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40대 남자

경남도민일보가 두 번 개최한 '독자와 기자의 만남'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달 주인공은 장진석(42)이라는 독자다. 그는 두 번째 행사 때 뒤풀이 자리까지 함께하면서 재치있는 입담으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인터뷰 요청 때도 망설임 없이 단번에 승낙했다. 사실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일단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에 있는 마을 작은도서관이었다.

수많은 일 가운데 본업은?

도서관을 혼자 지키고 있던 장진석 씨가 내민 명함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좋아하는 일: 아동문학가/수필가/시인/영어번역/작은도서관 다미 운영/공모전/기자 활동'

'잘하는 일: 학교·기관·기업 강의/영어 강의/창의 독서 요약/브레인 트레이너 외 다수'

'해야 하는 일: 경상남도인재육성개발원/국민독서인재개발원/마산문인협회/경남아동문학회/서정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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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석 씨./남석형 기자

현재 진석 씨가 하는 일들이다. '이 사람 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진석 씨는 하나하나 설명했다. 듣고 보니 많은 것이 연관해 있었다. 그 중심은 학원 영어강사라 할 만하다.

"30대 초반부터 영어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직접 학원을 운영하기도 했고요. 지금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경제적 측면에서 본업인 셈이죠."

진석 씨는 영어 번역 부분에서 국어를 제대로 알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3년 전 아동문학가로 등단까지 했다. 수필과 시도 틈틈이 쓴다.

그리고 읽은 책을 A4 한 장 분량에 담는 '독서 요약'에도 관심이 많아 (사)국민독서인재개발원 창원지부 일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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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 다미에서./남석형 기자

'다미'라는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는 것도 뜬금없지 않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국·영·수 문제가 아니라 문화·체험·독서가 필요하다는 걸 말이죠. 학원 내에서 하려니 법적인 제약이 따르더군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작은도서관 형태로 해서 올 2월에 개관했습니다. 단지 그것만은 아닙니다. 마산 합성동이 옛 상권으로 전락하면서 젊은층이 많이 떠났습니다. 제가 여기 살고 있기에 좋은 동네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도 있고요. 일반 도서관처럼 주로 인근 학교 아이들이 와서 이용합니다. 전부 개인 책들이라 수가 많지는 않습니다. 수익적인 측면에서 딜레마가 있기는 합니다. 문화프로그램 운영, 좀 자리 잡으면 후원금 같은 것을 기대하는 정도입니다."

진석 씨는 경남도청 등 여러 곳에서 블로그 기자로도 활동한다. 취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보다는 생활하면서 늘 쓸 거리를 찾는다.

이뿐만 아니라 교육청 주민참여예산위원, 교육부 행복교육모니터단 등 사회 활동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아이디어·사진 등 각종 공모전에도 응모하고, 토익·텝스·한자·번역사 등 시험을 재미삼아 치기도 한다. 상식 점검 차원에서 공무원시험을 쳤다고 할 정도다.

진석 씨도 자신을 '하고잡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그리 돈 되는 일들은 아닌 듯하다. 두 아들을 둔 40대 가장이기도 한 진석 씨는 이 지점에서 고민이 많은 듯했다.

"돈을 벌지는 못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도움을 얻어 2003년 창원 팔용동에서 종합학원을 운영했습니다. 선생님 6명, 홍보 직원 4명을 뒀습니다. 학원 시작할 즈음 밤 12시에 한 아이가 오락실에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500원만 달래요.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집까지 데려다줬죠. 판잣집에 치매 할머니, 장애인 어머니, 그 속에서 갓난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학원도 교육사업이잖아요. 어려운 아이들에게 수강료 없이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너무 막무가내로 하다가 결국 빚만 떠안은 채 정리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농협 공채 시험에 지원해 필기까지는 합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면접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결국 떨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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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석 씨./남석형 기자

30대 뒤늦은 공부…학원 선생님으로

진석 씨는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형들 손에서 자랐다. 개구쟁이였던 진석 씨는 일찍부터 품은 꿈이 있었다.

"중학교 때 한 영어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필기만 하시는 분이었어요. 학생들은 받아적기만 했죠. 그때는 몰랐는데요, 수학여행 때였습니다. 한 외국인이 다가오자 선생님이 유창하게 대화하더군요. 그때 감동해서 영어 선생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죠."

