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에게 보내는 팬레

안녕하세요, 쿠엔틴 타란티노. 팬레터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쓰는 편지라, 게다가 받는 사람이 쿠엔틴 당신이라 어쩐지 떨리는군요.

작년 11월 당신이 했던 말 기억해요? 열 번째 작품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고 했던 그 말. 당신 말대로라면 이제 두 편이 남았네요. 올해 개봉될 '헤이트 풀 에이트(The Hateful Eight)'까지 계산하면 말이죠. 영화감독은 젊은 사람들의 일이다, 라고 당신은 덧붙였죠. 당신이 자주 쓰는 표현대로 하자면 그건 너무나 '쿨'했어요. 영화감독 쿠엔틴의 작품을 이제 몇 편 못 본다고 생각하니 물론 아쉬움이 가장 컸지만 한편으론 참 당신다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곰곰 떠올려 봤어요, 제가 좋아하는 당신의 작품들을. <펄프픽션> <재키 브라운> <황혼에서 새벽까지> <킬 빌>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장고 : 분노의 추적자>… 다 너무 사랑하는 작품들이죠.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저수지의 개들>이에요. 할리우드의 역사를 바꿔버린 당신의 데뷔작 말이에요.

<저수지의 개들>엔 프로 갱들이 나와요. 미스터 화이트, 블론드, 핑크, 오렌지, 브라운, 블루… 서로를 모르는 이 여섯 갱들은 보석을 훔치기 위해 모이게 되죠. 근데 이 계획은 반쯤 실패하고 말아요. 그들이 보석 가게를 털러 가자마자 경찰이 들이닥친 거예요. 브라운과 블루는 도망치는 과정에서 죽게 되고 오렌지는 총상을 입고 화이트, 블론드, 핑크는 살아남죠. 살아남은 이들은 아지트인 창고로 모여요. 그리고 결론을 내리죠. 내부에 첩자가 있었다고. 그러니 경찰이 그렇게 빨리 들이닥친 거라고요.

전 이 '수다쟁이' 갱들을 사랑해요. 이들은 정말 살아 있는 것 같거든요. 재잘재잘, 주절주절…쉴 새 없이 떠들죠. 성격들은 또 어찌나 특이한지. 이들은 사람을 예사로 죽이는 갱이지만 왠지… 뭐랄까… 그래요, 웃겨요. 미스터 화이트는 총을 맞고 다 죽어가는 미스터 오렌지에게 "난 괜찮다"고 계속 말해보라고 하질 않나, 미스터 핑크는 조직원들이 서로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순간까지도 그놈의 '프로페셔널' 타령을 하질 않나… 하여간 상황은 비장하고 심각한데 묘하게 웃기단 말이에요.

알다시피 이 영화, 정말 잔인하거든요. 몇몇 장면은 제대로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사실적이죠. 미스터 블론드가 1970년대 유행가에 맞춰 춤을 추는 그 장면이 특히 그래요. 블론드의 춤을 보며 킥킥거리는 찰나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폭력이 폭발해요. 모두가 잊고 있었던 미스터 오렌지가 극적으로 다시 사건에 개입하죠. 전 이 장면이 너무 좋아요. 끝내 나오지 않는 결정적 사건이 그 순간 아무 상관이 없어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버렸으니까요. 이건 굉장한 영화적 경험인 게 분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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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전 당신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가 다루는 폭력에 대해 생각했었어요. 당신의 영화 속 폭력을 문제 삼는 이들이 많았죠. 제가 앞서 언급한 저 장면을 통째로 들어낼 생각이 없냐고 묻는 사람까지 있었으니 말예요. 분명 당신의 영화는 폭력적이예요. 하지만 전 그게 불쾌감까지 준다고 해서 영화 속 폭력적인 장면을 싹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점에 대해선 당신도 같은 생각이더군요. '〈저수지의 개들〉같은 영화는 우리 사회의 폭력을 억제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에 당신은 이렇게 답했어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문제의 일부가 되는 건 아니죠. 전 그런 걱정 안 해요. 아니, 할 수가 없어요. 폭력은 저의 예술적 재능의 일부예요. 이런 제가 사회 문제나, 실제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온갖 일들을 걱정한다면 그건 자승자박하는 셈이에요. 소설가나 화가, 음악가도 이런 고민에서 자유롭잖아요. …중략… 제가 추구하는 폭력은 더 거칠고 더 사납고, 보는 이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어요. 슬슬 약을 올리기도 하고요. 언제 비디오 가게에 가시거든 공포영화나 액션/모험영화 코너에서 아무거나 골라 보세요. 십중팔구 제 영화보다 더 잔인한 폭력 장면이 담겨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 무엇보다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둬요. 진짜 인간에게 닥치는 사건을 다뤄요. 거기서 파문이 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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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말처럼 '그건 전체를 구성하는 일부이고 이 영화 전체를 감상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에요. 폭력 그 자체보다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가 또 중요한 것일테고요.

동시대를 살면서 당신의 신작을 기다리고 영화관을 찾고…그건 분명 설레는 경험이었어요. 정말 헤어질 때 전하는 인사는 왠지 서글퍼서 미리 인사할게요. 당신 덕분에 정말 즐겁고 행복했어요.

◇참고문헌 : 제럴드 피어리 엮음,〈쿠엔틴 타란티노-예술미와 현실미의 혼합〉,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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