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굶어 죽을지언정 손님들에게 정직하겠습니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평생을 춥게 살지만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조선 중기의 문인이었던 신흠의 책 '야언'에서 나오는 글이다. 주변의 상황이 어렵더라도 '향기'를 지켜나가겠다는 이 문구를 커다랗게 걸어놓은 한 고기집. 이곳에서 지키고 싶은 향기란 무엇일까.

뿌린 대로 거두는 장사에 매력 느껴

인터뷰이를 정하지 못해 헤매고 있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조선고기'에 한 번 가보라는 말이 나왔다. 어디 있는 곳이냐고 물으니 회사 바로 맞은편, 산호동에 있는 곳이라고 한다. 드물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많지도 않은 연탄구이 고기집. 한동안 고기를 먹지 않아서일까, 인터뷰에 앞서 사전조사를 하는 와중에 뱃속에 기름칠 좀 하라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머릿속에 고기 생각이 가득한 채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만나게 된 조선구이 사장 황윤석(32) 씨. 상당히 젊다는 것과 동안이라는 데 놀랐다.

마산 토박이인 그는 마산제일고와 경남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밑에서 누나와 함께 자랐는데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2년 전에 결혼한 아내와 아들과 함께,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조선고기는 2012년 9월에 오픈했다. 결혼 한 해 전이다. 조선고기 이전에도 당구장과 바(bar), 닭집을 운영했던 그는 어렸을 때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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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석 조선고기 사장./이종현 기자

-무척 빨리 창업전선에 뛰어드셨는데요. 창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롤모델로 삼고 있는 형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19살부터 홀 서빙이나 청소 같은 걸 하면서 일을 배웠어요. 그때 일을 가르쳐주신 형님을 롤모델로 삼고 주위를 둘러보니 창업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어떤 부분에서 끌리셨나요?

"제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을 하더라도 누군가의 밑에서 일한다면 일정 이상의 성과를 거두진 못 하는데, 직접 가게를 운영하면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나온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성과가 없다면 제 노력이 부족했던 거니 더 열심히 하면 되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느낌이죠."

-도움을 주셨다는 분이 직접적으로 권유를 하시거나 한 건 아니네요?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장삿길로 들어선 계기를 마련하신 분이죠. 형님 밑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홀 서빙이나 청소 같은 기초적인 것과 손님들을 접대하는 방법, 그리고 요리까지 배웠죠. 물론 처음에는 주방에 못 들어가고 홀에서 서빙하고 청소하는 일만 했었죠. 그러다 제가 먼저 배우고 싶다고 말을 꺼내니까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게 되고, 그러다가 채소 다듬는 법을 배우고, 나중에는 요리까지 가르쳐주셨습니다. 보통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은 3개월 정도 하는 편인데 제가 좀 오랫동안 일을 했거든요."

무일푼에서 시작한 첫 가게

-조선고기 이전에 가게를 운영하셨다고요?

"예. 2009년에 당구장을 오픈했었습니다. 저의 첫 출발이라고 할 수 있죠. 그 당시에 당구가 많이 유행했었어요. 보통 유행은 10년에 한 번씩 온다고들 하는데, 한때 시들었던 당구의 인기가 그때 살아나더라고요. 너도나도 다 당구를 치니까 당구장을 운영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오픈하게 됐습니다. 얼마나 인기가 많았냐면 당구용품을 구하기도 힘들 정도였어요. 워낙 수요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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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고기' 입구.

-당구장을 개업하려면 돈이 상당히 많이 들었을 텐데요?

"전부 빌려서 오픈했죠. 저는 한 푼도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가난한 저희 집안에 손을 벌릴 수도 없었고요. 그리고 부모님은 제가 당구장을 차린다고 하니까 많이 안 좋아하셨어요. 나이가 있으신 분들에게 '당구'는 무척 부정적인 이미지잖아요? 깡패 조폭 뭐 이런…. 그런 선입견 때문에 싫어하셨는데 거기에 전부 빚을 내서 한다니까 반대가 거셌죠."

