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인 출신 CEO가 공장 안에 북카페를 만든 이유

기능인 출신으로 CEO에 오른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제법 여러 해 전 공업고등학교를 나와서 거대 기업 상무 자리까지 오른 사람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고졸이라는 학력을 취재하고자 인터뷰한 게 아니었지만, 그 '인간승리'가 흥미를 끌어 아예 인터뷰 초점을 그것에 맞추려 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끝내고 나서 해당 인터뷰이는 물론, 그 회사 홍보실, 그밖에 나하고 연결이 되는 여러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공고 출신이라는 걸 기사에 쓰지 말아달라고. 씁쓸했지만 애초 목적대로 기사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 기계공고 출신으로 중소기업 CEO가 됐다는 데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고, 오히려 기능인 출신이라는 데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에게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노동 현안과 인생 역정에 대해 대화를 나눠봤다.

창원시 성주동에 있는 동구기업 류병현(58) 대표이사는 자신이 기계공고를 졸업한 기능인이라는 점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어느 정도냐면 자신의 명함에 기능인 출신이라는 점을 기재하고 다닐 뿐만 아니라 "최충경 창원상공회의소 회장님은 언제나 나를 소개할 때 '기능인 출신 CEO'라고 해주시는데 정말 고맙죠"라고 말했다. 심지어 평통이나 검찰청 관련 사회단체 등 다양한 사회 활동에 대해서도 "검사나 뭐 이런 사람들이 기능인에 대해 알겠어요? 몰라서 모르는 게 아니라 관심이나 있겠습니까? 그러니 나라도 기능인의 역할에 대해 알려주고 기능인 우대 풍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자 그런 단체 활동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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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병현 동구기업 대표./김구연 기자

메달 딴 놈들 뒤만 쫄쫄 따라다니다가…

-기능인 출신이라는 점에 남다른 자부심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무슨 배경이라도 있습니까?

"저는 기능올림픽 통해서 제2의 인생을 걷게 됐고, 지금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사업하면서 힘든 과정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77년 그 어린 나이에 그 엄청난 수모라면 뭐 하지만 마음에 고통을 이겨냈는 데 이걸 못 이겨내겠나. 그때는 나 혼자 겪어야 할 일이었지만, 지금은 우리 직원들도 있고 관리자도 있는데 이런 힘이 많이 되죠.

많은 사람이 기능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죠. 기능대학이 폴리텍으로 바뀐 이유도 그런 의미가 좀 있습니다. 기능대학 하니 뭐 어디서 철공소 하는 기분이 들고. 대학 이름을 바꿨죠. 기능인 스스로 기능인 출신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죠. 나라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지요."

-기능올림픽 경험을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합천 삼가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어릴 때 꿈은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너무 힘들어서 빨리 돈 벌어 엄마를 좀 편하게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진주기계공고로 진학했습니다. 그냥 기술을 배우러 간 게 아니고 나름대로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던 중 학생 기능대회를 알게 됐습니다. 다른 애들 수업 마치고 다 집에 가도 나는 실습동에 내려가 기술을 연마했습니다. 재학 중에는 큰 성과를 못 내고, 1973년 LG전자 동래공장에 실습 나갔다가 이듬해 취업이 됐습니다. 그 이후 창업할 때까지 줄곧 그 회사에서만 있었어요.

하여튼 76년 기능올림픽 한국대표로 선발돼 77년에 기능올림픽 나갔는데 정보 부족으로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충분히 메달을 딸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게 가서 보니까 정보력 부재지. 완전히 과제가 바뀐 겁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한 7년 동안 갈고닦은 기술을 하나도 써먹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내가 이걸 여기 두고 있는데(그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인 목형은 지금도 회사 내 북카페에 전시돼 있다) 그 아픔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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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병현 동구기업 대표./김구연 기자

