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 원리를 가르쳐달라고요? 셰프에게 레시피를 물어보는 것과 같아요

브라운관에 비치는 수많은 관객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텔레비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린 시절 나도 눈을 연방 비볐다.

대체 상자 속에 갇혔던 외국 언니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어 건장한 외국 남자가 아이를 상자에 넣고 사방에서 칼을 밀어 넣는다.

마술이라는 게 어마어마했다.

마술사 원광식(21·창원) 씨를 만났을 때 다짜고짜 물었다. 대체 사람을 토막 냈다가 살려내는 마술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그는 딱 잘라 말했다.

"가르쳐 줄 수 없어요. 사람들이 마술 원리를 알려달라고들 하는데…. 음. 있잖아요.

이건 유명 요리장 더러 맛집 조리법을 공개해달라는 것과 같은 거예요."

최근 각종 국내외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떠오르는 마술사로 주목받는 원 씨는 마술을 하나의 예술 창작품으로 봐달라고 했다.

지난 9월 7일 창원 와우매직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꿈을 위해 앞만 보고 내달리는 열혈 청년이었다.

대만, 마카오 대회에서 한국 마술 저력 보였다

뉴올림피아상가(성산구 중앙동)에 들어서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Wow Magic(와우 매직)'이라고 적힌 간판을 찾았다. 와우매직은 전문 마술도구를 취급하고 기획 공연을 펼치는 회사다. 2004년 문을 열어 10년이 넘었다.

01.jpg
▲ 원광식 마술사./김구연 기자

원 씨는 경남 유일 매직샵이라고 소개했다.

벽면에는 각종 마술 도구들이 정리되어 있었고 또 다른 벽면에는 와우매직에서 수상한 상장과 상패, 마술사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구구' 소리를 내는 비둘기도 12마리나 됐다. 그 옆에는 볼이 빨간 앵무새가 새장 밖으로 나와 우리를 이리저리 쳐다봤다.

사무실에 마련된 작은 강의실에서 원 씨와 마주 앉았다.

"오는 주말(9월 12·13일) 울산국제매직컨벤션이 열려요. 국제마술대회인데 와우매직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해 여러모로 바쁘네요. 올해 상반기는 대회 출전에 신경 썼고 하반기에는 와우매직이 참여하는 여러 행사를 맡아 진행해야 해요."

원 씨는 불경기 탓에 회사 사정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남재현 대표와 둘이서 회사를 꾸려간다고 했다.

와우매직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성과는 대단하다.

원 씨의 활약이 매섭다.

지난 7월 마카오에서 열린 국제 마술대회에서 스테이지 부문 2등·베스트 퍼포먼스 어워드를 받았고 이에 앞서 3월에는 '대만 808 Magic Convention(대만 808 매직컨벤션)'에서 스페셜 어워드를 수상했다. 2014년에는 전국마술대회에서 '인도네시아 특별상'을 받아 올해 인도네시아 마술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인도네시아 대회가 마카오로 변경됐어요. 한국 마술사로 유일하게 출전해 떨렸는데 좋은 성과를 안고 돌아와 기뻤습니다."

02.jpg
▲ 원광식 마술사./김구연 기자

"비둘기 마술이 제 특기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단다. 그의 특기는 비둘기를 이용하는 마술이다.

"비둘기를 국외로 들고 가지 못해요. 보통 대회 주최 측에 이야기해 빌리는 편입니다. 이번에도 비둘기를 빌려놓았죠. 그런데 출국 3일 전 비둘기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마카오는 동물을 마술에 이용하려면 허가증이 있어야 한대요. 그래서 주최 측이 이를 메일로 미리 알렸는데 해당 메일이 스팸함으로 들어가 전혀 알지 못했죠. 부랴부랴 머리를 쥐어짜 비둘기 부분을 바틀(술병)로 바꿨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비둘기를 이용하는 마술은 여러모로 어렵다. 국외에서는 늘 훈련하던 새가 아니라 낯선 새와 호흡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하기 쉽지 않다.

