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또 하나의 능력"

기자는 창원대학교 인문대학 출신이다. 대학생 시절 인문대학에 인문대학과는 결이 다른 한 학과가 있었다. 이름도 생소했다. 특수교육학과. 덕분에 학생 시절 인문대학관을 오가며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을 볼 수 있었고, 생전 처음으로 시각장애인 안내견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것을 외면하고 무심하게 지냈다. 인문대학 내 타과 학생들과 곧잘 알고 지냈지만 특수교육과에는 단 한 명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안면이 있는 교수로부터 '특수교육학과에 대단한 교수가 있다'는 말에 이제는 도망치면 안 된다고 느꼈다.

정신지체가 아니라 '우뇌 성향' 아이

정대영 교수는 표정이 온화함을 넘어 착하고 순박해보였다. 말은 분명하고 조리있었다. 정 교수는 1954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대구청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안동교육대학교를 다니다 대구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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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영 창원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임종금 기자

-교육대학을 나오셨으니 일반 교사를 하셨을 건데, 왜 갑자기 특수교육에 투신하신 거죠?

"고등학교에서 오래 근무했는데, 비행과 연루된 학생이 많은 겁니다. 사회부적응 학생도 많고. 제가 이런 학생 지도를 맡았는데 특히 정서행동장애와 학습장애에 대해 관심이 가는 겁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아이들이 행동할까. 고민을 하다가 공부를 좀 더 해야 되겠다 싶어 대구대학교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1984년에 대학원에 갔고 1993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특수교육도 분야가 다양할 텐데, 박사논문 주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정신지체 학습 특성과 뇌 기능 분화에 대해 논문을 썼습니다. 장애학생들 인지 특성을 연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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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영 창원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임종금 기자

-조금 막연한데,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뇌 기능이 손상되면 관련 장애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뇌 기능 어디가 손상됐느냐에 따라 학습특성이 달라지고 학습양식도 달라집니다. 이걸 분석한 것입니다. 사실 이건 일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마다 공부하는 방법이 다양하지 않습니까?"

-그럼 장애학생들은 어떤 점이 다른가요?

"대부분 독서이해력이 떨어집니다. 텍스트를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이런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학습 내용을 시각화할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인과관계, 기승전결, 스토리를 도식이나 모형, 혹은 그래픽으로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폐아나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같은 것도 특수교육 범위 안에 들어가나요?

"범주에 들어가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것은 특수교육에서 수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게 법에 안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아동들 가운데 1%만이 특수교육을 받습니다. 이웃 일본은 7%가 됩니다. 그럼 일본이 우리보다 장애율이 7배나 높을까요? 그건 아니겠죠."

-한 마디로 뇌 장애가 있는 많은 학생이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고 있다는 거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걸 장애라고 봐야 할지 요즘 고민이 들기 시작합니다. 자폐아나 ADHD아이를 '우뇌 성향의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전통적인 모범생, 그러니까 과학적이고 계획적이고 분석적이고 수리에 강한 아이는 '좌뇌 성향'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뇌 성향의 사람이 사실 우리나라에 적응하긴 힘들지만 아인슈타인, 에디슨 등은 우뇌 성향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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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영 창원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임종금 기자

이뿐만 아니라 그는 장애 아이에 대한 시선이 애초에 달랐다.

"장애 아이가 오히려 남들이 할 수 없는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자폐성향을 가진 아이는 기억력이 엄청나게 뛰어납니다. 마치 사진 찍 듯 기억을 해 버립니다. 그래서 이런 점을 잘 살려 국회도서관 사서보조원으로 취업한 사례가 있습니다. 엄청나게 책이 많지만 꽂는 장소를 모조리 기억하고 있습니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은 일반인은 도저히 일할 수 없는 소음 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다운증후군 아이는 굉장히 밝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친절하고 잘 웃습니다. 다운증후군 아이를 잘 교육시켜 노인복지 시설에 취직을 시키면 굉장히 잘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장애가 역으로 큰 강점이 될 수 있고, 그걸 잘 살려 직무와 연결시킨다면 사회적으로도 큰 선순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장애는 또 하나의 능력이다. 이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특수교육도 결국엔 인식 문제

한 분야의 권위자를 평가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개론서'를 독자적으로 집필할 수 있다면 그 분야에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2011년 <특수교육학>이라는 개론서를 단독으로 집필했다.

