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 대신 서로의 손을 잡고 세계로 뛰어들다

만나야 할 사람들이 이제야 만난 것처럼 두 사람은 몇 시간 만에 사랑에 빠졌다.

서로 쳐다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던 신혼생활 2개월 만에 아내는 척추에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울고 큰 수술을 받았다. 그 이후의 일은 하늘에 달려있었다.

잠시 웅크렸던 부부는 모든 걱정거리를 뒤로 하고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세상과 거침없이 부대끼다 돌아와 들어본 적도 없던 '산청'이라는 곳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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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선 박진희 부부./서정인 기자

책 덕분에 만난 내 사람

서점은 도선 씨에게 늘 특별한 공간이었다. 10살 때까지 부산에서 살았던 도선 씨 가족은 충남 홍성으로 이사를 했다. 익숙하지 않은 말씨부터 낯선 친구들까지. 어린 도선 씨는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 마음을 채워준 건 동네 서점이었다. 서점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볼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한 시간이었다. 늘 바닥에서 책을 보는 아이가 안쓰러웠던 서점 주인아저씨는 체구에 맞는 등받이 의자를 가져다 놓으셨다. 그때 어루만져진 마음은 '언젠간 내 서점을 열어야지'라는 목표를 갖게 했다. 스무 살, 도선 씨는 잠시 서점을 잊었다. 집을 떠나 대학에 다녔고 젊은 나이를 밑천 삼아 유통 관련 사업을 했지만 사업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때 서점이 생각났다.

도선 "서점은 어떤 곳보다 저한테 아늑한 공간이었어요. 사업을 그만두고 서울에 있는 연신내문고라는 곳에서 5년 동안 근무를 했어요."

진희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일을 할수록 회의가 몰려왔다고 했다.

진희 "사교육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한계를 느꼈어요. 아이들을 공부벌레로 만드는 그 중심에 제가 있다는 게 싫었어요. 진짜 교육자가 되어야겠다 싶었어요."

단번에 직장을 그만두고 학교에 다시 들어가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모은 돈을 들여 다시 공부를 하고 학교 앞에서 독립된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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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문고 내 마음의 책방. /정도선 박진희 부부 제공

도선 씨가 서점 일을 하면서 특히 보람을 느끼던 일 중 하나가 손님들에게 절판된 책을 찾아주는 것이었다.

도선 "절판된 책을 찾는 손님이 계셨어요. 제가 우연히 그분 페이스북 담벼락을 보다가 책을 찾으시는 글을 봤어요. 몰래 구해드리고 싶었어요. 굉장히 감동하실 것 같아서요. 출판사, 총판, 도매상, 헌책방을 다 뒤졌는데 안 구해지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제 페이스북 담벼락에 이런 책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는데 안면밖에 없던 친구가 그 책을 가지고 있다고 댓글을 남겼어요."

두 사람은 여럿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지만 서로를 특별히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진희 씨는 도선 씨 게시물에 댓글을 남겼다. 마침 가지고 있는 책이었다. 도선 씨가 댓글을 보고 환호성을 지른 바로 다음 날 두 사람은 만났다.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책에는 그때의 도선 씨 마음이 이렇게 담겨있다.

'이 사람 나와 너무나 닮았다. 세상을 보는 시선과 꿈꾸는 미래,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절망까지도 심지어 좋아하는 책과 음악, 여행지, …조금씩 서로의 이야기에 취해갔다. 앉은 자리 앞 수족관에 그 어느 때보다 행복에 겨운 내 얼굴이 비친다. 그 순간 알아버렸다. 내가 평생 기다리던 사람이 이 사람이라는걸! 그리고 주저 없이 그녀를 안아버렸다.'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중

진희 "얘기를 하고 있는데 대꾸를 안 하고 혼자 막 쳐다보는 거예요. 그리고는 '안아봐도 돼?' 이러더라고요. 저도 싫지 않았기에(웃음) 그러라고 그랬죠."

만난 지 3시간 만이었다. 자연스럽게 연애를 시작했다. 도선 씨는 서울에서 일을 했고 진희 씨는 천안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밤늦게 문을 닫고 주로 평일에 쉬는 서점 특성상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노력해야 했다. 도선 씨는 일주일에 두 번 서점 문을 닫은 순간부터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 천안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2년을 그렇게 했다.

