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고 싶은 자존심만큼 고객 생각하겠다"

창원시 의창구 중동 창원과학고등학교 맞은편 사람들 발길이 쉽게 닿지 않은 곳에 제법 그럴싸한 인테리어를 한 건물 한 채가 있다. 제법 값비싼 음식을 파는 음식점인가 싶었는데 예상과 달리 한국인 남녀노소가 즐겨 먹는 외식 메뉴인 그 흔한 '돈가스 전문점'이었다. '돈가스' 파는 곳이 개업 2년여 만에 전자세금계산서 의무 발급 식당으로까지 성장했다. 전자세금계산서는 매출 3억 원 이상인 업체나 개인사업자가 의무 발급 대상이다. 어떻게 개업 2년 만에 이런 성장을 했을까? 그 비결을 듣고자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5년간 맛있는 음식점 200여 곳을 찾아 헤맸다

돈가스 전문점 '비비돈가스'를 운영하는 허명(59) 사장은 올 10월 31일 상당히 의미 있는 상을 받았다. 사단법인 한국외식경영학회(회장 박대섭)로부터 '외식경영대상'을 받았다. 이 상은 한국외식경영학회가 급신장했거나 고용 창출을 많이 한 외식업체나 개인사업자에게 준다.

이와 함께 돈가스 전문점으로는 드물게 국산 돈육(돼지고기)만 쓰는 음식점(업체)으로 인증받는 '한돈인증점'으로 등록됐다. 한돈인증점은 한돈자조금위원회가 2개월마다 실사를 나와 우리 돼지고기만 쓰는 업체임을 인증하는 제도다. 원산지 논란은 늘 주요 뉴스가 되는 만큼 '한돈인증점'이라면 소비자가 그만큼 음식을 믿고 먹을 수 있는 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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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명 창원 비비돈가스 사장./박일호 기자

'비비돈가스'는 돈가스를 좋아하는 창원시민, 인근 김해시민에게 제법 입소문이 났다. 지난 2013년 8월 말 개점한 이곳이 이렇게 빨리 손님을 모은 비결은 뭘까?

"문을 열기 전 준비하고 또 준비했습니다. 정성과 혼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은 절대 고객이 감동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만들어요. 고객이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습니다."

잘 나가던 건설사 직원, IMF구제금융에 실직

허 사장은 1997년 말 IMF 구제금융 전까지 지역 중견건설사 직원으로 일했다. 1988년대 초 이 회사 서울사무소 직원으로 서울로 갔다가 2000년 다시 고향 마산으로 왔다. 나름 지역에서 탄탄한 건설사 회사원으로서 자부심을 지니고 일하던 그에게 IMF 구제금융과 회사 청산은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1999년 회사 청산 일까지 끝내고서 두 딸과 아내를 서울에 두고 홀로 고향으로 왔다. 그렇게 다시 고향으로 온 그는 몇 년간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다행히 회사원으로 일할 때 나름대로 성실하게 돈을 모으고 운이 맞아서 창원 팔용동에 건축물을 사둬서 먹고 살만은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혼자 일어나고 혼자 밥 먹고 하는 게 몇 년간 정말 적응이 되지 않더라고요. 외로운 것만큼 참기 어려운 것도 없었어요."

그는 이 건물에 볼링장과 헬스장을 넣어 운영하다가 크게 재미가 없다고 판단해 예전 건축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삼아 빌라와 원룸을 지어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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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명 창원 비비돈가스 사장./박일호 기자

