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강건성세(康乾盛世 강희~옹정~건륭기간 융성했던 치세)를 마지막으로 장식한 건륭제는 앞선 왕조에 복무했던 한 사람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천고기원(千古奇寃)! '세상에 이토록 원통한 일이 있을까!' 하는 탄식이다. 그 주인공은 원숭환(袁崇煥 1584~1630)이다.

수많은 인물이 명멸한 중국 5000년 역사에서 가장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로 첫손에 꼽히는 원숭환은 명청 교체기에 명을 사수한 마지막 명장이다. 문관 출신이지만 소싯적부터 군사(軍事)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던 그는 청나라 침입이 가시화될 무렵 국경인 요동지방을 사수하는 사령관이 되어 몇 차례에 걸쳐 청군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청 태종 홍타이지는 그가 눈엣가시였다. 원숭환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명나라 진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유명한 반간계(反間計)가 등장한다. 포로로 잡은 명나라 환관을 재워놓고 옆에서 청군 지휘관들이 원숭환이 그들과 내통하고 있는 듯 정보를 흘린다. 풀려난 이 환관은 쪼르르 황제에게 달려가 원숭환이 적과 한패라고 일러바친다.

▲ 원숭환 석상./나무 위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시기심이 강하고 의심이 많았다. 즉위 초기만 해도 권신(權臣) 위충현을 제거하는 등 개혁적인 면모를 보였으나, 기울어가는 국운을 되살리기 어려워지자 초조한 나머지 신하들을 믿지 못했다. 명나라를 요절낸 원흉으로 지목받는 엄당(奄黨: 환관 패거리)은 이런 약점을 파고들어 황제에게 계속 원숭환을 모함했다.

엄당은 원래 그들에게 뇌물을 바치던 장수 모문룡이 원숭환에게 죽임을 당하자, 이를 갈고 있던 터였다. 황제에게 빌붙어 사는 내시 무리에게 풍전등화 같은 나라 미래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황제는 원숭환을 처형하고 만다. 그것도 능지형으로. 능지형이란 산 사람을 살을 도려내어 죽이는 참혹한 형벌이다. 외적에 대항하던 명장을 의심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이 장면은 흡사 임진왜란 때 조선 선조가 한 행위를 떠올리게 한다.

원숭환이 죽자 부하 조대수는 병력 1만 5000명을 이끌고 청나라에 투항한다. 이 과정에서 네덜란드 대포(홍이포) 제작기술까지 적에게 넘어간다. 명나라 국운을 가른 일대 사건이다. 이로부터 15년 후 결국 명나라는 망하고 숭정제는 자살하고 만다.

물론 반간계 위력이 컸다고는 하나, 꼭 이것 때문에 원숭환이 죽은 것은 아니다. 적과 대치하는 와중에 기습을 받고 북경이 포위되자, 조야(朝野)가 그를 의심하게 된 것도 한 원인이다. 게다가 도적질을 일삼기는 했으나, 엄당과 끈끈하게 연결돼 있던 모문룡을 임의로 죽인 것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청군의 약점을 나름대로 간파하고, 착실하게 대비하던 사령관을 역적으로 몰아 죽인 것은 치명적이었다. 국경을 지키던 군사가 와해되고, 이신(貳臣: 명과 청에 양 다리를 걸치고 있던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숭정제가 자살할 즈음 자금성에 몰려든 청나라 장군들을 보고 늙은 환관들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나라를 이끈다는 이들이 이렇게 젊을 수가!" 병들고 노회했으나, 탐욕으로 가득했던 명나라 신하들이 볼 때 '푸른 기운'에 둘러싸인 젊은 청나라 사람들은 아마도 경이 그 자체였을 것이다. 명청 교체는 어둠과 밝음이 자리를 바꾸는 일이었다. 원숭환의 비명은 이 자리바꿈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사건으로 남아있다. <川邊小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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