갑자기 암 환자가 되었다

14평 작은 신혼집은 두 사람 만으로 꽉 찼지만 부족함 없이 행복했다. 퇴근 후 자전거를 힘차게 굴려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면 진희 씨의 웃는 얼굴과 따뜻한 저녁밥이 도선 씨를 반겼다. 꿈꾸는 것만 같은 나날을 보내던 부부에게 생각지 못한 불행이 다가왔다.

진희 "결혼 후에 한동안 바쁘게 인사를 다니고 나서 쉬는 날이었어요. 제가 '아이고, 허리야' 이러니까 남편이 오늘은 꼭 병원에 가자고 했어요."

진희 씨는 원래 허리에 통증이 있었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허리에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있었지만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동네에 있는 척추 전문 병원에 갔다. 투닥투닥 장난을 치다 진료실에 들어갔다. 이내 의사의 입이 떨어지고 믿기지 않는 말이 들려왔다. 주변 공기가 차갑게 식었다.

도선 "이건 디스크나 단순한 요통이 아니라 종양 때문에 생기는 통증이라고 하셨어요. 추천서를 써줄 테니 큰 대학병원에 가라고 하셨어요."

그 길로 대학병원에 갔다. 혹시나 오진이 아닐까 했던 기대는 두 사람을 더 힘들게 했다. 척추와 골반 사이에 7cm가량의 종양이 있고 뼈까지 침투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것. 결혼한 지 두 달만의 일이었다.

진희 "겉에 붙은 종양을 떼고 뼈에서도 빼내고 골반도 잘라서 뭘 해야 하니 수술은 20시간 정도 걸릴 거고…. 하반신 마비까지는 아니고 다리 마비, 발목 마비 정도? 이런 식으로 가볍게 말을 하시더라고요. 저희는 굉장히 충격을 받은 상태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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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전 날 정도선 박진희 부부.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정도선 박진희 부부 제공

여러 의사를 만나봐야겠다 싶어서 수소문을 하기 시작했다. 도선 씨는 SNS를 통해 도움을 청했다. 어떤 가능성이라도 찾고 싶었다. 2014년 8월 중순 진희 씨는 뼈 속에 있는 종양은 두고 겉에 있는 종양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큰 수술이기도 했지만 종양이 양성인지 음성인지가 중요한 일이었다.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두 사람은 애써 담담하게 일상을 이어갔다.

'수화기 너머로 긴 한숨소리가 들렸다. 순간 내 몸은 얼음장처럼 굳어졌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건넸다.

"어머님, 무슨 일이에요. 말씀하세요. 어머님."

"저기 도선아 어떡하니. 진희가 악성이란다. 미안하다 얘. 미안해서 어떡하니 도선아…."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중

병원에서는 일단 수술한 부위만이라도 방사선 치료를 하자고 했지만 부부는 쉽게 마음먹을 수 없었다. 방사선 치료는 뼛속 종양에는 효과를 볼 수 없을뿐더러 환부 근처에 있는 자궁이 불가피하게 방사능에 노출된다는 것 때문이었다. 늘 아이를 원했던 진희 씨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부부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수술 후, 꿈꿔왔던 세계 일주가 떠올랐다

진희 씨는 퇴원을 했고 부부는 집에 돌아왔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라는 물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도선 "아내가 아프기 전에도 둘이서 행복한 삶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발병하고 나니 더 간절해지더라고요."

부부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요양인지 여행인지 분간 안 되는 여행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진희 "오래전부터 저희 둘 다 세계 일주를 꿈꾸고 있었는데 지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하루가 소중했기에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도선 씨는 직장을 그만뒀다. 양가 부모님들도 부부를 묵묵히 응원했다. 진희 씨가 수술한 지 6개월 만에 부부는 배낭 하나씩을 메고 세계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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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의 산 페드로 거리에서. 딱히 볼 것도, 먹을 것도, 할 것도 없는 작은 호수 마을이었지만 우리는 마음을 빼앗겼다. 둘이 손잡고 도란도란 호숫가를 산책하며 그곳에서 빨래하고, 목욕하고, 큰 마을에서 장본 것을 머리에 지고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그들 삶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정도선 박진희 제공

도선 "처음엔 방콕으로 들어가서 동남아를 돌고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가서 서점 순례를 하려고 했는데. 계획이 태국에서부터 바뀌어서 멕시코로 가게 됐어요."