03.jpg
▲ 원광식 마술사./김구연 기자

"대만에서도 비둘기와 마술을 했습니다. 대회 2일 전 도착해 단기간 훈련을 하죠. 살아있는 동물이다 보니 강압적으로 대하지도 못해요.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무대에서 당황할 때도 있습니다. 이날 대회 참가자 중 유일하게 'Dove Magic(비둘기 마술)'을 했어요. 클래식한 느린 음악에 맞춰서 선보였죠."

그는 마술 하면 제일 많이 떠오르는 게 비둘기 마술이라고 했다. 비둘기가 나오면 환호하는 관객이 많아 마술사 이미지에도 제일 적합해 특기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마술회사 교육생으로

원 씨는 전공이 요리다. 경남관광고등학교 조리과를 졸업했다. 밥은 해먹을 줄 알아야 굶어 죽지 않겠다고 생각해 선택한 진로였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은 마술. 초등학생 때부터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동영상을 보고 열심히 따라 했다. 하면 할수록 재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마술이 자극을 줬다. 친구는 10원짜리 동전을 갑자기 50원짜리로 만들었다. 그때 그는 생각했다. 마술사가 되어야겠다고.

학생들끼리 마술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다 와우매직 교육생으로 들어간다.

당시 와우매직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무료로 마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기술을 알려주기보다 마술사의 자세, 태도, 가치관 등 마술사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원 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와우매직에 다녔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았다. 방학 때가 가장 신났다. 온종일 마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리를 직접 만들어서 활동하다 창원에 마술회사가 있다는 걸 알고 연습생으로 시작했죠. 와우매직에서 천천히 하나씩 배워갔습니다. 마술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많이 물어요. 국내에 마술학과가 총 3개 있습니다. 전 세계에 3개가 있는데 우리나라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학교를 나와도 되고 매직엔터테인먼트를 나와 활동해도 됩니다. 혹은 마술회사에 소속되어 활동하기도 하고 프리랜서로 독자적으로 활동하시는 마술사도 있습니다. 정해진 절차는 없어요. 마술도 예술이거든요."

04.jpg
▲ 원광식 마술사./김구연 기자

그는 대학에서 배우는 커리큘럼이 와우매직에서 익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고 대학 진학 후 취업이 무조건 보장되지 않는 점, 마술세계에서 자격증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른 나이에 다양한 무대를 경험했고 자신의 철학도 여물어갔다.

마술,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는 부족

마술은 화려하다.

이은결이나 최현우 마술사는 누구나 아는 스타다. 휘황찬란한 무대에 서서 물체를 사라지게 하고 새로 나타나게 한다. 눈앞에서 물건이 순식간에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화려함 뒤에는 엄청난 연습이 따른다.

"단순히 마술이 멋져 마술사가 되려고 한다면 당장 그만둬야 해요. 마술은 짜여 있는 레퍼토리가 없어요. 보통 마술사들이 다 만들어야 합니다. 간단한 마술 원리는 금방 익히지만 이를 응용해 자신만의 작품으로 만들려면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손에 익어야 하거든요. 자신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마술은 관객들에게 금방 들통이 납니다. 시간 날 때마다 마술 연습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마술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와 지구력이거든요."

05.jpg
▲ 원광식 마술사./김구연 기자

그는 오전 10시 30분에 출근해 사무실 청소를 끝내고 행사와 대회 일정을 확인한다. 와우매직이 운영하는 쇼핑몰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마술 도구도 챙긴다. 퇴근은 오후 7시지만 대중없다. 특히 주말에 공연이 있으면 쉬는 날이 없고 짬이 날 때마다 학생을 상대로 수업도 한다.

무대에 올라 멋진 마술만 하고 내려오는 낭만적인 직업이 아니다.

