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체육 정책을 뜯어고쳐야 할 이유

2007년 8월 22일 일본 고시엔 구장에서 펼쳐진 일본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일명 고시엔 대회) 결승전 소식은 일본 현지는 물론이고 이웃인 우리나라 공중파 메인 뉴스에 바로 소개될 정도로 큰 화제가 됐다. 경기 자체도 흥미진진했지만, 우승을 한 사가키타고등학교가 일본 고등학교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우승팀으로 추앙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등학교 야구 인기가 대단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올해 8월에 열린 대회에 참가한 고등학교 팀만 해도 4200개가 넘고 팀에 속한 선수도 17만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고교 야구팀이 2015년 8월 기준으로 67개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다. 고시엔 본선에는 지역 대표 49개 팀만 오를 수 있으니 단순 경쟁률만으로도 85.7 대 1이다.

이 정도로 치열하다보니 지역별로 사학재단 중심의 야구 명문고가 생겨나게 됐다. 오사카의 PL학원, 카나가와의 요코하마고, 도쿄의 니혼대학 부속 제3고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명문 사립고들은 재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전문 야구인이 감독으로 고용되고, 야구부를 위한 기숙사와 전용구장이 따로 있으며, 우수한 실력을 갖춘 중학생을 전국적으로 우선 선발해 장학금을 주기도 한다. 현재 추신수와 한솥밥을 먹고 있는 일본 출신 투수 다르빗슈도 오사카 출신이지만 고시엔 출전을 위해 야구 명문 도호쿠고등학교로 머나먼 야구 유학을 떠난 경우였다.

야구가 만들어낸 사가현의 기적

이런 토양 위에서 2007년 우승을 차지한 사가키타고등학교는 그야말로 도깨비팀이었다. 우선 공립학교였다. 재단이 따로 없으니 야구 장학생을 모집할 형편도 아니었다. 감독도 전문 야구인이 아니라 야구를 좋아하는 국어교사가 맡았다. 운동장도 축구부와 함께 쓴다. 공부에 지장을 준다고 야간 훈련도 하지 않았고, 시험 1주일 전에는 운동 자체를 전면 금지했다. 사가키타고등학교 야구부는 이를테면 이나중 탁구부나 북산고 농구부와 다를 바 없는 보통의 학내 서클이었다. 2006년에 올린 사가현 예선 1회전 탈락이 어쩌면 이 고등학교의 객관적인 실력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듬해 2007년에 사가현 챔피언에 올라 고시엔 본선 진출권을 따낸다. 지역 예선이 워낙 경쟁이 치열해 본선 진출만으로도 지역 내에서는 큰 화제가 됐다. 실제 선수들도 고시엔 구장 흙을 밟아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사가키타고는 본선 1승도 모자라 결승까지 진출했고 마침내 우승까지 했다. 공립고등학교가 결승에 오른 건 1996년 이후 11년 만이었다.

8회말 역전 만루홈런으로 마무리된 경기 자체도 드라마틱했지만 공립학교 야구부가 시스템과 돈으로 중무장한 야구명문 사립고 야구부를 물리쳤다는 사실에 수많은 사람들이 더 열광했다. 이것이 바로 고교 야구의 본 모습이라는 칭송이 뒤따랐다. 우리나라 언론들도 이 점에 주목했다. 당시 이 소식을 전한 SBS는 뉴스 제목을 '꼴지들의 반란, 대역전 드라마'로 지었고, 기자의 멘트도 "특기생을 선발하고 기숙사와 전용 훈련장까지 갖춘 이른바 야구 명문과는 전혀 다른 모습과 학생다운 투지와 의욕이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추켜세웠다.