낯선 세상을 만끽했고 마음을 다해 친구를 사귀었다. 한국에서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서로 무심하게 스치는 것이 당연한 생활을 했다. 그런데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생각만 해온 일들이 가능했다. 아무것도 재지 않고 마음을 내어주고,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것.

부부는 멕시코시티로 향했다. 비행기 연착과 대기, 34시간 비행. 고단한 이동이 이어졌다. 걱정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진희 씨 몸 상태가 나빠졌다.

진희 "동남아에 있을 때는 허리 통증이 없었어요. 그래서 산도 타고 하이킹도 했는데 멕시코로 넘어가면서부터 아프기 시작한 거예요. 무리하기도 했고 언어가 너무 안 통해서 항상 긴장을 하니까 몸이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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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보께오 국립공원에서 짚라인을 타는 중. 몇 백 미터 상공에서 줄에 매달려 산봉우리를 건너가는 체험프로그램. 20여개의 줄을 건너 50m 상공에 지어진 나무위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왔다. 짜릿한 스릴이 내가 아픈 사람임을 잊게 하고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정도선 박진희 제공

며칠동안 꼼짝없이 숙소에서 지냈다. 진희 씨는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여행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아이 낳을까?"

"왜 또 아이 얘기야…."

"나 없으면 나 닮은 아이라도 있는 게 당신하고 우리에게 좋지 않을까 해서…."

아내는 여행 중반을 지나자 이내 통증을 호소했다. 특히 고산지역에 있었을 땐 배낭을 아예 멜 수도 없었고 가끔은 통증이 너무 심해 땅바닥에 주저앉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통증이 있고 나면 늘 눈물을 훔치며 이런 얘기를 했다. 몸이 더 안 좋아져 아이를 정말 낳을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을 내게 피력한 것 같다. 아내에게 아이는 그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난 매번 뭐라 대꾸하지도 못하고 흘러내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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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과나후아또의 숙소. 가난한 여행자이기에 1박에 1~2만원 하는 숙소를 찾아다녔다. 옷은 손으로 직접 세탁하여 숙소에 널어놓고 생활했다. 여행지에서는 비싼 옷보다 유명브랜드의 옷보다 잘 마르는 옷이 최고의 옷이었다. /정도선 박진희 제공

그 와중에 한국에서 들려온 세월호 참사 소식에 부부는 크게 흔들렸다. 숙소에 있던 사람들이 북받쳐 우는 두 사람을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봤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멕시코시티에서 부부는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후회하지 않을 만큼 그곳에서 많은 생각을 했고 서로의 소중함을 느꼈다. 꼭 필요한 것들로만 채웠던 배낭이 여행을 하면서 무거워졌다. 비우고 또 비웠다. 한국에서는 더 많이 가지려 했는데 그 짐을 어깨로 오롯이 져보니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캐나다 체리 농장에서 맞은 결혼기념일

여행경비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하며 만난 친구들이 캐나다 체리 농장을 알려주었다. 지내기 쉽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여행을 멈출 수는 없었다. '우리가 언제 다른 나라 농장에서 일해 볼 수 있겠어!'라는 마음도 있었다. 12단 사다리에 올라 까맣고 빨갛게 손을 물들이며 힘들게 체리를 딴 이야기를 하면서도 진희 씨 얼굴은 아주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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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결혼 1주년 사진. 캐나다 오소유스 지역에서 체리를 따고 있었음. 이른 아침 세수만 한 채로 일터에 나가 흙먼지와 체리 과즙이 범벅이 된 얼굴로 결혼 1주년을 맞이했음. /정도선 박진희 제공

진희 "체리가 열에 굉장히 약한 작물이라서 해가 다 뜨기 전에 따야 해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식빵 한 쪽 먹고 모이는 장소에 가면 각자 따야 할 체리나무를 정해줘요. 근데 거의 돈도 못 벌고 고생만 했어요. 체리 철 되기 전에 시작해서 체리가 많이 없었고 생활비가 워낙 비쌌거든요. 익숙해질 때쯤 몸이 아파서 더 이상 못 하겠더라고요."

