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만 사람들 몰려 살 필요는 없죠"

김범준(47) 부산광역시청 서울본부장은 거제 장승포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진주에서 고등학교(동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산대학교를 거쳐, 울산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그리고 성균관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남, 부산, 울산에서 두루두루 생활한 셈이다.

1995년부터 신한국당에서 당료생활을 시작하면서 여의도 정치권에 발을 담근 후 국회 보좌관, 당 부대변인 등 다양한 정치적 이력도 쌓았다. 그리고 8년 정도 정치권을 떠난 적도 있었다. 특히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꼬박 만 3년 동안은 미국 웨스턴워싱턴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학문적·정치적 내공을 쌓았다.

그리고 지금 현재 부산시청 서울본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지방분권의 당위성을 몸소 체득하고 있다. 정치권과 학문 현장 안팎을 오가면서 느낀 한국 정치의 지향점, 그리고 그가 추구해나갈 정치의 방향성 등을 들어봤다.

"무능한 중앙정부, 무력한 지방정부"

-부산시 소속 정무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또 새롭게 느끼는 것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메르스 사태, 그 이전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때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처럼 반복되는 정부의 무능과 실패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되지만,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정부 관료들의 개인적 잘못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즉 정부 수립 후 70년 동안 지속된 중앙집중적 국가운영방식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죠. 과거 정부 수립 당시와 비교해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더는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김 본부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스템적 한계 봉착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중앙정부 무능함을 지방분권이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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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준 부산광역시 서울본부장./임채민 기자

"과거 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경제규모가 작고 국민생활이 단순했던 당시 중앙집중 시스템은 고도성장을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경제규모가 성장했고 민간의 수준과 효율성이 공공부문을 압도하는 지금에는 과거와 같은 효율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어요. 더군다나 전방위적인 정보화 시대에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지시하고 관리, 통제하는 방식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잘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중앙정부가 모든 자원과 권한을 독점하고 있고 중앙집중 시스템을 과신하다 보니, 중앙부처가 하는 모든 업무에 과부하가 걸려 있습니다.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다 움켜쥐고 시행하려다 보니 그 결과 비효율과 행정 실패로 이어지는 것이죠. 지역이 잘할 수 있는 일은 지방정부에 맡기고 중앙정부는 외교와 국방, 보건과 안전 등 중대한 국가사무에 집중하는 시스템이 작동했더라면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의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지방정부와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20년이 됐지만 지방정부는 없습니다. 중앙정부가 권한과 자원을 독점하고 있으니 지방정부는 무력합니다. 각종 사고 때마다 우리는 무능한 중앙정부와 무력한 지방정부를 동시에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해결책은 바로 지방분권입니다. 지방분권 없이는 지역발전도 창조경제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통일만 대박이 아니라 지방분권을 통한 지방경제 회생 또한 대박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동안 지방분권 정착을 위해 국세의 지방세 전환, 지역발전 보조금 지급 등 여러 정책이 언급돼 왔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치권과 공무원들, 아울러 시민들의 인식 전환이 선행돼야 해요.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건, 무능한 중앙정부와 무력한 지방정부를 구제할 해결책은 지방분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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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준 부산광역시 서울본부장./임채민 기자

"부산, 울산, 경남 통합으로 수도권 일극체제 극복" 

지방분권이라는 당위에 대한 고민은 그 구체적인 실현 방안의 모색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 본부장은 "800만 인구인 부산, 울산, 경남의 동남권이 수도권 집중화의 그늘을 해결할 수 있는 한국 내 유일한 경제권"이라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부울경 통합으로 나타날 시너지 효과를 산출한 여러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생각해볼 때 "부울경 통합 논의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며,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화두"라는 것이다. 

-부울경 통합 논의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으나 지지부진한 게 사실입니다.

"3개 시·도가 한자리에 모여 공동현안 간담회를 시작한 것이 1999년이었습니다. 광역교통망, 광역경제권 등이 거론되었고 수차례 합의안이 도출도 되었어요. 그리고 2009년에는 김태호 전 도지사가 동남권 대통합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부울경이 각자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우선 실현 가능한 협력사업을 시행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협력과 통합에 따른 성과가 미흡한 것이 현실입니다.

부울경의 미래는 광역 경제권을 형성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다양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부울경은 비슷한 산업구조로 상호 경쟁에만 몰두해 효율성 약화와 각자 생존의 한계를 이미 드러냈습니다." 

김 본부장은 부울경 통합에 어떻게든 디딤돌을 놓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부울경 통합을 통한 국토의 양극체제로 발전하는 길만이 한국의 미래를 견인할 수 있습니다.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의 인식전환에도 일조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이게 이 부울경에 기반을 둔 우리에게 맡겨진 시대적 소명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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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준 부산광역시 서울본부장./임채민 기자

"정치인에 대한 도덕적 잣대는 더욱 엄격해야"

10년 가까이 정치권을 떠나 있었지만, 항상 정치학을 가까이 하고 있었고 또 그만큼 현재 제도권 정치를 바라보는 시야 역시 더욱 넓어진 것 같다는 게 김 본부장의 자평이다. 또 정치인이라면 어떠한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소신 역시 확고해졌다고 한다.

"이미 사회 대부분이 부정과 부패로 넘쳐나는데 유독 정치인들에게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는 투정은 무의미합니다. 권력에는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고,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것이 싫은 사람은 정치를 하지 않으면 됩니다. 사회가 추구하는 최소한의 공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는 정치인에게 주어진 권력은 어린 아이가 갖고 노는 위험한 총과 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과 도덕성은 별개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도덕적 흠결을 가진 정치인에게서 제대로 된 능력의 발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능력의 부족은 노력을 메울 수 있지만, 도덕성의 결여는 결코 노력만으로 메울 수 없어요."

김 본부장이 시애틀에서 보낸 3년은 젊은 시절 그가 생활한 경남, 부산, 울산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수도권 중심인 대한민국의 비정상적 상황을 다시 한번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세계 유수의 기업이 몰려드는 시애틀은 어떻게 보면 조그만 어촌도시입니다. 흡사 거제나 부산 등과 비슷하게 보였어요. 꼭 우리가 수도권에 몰려 살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재외동포의 정체성과 정치적 대통에 관한 상관관계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 본부장은 미국에서 꼬박 3년 동안 한미·북미 관계 등을 연구했다. 그리고 국내에 들어와 다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일선 현장에서 지역분권, 그리고 부울경 통합에 대한 고민의 깊이를 더해 나가겠다는 게 김 본부장의 포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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