사가현은 물론 발칵 뒤집어졌다. 사가현 시민 수천 명은 지역을 상징하는 녹색 티셔츠와 머플러를 맞춰 입고 고시엔 구장을 직접 찾았고, 나머지 시민 대부분도 녹색 티셔츠와 머플러를 갖추고 TV 앞에 모여 생중계에 시선을 고정했다. 당시 자료화면을 보면 우리나라 축구팀의 월드컵 경기 때를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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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고시엔 대회(89회)에서 사가현의 키타고등학교가 우승했다./유튜브 캡쳐

우승기를 들고 고향에 돌아온 사가키타고팀은 수많은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기념식과 함께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거리마다 우승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우승 기념 반짝 세일을 하는 가게들도 속출했다. 어떻게 보면 일개 고등학교 야구부의 일이지만 사가현 시민 모두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이로써 사가현은 위대한 이야기 한 편을 완성했다. 수십 년 전, 수백 년 전 조상들의 이야기를 각색한 게 아니라 시퍼렇게 살아 있는 '지금의 이야기'를 완성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체육이 가진 매력 아닐까?

체육이 만들어내는 '몸의 이야기'

대학 진학과 프로 진출만을 위해 운동하는 듯한 우리나라 학교 체육 현장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먼 나라 이야기 같다. 고시엔 본선에 진출하면 아무래도 프로야구 스카우터들 눈에 잘 띄어 출세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참가 선수들 대부분은 고시엔 무대 이후가 아니라 그 무대 자체가 목적이다. 자기 출세를 위해 열심히 뛰는 것이 아니라 야구 자체가 좋아서, 또 고시엔이라는 꿈의 무대에 서기 위해 열심히 뛰는 것이다. 거기엔 나름의 성(聖)스러움이 있고, 그것을 지키려고 애쓴다.

실제 고시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선수들이 야구가 아닌 대학 진학이나 취업 같은 일반적인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07년의 기적적인 우승팀 사가키타고 선수들은 단 한 명도 프로 무대를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실 야구로 밥벌이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전국에 4,200여 개 고교팀이 생겨날 수가 없다. 바늘 끝만한 제한적인 성공을 위해 17만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야구 글러브와 배트를 쥐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야구 자체가 주는 매력이 크게 작용할 것이다. 연습을 거듭하며 개인 기량이 향상되고, 팀을 이뤄 플레이를 완성시키며, 상대 팀과 부딪혀 자웅을 겨루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 모든 과정이 일본의 청소년들을 야구에 미치게 만드는 것 아닐까?

하긴 이러한 매력은 야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을 쓰는 체육 활동은 모두 나름의 '성장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규칙을 준수하면서도 최고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기술을 익히고 신체를 단련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을 운동하는 사람은 누구나 거치고 몸으로 깨닫는다. 특히 운동을 통한 성장스토리는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감히 최고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세계 축구를 지배했던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의 말은 이때 참고할 만하다.

"언제까지나 시합이 끝나지 않고 지금 이 상태로 플레이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공과 일체가 되어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는 최고의 상태 말이다."

우승을 하고 금메달을 따는 것은 운동의 결과이지 목적은 아니다. 운동의 진정한 목적은 지단이 말한 것처럼 '자유'를 몸으로 느끼는 것 아닐까? 우리의 신체는 비록 시간과 공간 속에 제한되어 있지만, 체육 활동을 통해 그 한계를 뛰어넘는 자유와 초월을 경험하는 것 아닐까? 수영이든, 배드민턴이든, 축구든, 내가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게 되고, 원하는 곳에 공을 보낼 수 있게 될 때 몸은 커다란 희열을 맛본다. 그 희열이 사람을 움직이고 변화시킨다. 자신감과 자긍심이 되고, 이웃과 타인에 대해서도 열려 있게 만든다.

몸의 성장이 가져다주는 효능감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심리 상태 중에 효능감(Efficacy)이라는 개념이 있다. 특정 상황에 필요한 특정한 행동을 해낼 수 있겠다는 믿음 또는 신념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중요한 발표를 앞둔 상황이라면 '잘 발표할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이다. 이런 효능감이 충분할 때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다. 반대로 효능감이 부족할 때는 아무래도 소극적이 되고 주저하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효능감을 가리킬 땐 '자아 효능감' 혹은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라고 부르고, 집단이나 공동체에 적용될 때는 '집합적 효능감'(Collective Efficacy)이라고 부른다. 집합적인 효능감이란 "우리가 해낼 수 있다, 우리가 극복할 수 있다"는 정도의 정서 상태다.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용어를 빌린다면, 전투를 앞둔 군인이나 경기를 앞둔 선수들의 '사기(士氣)'와 유사하다.

