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안전 기원하며 라이딩 시즌 시작을 알리다  

항상 모터사이클을 타고 투어를 떠나기 전날은 잠을 설친다.

초등학교 때, 다음 날이 소풍날이거나 운동회날이면 전날 밤은 설렘을 가득 안고 일찍 잠자리에 들지만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늦게 잠들고, 아침에는 늦잠을 자 허둥댔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 모터사이클 투어가 있는 날에도 이 증상은 언제나 나타났다. 한 해 동안 적어도 20회 이상 여행을 하는 데도 이 증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만큼 모터사이클 투어는 사람을 설레게 하는 마력이 있는 모양이다.

그날도 새벽 3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아침에 6시 30분에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해야 했지만 1시간이나 늦게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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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BMW 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1년에 두어 번 있다. 그중 하나가 '시즌 오프닝 데이' 행사다. 시즌 오프닝 데이 행사는 겨울 혹한에 움츠렸던 라이더들이 봄을 맞아 라이딩을 다시 시작하는 시기에 한 해 동안 안전을 기원하고 라이딩 시즌 시작을 알리는 행사다.

이 행사에는 해마다 전국에서 700~1000대의 BMW 모터사이클이 모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 행사는 경북 상주시 낙동강변의 경천섬공원에서 열렸다. 행사 참가는 사전에 각 딜러점에 신청을 해야 한다. 사전 신청을 하지 않아도 행사장에 가볼 수는 있다. 그러나 사전 참가 신청을 해야 행사장에서 기념품과 추첨권도 받고 식사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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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마자 후다닥 움직였다. 세수하고 면도하고 머리감고, 옷을 챙겨 입는 데만 30분 가까이 걸린다.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집을 나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다. 행사에 같이 가기로 한 사람들과 창녕군 5번 국도변 화왕산휴게소에서 8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집에서 출발할 때 이미 8시였다. BMW의 1200CC 박서 엔진이 달린 모터사이클을 시동을 걸었다. 튜닝머플러를 통해 거친 배기음이 터져 나와 지하주차장을 왕왕 울린다. 주말 아침이라 고요하던 지하주차장에 박서 엔진 배기음이 가득 찬다. 모터사이클에 시동이 걸리면 항상 심장이 두근거린다. 마치 숨이 끊어져 가는 물고기에게 산소 가득한 맑은 물이 공급되기 시작한 것처럼.

모터사이클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장거리 여행을 하다 모터사이클에 문제가 생기면 낭패이기 때문에 눈으로라도 이상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집 근처 5번 국도에 오른다. 3월 하순이지만 아직 아침 공기가 쌀쌀하다. 그러나 추울 정도는 아니다. 속력을 내 약속장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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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 국도는 창원에서 대구 방향으로 마치 고속도로처럼 잘 뻗어 있다. 이런 도로도 자동차전용도로가 아닌데 마창대교, 창원터널, 창원대 위 정병산 관통도로, 진동~진전 우회도로 등은 도대체 왜 자동차전용도로로 지정해서 모터사이클 통행을 금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뼛속까지 박힌 자동차 중심의 사고방식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자동차보다는 모터사이클이, 모터사이클보다는 자전거가, 자전거보다는 보행자가 우선이어야 하고, 더 보호받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 그다음에 모터사이클이 현실이다. 자전거는 자전거전용도로도 있고, 자전거 주차장도 있지만 모터사이클에는 아무것도 없다. 차도 아닌 것이, 자전거도 아닌 것이 그냥 위험한 물건으로나 취급될 뿐이다.

 화왕산휴게소에 이미 일행이 도착해 있었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잠시 수다를 떤다. 원래 약속은 8시 30분 출발이었지만 커피 한 잔 하면서 수다 떨고, 주유하느라 9시가 되어서야 상주를 향해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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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대구 왜관을 지나 낙동강을 따라 북상한다. 군데군데 시내 구간을 지나야 하는 불편함을 제외하면 낙동강을 왼쪽에 끼고 북상하는 길은 참 아름답고 상쾌하다. 달리는 중에 어쩌다 고개를 넘게 되면 푸른 물결 낙동강과 그 옆으로 쭉 뻗어있는 대로, 그리고 막 봄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는 넓은 들판이 어우러져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달리다 보면 어느새 다른 무리의 모터사이클들이 빠른 속도로 뒤따라 온다. 바쁠 것이 없는 우리는 그들이 추월하기 좋도록 길을 내준다. 그들은 우리를 추월하면서 손 인사로 고맙다는 표시를 한다. 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들끼리의 일종 동료의식이다.