그때가 내 나이 21살이었어요. 우리나라가 종합우승했을 때였는데 친구들 다 메달 따고 그랬는데 나만 메달 못 땄으니 아픔이 컸죠. 그때만 하더라도 대단했죠. 박정희 대통령 살아계셔서 환영식도 대단하게 하고 했는 데 귀국해서는 김포공항에서 광화문까지 카퍼레이드하는 차 중 맨 꼬랑지 차에 타고 울면서 왔어요. 지금은 이렇게 얘기하지만, 그때는 어린 나이로는 감내하기 어려운 처절함이었습니다. 한 6개월 정도 엑스트라로 따라다니면서 방황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까지 내가 이래야겠나, 기능 쪽에 몸을 안 담는다면 모르겠는데 담는다면 10년 20년 후에도 이런 위치로 친구들을 만나야 하는데 이래 해야 하겠나 싶고, 그래 어느 날 갑자기 이게 아니다 싶더라고요.

당시 국제대회 입상하면 대단했습니다. 친구들이 국제대회 입상함으로써 국가나 사회로부터 받는 인센티브가 있다면 나는 지금부터 이걸 죽기 아니면 살기로 나 스스로 노력해서 따라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때부터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기능올림픽 관련 직함도 여럿인 걸로 압니다만….

"정말 국제대회를 통해 경쟁사회에서 승자와 패자의 이 엄연한 현실을 터득한 거죠. 절대 2등은 없다. 그래 내가 이를 악물고 노력했습니다. 갔다 오자마자 후배들이 더는 이런 아픔이 없어야겠다고 해서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어요. 회사에서 큰 배려를 해줬습니다. 기능훈련 지도교사를 해서 국제대회 심판위원도 하고, 전국대회 심사위원, 경남 기술위원장도 하고, 한국 부대표도 했죠. 내가 95년도 우리나라 최연소 국제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됐습니다. 그때 내 주변을 돌아보니까 나하고 같이 국제대회 가서 금메달 은메달 딴 친구들 많이 있어도 한 사람도 그때까지 국제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사람이 없었어요. 지금은 많지. 내가 제일 먼저 됐어요. 나는 그만큼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한 겁니다.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에도 참가하고 있더군요.

"기술인을 위해 선배로서 재능기부라고 생각해요. 내가 기능한국인 1호잖아요. 다른 거는 자격증 몇 명 뽑고 해서 되는 순간 같은 건데, 이건 매월 한 명씩 뽑다 보니 거기에 호수가 정해지더란 말입니다. 이번에 105호인가 나왔는데, 내가 1호다 보니까 상징성이 있고, 뭐만 하더라도 1호를 부르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 내가 좀 더 잘 해야겠구나 그런 책임감이 많죠. 기능한국인 1호라더니 사업도 제대로 못 하고 손가락질 받고 그럴 수는 없잖아요.

기능대회 관련 활동이야 당연한 거고, 법무부에 법사랑이나 민주평통이나 이런 활동도 했습니다. 나는 하면서도 항상 생각해요. 검사나 뭐 이런 사람들이 기능인에 대해 뭐 알겠습니까? 아니 몰라서 모르는 게 아니라 관심이나 있을까요? 그런 분들에게 기능의 중요성이나 기능인이 이렇다고 알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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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병현 동구기업 대표./김구연 기자

문제는 '일자리' 아니라 '일거리'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합니다. 사회적 분위기도 고졸 취업을 장려하는 쪽으로 실업 문제를 해결해보려고도 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가 일자리 일자리 하잖아요. 나는 이걸 일자리가 아니라 일거리 문제라고 봅니다. 기업에 일거리가 없는데 어떻게 일자리를 만듭니까. 일거리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일거리가 있으면 일자리는 있게 돼 있습니다. 한번은 국회 세미나에 가서 뭐라 했느냐면 '기업 하는 사람한테는 일감이 보약이다. 일감이 없으면 일자리가 있습니까. 그런데 일자리 창출하는 데 모든 정책이나 예산이 투입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한 발짝 앞서서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이 일거리를 확보하는 데 정책적인 아이디어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일감 확보하는 것은 정부나 지자체나 사회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일감을 확보하는 것은 회사나 CEO가 할 일이고, 그리되면 정부나 지자체는 우수한 인력을 양성해뒀다고 그 일감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해주는 게 소위 말하는 수요와 공급 원칙에 맞지 않습니까? 정책도 그 이전에 한발 앞선, 선행되는 일거리 확보하는 데 지원할 일들이 많다는 것이지."

