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울어버린 시골 아줌마, 드디어 생장에 도착하다

첫날부터 우왕좌왕, 아… 걱정이다

드디어 로마에서 파리로 출발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 공항에 가서 파리행 비행기 표를 끊으러 가니 파리행 표가 취소되었다는 거예요. 얼마 전 로마공항에 불이 나서 그렇다네요. 우리가 여행 중이라서 미처 확인을 못 해서 생긴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지요. 마침 아직 남편이 있었고 딸과 통화도 하고 하다 겨우 파리행 비행기 표를 하나 샀습니다. 원래는 내가 먼저 파리로 출발하고 나중에 남편은 뮌헨을 거쳐서 인천으로 가게 되어 있었는데 비행기 시간이 바뀌는 바람에 나 혼자 로마공항에 남게 된 거였어요. 그것도 5시간 정도나요.

각오는 하고 왔었지만 낯선 나라 공항에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정말 울고 싶었어요. 아니 울었어요. 남편이 가고 나서는 혼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어요. 홀로 남음, 남편과의 헤어짐, 카미노를 혼자 걸어야 한다는 불안감과 부담감이 함께 나에게 덤벼들었던 거지요. 그런데 울다 생각해 보니 이젠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데 울고불고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누가 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일인데. 그리고 어렵게 결정하고 온 건데 씩씩하게 맞서야 한다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마침내 이어폰에서는 남편이 씩씩하게 걷고 오라고 넣어준 구우행진곡(타이케가 작곡한 독일의 대표적인 행진곡-편집자 주)이 나오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한 달 후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얼마나 많은 걸 담아 올 수 있을까? 내가 성장해져 있을까? 하지만 욕심은 금물, 내가 읽은 많은 책에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 하루하루 더욱 소중하게 보내고 오자!'. 하지만 혼자서 할 일도 없이 몇 시간을 공항에 있으려니 소중은커녕 너무나 지루했어요. 게다가 배터리를 챙기지 않고 배낭을 부치는 바람에 휴대전화도 쓰지 못해 더더욱 지루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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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에 있는 합스부르크 마지막 왕조 박물관 앞에서 작은딸과 함께.

비행기가 출발한다는 게이트 B3에서 탑승구가 열리기를 기다렸어요.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비행편이 안 뜨는 거에요. 안 되겠다 싶어 표를 보여주니 내가 타야 할 비행기는 게이트 B10으로 타는 곳이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전광판을 확인해야 했는데 넋 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파리행 비행기를 놓칠 뻔했지 뭐예요. 에공~. 부랴부랴 게이트 B10으로 가서 늦지 않게 타긴 했는데 오늘 하루만으로도 많은 걸 경험한 날이었죠. 비행기 타려고 하는데 어떤 외국인 할머니가 최초로 말을 걸었는데 기본적인 대화 몇 마디하고 나니 영어가 금방 바닥이 나는 거예요. 한국에도 와 봤고 뉴질랜드 산다는데 더는 말이 이어지지를 못하네요. ㅜㅜ 산티아고에 가서 얼마나 부딪힐지 참말로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파리에서 만난 든든한 동행자

드디어 파리행 비행기에 탑승! 내 옆자리의 아저씨가 입 꾹 다물고 있으니 나도 입 꾹 다물고 있다가 드디어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미국에서 온 언니는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까요? 미국 교포인 이 언니는 산티아고 순례길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됐는데, 마침 서로 일행을 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파리에서 만나기로 했답니다. 원래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몇 시간이나 늦게 도착하게 돼서 메시지를 계속 보냈는데 왜 그런지 글도 보지 않았고 답장이 없어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언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걱정도 되었고요. 드디어 파리 드골공항에 비행기가 내려앉았고 언니랑 만나기로 한 호텔이 공항 안에 있다고 해서 눈을 크게 뜨고 밖을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저쪽에 언니랑 만나기로 한 호텔이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아주 반가웠는데 비행기는 호텔을 지나 한참을 미끄러져 가는 거예요. 그만가~! 그만가~! 어쩌지~? 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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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에서 남편과 함께.

