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을 즐기며 이팝꽃길을 달리다

봄이 되면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도 맑고 따듯한 바깥 날씨를 보고는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어디로든 달려나가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담배 끊기를 시도했을 때 온종일 담배 생각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 적당한 비유일지 모르겠다.

날이 풀리면 좀이 쑤시는 라이더들

그러니 주말에는 오죽하겠는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이미 몸은 달리기에 적당한 재킷과 바지를 입고, 부츠를 신고, 헬멧과 장갑을 들고 대문을 나서고 있다.

모터사이클을 타지 못하는 겨울 동안 "봄이 오면 질리도록 실컷 타야지" 하는 생각을 해왔는데 마침내 봄이 왔으니 당연히 실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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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가보지 못했던 밀양댐을 둘러보기로 했다.

창원에서 모터사이클을 타고 밀양댐으로 가려면 14번 국도를 타고 동읍을 거쳐 김해 진영읍까지 가서 25번 국도로 갈아타고 수산대교를 건너 밀양으로 건너간다. 여기서 두 갈래로 갈 수 있다. 하나는 삼랑진읍을 지나서 천태산을 넘고, 원동면에서 밀양댐으로 접근하는 길이 있다. 또 하나는 밀양시내를 관통해서 시청 앞을 지나 24번 국도로 갈아타고 밀양댐이 있는 단장면으로 가는 길이 있다.

양쪽 모두 달리기에는 좋다. 시청 앞을 지나 24번 국도를 타고 가는 길은 대체로 고속으로 이동하기에 적당하지만 풍경을 즐기기에는 삭막하다. 삼랑진읍에서 천태산을 넘어 양산시 원동면에서 배내골쪽으로 방향을 잡아 달리는 길은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달리기에 안성맞춤이다. 봄기운을 느끼고 새싹이 돋아나는 들판을 지나고, 잔물결이 이는 강을 건너고, 꼬부랑 고갯길을 따라 설렁설렁 달려가는 길은 여유롭다. 거기다 음악까지 곁들여지면 정말 기분이 좋다. 요즘 고급 모터사이클들은 자동차처럼 오디오가 기본으로 장착된 기종들이 있다. 그렇지 않은 기종들은 애프터마켓 제품을 장착하기도 하고, 휴대전화와 초단거리통신으로 연결되는 블루투스 제품을 헬멧에 장착해 음악을 듣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는 조심해야 한다. 음악을 듣느라 주의가 흐트러져 옆이나 뒤에서 접근하는 자동차를 제때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경적 소리를 못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우려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이팝꽃의 황홀감을 맞보며

밀양에서 언양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에서 내려 단장면사무소 소재지를 지나 밀양댐으로 이어지는 길은 왕복 2차로다. 약 5km 구간 이 길 양쪽에는 이팝나무가 서 있다. 나무에 쌀밥이 열린 것 같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이팝나무. 벚꽃은 3, 4월에 피고 이팝꽃은 5, 6월에 핀다. 기온 탓인지 이팝꽃의 하얀색이 벚꽃의 하얀색보다 더 선명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5월에 이 길을 달리면 마치 벚꽃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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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팝나무 길도 밀양댐과 관련이 있다. 밀양댐을 관리하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지원해서 심은 나무들이다.

밀양댐은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에 있다. 낙동강 지류인 단장천을 가로막아 쌓은 댐이다. 밀양댐은 1991년 11월에 공사를 시작해 2001년 12월에 준공됐다. 약 10년 동안 건설공사가 진행된 셈이다. 높이 89m, 길이 535m, 총 저수용량 7억 3600만 t 규모다. 밀양댐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밀양시와 양산시, 창녕군에 식수와 생활용수, 공업용수를 공급한다. 둘째는 홍수를 조절해 하류의 홍수 피해를 막는다. 셋째는 연간 700만 KWh 전력을 생산한다. 말 그대로 다목적댐이다.

댐 아래에서 보면 댐은 거대한 벽이 되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거대한 구조물을 보면 인간에 대한 경외감을 느낀다. 환경 파괴 여부는 논외로 하고, 불가능을 모르는 인간의 능력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댐 앞에 공원이 만들어져 있고, 왼쪽에 수문이 있다.

장마철이나 태풍이 왔을 때 등 강우량이 집중되는 시기에 때를 잘 맞춰가면 댐 방류 장면을 볼 수 있다. 예전에 이곳을 찾아갔을 때 운 좋게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80m 높이에서 수로를 타고 엄청난 양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오는 모습은 장관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다. 굉음에 가까운 물소리와 함께 굽이치는 물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넋을 놓게 된다.

