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지리산]전쟁과 빨치산 흔적들

근현대사 속 지리산 이야기에서 빨치산을 빼놓을 수 없다.

지리산은 은신처가 필요했던 빨치산에게 그 품을 내주었다.

지리산 대원사(산청군 삼장면) 계곡.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남한땅 최고 탁족처로 꼽았다. 발 담그고 더위 날리기 좋은 무릉도원인 곳이다.

불과 50~60년 전에는 죽음의 공간이었다.

빨치산·국군 할 것 없이 이곳에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도 '골로 갔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널찍한 터를 안고 있어 빨치산 야전병원으로 활용되기도 했던 벽송사 전경.

빨치산 토벌 작전이 마무리된 것은 1963년 11월 12일 새벽이다. 그 마지막 공간은 대원사 아래에 있는 내원사(산청군 삼장면) 계곡이다. 이곳에서 이일영 부대 소속이던 남자 이홍이(당시 30세)는 사살됐고, 여자 정순덕(당시 29세)은 총상을 입은 채 붙잡혔다.

'마지막 빨치산'이라 불리는 정순덕은 지리산 아래에서 나고 자랐다. 남편을 따라 지리산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12년간 빨치산으로 살았다. 고향 땅 인근 내원사계곡에서 붙잡혀 23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 2004년 세상을 떴다.

'남도부'라는 이름을 사용한 빨치산 사령관 하준수(1921~1955). 그는 일제강점기에 지리산 칠선골로 들어가 '보광당'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이에 '최초 빨치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오늘날 함양군 병곡면 도천마을에 그의 생가가 폐허로 남아 있다.

산청 지리산 빨치산 토벌전시관.

남강 발원지인 천왕샘으로 향하다 보면 법계사(산청군 시천면 중산리)라는 절을 만날 수 있다. 지리산 1400m에 자리하고 있다. 이 나라 사찰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산 속에 안겨 있으며 외부 조망도 가능한 이곳은 빨치산 지휘본부로 이용되기도 했다.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벽송사는 '한국 선불교 최고 종가'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널찍한 터를 안고 있어 빨치산 야전병원으로 사용된 이유를 짐작게 한다. 국군이 빨치산 소탕을 위해 불을 질러 모두 소실되기도 했다. 1960년대에 중건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산청군 삼장면 소막골은 오늘날 캠핑야영장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지리산 동부 통로라 할 수 있는 이곳은 빨치산이 가장 먼저 자리 잡은 공간이기도 하다.

대원사 계곡.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는 지리산 빨치산 토벌전시관이 있다. 빨치산 생활상을 재현해 놓기도 했다. 아픈 역사보다는 국군의 소탕 공에만 방점을 둔 것 같아 돌아서는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역사관도 빨치산 루트, 관련 인물 등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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