두근두근 어리바리 내려서 배낭을 찾고 3 터미널을 찾아 셔틀을 타고 내리니 마침 가까운 곳에 호텔이 있는 거예요. 호텔을 찾아가 이름을 말하니 다행히 그 언니는 호텔에 체크인을 했더라고요. 방을 찾아가니 언니 짐은 풀어놨는데 언니는 보이지를 않는 거에요. 짐을 놔두고 찾아 나섰죠.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는데 사진에서 보았던 언니가 거기에 서 있는 거예요. 제가 제시간에 안 와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저랑 길이 엇갈린 거였어요. 얼마나 반갑던지요. 둘이 부둥켜안고 한참을 인사했네요. 언니는 성격도 활달하고 씩씩한 데다 미국에 사는 분이니 영어도 잘해서 난 한결 마음이 놓였어요. 누구 휴대전화에 문제가 생겼는지 서로 연락은 했는데 서로에게 전송되지 않았던 거였어요.

아침부터 온종일 긴장을 하고 나니 힘도 빠지고 배도 고파서 일단 식당에 가서 샌드위치와 샐러드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서 온종일 다물었던 입에서 수다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무엇을 챙겼는지, 내일 어떻게 갈 것인지, 아이들 얘기며 언니 손자 얘기 등등을 하다가 잠이 들었나 봐요. 나는 원래 잠자리가 바뀌면 잘 못 자는데 이날은 웬일로 푹 잠을 잘 잤어요. 하긴 로마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설쳐댔으니 피곤도 했나 보죠.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들

6월 20일. 오전 6시 7분에 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도시 비아리츠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4시 40분에 기상을 해서 준비를 하다 보니 늦을 것 같았어요. 식당에서 대강 아침을 먹고 부랴부랴 짐을 부치려는데 웬걸, 40유로나 달라는 거예요. 어제 다른 항공사 비행기는 아무 문제 없이 배낭을 부치고 비행기를 탔는데 왜? 뭔지는 모르지만 역시 저가 항공은 이유가 있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그냥 기내에 들고 타려는데 보안에서 걸리고 말았어요. ㅜㅜ 시간도 별로 없는데 배낭의 짐을 다 꺼내라네요. 주섬주섬 다 꺼내니 작은 병에 옮겨온 샴푸, 폼 클렌징, 얼굴에 바르는 크림, 과도, 그리고 친구가 만들어준 고추장은 뺏기고 말았죠. 완전히 짜증은 났지만 비행기 타는 것은 늦지 않아 다행이었어요. 산티아고 가는 첫날 큰 교훈으로 삼기로 하고 바욘으로 출발했죠.

비아리츠는 작은 공항이더군요. 내려서 기념사진 한 장 찍고 바욘행 버스를 타러 나왔어요. 대부분 순례자가 기차로 이동을 하다 보니 아직은 순례자가 많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물어서 버스를 탔는데 버스를 잘못 탔나 봐요. 뭐라 뭐라 하면서 내리라는데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가 찾는 곳이 아니었어요. 내린 김에 주변에 슈퍼가 있는지 물어보니 가르쳐 주더라고요. 물론 보디랭귀지였죠. 뺏긴 샴푸와 얼굴에 바르는 크림을 대신할 것을 사려고 슈퍼에 가서 필요한 것과 점심으로 먹을 과일 빵, 오이 등을 샀습니다. 길을 물어물어 생장 피에드 포르로 가는 버스 타는 곳을 찾아가는데 다행히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버스 승강장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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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알프스 최고봉 그로스글로크너 정상 부근 눈밭에서.

운전 기사님이 엉뚱한 장소에다 내려 주는 바람에 언제 올지도 모르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 바욘을 누벼 봤답니다. 모든 유럽이 그러하듯 이곳도 유서 깊은 곳처럼 느껴졌어요. 어느 큰 성당 앞에는 관광객들도 보이는 것 보니 여기도 사람들이 찾는 곳 같았고 시내를 가로지르는 큰 강엔 어디서부터 흘러 왔는지 도도히 많은 물이 흐르고 있더라고요. 터미널 앞 성당에 가서 잠시 기도드리고 버스표를 끊어 놓고 버스를 기다리며 간식을 먹었어요. 터미널에 있으니 순례자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두 순례자인 것 같더라고요. 이제 점점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생장으로 가는 한국에서 온 부부와 딸을 만났는데 이들은 까미노는 한 열흘 정도만 걷고 관광을 할 예정이라는데 정보도 별로 없다고 하고 너무 유약해 보이는 딸 때문에 내가 괜히 걱정되었답니다.

