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빨리 웃는 모습 보고 싶어 정형외과 택했다

창원SK병원. 이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사람은 '메르스'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도내 첫 메르스 환자 발생으로 병원 폐쇄. 도내 첫 환자가 마지막 환자가 되게 한 주인공. 이것이 대중에게 알려진 창원SK병원에 대한 정보다.

박웅(41) 창원SK병원장도 메르스와 관련한 인터뷰로 언론에 여러 차례 노출됐다.

그 때문에 박 병원장은 감염병 전문가가 아닌 정형외과 전문의이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동안 몸고생, 마음고생이 심해 '메르스는 떠올리기도 싫다'는 박 병원장은 '전문 분야에서 시민들에게 건강 상식을 전하는 기획'이라는 경남도민일보 건강면 '몸 관리, 이렇게 하면 병원 안 간다' 코너 취지를 듣고 인터뷰를 흔쾌히 승낙했다.

10월의 어느 가을날 박 병원장을 만나 정형외과 질환과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주부병'인 테니스 엘보

진료실에서 마주하자마자 박 병원장은 전문 분야인 어깨와 팔꿈치 이야기부터 꺼냈다.

박 병원장을 찾는 환자는 정형외과 질환 중에서도 견관절(어깨 관절)과 주관절(팔꿈치 관절) 환자가 많다. 이 중 견관절은 회전근개 파열, 석회성 건염이 많고, 주관절은 외측 상과염 환자가 많다.

"외측 상과염은 보통 테니스엘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꼭 운동 때문에 생기는 병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리어 '주부병' '아줌마병'이라고 할 수 있죠. 손목을 많이 쓰는 주부나 망치질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자주 발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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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웅 창원SK병원장./김구연 기자

외측 상과염이 생기는 부분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고 팔을 앞으로 뻗었을 때 팔꿈치 바깥쪽 불룩 튀어나온 부분이다. 여기서부터 손목까지 통증이 이어진다. 외측 상과염 환자는 손목을 뒤로 젖혀 저항을 주면 상당히 아파한다.

무릎 꿇고 앉아 걸레질하고, 빨래를 비틀어 짜고, 그릇을 구석구석 돌려 설거지하는 등 손목을 많이 사용하는 우리나라 주부들의 생활환경이 외측 상과염을 부른다.

집안일 대충 하세요

외측 상과염을 치료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팔을 사용하지 않는 것.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저희 어머니도 외측 상과염이 있었어요. 3주간 팔을 쓰지 마시라고 했지만 그게 가능한가요. 가급적 일을 줄이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죠. 그래서 걸레 대신 대걸레를 사드렸습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평생 일해온 습관은 의사 아들이 잔소리를 해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박 병원장의 모친은 대걸레에서 걸레를 빼내 꼭 짜서는 꿇어앉아 방 구석구석 닦아 냈다.

"구석진 곳까지 꼼꼼히 청소하려는 욕심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집안일을 대충 할 필요가 있어요. 설거지도 그래요. 식기 세척기를 사용하라고 해도 잘 안 써요.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그릇에 밥풀이 말라붙고 해서 손목을 많이 써서 힘들여 닦아냅니다. 설거지 그릇이 쌓인 게 좀 보기 거슬려도 물에 충분히 불려 힘을 덜 써서 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외측 상과염을 예방하려면 손목을 많이 쓰거나 무거운 것을 많이 드는 경우 꼭 규칙적인 휴식이 필요하다. 특히 팔꿈치는 손목뿐 아니라 어깨 질환과도 연관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가까운 곳에 있는 의사가 좋은 의사

외측 상과염 치료는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다. 지속적인 물리치료나 약을 처방하기도 한다.

"약물에 반응하지 않을 때는 주사치료로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2번 이상은 권하지 않습니다. 스테로이드제가 염증을 없애기도 하는 반면, 파열을 더 조장하기도 하거든요. 주사를 맞으면 통증은 사라지지만 근육이나 힘줄 파열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3주간은 무리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프지 않으니깐 그냥 팔을 쓰다가 화를 키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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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웅 창원SK병원장./김구연 기자

요즘 주위에 많이 들어선 정형외과 중심 병원들에 대해 '무조건 수술을 권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박 병원장은 "대부분 의사는 수술을 쉽게 권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해야 할 사람에게 권합니다. 의사가 수술을 권할 때는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충분히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외측 상과염도 6개월 이상 치료해도 호전되지 않는 '불응성'일 때 수술적 치료를 고려한다.

"제가 여러 병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보니 요즘도 먼 곳에서 저를 찾아오는 환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오지 말라고 말합니다. 멀리 있어서 어쩌다 한번 보는 의사보다 자주 볼 수 있는 의사가 좋은 의사예요. 자주 봐야 환자 상태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가까운 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받으면 충분히 좋아집니다."

대학생 때 겪은 뒤늦은 사춘기

박 병원장은 장유병원(현 누가병원)·마산 측추병원(현 창원 제일종합병원)·아름다운강산병원·진해 연세병원 등에서 정형외과 과장으로 근무했다. 현재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외래교수이며, 부울경 견주관절 내시경학회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박 병원장이 의사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40대인 젊은 나이에 한 병원을 짊어진 병원장이 될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정형외과 의사였습니다. 할아버지도 의사셨고요. 동생만 빼고는 사촌까지 남자들은 모두 의사입니다. 의사만 보고 자랐습니다."

어릴 때는 의사는 다 똑같은 의사인줄 알았다. 하지만 신경외과, 정형외과, 일반외과 등 다양한 전문분야가 있었다.