-고졸 취업 장려로 청년 실업 문제가 해결될까요?

"한동안 고졸 기능인에 대해 편협한 생각이 많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70년대 80년대까지만 해도 기능인·기술인이라고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먹고살고 근대화를 하는데 그래도 산업현장에서 땀 흘리고 고생한 덕분이다' 이런 의식을 가졌잖아요. 88년 올림픽을 지나고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산업현장에서 기름 만지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급격하게 안 좋아진 거죠. 그러다 보니 기계공고도 많이 줄어들고…. 기계공고 이공계 쪽으로 들어가는 애들도 솔직히 수준도 좀 낮아졌고. 지금은 좀 많이 좋아졌는데, 2000년만 해도 공고 들어가는 애들 중학교 성적이 거의 뒤에서 5% 10% 수준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그런 애들이 사회에 나오면 적응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그런 부분을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요. 강의도 나가고 애들한테 꿈을 심어주려 합니다.

왜 그리됐느냐면 갑작스레 대학 진학에 대한 붐이 확 불잖아요. 본인도 그렇고 부모도 그렇고 대학 가겠다면 다 가는데 왜 내 자식은 안 보내느냐고. 그러니 다 가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또 중요한 거는 그렇게 대학을 나왔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면 일단 대학을 나오면 현장에 가서 손에 기름을 묻혀서는 안 된다는 그런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요. 넥타이 매고, 실력이 있든지 없든지. 또 하나는 취업을 해도 꼭 대기업에 취업해야 취업이고 중소기업은 기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우리 지금 청년실업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청년실업이 해결 안 된다고 생각하죠."

왜 남의 자식 갖고 정책 펴나

-높은 대학 진학률을 나무라기만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정책 입안하는 사람들이 공업계 고등학교 활성화해서 바로 산업현장에 보내야 한다고 얘기하죠. 나는 되묻습니다. 나는 공고 출신이다. 정책 입안하는 사람들, 그걸 부르짖는 사람들, 그걸 연구하는 교수들 당신 자식을 공고 보내서 산업현장에 보낼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죠. 얼마 전 국회 세미나에서 얘기했어요. 왜 남의 자식 가지고 정책을 펴느냐고. 내 자식은 대학 보내서 유학 보내야 하고 남의 자식은 공고 보내서 공돌이 시켜야 하고. 그런 정책이 어디 있느냐고. 그것부터 잘못됐다. '그라모 니는 어쩔껀데' 이렇게 내게 반문한다면 나는 답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이나 학생 입장에서 대학 졸업장은 절실합니다. 장가가야 하고 사회에 나가 친구를 사귀는 데도 필요합니다. 그거를 제도적으로 못하게 할 수는 없지요. 그리고 전문대학이나 이런 데는 애들 모자라서 공고나 온 데 다니면서 메모지하고 볼펜 싸들고 가서 뿌리고 이리하는데 안 갈 사람이 어딨습니까. 걔들 학교 가면 F 학점 못 줍니다. F 학점 줘서 애가 학교 안 나오면 과가 형성이 안 되고 교수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는데 누가 줍니까. 그러면 대학을 나와도 내 적성에 맞고 내가 내 나름의 비전을 만들어나가겠다 싶으면 산업현장이든지 손에 기름을 만지든지 아니면 중소기업이든지 그것을 터부시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만들어지지 않고는 공고 많이 만들고 해도 안 된다는 겁니다."