부부는 '체리피커'가 되어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그날은 맥도날드에서 가장 맛있는 햄버거를 먹었다고 했다.

체리 철이 다가오던 7월. 모든 상황이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여행을 한지 6개월만이었다.

통증을 참으려 이를 악문 탓에 턱관절도 아팠다. 아파서 제대로 씹을 수가 없자 기력이 떨어졌고 그 틈을 타 몸의 통증은 더 크게 활개를 쳤다. 여행을 떠나며 맡겨놓은 고양이에게도 사정이 생겼다. …턱 통증으로 인해 말도 하기 어려워졌다. 겨우 입을 벌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집에 가자."

남편은 왜 그러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냥 조용히 안아주었다.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중

진희 "돌아와보니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희열이 우리 일상 곳곳에 있고 사람에게서 얻는 게 더 많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여행이 끝나는 게 많이 싫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빨리 편안한 침대에 눕고 싶다는(웃음) 생각도 했죠."

부부는 웃음과 눈물이 묻어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과 고양이 땡이, 세 식구가 다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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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거야> 책 표지./알라딘 캡쳐

"산청이 어디야?"

부부는 돌아오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도선 "상태가 악화되지는 않았다고 하셨지만 여전히 상황은 나빴죠. 뼛속 종양이 커지면 정말 답이 없다고 하셨어요."

무조건 몸과 마음을 편히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온전히 휴식에 집중하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어려웠다. 여행을 하면서 돈과 시간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지만 눈앞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병원비를 내야 했고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바빠져야 했다.

진희 "신랑이 시골에 가서 살자고 하더라고요. 푸릇푸릇한 풍경 보면서 좀 내려놓고 살아야 몸에도 좋을 것 같다고요. 1%라도 진행을 늦출 수 있으면 뭐든지 할 거라는 신랑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죠."

부부는 '시골집'을 찾기 시작됐다.

진희 "남편이 어느 날 '산청 어때?' 이러길래 '산청이 어디야?'라고 했어요. 처음 들어봤거든요.(웃음) 진주 옆에 있는 곳인데 인터넷에 공매로 농가가 하나 떴다고 해서 다음날 바로 산청으로 갔어요."

도선 "빈집인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집 마당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밤을 말리고 계셨어요."

진희 "할머니가 무슨 일이냐고, 어제도 한 부부가 왔다 갔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 문제가 생겼는지 인터넷 어디에 올라왔으니까 아드님이나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시라고 말씀드렸어요. 누군가 마음을 나쁘게 먹어서 사정을 알고도 집을 사버리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쫓겨날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말씀드리고 저희가 가려는데 할머니께서 막 밤을 먹고 가라고 부르시는 거예요. 아, 여행하면서 느꼈던 사람 냄새와 정이 한국에도 있구나. 그런 마음이 확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산청이 너무 좋아졌어요. 꼭 그 마을이 아니더라도 산청이면 좋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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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선 박진희 부부가 산청에서 살고 있는 집./정도선 박진희 부부 제공

첫걸음에 집을 구하지 못했기에 부부는 얼마 후 다시 산청으로 향했다.

도선 "여행하면서 만난 동생에게 연락이 왔어요. 지금 머무는 숙소에 있는 분의 이모가 산청에 사신다며 만나보라고 하는 거예요. 산청에 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바삐 그분 이모에게 손님이 갈 거라고 연락을 하고…. 그렇게 챙겨주는데 안 뵐 수가 없어서 부동산 가기 전에 그 집부터 들렀어요."

그렇게 만난 산청군 외송리는 부부를 소박하고 예쁜 모습으로 반겼다.

