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레 드럼 연주자에서 거침없는 기업인으로

"지금 그 말씀, 여과 없이 보도해도 됩니까?"

"아, 그럼요! 못할 말 했습니까?"

돌려 말할 줄을 모른다. 정곡을 찌른다. 그와 대화한 사람은 일단 속이 시원하다.

지난 6월 열린 '마산자유무역지역 발전전략 및 제도개선 방안' 세미나에서도 그랬다.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던 마산자유무역지역이 어쩌다가 이렇게 추해졌습니까? 50대가 성형수술(구조고도화 사업)한다고 20대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새 공장 아무리 지어도 지금과 같은 구닥다리 제도로 좋은 기업 유치하기 어렵습니다. 세미나라고 바쁜 사람들 불러서는 이미 보도된 뉴스 그대로 읽지 말고 기업인들이 정작 원하는 게 뭔지, 도와줄 방안은 뭔지 실질적인 이야기를 합시다."

68세 나이가 무색하게 목소리가 좌중을 압도한다. 마산자유무역지역 발전 방향 논의가 이뤄지는 어느 장소건 자리를 지키며 쓴소리를 마다지 않는 기업인이 있다.

창원 마산자유무역지역 내 본사를 둔 ㈜다린 김정수 회장을 만났다.

'할 말 하는' 마산자유무역지역의 터줏대감

"왜 외국인들이 투자를 안하냐고요? 노사분규로 이미지도 안 좋아진데다 인건비 부담, 거기에 국내 시장을 활용할 수 없는 한계 때문입니다. 마산자유무역지역은 원재료 반입은 관세를 유보하지만 국내 시판은 불리합니다. 만약 제품 하나에 부품이 열두 개가 들어가는데 열 개는 국내 부품, 두 개는 일본에서 수입한 부품으로 국내에서 제작한다고 칩시다. 국내 시판할 때는 완제품에 대한 관세가 붙습니다. 부가가치세까지 이중과세 아닙니까. 낡은 제도부터 개선해야 합니다."

1972년, 마산자유무역지역 한국캐니온에 입사해 43년 역사와 함께한 김 회장은 애착이 강한 만큼 마산자유무역지역에 관한 한 지적도 거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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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다린 회장./박일호 기자

한국캐니온은 1989년 노사분규가 일어나 1991년까지 극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결국, 한국캐니온이 철수하면서 부채가 많아 회사가 공중분해 될 상황이었다. 1991년 당시 한국캐니온 공장장이었던 김 회장은 노조 요구로 얼떨결에(?) 한국캐니온을 인수해 산수(주) 법인을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하게 된다. 경영의 'ㄱ' 자도 몰랐다는 김 회장은 이론보다 실제에 먼저 부딪히면서 회사를 일으켜 나간다. 저돌적인 성격은 2년 만에 부채를 털고 흑자로 돌아섰다.

"한국캐니온은 일본에서 부품을 가져와서 저임금으로 단순히 스프레이 제품 하나만 만들어 수출했습니다. 당시 마산자유무역지역은 외국인투자기업 수요가 상당했습니다. 외국인투자특수 지역으로 근로기준법도 여기만은 비켜갔습니다. 잠도 못 자게 하고 일을 시켰지요. 일자리가 마땅히 없던 시대라 종업원 100명 모집에 2000명이 몰려들었습니다. 시대가 변한 지금은 어떤 모습입니까? 이곳에 아직 R&D 센터가 없습니다. 기업은 신제품을 개발하고 그 제품을 직판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경쟁력이 있는데 여전히 본사 오더 받아서 제품 조립하는 곳입니다. 오더에 따라 채용도 달라지겠죠. 여전히 70년대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노키아와 같은 굵직한 외국투자기업이 마산자유무역지역에서 빠지는 것도 세계적인 경제 흐름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로 보고 있다.