정년연장·임금피크제 필요

-이왕 노동 이슈가 나왔으니 최근 논란이 됐던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공장 현장에 70세 되신 분도 계시는데 정년이라는 개념은 자신이 체력적으로나 일할 수 있는 범위가 그냥 정년인 듯해요. 인위적으로 나이를 정해서 하는 게 아니라 생식 정년이죠.

특히 우리 직종은 오랜 숙련이 필요한 뿌리산업의 근간입니다. 뿌리산업이 6종류 열처리, 기계 가공, 표면처리, 주물 이런 게 있는데 총괄적으로 모여서 하나의 물건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금형입니다. 그런데 금형 기술이라는 것은 짧으면 5년 10년, 길면 20년 30년 숙련이 필요한데, 나이 55세 됐다고 해서 30년 40년 일해온 손재주가 하루아침 소멸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 회사는 정년퇴직해도 자기가 원하면 연장근무를 하는 거죠. 지금 국가에서 하는 임금피크제 그거를 우리는 오래전부터 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57세 해봤자 한참 일할 때 아닙니까. 회사에 다섯 명 계시는데 저는 이런 분들이 사회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 정년이 55세에서 60세로 연장이 되면서 임금피크제 도입하려고 사회적으로 많은 고통이 있잖아요. 근로자들도 아무래도 50세 정도 되면 체력적으로 점점 감소하거든요. 그런 부분을 인정해서 조금 더 오래 근무하는 걸 받아들여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 내 능력이 되든 안 되든 세월이 가면 급여는 올라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문젭니다."

-노조가 지나친 요구를 한다는 것으로 들립니다만?

"우리나라는 노동운동이 6.29 하면서 갑작스럽게 들어오면서 사실 노사라는 게 상생의 개념이 있어야 하는데 급격하게 들어오다 보니까 그동안 너무 억눌렸던 것도, 고도성장하면서 무시됐던 것도 있고 하다 보니 이게 한꺼번에 분출돼 상생보다는 적대되는 개념이 되는 거죠. 어떤 경우라도 경영권은 존중돼야 하고 또 사실은 노동권도 보호받아야 되거든요. 그런데 한꺼번에 터지다 보니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사실은 그게 아니잖아요. 아니 회사가 문을 닫아버리면 뭐가 있느냐고. 없지 않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보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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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병현 동구기업 대표./김구연 기자

기능인 우대 사회 분위기 조성돼야

-다시 고졸 취업 문제로 돌아가면, 대부분이 중소기업에 취업하게 됩니다. 그런데 중소기업이란 게 연봉은 물론이고 모든 측면에서 대기업과 비교되기 때문에 취업하더라도 견뎌내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지금 사실은 일·학습 병행제나 도제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길게 보면 10년 전부터 서서히 다시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비록 인위적이긴 하지만 고등학생이나 공고생을 공무원이나 대기업에서 채용하고 있죠. 정책으로 밀고 가니 그렇게 되는데, 하지만 우리 국민이 '그래 맞아 이것이 답이야' 이렇게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죠. 서구는 그리 가고 있지 않습니까.

중소기업에 우수한 인력이 많이 머물러야 해요. 독일이나 스위스나 대만만 가도 자체 브랜드를 가진 중소기업이 많이 있는데 우리는 거의 80% 이상이 대기업에 납품합니다. 그러니 연봉을 극복 못 하는 거죠. 대기업의 어지간한 제품 80% 내지는 90%가 중소기업에서 들어갑니다. 대기업에서는 조립 라인에서 조립만 해서 제품 출하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중소기업에 우수한 인력이 남아있어야죠. 지금의 정책이나 그런 부분이 그나마 중소기업에 인력을 유입시키는 효과를 보는 거죠. 정부가 하는 일 중에서 명장을 발굴한다든지 기능한국인을 발굴한다든지 이런 것들이 손에 기름 묻히는 사람들을 사회에서 부각하는 효과가 있고, 인식을 전환하는 효과는 있죠."