순례자를 가득 태운 버스가 출발했고 구불구불 시골길을 따라 버스는 생장을 향하고 있었어요. 너무 깨끗하고 예쁜 풍경이 벌써 우리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 바깥경치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생장에 도착하더라고요. 버스에서 내려 어디로 가야 할지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어떤 남자 둘이 성큼성큼 먼저 가는 거였어요. 뭔가 알고 가는 것 같아서 우리도 따라갔죠. 아니나 다를까, 빙고~! 그 사람들은 순례자 사무실로 가는 거였어요. 덕분에 우리는 줄을 많이 서지 않고 접수를 시작할 수 있었답니다. 친절한 봉사자들 앞에 한 명씩 앉아 접수하고 크렌덴시알(순례자용 여권인데 가는 곳마다 도장을 받고 그것을 보고 다 걸은 후 순례자 증서를 준답니다)을 받고 순례자의 상징인 조개도 하나 사서 배낭에 달고 나니 비로소 순례자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죠.

생장에 모인 순례자들

협회에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 전용인 저렴한 숙소로 크레덴시알이 있어야 묵을 수 있다.-편집자 주)를 추천해 달라고 하니 근방의 한 집을 추천해 주더라고요. 두 시에 문을 연다고 해서 사무실에 가방을 맡겨 놓고 부근 구경을 하다가 시간이 다 되어 알베르게 앞에 서 있으니 한국인 부부 팀도 오더라고요. 추천을 받은 곳이라서 괜찮을 것 같아 기대하고 있었는데 문을 열어서 들어가 보니 이미 다 전화로 예약이 되었다고 미안해합니다. 나 원 참~! 그럼 문앞에 그렇다고 써 놨어야지. 좀 황당했지만 다른 알베르게를 구할 수밖에요. 나와서 몇 집을 다니다가 성당에서 운영한다는 알베르게로 들어갔습니다. 아저씨 두 분과 아주머니 한 분이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전에 가려고 했던 알베르게보다 더 친절하고 가격도 훨씬 저렴하고 깨끗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한국인 부부팀은 사온 음식이 너무 많아 먹고 출발해야 한다며 해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갔고 10명이 묵는 도미토리에 우리는 맨 먼저 짐을 풀고 씻고 시내로 산책하러 나갔습니다. 마을이 아주 예뻤고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도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집 앞에 내놓은 꽃들을 보며 여기 사는 사람들의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성 같은 곳이 있어서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생장은 다소곳하니 참하게 생긴 것이 보기 좋았습니다. 또 냇가를 따라 산책하며 언니와 많은 이야기도 주고받았지요. 음악 소리에 이끌려 찾아가 보니 마을의 작은 축제가 있는지 초등학생,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친구들 두어 팀이 각자 다른 악기로 곡을 연주하더라고요. 이 친구들은 제법 옷도 갖춰 입었고 학부모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사진도 찍고 하는 걸 보며 부모들의 관심이 아이들을 잘 성장시킬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마을 한편 무대에서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친구들이 밴드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들이 나와서 공연을 보고 있었고 꼬맹이들도 형들이 부러운지 무대 앞에서 턱을 바치고 보고 있는데 너무나 귀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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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나폴리 누오보성에서.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알베르게에 가니 봉사자들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곳 생장의 알베르게는 주로 숙식을 함께 제공하는 곳이 많았어요. 다른 곳에 비해 가격도 비싼 편이고요. 그래도 이곳은 가격도 저렴한 편에다 음식 맛도 괜찮았고 거기다 친절하고 우리에게 관심도 많이 줘서 고마웠답니다.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함께 식사했는데 그중에는 산티아고를 거꾸로 걷고 생장이 마지막 날인 부부가 있어 놀랍기도 했습니다.

역시나 나는 미국 언니가 없었더라면 벙어리 신세였을 것 같아요. 캐나다에서 온 시몬이라는 아줌마도 만났습니다. 식사 후 모두 함께 설거지를 했고 즐겁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오늘이 음악페스티벌 하는 날이라네요. 어쩐지. 식사 후 다시 밖에 나가니 아까 그 무대에서 어른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었어요. 우리도 조금 구경하다 들어오다 보니 순례자 복장을 한 사람과 해설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말로 하니 알아들을 수는 전혀 없지만 아마 순례자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만 해 보았답니다. 대부분의 알베르게는 10시가 제한 시간이랍니다. 이곳도 마찬가지였죠. 이곳은 10시나 되어야 해가 지니 아직 밖은 환해요. 어둡기도 전에 자려고 하니 잠은 안 오지만 그래도 내일,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첫날을 위해서 잠을 청해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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