하지만 좀 지나서는 빠른 취직을 생각했다. 고교 진학 때 스스로는 상업고등학교를 염두에 뒀는데, 큰형이 인문계를 권하면서 창원중앙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사실 고1 때까지는 전교에서 손꼽히는 성적이었습니다. 도시에 온 촌놈이 한방에 훅 갔다고나 할까요? 2학년 때부터 친구들과 놀러 다니니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두어 달 그러고 나자 수업을 못 따라가겠더군요. 고3 때는 학교에서 애물단지가 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과목은 몰라도 영어책은 계속 붙잡고 있었습니다. 성적도 잘 나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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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석 씨 가족.

진석 씨는 당시 마산전문대학(현 마산대학교) 사무자동학과에 들어갔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이보다는 사업 쪽에 관심이 있었다.

"형님이 자판기사업을 했습니다. 고3 말에 아르바이트 삼아 자판기 영업을 좀 했습니다. 슈퍼마켓 같은 곳을 돌며 전단 보여주고 자판기 설치를 권유하는 식이었습니다. 처음 들어간 가게 아주머니가 '안 그래도 필요했다'면서 바로 계약했죠. 재미도 있고, 소질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1990년대 초·중반이었으니 자판기가 한창 들어설 때죠. 이게 노다지다 싶었습니다. 형님한테 물려받아서 이 사업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20대 초·중반 진석 씨는 장사·사업에 계속 시선을 뒀다. 하지만 시련이 닥쳤다고 한다.

"IMF가 터지면서 형님 사업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군대 다녀오니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된 거죠. 그때부터 오랫동안 떠돌아다녔습니다. 숙박업소에서 지내면서, 창녕 부곡에 있는 호텔서 아르바이트, 쌀장사, 자동차 보험영업 등을 했습니다. 그때 알게 됐습니다. 학창시절 공부하지 않으면 사회서 할 게 없다는 걸 말입니다."

그 후로는 학원 홍보 컨설팅 일에 발 들였다. 그것이 지금 영어강사의 시작점이 됐다.

"서른 넘어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놀았으니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자료 밤새 수집하고, 그것으로 부족해서 독서를 엄청나게 했습니다."

시간이 좀 걸렸고, 학교와 학원 차이라는 점이 있지만, 영어 선생님이라는 꿈을 이룬 셈이다.

장인·장모 모시기 위해 처가로

진석 씨가 이야기하는 사이에 아내 권영미(40) 씨가 마을도서관으로 찾아왔다. 아내는 진석 씨 옆에 앉아 이야기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들었다. 그러다 가끔 한마디씩 던졌다. "돈에는 관심 없는 사람이에요"도 그중 하나다. 결혼 후 지금까지 간호사인 아내가 경제적 부담을 안았기 때문인 듯, 진석 씨도 반박 없이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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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권영미 씨와 함께.

진석 씨는 8년 전부터 처가에 들어가 살고 있다. 이 대목에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 부모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모시러 들어간 거죠.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남편이 업고, 휠체어에 모시고 다녔어요. 딸인 저도 그렇게 못하는 걸 남편은 마음으로 하더군요. 결혼 전에는 부모님이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그때는 안정적인 직장도 없고 했으니까요. 지금은 어머니가 '우리 장 서방, 우리 장 서방'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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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부부는 한 단체에서 주는 '아름다운 가정상-효경 모범상'을 받기도 했다. 아내는 진석 씨 자랑을 좀 더 이어갔다.

"저는 아주 현실적이지만 남편은 이상을 좇는 사람인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게 많고, 또 그것을 하려고 하죠.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은 참 멋있어 보여요. 배우는 것도 많고요."

이런 아내가 있어 진석 씨는 계속 '하고잡이'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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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석 씨.

"동네문화 혹은 골목문화를 살려보고 싶습니다. 제 어릴 적 시골서는 동네 어르신 모여있는 자리에 아이들도 함께 앉아 이야기 듣고 그랬죠. 요즘 주민센터 내 문화공간 중에 비어 있는 곳이 많은데 그런 걸 활용해 동네 사랑방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돈을 좀 많이 벌고 싶어요. 그래서 잘 쓰고 싶습니다."

진석 씨는 공모전 상금을 종종 타기도 했는데, 그걸 쪼개서 필요로 하는 곳에 기부했다. '돈을 벌어서 잘 쓰고 싶다'는 말은 그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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