우리는 봄바람을 만끽하며 우리가 정한 속도로 달린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정표가 보이면 속도를 줄인다. 우리는 11시쯤에 행사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경천섬 공원 앞 주차장은 이미 절반 정도 차 있었다. 우리 뒤로도 계속해서 전국 각지의 번호판을 단 모터사이클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빈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주차장이 꽉 찼다. 사진을 찍으려고 길 건너편 언덕에 올라가 보니 주차장을 빼곡히 메운 모터사이클이 장관을 연출했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모터사이클이 모였을까? 그것도 같은 브랜드로만. 참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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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모토라드창원점 부스로 가서 참가 등록을 한다. 등록을 하는 것은 사전 참가 신청 명단에 서명하는 것이 전부다. 서명을 하고 나면 BMW로고가 박힌 기념품 모자와 행운추첨권, 그리고 종이 띠를 준다. 종이 띠는 팔목에 차야 한다. 그것이 식권이다. 잃어버리면 점심을 먹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곧 밥줄이요, 생명줄인 셈이다.

주차장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서울, 경기, 충청 등 다른 지역에 사는 블로그 이웃들이다. 비록 온라인 공간에서 만났지만 모두 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들이어서 친밀도가 높다. 만나면 형님 동생 하며 얼싸안고 반가워한다. 서로 안부를 묻고 기념촬영도 같이하고 나중에는 식사도 같이한다. 내가 만난 분들은 작년에 전남 구례에서 만나서 함께 식사하고 지리산 일주를 함께했던 분들이다. 이렇게 1년에 한두 번씩이라도 직접 보면서 교류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얼굴을 못 본 친구나 선후배보다 오히려 더 우애가 돈독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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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경천섬 공원 안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았다. 곧 행사가 시작됐다. 입담 좋은 사회자의 진행으로 행운권 추첨, 장기자랑이 이어진다. 경품은 상주의 지역특산물인 곶감을 비롯해 라이딩 장비가 주를 이룬다. 가방, 바지, 가죽재킷 등이다. 상당히 고가의 물품들이다 보니 모두 욕심을 낸다. 장기자랑에 나온 이들은 사력을 다한다. 그 과정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전국에서 모인 BMW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이 웃고 즐기는 것이 바로 이 행사의 목적이다. 지리산 이원규 시인이 한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시를 낭송한다. 그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모터사이클 라이더다. 참가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은 84세나 됐다. 그분에게는 주최 측에서 감사와 격려의 의미가 담긴 선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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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시간이었다. 1000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꺼번에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밥줄이었다. 우리 일행은 작년에 참가했던 경험을 살려 일찌감치 줄을 섰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준비된 식사는 설렁탕이었다. 바람을 맞으며 3시간을 달려왔고, 또 행사 진행 1시간 동안을 기다렸으니 어떤 음식이라도 맛있을 터였다. 말 그대로 '맛있는 식사'였다. 좋은 분들 만나서 낙동강 풍경을 앞에 두고 야외에서 하는 식사다. 어찌 맛있지 않을까?

식사가 끝나고 나면 모든 행사가 끝이다. 아쉽지만 서울, 경기, 충청에서 온 블로그 이웃과 작별 인사를 한다. 5월쯤에 지리산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창원에서 함께 간 우리 일행은 행사장 바로 옆에 있는 도남서원을 잠깐 둘러보고 귀가하기로 했다. 기록을 보면 도남서원은 정몽주, 정여창, 이황, 류성룡 등의 위패를 봉안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는 서원이다. 1606년(선조 39년)에 창건되었고, 1676년(숙종 2년)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액서원은 임금으로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받아 권위를 인증받은 서원을 말한다. 1871년 흥선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92년 일부가 재건되었다. 2002년부터 대규모의 복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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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에 들어가 봤더니 복원된 지 오래되지 않은 때문인지 세월의 무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본당에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주변 풍경은 기가 막히도록 좋았다. 서원 앞에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그 건너편에는 절벽을 이룬 낮은 산이 주위를 병풍처럼 싸고 있다. 그 멋진 풍경을 보면서 그 옛날 조정을 좌지우지하며 정쟁을 일삼았던 영남의 유림이 이곳에서 떵떵거리며 양반 노릇이나 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하니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 양반들이 서원에서 그리 생산적이지도 않은 갑론을박을 하고 있을 때 백성은 피폐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청빈의 표상이라고 알려진 조선시대 '양반'들, 그중에서도 높은 자리 벼슬까지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보면 엄청난 토지와 수백 명씩의 노비를 거느린 '거부'들이었다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선비'는 허상인 셈이다. 도남서원을 나온 우리는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도착하려고 서둘러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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