-고향이 경북이고, 대구에서 공부를 하셨는데 창원대학교에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지요?

"박사를 딴 뒤에도 학교에 있다가 국립특수교육원이 안산에 있었는데 거기 장학사로 가게 됩니다. 그러다 1998년 창원대학교 특수교육학과가 생기자 교수로 온 겁니다."

-1998년 학과과 생긴 건 굉장히 빠른 축 아닌가요?

"네, 창원대학교가 특수교육에서는 상당히 빠른 편입니다. 제가 듣기로 원래 사범대학을 넣으려 했었는데, 사범대학 졸업해도 교사하기가 쉽지 않잖습니까? 그래서 교육부에서 특수교육학과와 유아교육학과를 설치하도록 한 겁니다. 특수교육학과에는 우수한 학생도 많이 오고, 취업도 순조롭게 잘 되는 편입니다."

-지금 특수교육에 대한 지원이나 현황은 어떻게 됩니까?

"제가 알기로 2014년 기준으로 전국에 특수학교가 167개 정도 됩니다. 그 중에 9개 특수학교가 경남에 있습니다. 대부분 특수학교도 수도권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특수교육에 있어서는 이제 막 초보 티를 벗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1979년 12월 31일에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됐고, 이후 1994년, 1997년 개정되면서 제법 진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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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특수교사 단기연수 과정 수료./사진 제공 네팔협력센터

-아까 국립특수교육원이라는 곳이 있다고 했는데, 경남에도 비슷한 것이 있습니까?

"작년에 만들어진 경남특수교육원이 있습니다. 경남도교육청 산하기관입니다. 여기 20명도 안 되는 인원이 지금 일하고 있는데, 아직 직원 정원도 다 못 채웠습니다. 건물 1개동이 답니다. 적은 인원으로 굉장히 애를 쓰고 있습니다. 또한 도교육청에는 담당 부서가 있습니다. 경남특수교육원이 이제 막 시작 단계지만 사실 이런 게 없는 곳이 더 많습니다. 아마 지자체 단위로는 전국 최초일 겁니다."

-어쨌든 예전보다 시설도 늘고, 지원도 늘었으니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봐야 하나요?

"글쎄요. 저는 다른 건 다 떠나서 OECD 평균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특수교육도 사회 인식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인권이나 여성, 이주민, 새터민 같은 사회적 마이너리티에 대한 인식이 올라가면 자연히 특수교육에 대한 비중도 늘어나게 돼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인식이 정체돼 있습니다. 그러니 투자가 안 되고 가족들에게 방치되는 장애인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네팔에 특수교육 이식 작업 중

정 교수 직함 중에 '네팔협력센터장'이라는 직함이 눈에 띄었다. 눈에 띄었지만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차피 교수들도 보직이 돌고 돌면서 이런 자리도 맡아보고 저런 자리도 맡아보기 마련이다. 의례적으로 '네팔협력센터가 뭐 하는 곳인가요?'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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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특수교육협력원조사업 협약식 모습./사진 제공 네팔협력센터

"제가 창원대학교 내 특수교육센터장을 오래 했습니다. 학생들도 교사로 가기 전에 임상 경험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장애 아동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데 처음엔 미국 학생을 불러와서 했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차라리 우리가 밖에 나가보자. 그래서 네팔에 특수학교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는 김정근 선교사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이 분은 제 대학원 석사과정 선배입니다. 가는 김에 창원대학교 국제교류원에서 MOU체결을 타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MOU를 체결했는데, 당시 정부예산으로 하는 ODA(공적개발원조. 제3세계 국가 지원)국제협력선도대학 공모가 있어서 네팔협력사업을 제출해 선정된 겁니다."