또 경제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

"마술사가 되려는 친구들에게 묻죠. 아주 힘들어도 계속할 거냐고요. 아주 유명한 스타가 되지 않는 이상 돈을 크게 벌지 못해요. 하지만 계속 배워야 하기 때문에 마술 도구에 투자해야 하죠. 저는 와우매직 소속 마술사라 월급을 받아요. 큰 액수는 아니지만요. 마술은 다른 공연보다 경기를 아주 잘 타요. 와우매직도 마찬가지죠. 문을 연 지 4년 정도 지나 상승세를 탔어요. 그러던 중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신종플루가 터져 모든 공연이 취소됐어요. 지난해는 세월호 참사, 올해는 메르스 여파를 받았고요. 와우매직이 번창할 때 직원이 7명이나 됐는데 점점 기울기 시작해 지금은 두 명뿐이죠.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술이 종합예술로 인정받아 연극이나 다른 공연 분야처럼 지원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한다.

06.jpg
▲ 원광식 마술사./김구연 기자

"내 마술은 예술이다"

원 씨는 마술은 마술사 손끝에서 탄생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관객들은 정해져 있는 마술을 그대로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마술사가 직접 의상과 공연 소품을 디자인하고요. 공연에 필요한 음악을 선택합니다. 조명도 직접 정하고 공연에 필요한 동선을 모두 만들죠. 아직 우리나라에서 마술이 정식 예술 장르로 인정받지 못해요. 더 많이 알려져 문화예술 장르 하나로 속했으면 좋겠어요. 유럽이나 미국처럼요. 마술 원리를 가르쳐달라는 건 예술가더러 고유한 작업 방식을 알려달라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유명 화가에게 그렇게 묻지 않잖아요. 마술도 이런 인식이 확대됐으면 좋겠어요."

그는 앞으로 일본 마술사 겐지 미네무라, 유럽에서 활동하는 토파즈, 레벤토 마술사처럼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손을 가진 마술사'라고 불리는 겐지 미네무라는 단순한 카드 마술로 큰 여운을 준다. 독일 마술사 토파즈는 세계 마술사의 우상으로 손꼽힌다.

"마술계에서 알아주는 대가입니다. 이들은 공통점이 있어요. 작은 마술로 큰 임펙트와 신기함을 연출하죠. 물론 표현력 또한 뛰어납니다. 저도 제 이름을 건 마술을 하고 싶어요. 대회 작품 말고도 '원광식'이라는 이름의 마술 도구를 만들고 세미나도 열고 싶습니다."

연습 또 연습, 오늘도 연습하는 열혈 청춘

700번 넘게 선 무대를 다 기억한다는 원 씨. 자신이 목표한 100계단 중 아직 5계단만 올랐단다.

우선 군대에 가기 전까지 다양한 대회에 나갈 계획이다. 입대는 3년 후쯤 생각한다.

"국내외 대회 가리지 않고 출전하고 싶어요. 무대 담력을 키우고 작품도 여러 개 만들고요. 군대에 가서는 대회 수상 작품을 다듬어 저만의 대표작을 만들 겁니다. 국내 전업 마술사가 몇천 명 정도는 될 겁니다. 모두 이은결이나 최현우처럼 되지 않죠. 저도 당장 큰 욕심을 내지 않아요. 한계단 한계단 꾸준하게 오를 뿐이죠."

원 씨는 자신의 마술은 종합예술이라고 강조했다.

"행사만 뛰는 생계형 마술사도 대회만 쫓아다니는 컨벤션용 마술사도 되고 싶지 않아요. 늦게 알아주더라도 누구나 인정하는 마술사,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오랫동안 마술계에 있고 싶기 때문에 마술만 하기보다 마술 도구를 만들고 강의를 하는 만능꾼이 될 겁니다."

'만능 엔터테이너'를 꿈꾸는 그는 오는 10월 마술 캠프를 떠난단다. 강원도, 서울, 부산, 경남을 가리지 않고 주말마다 초등학생을 만나 마술과 논다.

인터뷰 내내 '구구구구' 우는 비둘기를 꺼내 쓰다듬고 먹이를 주는 그의 손에서 앞으로 어떤 마술이 탄생할지 기다려진다.

그의 청춘을 응원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