공원 한쪽에 물 문화관이 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학습하기에 좋다. 물이 지구에서 어떻게 순환하는지, 물을 이용해 어떻게 전기를 생산하는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 세계의 댐과 밀양댐에 대한 이야기도 정리되어 있다.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만 문을 닫고 나머지는 문을 연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공원을 나와서 댐 옆으로 나 있는 길(1051번 지방도)을 따라 오르면 금세 댐 옆 전망대에 닿는다. 이곳에 서면 댐 바깥과 댐 안쪽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댐 안에는 시리도록 맑고 푸른 물이 차 있고, 댐 바깥은 조금 전에 둘러본 공원과 팬션 촌이 된 댐 아래 마을과 하류로 흘러가는 단장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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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1번 지방도를 따라 구불구불 댐 안쪽으로 달려가는 길은 재미가 있다. 모터사이클 라이더에게는 직선 도로보다 군데군데 굴곡이 있는 길이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아직 응달진 도로변에는 눈이 쌓여 있다. 여차하면 미끄러져 옹벽을 들이받거나, 반대편으로 떨어져 물속에 처박힐 수도 있다.

이런 길을 달리면 온 정신이 집중되고 몸도 팽팽하게 긴장된다. 나는 가끔 이런 느낌을 즐긴다. 딴생각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도로의 곡선과 노면의 굴곡을 온몸으로 읽고 그것을 핸들과 스로틀, 브레이크에 전달해 적절한 속력과 기울기로 앞으로 나아가야 죽지 않고, 혹은 다치지 않고 온전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어느 길을 택할지 인생은 선택의 연속

이 길을 따라 5분 정도 달리면 전망공원에 닿는다. 밀양댐에서 배내골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다. 밀양댐을 찾은 관광객들이 높은 곳에서 밀양댐을 조망하며 쉬어갈 수 있도록 해놓은 작은 공원이다. 간이화장실과 커피와 음료, 계란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노점상이 있다.

이 공원에는 망향비와 망향정이 있는데 밀양시에서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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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을 이롭게 하고자 댐을 건설하면, 반드시 그 과정에서 소수의 희생이 따른다. 바로 생활터전이 수몰되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다. 밀양댐이 건설되면서 단장면 고례리, 범도리, 양산시 원동면 대리 지역 일부가 수몰되거나 사업구역에 편입됐다. 댐 아래 물 문화관에서 가져온 책자에는 단장면 덕달, 죽촌, 사희마을과 양산시 원동면 고점마을 등 4개 마을, 95가구(297명)가 물에 잠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에 잠기지는 않았지만 공사지역에 편입돼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했던 가구까지 합치면 총 107가구, 338명이었다.

전망공원 망향정에서는 매년 추석 전후에 이주민과 밀양댐관리단이 망향제를 지낸다고 한다. 논밭 농사를 지어먹고 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정든 고향을 떠나 살다가 1년에 한 번, 이때 모두 모여서 예전 이웃사촌의 정을 나누는 것이다.

공원 의자에 앉아 햇살을 받으면서 배내골 쪽 풍경을 본다. 산에는 거뭇한 나무들 사이로 아직 녹지 않은 눈이 하얗게 깔렸지만, 진하늘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골짜기의 물과 오후 2시쯤의 햇볕에서 봄기운을 느낄 수 있다. 봄기운을 느끼는 동안 배내골쪽에서 달려온 스쿠터 한 대가 댐 입구 쪽으로 내려간다. 남녀 한 쌍이 타고 있다. 또 할리데이비슨 1대, 혼다 1대, BMW 1대가 달려와서 할리데이비슨과 혼다만 정차하고 BMW는 일행이 아닌 듯 그대로 달려간다. 할리데이비슨과 혼다를 타고 온 사람들은 이곳이 익숙한 듯 둘러보지도 않고 노점 천막으로 들어간다.

복귀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잠시 생각을 해야 했다. 배내골쪽으로 돌아나갈 것인지,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갈 것인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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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도로 사정이 좋은,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기로 했다.

전망공원에서 댐 입구까지는 전체적으로 내리막이다. 설렁설렁 내려가는 중에 한 굽이를 돌자 자동차 3대가 양방향으로 서 있고 도로에 깨진 차 부품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이 보였다. 차들은 모두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제법 부서져 있었다. 운전자들은 차를 그대로 둔 채 각자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곡선 지점이어서 뒤따르던 자동차들이 과속을 하게 되면 사고로 서 있는 차를 미처 보지 못하고 들이받아 2차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있었지만 운전자들은 차를 치우고 본인들도 길 밖으로 피할 생각은 없는 듯이 보였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어놓고 차를 치워도 되는데 말이다. 그래야, 2차 사고도 예방하고, 다른 운전자들의 불편도 줄일 수 있다.

사고 차 중 한대는 아까 전망공원에 있을 때, 왔다갔다하던 국산 스포츠카였다. 그 차의 운전자도 나처럼 봄기운에 취했을까?

앞으로 봄 동안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방방곡곡에 다녀야 할 텐데 봄기운에 취하더라도 운전은 제대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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