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본 사주 덕분에 인생이 완전히 변했지요"

"이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보통 인터뷰를 하러 가면 자신이 살아온 행적을 찾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기자에게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경석 대한노인회 창원시마산지회장은 달랐다. 자신의 삶을 얘기하기보다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노인회 창원시마산지회와 마산노인종합복지관에 대해서만 끝없이 늘어놓았다. 자기 자신을 알리는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버지가 봐온 사주 덕에 '열심히 살자'

마산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가는 건 예상보다 어려웠다. 보통 시 단위 복지관 정도면 길에 눈에 잘 띄는 곳에 있기 마련이다. 별생각 없이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고 갔다가 주변을 2바퀴나 돌고서야 복지관을 찾을 수 있었다. 길에서는 다른 건물에 가려 복지관이 보이질 않았고, 골목으로 한 블록 쏙 들어가야 복지관이 보였다. 뭐랄까. 조금 애매한 위치에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최경석(73) 대한노인회 창원시마산지회장(사람들은 보통 마산노인회장이라 부른다)은 남해군 남해읍 북변리에서 태어났다. 남해와 진주에 공부하다 형편이 어려워 군대에 다녀온 후 농협에서 가축인공수정사로 5년 반 일했다.

01.jpg
최경석 대한노인회창원시마산지회장./임종금 기자

-제가 듣기로 뭔가 하시면 무조건 열심히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러셨나요?

"우리 집안이 9남매입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저에게 하시는 말이 '니가 형제 중에 사주가 제일 안 좋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때는 사주를 많이 믿을 땝니다. 저는 속으로 큰일났다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니는 사주가 안 좋아서 남보다 배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재단사나 이발사 같은 안정적인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시 시골에 나무를 하고 내려오면 우체부가 보이는데 그게 참 하고 싶었습니다. 어쨌든 사주가 그렇다니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어릴 때부터 좀 있었나 봅니다."

그는 군대에서도 돈을 벌어 집에 가져올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뜻밖의 곳에서 돈을 벌 기회를 얻었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접촉성 피부염을 앓아 오셨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30대부터 머리가 하얗게 세셨습니다. 그래서 염색을 하지 않겠습니까? 염색을 했는데, 당시 염색약이 굉장히 독했습니다. 염색약 때문에 접촉성 피부염이 생겼는데, 완전히 옻나무같이 피부가 엉망이 돼 가지고 온몸에 진물도 흐르고 그랬습니다. 제가 농협중앙회에서 교육을 받고 오니까 밤에 잠을 못 주무시고 계시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그래, 약을 구해보자' 싶어서 약을 구하다 보니 부산에 어느 피부병 전문 약국이 있는데 거기서 산 약을 바르니까 낫고 잠도 주무시는 겁니다. 야, 이거 신기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피부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피부병 전문 약국을 해보자 결심했습니다."

-회장님이 약사는 아니신 걸로 아는데요.

"지금이야 안 되지만 제가 약국을 경영하고 약사를 들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1975년 무렵인데 당시에도 피부병 전문 약국 체인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사람이 참조은 화장품 사장입니다. 내가 약국을 해야겠다고 하니까 사장이 '당신 약사도 아닌데 괜찮겠냐'고 묻는 겁니다. 제가 '이 약이 하도 신기해서 해야겠습니다'라고 밀어붙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지금 마산합포구 동성동에 있는 유명한 미보약국이다. 친척이 약사를 데리고 와서 약국을 함께 운영하면서 돈을 제법 벌었다.

"제가 MBC에 광고도 많이 했습니다. 미보약국 하면 피부병으로 유명합니다. 부산, 서울, 강원도, 전라도 전국에서 약 사러 옵니다. 우리 조카들도 제가 약사로 키웠고, 딸도 약사로 키웠습니다. 약사라는 직업은 라이센스를 갖고 있으면 평생 할 수 있고, 봉사할 수 있는 좋은 직업입니다. 조카들이나 딸들이 '약사 되길 잘했다'고 해서 보람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기반을 잡자 그는 사회활동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남들과는 정말 달랐다.

뭐든지 1등

사실 그렇다. 사회단체를 하면서 무슨 위원이니 위원장이니 부회장이니 회장이니 맡는다고 해서 거기에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이는 거의 없다. 자기 본업이 있기 때문이다. 그저 지역 인사끼리 친목을 다지거나 봉사한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전혀 달랐다. 28년 동안 사회활동하면서 뭐든지 열심히 했다.