"기업이 단순히 인건비 때문에 중국이나 베트남에 진출하는 게 아닙니다. 10만 원 받는 사람은 10만 원짜리 제품밖에 못 만듭니다. 100만 원 받는 사람이 100만 원짜리 제품 만들듯이 우리나라의 고용 질은 상당히 좋습니다. 100만 원 임금으로 1000만 원 이상의 가치 제품이 나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나라에 100만 원짜리 좋은 제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제품을 만들어 시장이 큰 중국에 가져가면 관세 등 세금으로 중국 생산보다 30% 이상의 제조원가 차이가 있습니다.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눈에 중국은 저임금 공장과 시장이 공존하는 곳으로 매력적인 곳임은 분명합니다."

그는 기업 투자는 포수의 총과 같다고 설명했다. 새가 오동나무에 있으면 총구는 오동나무로 향하고 새가 밤나무로 옮기면 총구가 밤나무로 향하듯이 기업은 시장을 찾아다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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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다린 회장./박일호 기자

3개월마다 신제품 출시, 오늘도 도전

엘라스틴, 미장센, 케라시스, 해피바스, 한방려, 리엔, 도브, 이니스프리, 뉴트로지나, 바셀린, 불스원, 설화수, 페리오치약 등 일상에서 우리가 씻고 바르는 제품 대부분이 ㈜다린이 제작하는 용기에 담겨 있다.

㈜다린은 지난해 9월 코넥스시장에 상장된 업체다. 현재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유니베라·애경·존슨앤드존슨 등에 세정제·화장품 용기 펌프캡을 납품하며 국내 점유율 92%를 차지하고 30여 개 국가에 수출하는 업계 선두업체다.

그 덕분인지 김 회장은 일 년에 절반은 해외 출장 중이다. 여전히 영업 일선에서 직접 뛰고 있다.

"우리는 기존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파는 것이기 때문에 거래처와 무릎을 맞대고 세일즈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A사가 탈모에 효과가 있는 샴푸 액을 개발한다 하면 우리는 소비자들이 쉽고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능성 용기를 디자인까지 기획합니다. 이렇게 3개월 단위로 신제품이 나오지 않으면 회사 미래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기술력이 무서운 속도록 향상되고 있는 중국에 주도권을 넘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쫓아가기 바빠질 겁니다."

㈜다린은 현재 160가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아낌없는 인력 투자, 발로 뛰는 세일즈도 큰 역할을 했지만 사업 초기 천운도 따랐다.

"1991년, 한국캐니온을 인수했을 때 국내 매출이 한 달에 10만 개, 2000만 원밖에 안 팔렸습니다. 캐니온 영업부서 근무 때 알고 있던 거래처를 찾아가 상황을 이야기하고 캐니온 본사 물량을 받아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주택 건설과 공급 확대를 위해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을 추진했는데 한국캐니온 인수 후 그 효과를 제대로 봤습니다."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은 1987년 대선 당시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선거공약이었다. 1989년 사상 초유의 건설붐이 전국을 휩쓸면서 91년부터 줄줄이 아파트 집들이가 시작됐다.

이전까지 집안에 따로 목욕실이 없어 사람들은 매일 샤워하거나 머리를 감는 것은 엄두를 못 냈다. 머리가 엉키고 자주 감지 못하니 여자도 단발머리가 많았다. 하지만 '1가구 1화장실'이 되면서 샴푸와 린스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신문이나 걸레로 '쓱쓱' 닦던 유리창 청소도 액상 스프레이가 나오면서 편리해졌다. 펌프캡과 스프레이는 당시 ㈜다린의 특허제품으로 독점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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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다린 회장./박일호 기자

"주문 물량이 쏟아지고 선금을 받아놓고 제품을 생산했습니다. 그때 관행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대기업이라도 선입금 하지 않으면 물건을 출하하지 않습니다. 갑과 을 관계가 아니지요. 간혹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유니베라·존슨앤드존슨은 유사업체로 경쟁이 치열한데 용기는 왜 하나같이 우리 제품을 사용하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당연합니다. 우리만큼 좋은 파트너가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제품을 값싸고 정확한 날짜에 납품하는 게 비결입니다."

파트 타임으로 입사해 본사 이사까지 역임

김 회장은 장사를 한 부모님 영향으로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과 소통을 좋아한다. 특유의 직설법은 오히려 사업에서 장점이 됐다. 김 회장은 19년간 일본 생활과 지금까지 134개국을 돌면서 국내 지인보다 국외 지인이 더 많다.