-빌린다고 하더라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힘들었죠. 가게를 계약하고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업자를 부를 수가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제가 해머를 들고 다 부쉈죠. 철거하는 데만 5일이 걸렸어요. 전기공사도 인력회사 사람 한 명만 불러서 같이 했습니다. 어찌어찌 인테리어를 마쳤지만 아버지는 끝내 인정을 안 해주시더라고요. 어머니만 모셔놓고 '이기 내 가게다. 앞으로 잘해볼게, 지켜봐도'라고 했습니다."

-이후 바와 닭집도 운영하셨는데, 이때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당구장이 상당히 잘 돼서 이 수익으로 준비했습니다. 당구장을 차릴 때 빌린 돈도 갚고요."

-바를 차리게 된 동기는 뭔가요?

"당구장을 찾으시는 손님들은 시시콜콜한 내기를 많이 하시는데요. 간단하게 게임 비용부터 밥값 내기, 술값 내기 등등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저희 가게를 찾으시는 분들은 술값 내기를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당구장 근처에 바가 없다 보니, 저희 가게에서 당구를 치시고 멀리 이동해서 술을 드셨습니다. 이때 당구장 인근에 바를 운영해도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흠잡을 데 없는, 당당한 남편이 되고 싶었습니다

-잘되던 당구장이나 바, 닭집을 정리하고 고깃집을 차리셨는데요.

"사업장을 정리한 건 아내와의 결혼 때문입니다. 2013년에 결혼을 했는데 그전부터 결혼하리라는 생각은 했었죠. 그런데 제가 하는 사업들을 처갓집에서 안 좋게 봤어요. 그래서 처가 어른들에게도 당당한 일을 하자는 생각에 사업들을 정리했습니다. 물론 당구장, 바 같은 일들이 당당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아무래도 어른들이 보기엔 아니니까…."

-요식업은 경쟁이 심하다고들 하던데요. 그런 우려는 없었나요?

"처음에는 그런 걱정이 전혀 없었어요. 조선고기를 오픈할 때만 하더라도 근처에 고깃집이 별로 없었거든요. 당구장, 바 같은 건 아무나 차릴 수 있지만 고깃집은 기술이 필요한 업종이라 쉽사리 차릴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고기를 다듬을 줄도 알아야 하고, 음식 솜씨도 있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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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고기의 상차림. /이종현 기자

-하지만 산호동 인근에 고기집이 무척 많은데요?

"조선고기를 오픈하고 나니 고깃집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더라고요. 매해 서너 곳 정도는 생기는 것 같아요. 만약 제가 가게를 준비할 때 이런 상황이었다면 고깃집이 아니라 다른 업종을 선택했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포기할 수는 없으니 제가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을 키울 생각입니다."

-조선고기라는 상호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처음 상호를 정할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상호뿐만이 아니라 가게에서 팔 세트메뉴 이름도 같이 궁리했거든요. 다른 가게들도 세트메뉴가 많은데 한 판, 두 판 같은 이름은 식상하고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쉽사리 기억할 수 있고 어감도 좋은 걸 생각하다가 다들 알만한 단군, 세종, 고종을 떠올렸습니다. 이 메뉴를 토대로 상호를 조선고기로 한 거죠."

-여러 왕들 중에서도 단군, 세종, 고종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단군세트에는 모든 메뉴가 다 들어가 있어요. 단군이 우리나라의 기원이라고 하니까 단군세트에는 모두 포함시키는 거죠. 그리고 세종세트에는 특수 부위의 고기만 넣었어요. 갈매기살, 항정살, 가브리살. 세종대왕은 업적이 많은 왕이잖아요. 그리고 고종세트에는 양념 고기밖에 없습니다. 고종황제를 욕하는 건 아니지만 마지막 왕이니…. 단군으로 시작해서 고종으로 끝낸다는 식이죠."

연탄과 녹차

-조선고기는 연탄구이 가게죠?

"그렇죠. 창업하기 전에 여러 고깃집들을 다녔어요. 타 지역까지 원정을 가기도 했었죠. 참숯, 번개탄, 연탄, 백탄 등 다양한 곳들을 봤습니다. 그중 연탄으로 굽는 고기에 잡내가 없고 향이 좋더라고요. 그런데 연탄으로 결정했더니 문제가 생겼어요. 제가 연탄 세대가 아니니까 연탄을 잘 못쓰는 거예요. 불을 자꾸 꺼트리고. 어머니께 여쭤봤는데 이거를 잘 모르시고요."