민족통일마산시협의회장을 하면서 전국 1위, 마산경찰서 청소년선도협의회장 하면서 역시 전국 1위, 민족통일 경상남도협의회장 하면서 광역단위협의회 중 1위 등 최선을 다해서 사회단체 활동을 했다. 덕분에 국민훈장, 국민포장, 장관상 등 온갖 상을 수상했다. 노인회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우수 지회 연속 선정, 전국 게이트볼 대회 개최 등 조금도 쉬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1위를 한다고 해서 큰 이득이 생기는 것도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하신 겁니까?

"그게 천성 같습니다. 뭔가 하나 하면 최선을 다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게 아무래도 아버지가 사주 봐 오셨을 때부터 '사주가 안 좋으니 남들보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게 몸과 마음에 배인 것 같습니다."

-사회활동을 이렇게 많이 하니 정치권에서 제안은 없던가요?

"제 친구 중에서 교수도 있고, 경찰서장도 있고 잘된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 그분들이 정치를 해보라고 솔직히 좀 권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사람이 안된다고 딱 거절했습니다. 사회활동이야 그냥 봉사라 생각하고 하지만, 정치는 우리가 뭐가 잘났다고 하느냐. 반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집사람 의견을 따랐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면 우리 사회는 좋겠습니다만, 직원들은 힘들어 하지 않나요?

"힘들어합니다. 저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캐묻습니다. 또 일도 벌이니까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여기 노인회 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젠 조금 수월해졌을 겁니다. 저도 일을 어지간히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직원들에게 좀 힘들더라도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서 하는 일 아니지 않느냐. 불쌍한 노인들과 어르신들 위해서 하는 일이다'며 이해해 주길 바랬습니다."

03.jpg
경로당 방문./대한노인회 창원시마산지회 제공
05.jpg
경로당 방문./대한노인회 창원시마산지회 제공

-그럼 지금 마산노인회장은 어떻게 하시게 된 겁니까?

"제가 탁구를 조금 칩니다. 30대부터 운동을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탁구가 딱 저에게 맞는 전천후 운동 같았습니다. 그래 탁구를 오래 쳐오다가 여기 마산노인종합복지관에 탁구장이 생긴다고 해서 와 봤는데, 사람은 많고 탁구장은 좁아 서로 탁구 치겠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탁구 치려고 노인들끼리 싸우는 겁니다. 창원이나 김해는 안 이렇거든요. 안 되겠다. 탁구장을 키워야겠다. 탁구장을 키우려니 복지관이 너무 좁은 겁니다. 그래 복지관 얘기를 하려니 '노인회와 관련도 없는 사람이 그런 얘길 하면 이상하다. 차라리 네가 출마해봐라'고 주변에서 권했습니다. 7명이 출마했는데 제가 당선이 돼서 노인회장이 됐습니다."

마산노인종합복지관, 너무 협소

그는 인터뷰 중 거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마산노인종합복지관과 마산지역 노인복지 현황에 대해 얘기를 했다.

"사회활동 하면서 김태호 전 도지사나 황철곤 전 마산시장과 안면이 좀 있습니다. 노인회장 되기 전에도 마산노인종합복지관이 너무 좁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김태호 전 지사께서 200억 원을 지원해주겠다. 대신 이게 예산 낭비가 되면 안 된다. 잘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황철곤 전 시장도 결재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0년 통합창원시장 선거에 황철곤 전 시장이 출마하는 바람에 애매하게 있다가 시청 부시장과 간부들이 유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마산지역이 노인 인구가 제법 되는 것 같은데 얼마나 됩니까?

"합포구에 2만 6397명, 회원구에 2만 2359명 해서 도합 5만 명가량 됩니다. 옛 마산지역 인구가 40만이 안 되는데 말입니다. 창원 성산구는 1만 1285명, 의창구는 2만 910명, 진해구는 1만 8547명입니다. 왜 마산이 노인 인구가 많으냐? 물가가 싸고, 집값이 싸고, 공기도 좋기 때문입니다. 창원시 안에서는 노인들이 마산지역으로 몰릴 수밖에 없고, 앞으로 노인 인구는 계속 늘어날 겁니다. 그런데도 말입니다. 면적이나 시설규모가 창원지역에 비해 훨씬 못 미칩니다. 우리(마산노인종합복지관)은 대지가 1000평이 될까 말까 합니다. 의창노인종합복지관은 근 3000평 가까이 됩니다. 노인 인구가 1만 1285명인 성산노인종합복지관은 근 5000평 가까이 됩니다. 프로그램 수나 종사자 수도 적습니다. 2007년 마산노인종합복지관이 오픈할 때 하루에 700~800명씩 찾아왔습니다. 좁은 복지관이 미어터지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400~500명가량 찾아오십니다."