진희 "마을이 참 예쁘더라고요. 이모님께 들러 조언도 듣고 부동산에 가봤지만 원하는 매물이 없었어요. 포기하고 발걸음을 무겁게 돌렸죠. 산책이나 하고 갈까 해서 걷다가 전봇대에 붙여진 전셋집 전단지를 발견했어요. 주소를 보니 아까 저희가 좋다고 했던 그 동네인 거예요! 전원주택 같은 집을 통째로 전세 주신다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어요."

산청에 오고 나서 도선 씨는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여전히 마음에는 서점을 품고 있었지만 말이다.

도선 "SNS를 통해서 산청에 집을 구했다고 알렸는데 아는 분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이 근처에 진주문고라는 서점이 있다고요. 산청에서 서점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었어요. 그런데 근처에 서점이 있는데다 마침 직원을 한 명을 뽑는다고 해요. 사장님을 만나 뵈니까 제가 그리던 서점을 똑같이 머릿속에 그리고 계신 거예요. 인연 때문에 집을 구하고 직장까지 구했어요."

부부는 산청에 오자마자 겨울을 맞았다.

진희 "집 밖을 내다보면 민둥산이 보이고…. 오자마자 행복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시간이 좀 걸렸어요. 날이 풀리고 나서는 밖에도 나가고 이웃 분들과도 친해져서 지금은 마음 편히 잘 지내고 있어요. 얼마 전부터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검진은 6개월마다 받았었는데 지금은 1년에 한 번으로 바뀌었어요. 지난달 병원에 갔더니 종양이 지금은 정체된 상태라고 하셨고 이렇게만 가면 문제 될 게 없다고 그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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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외공리에서 본 운무./정도선 박진희 부부 제공

다시 꿈꾸다

도선 씨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구경하다 보면 서점과 출판업계에 대한 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언젠간 없어질 게 분명한 서점에서 난 무엇을 부여잡고 있는 것일까. 내 서점 차릴 거라고 여기서 인고의 시간 버텨본들 뭐가 남을까. 내 꿈은 타당한 꿈일까 어리석은 꿈일까. 우리 서점들은 변화할 의지가 없는 것일까 능력이 없는 것일까. 우린 독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기만하고 있는 것일까. 이 땅에서 서점은 필요한 곳일까 필요 없는 곳일까.

도선 씨는 그 마음을 진주문고에 붓고 있다. 도선 씨가 온 이후로 진주문고는 전보다 많이 알려졌다. 다른 서점에서 볼 수 없던 행보가 주목을 받았다. 생각보다 파장이 커서 난처하기도 했다는 도선 씨. 하지만 그것 또한 서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도선 "'왜 서점에서 이런 걸 하느냐' 하는 분도 계시지만 저는 이게 서점의 역할이라고 봐요.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닌 지역 현안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곳, 주민들과 소통하는 기획을 하고 유익한 행사가 열리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의료원 폐업이나 무상급식 폐지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분명 있으니까 같이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분들이 있어서 걱정도 많이 했었어요."

도선 씨가 그리고 있는 서점은 뚜렷했다.

도선 "저는 다른 서점과 달라야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진주문고에 오자마자 진열 방식을 바꿨어요. 보통 베스트셀러 또는 서점과 직거래하는 출판사 책을 일단 진열하는데 진주문고에서는 제가 고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을 선별해서 그런 책 위주로 노출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일.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도선 "출판 기획은 1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어요. SNS를 보시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저희 두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 여행하면서 썼던 글, 느낀 것을 고스란히 담았어요. 둘이 번갈아가며 얘기하는 구성의 책이에요. 감사하게도 2쇄 작업 들어간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넉넉한 자연 속 작은 마을에 정착한 부부는 잠시 묻어두었던 바람을 꺼낼 여유를 찾은 듯했다. 도선 씨는 진주문고를 위해 노력할 것이고 먼 미래에 자신의 서점을 갖겠다는 꿈은 여전히 품고 있다고 했다. 진희 씨는 배움의 현장이라면 어디에서든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이 훗날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서점에 앉아 손님을 맞는 상상을 해본다. 그때가 되면 절망스럽기도 빛나기도 했던 젊은 기억은 모두 한데 버무려져 가슴 한편에 두 사람만이 아는 온도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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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선 박진희 부부./서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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