-그럼 이 사업의 핵심이 뭡니까?

"네팔 국립 트리부반대학교에 1년제 특수교육학과가 있는데, 이를 4년제 학과로 만들고, 대학원 과정까지 개설해주는 겁니다."

조금 이상했다. 그냥 보통 협력 MOU 맺으면 학생 몇 명, 교수 몇 명 왔다 갔다 하고 기자재 좀 지원해주고 마는데, 그것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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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트리부번대학교 내 특수교육대학원 현판식./사진 제공 네팔협력센터

-4년제 학과를 만드려면 교수가 있어야 하는데, 교수를 어디서 배출합니까?

"우리가 파견하는 분도 있고, 궁극적으로는 네팔 학생이나 교사 중에 교수가 될 사람을 창원대학교에서 교육시켜서 네팔에 보냅니다. 지금 우리 대학교에서 교육받고 있습니다."

-혹시 커리큘럼이나 교재도 여기서 만드나요?

"네, 저희가 다 만들어 줍니다. 여기 교재가 있습니다."

5~6권 교재가 이미 영어로 만들어져 있었다.

-기자재나 인프라가 없질 않습니까? 네팔은 대지진 때문에 굉장히 힘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것도 저희가 제공해 줍니다. 인터넷, 전기, 컴퓨터, 태블릿PC를 지원합니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따로 없었다. 이 말고도 지원프로그램은 다양했다. 하지만 핵심은 네팔 국립대학교에 아예 새로운 학문을 그대로 이식해 준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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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오지 마을 위생교육./사진 제공 네팔협력센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지금 네팔에 드라마 등을 통해 한국 붐이 대단합니다. 그리고 네팔 인구 중 무려 17%가 장애인입니다. 특수교육이 굉장히 필요한 나라입니다. 이 사업이 끝나고 나면 적어도 네팔의 특수교육 한 분야는 완전히 한국식으로 되는 겁니다. 교수나 학생, 장애인 모두 한국을 알고 고마워할 겁니다. 이건 엄청난 돈을 부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사업이 4년 사업인데, 4년 만에 가능한가요?

"4년이 지나면 학부생은 3학년에 불과합니다. 2~3년 더 지속해야 졸업생이 나오면서 학사과정이 운영됩니다. 한데 4년 동안 기본 인프라 구축해 놓고 교수와 커리큘럼 양성해 놨기 때문에 나머지는 어렵지 않습니다. 저희가 뒤에서 교수와 학과를 관리해주고, 커리큘럼 개정해 주는 데에는 큰 돈이 안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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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교육부-트리부번대학교 협의 모습./사진 제공 네팔협력센터

-다른 대학에서도 이런 식으로 아예 학과를 이식해주는 일을 하나요?

"글쎄요. 국내에는 없는 듯 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이렇게까지 해주는 사례는 별로 없는 같습니다. 이걸 하면서 저희 역량도 크게 늘었습니다. 지금 몽골,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우리도 네팔처럼 해달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위상을 엄청나게 높여줄 겁니다."

차분했지만 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 섣부르지만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타 대학에서도 따라한다면 한국 학문 위상이 크게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인식을 강조했다. 사람들 인식이 변하면 모든 걸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수교육도 그저 시혜적 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적 자원을 창출하는 것으로, 네팔 협력도 체면치레로 도와주는 게 아니라 네팔에 대한 한국의 '지분'을 확보하는 개념에서 보고 있었다. 돈 퍼붓는게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다. 애들 밥 한 끼 지원하는 것도 아깝다 여기는 이 시대에 그가 돋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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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강좌./사진 제공 네팔협력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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