황우석 신드롬에 주식 투자… 깡통 계좌만 덩그러니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지인 말만 믿고 주식에 투자한 것이 화근이었다.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신드롬이 한국을 강타하던 2000년대 초·중반, 코스닥에서도 줄기세포 벤처기업 붐이 일었다. 기자는 2006년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이 이미 밝혀진 상황인데도 황우석 신드롬을 믿는 지지자를 향해 "과학이 해괴한 신앙공동체로 변모했다"고 비판한 진중권 현 동양대 교수 창원대 강연회를 취재한 적이 있다. 강연회를 마친 직후 진 교수와 인터뷰를 하려다가 황 박사 지지자들에 떠밀려 진 교수와 함께 3시간 반 넘게 학교 건물 한편에 감금된 적이 있다. 이처럼 일부 사람에게 신처럼 숭배되던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신드롬은 허 사장에게도 무척 아픈 기억으로 남은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직장 생활만 하다가 진짜 사회 때가 안 묻었었구나'라고 되돌아보게 됩니다. 1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는데 거의 다 날려버렸어요. 주식 투자 경험도 없는 내가 순진하게 지인 말만 믿고 빌라·원룸, 서울 집까지 담보 잡아 투자하고서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되겠지, 되겠지' 한 게 2년이 지났습니다. 남은 건 이른바 '깡통 계좌'였죠. 그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2004년, 2005년 주식 투자에 완전히 실패하고서 그는 자신이 사는 창원 집, 아내와 둘째 딸이 있는 서울 집·이모 집이 있는 뉴질랜드로 유학 간 첫째 딸 등 모두 세 가정을 돌봐야 했다. 가장으로서 정말 힘든 나날이었다. 서울 집도 잘 나가던 강남 서초구 아파트에서 평수를 줄여서 이사하면서 다시 버텼다. 그나마 부동산 경기가 죽지 않아 버틸 수 있었다.

음식점 운영 결심했지만 심드렁했던 아내 '복병'

그 일을 겪고서 몇 년간 늘 건강이 안 좋은 상태로 살다가 2008년 그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곧 한국 나이로 60살인데 그냥저냥 살아갈 수 있겠지만 내가 평생 일할 만한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러려면 음식점 운영이 괜찮겠더라고요."

그렇게 마음먹고서 허 사장은 틈만 나면 맛 좋고 손님 많다는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2012년 말 음식점을 열겠다고 땅을 사고 건물을 올릴 때까지 5년간 그는 200여 곳이 넘는 식당을 찾아다녔다.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6개월 과정 요리학원에 다니고 특급호텔 주방장 출신 요리전문가에게 상담도 받고, 개인 교육도 받았다. 심지어 일본에도 갔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만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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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명 창원 비비돈가스 사장./박일호 기자

그런데 정작 그가 넘기 어려웠던 이는 다름 아닌 아내였다. 가장 친한 친구의 여동생에서 그의 아내가 된 이복희(57) 씨는 "크게 잘 살고 싶은 생각 없다. 그냥 이대로 살면 되지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하려고 하느냐"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창업을 위해 이른바 '대박집' 사장을 만나보고, 음식 전문 월간지 사장도 만나고, 컨설턴트도 찾아갔다. 더불어 부인과 함께 이른바 '잘 나가는' 음식점을 찾는 일도 잊지 않았다.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도 잘 아는 이가 하는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서 그 집 사장이 하는 얘기에 부인이 솔깃하더란다. "그때 아내 마음이 살짝 열린 것 같더라"는 허 사장.

"우선 이 길이 맞다 싶으면 뒤를 안 보고 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내가 마음을 움직이자 곧바로 음식점을 열기 위해서 맹렬하게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정말 어려운 선택이 남아있었다. 어떤 메뉴를 선택해 음식점을 할 것이냐는 근본적인 물음에 봉착했다.

"200여 곳을 보고 나니 어떤 메뉴를 정할지 마음의 갈등이 상당했습니다. 저 집에 가면 저게 잘 될 것 같고, 이 집에 가면 이게 잘 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유동인구가 많은 음식점을 보면 당장은 잘 되지만 거기 고객들은 그냥 흘러가는 고객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만든 음식이 경쟁력을 갖춰 고객이 찾아오는 곳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원에 잘하는 음식은 맵거나 짠 음식, 회나 해산물, 국밥 뭐 이런 것이 다였어요. 젊은 층에게 사랑받을 만한 메뉴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2012년 10월 지금 땅을 사서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신축하고서 완공 2∼3개월을 앞두고 돈가스를 선택하게 됐죠."

연습에 또 연습 '돈가스'로 승부 걸다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돈가스입니다. 그런데 창원에는 내 입맛에 만족할 만한 전문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컨설턴트 도움을 받아 창원시 지역 수요조사와 만족도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내가 노력하면 우리 진심을 고객이 알아줄 것이다. 한 번 해볼 만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건축은 2013년 6월 마쳤지만 그해 4월 조사가 끝나고서 전문가와 함께 3개월 넘게 돈가스를 만들고 소스를 개발하는데만 전념했다.

그는 솔직했다.

