였습니다. 이번 양파껍질차는 회사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봅니다. 기존 전통주의 지속적인 발전을 뒷받침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일단 양파껍질차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우호적이다. 양파껍질추출액이 49.85% 함유됐음에도 양파 특유의 향은 없애고 목넘김은 가볍다. '하루 1병의 신비'라는 콘셉트로 바쁜 현대인과 젊은층을 공략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전통주를 클럽에서 마시는 등 젊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호텔 한식당에서는 전통주 맞춤 식단이 있는가 하면 고급화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전통주 시장이 잠시 주춤한다 해도 분명히 기회는 다시 올 것으로 봅니다.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와카타케야 사케 사장과는 형님, 동생 하는 사이입니다. 그 술도가는 13대째, 300여 년 동안 집안 대대로 술을 만들어온 집안입니다. 우리나라는 왜 그런 회사가 없을까요? 우리 회사를 꼭 그런 회사로 만들어봐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몇백 년 대를 잇는 존경을 받는 회사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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