"정형외과는 수술에 대한 효과가 아주 빨리 나타납니다. 의사의 치료로 환자들에게 빨리, 보다 큰 만족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정형외과를 선택했습니다. 환자들이 빨리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거죠."

가족 모두 박 병원장이 의사가 되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에게도 질풍노도의 시기는 있었다.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음악 학원에 다니다 들켜 머리를 붙잡혀 온 적도 있었죠. 의대 다니다 가출도 했습니다. 친구집으로 갔는데 그 친구 어머니가 우리집에 연락을 해서 들키기도 했죠. 아르바이트를 해서 악기도 샀습니다."

박 병원장이 마음을 다잡고 의사의 길에 매진하게 된 계기는 본과 4학년 때 맞은 아버지의 부도였다.

"가족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의사만 바라보게 됐습니다. 뒤늦게 겪은 사춘기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지금도 음악은 하고 싶어요. 하지만 악기에 손 대지 않은 지 10년이 넘었네요. 악기는 비닐로 싸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뒤늦은 사춘기 때 겪은 아버지의 부도는 박 병원장에게 '평생 월급 받는 사람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병원이나 의원을 개원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옛 세광병원과 인연이 닿아 지난해 12월 창원 상남동에서 '창원SK병원' 문을 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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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웅 창원SK병원장./김구연 기자

"월급 받는 의사일 때는 나 정도 일하면 열심히 한다, 병원장이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고 자만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생각은 당시 지금처럼 일 했다면 병원장이 저를 업고 다녔을 거 같아요. 10월이지만 아직 여름 휴가도 못 갔거든요. 추석 연휴도 수술 때문에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다시 1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돌린다면 개원은 절대 안 했을 겁니다."

건강관리는 아이들과 율하천 걷기로

막힘없이 인터뷰를 진행하던 박 병원장이 한순간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적인, 혹은 민감한 질문이 아니라 바로 본인의 건강 관리에 대한 질문이었다.

"일주일에 2~3번 걷기를 꼭 합니다. 집이 김해 장유인데 아이들과 율하천 주변 평지를 5~6㎞ 걷습니다. 바른 자세로 걷는 것은 심폐기능뿐 아니라 척추의 근육운동, 무릎의 대퇴사두근 강화운동 등 다양한 운동이 될 수 있습니다."

굳이 운동이라기보다는 아이들과 걷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명절도 없을 정도로 바쁜 박 병원장이 할 수 있는 가족과의 소중한 스킨십이었다.

대퇴사두근이 뭔지 다시 물었다.

"대퇴부, 즉 넓적다리 앞쪽에 있는 4개의 근육입니다. 이게 문제가 있으면 슬개골, 즉 무릎뼈가 흔들려 무릎이 아프죠. 계단 오르기가 좋은 운동이 됩니다."

이날 인터뷰는 오전 진료가 끝난 후, 오후 진료가 시작되기 전 점심 시간에 박 병원장의 진료실에서 이루어졌다.

당연히 서로 점심을 못 먹은 상태였다. 인터뷰 때문에 점심을 굶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박 병원장은 손사래를 쳤다.

"추석 때 너무 많이 먹어 다이어트를 좀 하려고요. 자의반 타의반입니다. 가족들이 성화네요. 하하하"

정직이 최선의 정책

"요즘도 메르스 첫날 당시 꿈을 꾼다"며 진저리치는 박 병원장이지만, 그와 관련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은 "다시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다시 그 순간이 온다 해도 똑같이 할 겁니다. 물론 고민은 더 많아지겠지만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아니까요. 후회가 되더라도 그 선택을 다시 할 겁니다. 한 번 겪었으니 관리를 더 잘할 수 있겠죠. 아, 그렇다고 또다시 같은 일을 겪고 싶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당시 환자와 직원들에게 상황을 바로 알리고 전격적으로 병원 폐쇄를 결단할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저는 배운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저를 가르친 스승들께 환자에게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라고 배웠습니다."

오래전 작은 실수가 있었는데 박 병원장은 스승에게 그걸 감추려고 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감추려다 보니 점점 일이 커졌다. 결국 교수가 알게 됐다.

"그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네가 거짓말을 해서 감춰진 것이 뭐가 있느냐. 결국 아무것도 감추지 못했지 않느냐'였습니다. 문장으로는 알고 있던 말이지만 그 순간 그 의미가 가슴에 와서 박혔습니다. 최선의 정책은 정직입니다.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깨지면 어떤 치료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정형외과 하면 창원SK병원'으로 만들고파

개원 6개월 만인 올 6월 창원SK병원을 덮친 메르스 사태. '메르스 병원'이라는 낙인과 병원 폐쇄 여파는 엄청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메르스 최전선에서 시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외부와 단절된 채 열심히 노력한 의료진들의 노력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도내 첫 메르스 환자가 마지막 환자, 유일한 환자가 된 데는 창원SK병원의 힘이 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박 병원장은 그 공을 병원 직원들과 입원 환자들에게 돌렸다.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요. 가족도 있고 해야 할 일도 있는 사람들이 병원 내에 격리돼 있는 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하지만 왜 병원 폐쇄를 해야 하는지를 솔직히 설명했더니 다들 수긍하고 따라줬습니다. 환자들이 도리어 저와 직원들에게 격려도 해줬습니다. 그들과 함께 이겨낸 겁니다."

박 병원장은 창원SK병원을 시민들이 '정형외과' 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확실한 실력과 의료진을 갖춘 병원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정형외과도 어깨, 팔꿈치, 무릎, 허리 등 분야가 많습니다. 어느 하나도 뒤지지 않도록 노력해 환자들이 믿고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지역에 착실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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