-저도 연탄을 써본 적은 없는데…. 많이 어려운가요?

"막막했어요. 연탄불을 한 번 죽이면, 살리는 게 너무 어려웠거든요. 처음에는 이까짓 거 가스렌지 위에 올려두면 알아서 불붙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온종일 불을 켜놔도 안 붙습니다. 이제야 노하우가 생겨서 1년 내내 불을 안 꺼트리고 잘해요."

-고기는 녹차를 먹여 키운 돼지, 보성녹돈을 쓴다고요?

"맞습니다. 보성녹돈 특유의 장점이 있거든요. 원래 고기는 비계가 많은 부분이 부드러워요. 그래서 목살이나 삼겹살처럼 비계가 적은 부분은 터벅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녹돈은 고기가 많이 부드럽고 마블링도 잘되어있어서 식감이 좋아요."

-일반 고기보다 가격이 비싸다고 들었습니다.

"단가가 높은 편이죠.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비싼 고기를 쓰다 보니 마진이 거의 안 남았었거든요. 그렇다고 가격을 높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거기에 일반인들은 다른 고기나 녹돈이나 차이를 모르시는 분들도 많아요. 대부분 수입산이냐, 국내산이냐만 보시거든요. 그래도 이왕 먹는 거라면 좋은 고기를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고기를 들인다거나 작업하는 건 제가 직접 할 수 있으니, 이런 쪽으로 가격 손실을 줄이면 마진이 조금은 남거든요."

옛 향수를 자극하는 달고나

-쪽자라고 하던가요. 이거 어릴 때 많이 했는데….

"오리떼기, 쪽자, 달고나, 뽑기…. 부르는 방법이 제각각이더라고요. 일단 저는 오리떼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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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 바뀌기 전의 조선고기 뽑기판. /이종현 기자

-좋은 아이템인데, 사장님의 아이디어인가요?

"예. 저희 가게가 연탄을 사용하잖아요. 숯은 한 테이블을 받고 난 뒤 버려야하는데 연탄은 불 조절만 잘하면 온종일 쓸 수 있거든요. 그런데 여름에 연탄을 다 살려놓았더니 가게가 엄청 덥더라고요. 그렇다고 이걸 밖에 빼놓기도 애매하고…. 어떻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연탄을 바깥에 내서 손님들이 오리떼기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습니다."

-뽑기판도 있던데요?

"찾으시는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드리자는 차원에서 마련했어요. 추억거리이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초등학교 문방구에서 먹던 쫀디기나 아폴로 같은 군것질거리를 상품으로 준비했어요. 그런데 이런 식품들은 '불량식품'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보니 아이랑 함께 온 부모님들이 별로 안 좋아하시더라고요. 아기들이 자꾸 먹으려고 하고. 그래서 상품을 바꿨어요."

가맹점의 꿈, 프랜차이즈로 확대

-앞으로의 계획은 있으신가요?

"우선은 조선고기를 조금 더 안정시키고 싶네요. 매출이 올랐다싶으면 인근에 새 고기집이 생겨서 다시 매출이 떨어지는… 이런 일의 반복이거든요."

-안정된다면 그 이후에는?

"가맹점을 내 볼 생각입니다. 처음 조선고기를 오픈하면서부터 프랜차이즈를 염두에 뒀어요. 여태까지 몇몇 분들이 프랜차이즈 문의를 하셨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는 생각에 거절했었어요.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직원들을 많이 만들고 싶은 것도 욕심이네요. 같이 일하는 친구 중 정말 괜찮다 싶은 친구가 있으면 가게를 맡기거나 할 생각도 있고요. 사실 지금도 닭집 하나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저희 가게에서 오랫동안 일한 친구가 닭집을 해보고 싶다기에 차렸습니다. 운영은 그 친구가 맡아서 하고 있고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젊으니까, 할 수 있는 걸 해나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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