"지금 회사에 일본인 기술고문이 있는데, 제가 평직원일 때 한국캐니온 사장을 했던 분입니다. 일본인의 장점 같습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내가 굶어 죽으면 죽었지, 내 밑에 있던 사람 밑에 어떻게 들어가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아직 내 능력을 누군가 인정해 주는구나 하고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가식 없이 도움을 주는 지인이 세계에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능력과 성실성이 인정돼 제 학벌과 스펙이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김 회장이 애초부터 기업인이 되겠다고 꿈을 꾼 것은 아니었다. 주위 환경과 의지가 그를 업계 최고 기업의 회장으로 만들었다.

김 회장은 고교 졸업 후 진로를 예술대학으로 선택했다. 음악을 하며 예능인으로 살고 싶었다. 직업으로 카바레에서 드럼 연주를 하며 돈을 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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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다린 회장./박일호 기자

"즐기며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술 취한 사람들 장단 맞추는 밤무대 일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진로 고민에 예민한 22살이었고 현실을 피하고자 군대를 선택했는데, 군악대로 배치받아 밤무대 연주는 여전했지요. 강원도 최전방을 지원해 겨우 벗어났습니다. 군대에서 결혼하고 첫 딸을 낳고 제대를 했는데 아버지 사업 실패로 집도 없어진 상황이었어요. 가족 생계를 위해 한국캐니온에 파트타임으로 하역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 최악의 상황에서도 밤무대로 다시 돌아가기는 싫었어요."

기술이 없다 보니 배움이 절실했다. 26살 김 회장은 기초기계공학을 배우고자 마산공고 3학년 야간교육을 도강하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예술대 중퇴 학력이지만 미국 버클리 CEO과정 수료 등 4개 대학에 다니고 독학으로 필요한 분야는 모조리 자격증을 취득하기 시작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본사로 발령받아 이사까지 승진했다. 21년 동안 한 기업의 전 부서를 돌아다니며 쌓은 경험과 기술은 현재 사업의 큰 밑거름이 됐다.

연초 ㈜다린은 인천에 본사를 둔 선창산업과 손을 잡았다. 선창산업이 다린의 주식 80%를 취득·인수했다. '잘 나가는' 기업이 왜 경영권을 넘겼는지, 지역에서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김 회장은 하드웨어적인 펌프캡, 용기 회사에 머물지 않고 소프트웨어적인 바이오산업에 진출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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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다린 회장./박일호 기자

"이제는 먹고사는 걸 걱정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젊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삶을 누리는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런 산업에서 미래를 봤고요. 경쟁이 치열하다는 건 알지만 이때까지 제 인생이 그러했듯이 쉽다면 도전 안 했을 겁니다. 신체적 연령으로 10년은 경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새로운 도전에 열정을 쏟아 부을 계획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도전 정신이 없어 걱정입니다. 그리고 기업이 일자리 창출을 안 한다고 정부는 얘기하는데요. 지금은 일자리와 성장이 같이 가는 시대가 아닙니다. 기업은 가능한 사람 손을 줄이고 이익을 창출하는 시스템으로 가고 있습니다. 20~30년 전 기업지원 정책을 갖다대며 일자리를 창출하라고 하는데요. 결국 구인·구직의 미스매치가 문제 아닙니까. 대기업과 격차는 이렇게 벌려놓고, 중소기업은 뚜렷한 비전을 못 찾고 있는데 누가 중소기업에 취직하려 하고, 중소기업은 구직자의 눈높이에 어떻게 맞춥니까."

마지막까지도 틈을 주지 않고 정부 정책에 대한 쓴소리가 이어진다.

그는 '타고난 기업인'이다. 무릇 성공한 기업인은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혁신 정신, 남과 다른 생각을 하는 창의성을 동반한다. 여기에 불합리함을 어디서든 누구 앞이든 거침없이 제기하고 변화시키려는 정신까지 지녔다면 기업가로서 타고났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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