-연봉도 연봉이지만 복지나 기타 대우도 차이가 많이 나잖습니까?

"우리는 아파트 3채를 기숙사로 쓰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학생이나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숙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오려고 합니다. 그게 중소기업에 굉장한 부담입니다. 중소기업에 오랫동안 근무하는 사람에게 사회적인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주장을 많이 합니다. 중소기업에 오래 근무하고 동종계열 대학을 가려 하면 학자금을 지원해준다든지, 시험 칠 때 그 분야에 대한 점수를 인정해준다든지, 자녀가 대학을 간다거나 아파트를 구입할 때 융자를 저리로 해준다든지 이런 인센티브가 있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중소기업의 근로자에게도 좋고 기업에도 좋은 게 기숙사를 해달라는 겁니다. 대기업은 전부 기숙사를 가지고 있잖아요. 서울 유학 보내는 기숙사가 아니고 공단에 복지관·기숙사 이런게 필요합니다. 저기 LG 창원공장 앞에 시커먼 건물 저거 한 30년 됐잖아요. 저런 거를 시나 도에서 리모델링해서 지하에는 스크린 골프장도 만들고 노래방도 만들고, 작은 극장도 만들고 하면 되거든요. 그리고 위에는 기숙사하고 1층은 가게 같은 것, 호프 같은 것 넣으면 된다고. 그런 걸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사람에게 주는 거죠. 다 수용이 안 되겠죠. 그러면 기다린다든지, 몇 년 하면 나가주고 이런 제도를 하면 한 1000명 수용할 수 있는 정도로 하면 되거든요. 그런 거라도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리 생각하죠. 공단이 들어서면 그 공단 수용인원에 대략적으로 맞춰 기숙사 같은 복지시설도 함께 만들어야 돼요. 그런 건 정부나 지방정부서 할 일이고, 그담에 삶의 질을 높이고 하는 것은 기업이 할 일입니다."

결국 사람이 중요하더라

-(인터뷰하는) 이 공간도 참 좋아 보이는데, 복지에도 많은 투자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여기는 북카페예요. 우리는 쇠를 만지잖아요. 아무래도 정서적으로 메마르죠. 여기는 아무때나 누구든지 와서 책을 보거나 무슨 짓을 해도 이 공간에서 쉬는 것은 일체 얘기 안 합니다. 커피도 셀프로 해놓고, 여기 와서 공간을 많이 활용합니다. 공간은 내가 내줬고, 인테리어나 이런 거는 우리 여사원들이 인터넷 들어가서 컨셉에 맞춘다고 이렇게 했어요. 해놓으니 참 좋아요. 외부에서 손님 오면 다 여기 와서 커피 마시고 대화하고. 여기는 업무를 초월한 공간이죠. 일하다 머리 아프면 혼자 와서 쉬기도 하고. 여기에 있는 것은 아무도 터치 안 하니까 좋아들 하죠.

식당도 1억 원 정도 들여서 리모델링 했습니다. 왜냐면, 보통 공장에 보면 점심 같은 것 먹으러 가도 시커멓게 해서 밥만 퍼뜩 먹고 나오고 이러니까요. 이게 할 게 아니다. 한 끼 먹더라도 상하간에 친구간에 같이 밥 먹고 해야죠. 호텔이나 레스토랑 같은 데 가면 값이 비싸도 분위기 좋으니 오래 앉아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나름 한다고 해놨는데 다 좋아합니다."

-중소기업에서 그렇게 지원하기가 쉽지는 않을텐데요.

"일단은 우리 사원들에게 주인의식이 생기죠. 주인의식이란 건 누가 시켜서 절대 생겨나지 않거든요. 스스로 느껴야 생겨나죠. 그러려면 뭔가 회사에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먼저라고 봅니다. 내가 어디 가면 그런 얘기 하는데 사실 연봉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대기업에 물건 납품해서 월급 주는데 어떻게 그보다 더 많이 줄 수 있겠어요. 그러나 우리 사원들이 조금은 편하고 조금은 깔끔한 데서 일하면 능률도 오르고 환경도 좋아진다고 봅니다. 직장인은 하루 중 80%를 직장에서 보내는데, 그렇다면 직장생활이 즐겁고 행복해야 됩니다."