체육활동은 몸을 움직이며 기술을 습득하는 성장의 서사를 통해 '자기 효능감'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팀 체육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팀으로서 한 몸처럼 조화를 이루며 목적을 달성하는 성장 스토리를 통해 '집합적 효능감'을 체험하게 해준다. 나아가 팀과 팀이 맞부딪힐 때 각자의 팀이 속한 공동체는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보다 큰 차원의 집합적 효능감을 만들어낸다. 2002년의 한일월드컵 때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그랬고, 2007년 일본의 사가키타고등학교 야구부가 고시엔 대회를 제패했을 때 사가현 시민들이 그랬다.

공동체를 대표하는 팀은 따라서 단순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선수 하나하나는 등장인물이 되고 게임의 과정은 플롯이 되며, 경기 결과는 서사의 대단원이 된다. 도시 공동체는 자기 대표팀이 창조하는 서사를 해석하고 공유하며 전달함으로써 도시 공동체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자연스럽게 그 서사에 참여하는 '우리'와 이탈하는 '그들'로 나뉜다.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픽을 4년마다 한 번씩 개최한 것도 지형 때문에 분절될 수밖에 없었던 도시국가들 사이에 공통의 헬라 정체성을 확인하고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근대 국가가 본격적으로 성립할 때도 체육은 '근대 시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덴마크 등 북유럽에서는 맨손 체조가 고안됐고, 프랑스의 쿠베르탱은 고대 올림픽을 본따 근대 올림픽을 기획했으며, 잉글랜드는 축구를 대중화시켰다. 이른바 근대국가들은 근대시민상을 각인시키기 위해 규칙 준수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체육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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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보른하임 스포츠클럽 회원의 인터뷰 장면. 유럽의 스포츠 클럽은 지역 시민을 연결하고 결속시키는 커뮤니티 공간이다./KBS 생활체육 특집 - 한 게임 하실래요

스포츠 클럽은 강력한 시민 스토리텔링 네트워크

그러나 체육활동은 반드시 고안자의 뜻대로만 활용되지는 않았다. 축구의 종주국 영국에서는 애초 사회 지도층 인사를 키워내기 위한 사립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축구가 활용됐지만 산업 혁명과 함께 노동자의 도시로 성장한 셰필드, 블랙번, 리버풀, 맨체스터 등에 축구가 보급되면서 축구 자체가 목적이 되는 '가치 전도'가 일어난다.

잉글랜드의 지배층은 노동자들이 축구를 즐기게 된 사실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19세기 말 공황 때 노동자들의 격렬한 불만 표출이 늘 걱정이었는데, 규칙을 중요시하는 축구가 교육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덕분에 표준화된 생활 양식을 갖게 됐고, 공통의 정서도 누리게 됐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의 '집단 정체성'과 '집합적 효능감' 또한 빠르게 성장했다. 축구 경기가 도시 간 대항전, 나아가 국가 간 대항전으로 확대되면서 계급적 정체성뿐만 아니라 도시 정체성, 나아가 근대국가의 정체성까지 강화되는 효과를 가져 왔다. 게다가 리그를 가리지 않고 모든 클럽이 경기를 벌여 최강자를 뽑는 FA컵이 정착되면서 계층을 뛰어넘는 역동성이 극대화됐다. 1883년 FA컵 결승전에서 랭커셔 노동자로 구성된 블랙번 올림픽이 명문 이튼스쿨 출신의 올드 이트니언스를 2:1로 물리치면서 축구의 헤게모니는 이른바 사회지배층에서 노동자와 산업도시 중심으로 확실하게 넘어갔다.