"사실 처음 시작하는데 어떻게 내 힘으로만 다하겠습니까. 컨설턴트 도움을 받고 음식 전문가와 함께 만들어보고, 또 만들어봤죠. 뒤에는 전문가와 소스를 개발하고서 다시 내 스타일대로 조금 변형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013년 8월 말 개점을 하고서 지금껏 매출이 매달 전달보다 15∼30%씩 늘었다. 지금은 종업원 6명, 부인과 허 사장 8명이 고객을 맞는 제법 큰 일터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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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명 창원 비비돈가스 사장./박일호 기자

1등급 돼지고기·습식 빵가루·27가지 재료 소스

'비비돈가스'는 재료부터 남다르다. 우선 냉동 돼지고기를 전혀 쓰지 않는다. 그는 늘 1등급 이상 국내산 생(돼지)고기를 쓴다. 음식점 입구에는 늘 오늘 쓰는 돼지고기 등급표가 놓여있다. 웬만한 고깃집에도 없는 것이다. 취재를 갔던 지난 13일 돼지고기도 1등급 혹은 1+등급이었다.

1등급 돼지고기를 숙성 냉장고에 4∼5일간 숙성한다. 숙성도 그냥 하는 게 아니다. 돼지고기 등심을 힘줄을 제거해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해 저온 냉장고에 하루 이틀 숙성하고, 칼집을 넣어 와인과 마늘을 추가해 하루 혹은 이틀 더 숙성한다. 이렇게 숙성된 돼지고기에 살짝 젖은 습식 빵가루를 묻혀 170도 온도의 기름에 3분 동안 튀겨낸다.

"습식 빵가루는 잘 쓰지 않더라고요. 가격이 비싸거든요. 하지만, 숙성시킨 돼지고기와 습식 빵가루가 만나면 훨씬 더 바싹바싹한 식감이 됩니다. 고객들도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고된 과정을 거쳐 만들기를 잘했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맛있게 먹는 고객을 볼 때가 가장 뿌듯합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또 다른 비결은 바로 소스다. 소스를 만드는 데 5∼6시간을 들인다. 27가지 재료가 들어가는데, 재료 손질하고 계량해서 믹서기에 돌리는 데만 2시간, 밀가루와 버터로 만드는 '루'를 만드는데 1시간, 이것들을 불 위에 올려서 저어주는 데만 2시간이 걸려야 소스가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스는 지하 숙성 냉장고에서 3일 이상 숙성시켜 쓴다. 소스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만든다.

보통 소스는 돈가스 위에 뿌려주지만 고객이 미리 얘기하면 따로 준다.

밥 대신 비빔밥으로

또 다른 특징이라면 이곳에는 돈가스와 함께 비빔밥을 먹는 점이다. 돈가스를 시키면 밥이 나오지 않아 순간 당혹스러울 법도 하지만 식당 중앙에 미니 뷔페식으로 비빔밥 코너를 따로 마련해 뒀다. 밥만 먹으려면 밥만 가져가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알배추무침, 콩나물, 부추나물, 무채, 김 가루 등 다섯 가지 고명을 취향에 따라 넣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면 된다.

여성에게 인기 만점인 샐러드 돈가스, 샐러드 파스타, 크림·토마토스파게티 등 다른 메뉴도 있는데 파스타와 스파게티는 호텔 주방장에게 개인 교습을 받고서 만들고 있다. 가격도 1만 원이 넘지 않아 부담이 없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고객 중심의 공간 활용도 찾는 이에게 만족감을 줄 만하다. 식사하는 곳 좌석은 90석으로 바로 옆에 20여 평의 카페(야외까지 약 40석)를 별도로 둬 운영하고 있다. 유모차나 장애인 휠체어가 들어오도록 턱을 없앴다. 여성화장실에도 비데 2대를 설치해 기다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등 고객 배려가 남다르다.

"여전히 부족하다 생각하기에 틈만 나면 맛집을 찾는다"

예상보다 순항 중이라는 허 사장. 하지만, 그는 아직 만족할 때가 아니라고 했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올 7월에도 두 딸과 일본으로 5박 6일 맛집 탐방을 했습니다. 지금 시스템으로 괜찮기는 하지만 또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고객이 너무 많이 찾아와도 반갑지 않습니다. 소홀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늦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 만큼 남에게 헛된 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자존심은 지키고 싶어요. 대충하는 것은 나나 우리 집사람이나 체질에 맞지 않습니다. 그 자존심만큼 고객을 생각할 거예요."

그는 인터뷰 내내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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