-투명한 경영으로도 유명하더군요?

"저는 사원들한테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오픈하고 공유합니다. 분기마다 사업계획은 물론이고, 성과까지도요. 잘될 때는 싹 입 닦아버리고 어려울 때는 사원들에게 때려 족치면 됩니까. 잘될 때는 잘 되는 대로, 어려울 때는 어려운대로 공유하고, 같이 하는 오픈 마인드로 가는 거죠. 성과는 사장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직원에게는 '새끼 니는 일만 해. 내는 월급만 주면 되지' 그런 시대는 갔어요. 한 명을 데리고 있든 100명을 데리고 있든 내 밑에 사람을 데리고 있다는 건 같이 공유하지 않으면 어려워요.

때를 놓치면 너무 힘들더라

-공부하는 CEO로 알려져 있더군요?

"나는 공고 나왔잖아요. 금성사 있으면서 창원 기능대학까지는 야간 공부를 했습니다. 내 사업을 하면서 경영에 대해 공부도 해야겠고, 기능한국인 1호다 보니 노동부나 산업인력공단 같은데 진로지도 강의도 많이 나가고 하면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8년 전 공부를 시작해 정말 각고 끝에 지난 8월에 박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직원훈련법에 따라 설치된 기능대학은 학위 인정이 안 돼 대학 1학년부터 새로 시작했죠. 정말 각고 끝에 이번 8월에 박사학위를 땄습니다. 인제대에서 국제통상을 전공했는데 금형 수출도 하고 해외 법인도 있고 해서 선택한 전공이었습니다. 정말 아무도 모르게 공부한다고 죽을 고생 했습니다. 학부과정 공부하면서 아무것도 몰랐죠. 학부과정은 야간에 다니고 대학원이야 조금 주말에도 하고. 그래도 크게 머리에 남은 건 없지만, 경제신문이나 뉴스 보고 들을 때 뭔가 탁 찍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뭔가 깊이나 넓이가 확실히 달라졌어요. 또 후배들이나 이런 친구들한테도 '기회만 되면은 공부를 해야 한다. 단 내가 해보니까 일도 그렇고 모든 게 때가 있는데 그때에 하는 게 가장 능률적이고 쉽다. 그때를 놓치면 엄청나게 어렵다' 그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회사 소개를 좀 해주시죠.

"본사 90명, 천진 법인 150명, 북경 법인이 50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본사는 기술집약적인 금형 개발·설계하고 납품했으며 최근에는 부품 생산도 같이하고 있습니다. 대충 작년에 190억 원 정도 매출 올렸습니다. 중국 천진이나 북경 법인은 노동집약적인 쪽으로 했습니다. 작년에 모두 합쳐 300억 원 정도 매출 올렸는데, 올해는 정말 어렵네요. 마이너스 성장은 안돼야겠는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주변에 보면 전부다 반토막이라고 그래요. 장난 아닙니다. 지금의 어려운 경기는 정말 구조적입니다. 전 세계적이고,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니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더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해 주시죠.

"실패 안 하고 성공하면 제일 좋죠. 하지만 그러기가 어디 쉽나요. 실패나 슬럼프 빠졌을 때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나는 최근에 우연한 기회에 몇 번을 되풀이해서 봤는데 <어셈블리>라는 TV 드라마 마지막에 법안 만들잖아요. 두 번째 기회를 주자는 내용이죠. 참 공감을 많이 했어요. 그래 저런 법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너무나 뼈저리게 느낀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 붙어서 지면 영원한 패자입니다. 다시 부활하기는 너무 어려운 사회구조를 가진 나라인데,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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