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탕

이번 달 요리는 너무 쉬워서 민망할 정도다.

하긴 돌아보면 쉽지 않은 요리가 없다. 좋은 재료, 적절한 조리, 약간의 간 맞춤이면 웬만한 요리는 다 맛있다.

홍합탕은 그래도 너무한 게 사실이다. 싱싱한 홍합을 물에 끓이기만 하면 되니까.

함께 사는 사람에게 '홍합 끓인 물'을 먹였더니 뭘 넣었냐고 묻는다. 홍합. 정말? 그렇다. 소금도 필요 없고 마늘·파·고추 이런 것 다 구색이다. 정 심심하면 파만 막판에 송송 해주면 된다.

물 조절, 시간 조절을 잘하긴 해야 한다. 너무 많은 물은 곤란하다. 냄비에 넣은 홍합이 넉넉하도록, 물이 거의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야말로 '진한' 홍합 국물을 뽑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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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탕.

시간은 10분이면 충분하다. 너무 오래 끓이면, 국물은 진해질 수 있으나 살이 쪼그라든다. 살을 발라내고 껍데기로만 끓여도 국물이 우러나오지만 번거로움이 단점이다.

비린내? 신선하기만 하면 걱정할 거 없다. 불안하면 청주 약간만 더해주자. 중간중간 거품 제거하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잘만 우리면 소금조차 쓸 데 없지만 간이 심심하다 싶으면 넣어도 상관없다.

홍합은 해감이 필요 없어서 손질하기도 쉽다. '홍합 수염'으로 불리는 족사만 제거하면 된다.

홍합 국물만 있으면 이제 다양한 요리를 무한대로 만들 수 있다. 각종 찌개·국·조림, 파스타, 칼국수, 중국 요리, 일본요리 거칠 게 없다.

이번엔 '한국식' 요리 두 가지만 더 소개하자.

홍합미역국

미역국은 육수도 중요하지만 미역이 생명이다. 질 좋은 미역, 특히 자연산 미역일수록 깊고 풍부한 맛이 난다.

육수는 홍합뿐 아니라 무엇이든 가능하다. 다른 조개류도 괜찮고, 각종 해산물, 소고기·생선 두루두루 쓰인다.

다만 멸치 육수는 미역국에 잘 안 어울리는 듯하다. 두부 등을 넣는 것도 삼가길 바란다. 두부를 넣으면 식감도 별로고 국물이 탁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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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미역국

육수는 미리 우려 놓는다. 건져낸 홍합은, 완전 '노가다'지만 하나하나 살을 발라내는 수고를 해야 한다. 홍합 껍데기까지 먹을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물에 불린 미역은, 적당한 크기로 손질한 뒤 국간장과 소금, 참기름 약간으로 양념을 해놓는다.

다진 마늘도 함께 섞곤 하지만 국물이 지저분해지는 단점이 있다. 육수만 좋으면 마늘 향은 옥상옥일 따름이다. 마늘이 너무너무 좋으면 살짝 으깬 채로 육수 우릴 때 넣었다가 나중에 빼내면 된다.

간이 된 미역을 이제 냄비에서 볶는다. 적당히 볶아졌으면 육수 투하. 오래 끓일수록 맛이 깊어지는 미역국이지만, 육수만 좋으면 10분이면 충분하다.

다 됐을 쯤 앞서 발라놓은 홍합살을 넣어 화룡점정을 한다. 시중에 파는 '발라놓은 홍합살'을 쓰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국물의 레벨이 하늘과 땅 차이다. 홍합살만으론 깊은 국물이 안 나온다.

더 이상 남은 공정은 없다. 국간장이나 소금으로 살짝 간만 해주면 된다.

진짜 쉽지 않은가? 한데 이렇게 끓인 미역국, 깊고 그윽한 게 정말 맛있다.

홍합밥

홍합밥엔 생홍합살이 필요하다. 쌀과 생홍합살을 참기름에 볶다가 물을 넣어 끓이는 원리다.

한데 대다수 레시피가 '육수'를 간과한다. 저렇게 볶아서만은 깊은 맛이 나지 않는다. 물 대신 홍합 육수를 넣으면 훨씬 더 진한 홍합밥을 즐길 수 있다.

쌀을 30분 정도 물에 불린다. 이때 중요한 건 쌀을 물에 '담그는' 게 아니라 씻어서 체에 밭치는 것이다. 그래야 쌀에 골고루 물기가 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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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밥.

양파 등 채소와 쌀·홍합살을 함께 볶기도 하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쌀이 반투명해질 정도로 충분히 볶아지면 앞서 '홍합 육수'를 투하한다. 육수 양은 쌀과 1대 1 비율이 적당하다. 보통 때는 고슬고슬한 볶음밥용 밥을 짓는 비율이지만, 홍합살이 들어가므로 적당히 차진 상태가 될 수 있다. 물을 너무 많이 넣으면 질척해지니 주의하자.

쌀 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센불에서 팔팔팔 끓어올랐을 때 불을 최대한 줄이고 약 15분 정도면 밥이 완성된다. 중간중간 밥을 섞어주고, 불을 끈 뒤 5분 정도 뜸 들이는 일도 잊지 말자.

뭐가 빠지지 않았냐고 반문하는 이 있겠다. 고춧가루, 간장, 파, 참기름 등을 넣어 만드는 양념장.

양념장을 정말정말 사랑하는 분이라면 모르겠으나 기자는 결사반대다. 아주 미량이라면 모를까, 양념장을 퍼붓는 순간 그것은 홍합밥이 아니라 양념장밥이 된다.

싱싱한 홍합을 사다 열심히 볶고 끓여 만든 음식에, 그러니까 홍합의 맛과 향이 살아 꿈틀거려야 하는 음식에 양념장은 만행에 가깝다.은 만행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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