08.jpg
마산노인종합복지관 전경./임종금 기자

사실 한 눈에 봐도 마산노인종합복지관은 좁았다. 노인들은 거동이 불편한데도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층수를 올렸다. 좁은 복지관에 노인회 말고 다른 단체 사무실도 많았다. 더 중요한 건 옛 창원지역에는 이런 시설이 2개가 있고, 옛 마산지역에는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 새로 지어야 합니까?

"하나 새로 짓는다면 좋겠지만, 그럴 돈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또 새로 짓겠다고 공무원들이 생각하는 곳은 교통이 불편한 곳입니다. 노인들은 젊은 사람과 달라서 버스 타고 다닙니다. 버스가 많이 서는 곳에 지어야 합니다. 여기 마산노인종합복지관은 입지적으로는 괜찮습니다. 교통의 요지기 때문입니다. 어디 버스도 안 다니는 곳에 아무리 잘 지어놔야 헛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마산노인종합복지관이라도 조금 넓히면 안 되겠나 하는 것입니다."

07.jpg
마산서 개최한 전국게이트볼 대회 모습./대한노인회 창원시마산지회 제공

-확장이나 증축도 돈이 들지 않습니까?

"돈이 들죠. 저희도 무리한 요구를 안 하려 합니다. 헌데 납득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대지가 좁기 때문에 대지를 확보하라고 2013년 말에 확보한 예산이 있습니다. 5억 700만 원 정돈데 아직 이를 집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도 넘기면 이 예산은 불용예산이 돼 영영 사라지는 예산입니다. 5억 700만 원으로 크게 대지를 넓힐 수는 없지만, 일단 한 필지라도 매입을 하고, 나중에 또 돈 생기면 추가로 매입하고, 또 돈이 좀 생기면 증축도 하고 이렇게 멀리 보고 갈 수 있는데, 이 돈을 불용예산 처리해 버리면 앞으로는 다시는 예산이 안 나옵니다. 왜 이 돈을 집행 안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윤한홍 경남도 부지사님은 '대지만 확보해 놓으면 증축비용은 도에서 어떻게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넋 놓고 있는 게 정말 답답합니다."

06.jpg
노노케어 가정방문./대한노인회 창원시마산지회 제공

점잖던 말투가 복지관 얘기로 흐르면서 분개하는 말투로 바뀌고 있었다. 왜 이렇게 행정을 하는 지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노노케어 사업으로 전국에서 최우수 노인지회로 인정받으셨다는데, 이게 무슨 사업입니까?

"노인이 노인을 보살핀다는 개념입니다. 노인 중에서도 건강한 노인이 불편한 노인을 돕는 겁니다. 우리 지회에서는 200명 수혜자를 선정하고, 200명 봉사자를 지정했습니다. 제가 수혜자로 지정되신 분들 집을 모두 방문해봤습니다.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집이 누추하고 불편하고 몸이 더럽다고 대화를 안 하시려 하고 감추려고 하시고 피하십니다. 제가 '이런 실정을 알기 위해서 왔습니다'고 달래고 달래도 부끄럽다고 숨기십니다. 아픈 게 수치가 아닌데, 자식들이 돌보지 못하는 건 사는 게 힘들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이걸 무슨 죄처럼 생각하십니다."

04.jpg
병원과 협약 모습./대한노인회 창원시마산지회 제공

-노인회장을 하시면서 또 신경 쓰는 분야는 뭐가 있습니까?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많이 편찮으시니까 병원과 업무협약을 해서 다만 10%라도 할인이 된 가격에 치료를 받고 수술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군데 협약을 했습니다. 물론 정말 형편이 어려우신 분은 제가 병원장과 얘기해서 더 할인을 하거나 비용을 안 받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일 제 마음이 처절할 때는 어르신들이 리어카를 끌고 종이를 주우러 다니시는 모습입니다. 그거 정말 몇 푼 안 됩니다. 다행히 한 건설업자가 돈을 좀 줘서 종이값을 2배로 쳐 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복지관 문제입니다."

그는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마산노인종합복지관 문제에서 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거기에 깊이 절망하고 분노하고 있었다. '앞으로 마산 노인 인구는 더 늘 건데, 어쩌려고 이러나' 들릴 듯 말 듯 한 그의 맥 빠진 중얼거림이 두고두고 남았다.

02.jpg
최경석 대한노인회창원시마산지회장./임종금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