축구의 성공은 다양한 형태의 스포츠 클럽으로 확대되어 서구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사회 체육 강국인 독일의 경우 공식 등록된 스포츠 클럽만 9만 1000여 개에 이르고, 회원으로 가입된 숫자도 28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전체 인구의 35%가 스포츠 클럽 가입자다. 독일축구협회에 등록된 팀만 3만 개에 달하고 선수도 40만 명에 이른다. 게다가 분데스리가부터 11부리그까지 모두 승강제를 도입해 역동성을 부여했다. 이론적으로는 11부 리그팀도 하기에 따라서는 분데스리가에 오를 수 있다(KBS, 2014, 생활체육 특집-동네축구가 답이다 중).

테니스 종주국인 영국도 협회에 등록된 테니스 선수만 61만 명을 넘고, 전국 각지에 분포하고 있는 테니스클럽도 2700개에 달한다. 선수들 수준은 천차만별이지만 엘리트와 아마추어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관리한다.

근대 국가로 접어들면서 서구 선진국들이 스포츠 클럽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것은 더 이상 종교적 도그마로 사회를 통제하기 어렵게 된 현대 도시 사회에서 대안적 사회 관계망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서구 선진국의 도시 공동체는 스포츠 클럽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곳은 건강을 위한 운동뿐만 아니라 마을과 도시의 주요 정보를 공유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마을 회관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를테면 체육활동이 마을 사람들을 의미 있게 연결하고 마을과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게 만드는' 중요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단절되고 고립된 우리 체육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역 기반 체육활동들을 보면 당장은 가능성보다 한계가 느껴진다. 일단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이 엄격하게 구분돼 있어 같은 종목이라도 연결이 안 될뿐더러 역동성 또한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나마 선진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축구도 1부 리그와 2부 리그에서만 승강제가 적용될 뿐 나머지 리그는 시스템과 기록관리가 별도로 진행된다.

비인기 종목은 그나마 세금과 기업의 선의로 운영하는 몇몇 팀을 제외하면 저변 자체가 부실하기 짝이 없고 생활 체육도 지역적으로나 종목으로나 개별적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강해 대부분 동호회 수준에 머물고 있다.

생활 체육인을 대상으로 하는 마스터즈 대회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활약이 지역 공동체에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자기 동네 선수나 운동부가 전국 우승을 해도 동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공동체의 연결과 결속이란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체육활동은 낙제점을 받아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 체육계도 최근 들어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구 선진국의 스포츠 클럽을 벤치 마킹한 '종합형 스포츠 클럽'이 정부 주도로 확산되고 있다. 2013년에 전국 19개 도시에 시범 운영을 시작한 이 클럽은 올해 들어 30곳으로 늘어났다. 이 클럽은 지역 거점 시설에서 '다연령 다종목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지역 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엘리트 체육기구와 생활체육기구를 통합해 역동성을 끌어올리는 지자체도 늘어나고 있다. 전주시의 경우에는 농구 종목에 '즐거운 주말 리그'를 열어 사회인 농구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는 엘리트와 생활체육을 통합한 '전주시 통합농구연합회'가 만들어지면서 가능해졌다. 엘리트 농구인들이 사회인 농구팀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윈윈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걸음마를 뗀 수준이지만, 변화의 물꼬는 튼 것 같다. 생활 체육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빠져서는 안 될 가치가 하나 있다. 바로 체육활동이 공동체를 연결하고 결속시키는 스토리텔링 활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국가와 함께 등장한 사회 체육 시스템은 애초에 사회적인 목적이 강했다. 운동으로 연결된 시민들 또한 단순 건강에 만족하지 않고, 그 연결을 사회적 연대와 소통의 플랫폼으로 확대시킨 것이다. 시민들의 체육활동은 따라서 현대 도시의 중요한 스토리텔링 인프라로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도시의 시민 공동체를 재건하고, 시민의 연대감과 결속을 강화하는 관점에서 도시의 체육 정책을 리모델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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