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빚고 구워서 '빛의 성곽'을 만들었다. 흙을 만진 지 4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전통 도자기를 만들던 청년이 이제는 예순을 훌쩍 넘겨 자신만의 독특한 도자기 세계를 구축했다. 도자기에 뾰족뾰족한 성곽을 그려 넣다가, 이제는 산이 첩첩이 쌓여 있는 모습을 새긴다.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에 이끌려서다. 심곡 성낙우(64) 도예가가 창원 숲갤러리(창원the큰병원 8층)에서 지난 6월 1일부터 6월 29일까지 한 달가량 10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10번째 개인전을 맞은 성낙우 도예가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추곡리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작업실은 심곡이라는 호에 걸맞게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았다. 삼진미술관 근처인 것을 알고 찾아갔지만, 심곡도예연구소라는 간판이 달린 작업실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숲을 가르고 호수를 지나서 작업실에 이를 수 있었다. 힘들게 찾아간 그곳에서 작가는 "철이 덜 들어서 산에서 아직 흙을 만진다"며 밝게 웃으며 맞았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노산동에 집이 있는 그가 작업실을 어떻게 이렇게 산골짜기에 구했을까.

"2000년도에 삼진미술관이 개관하고 이쪽에 왔습니다. 작업하기에 괜찮은 듯해서 인근에 작업실을 구하러 다녔어요. 한 시의원이 소개를 해줘서 2001년에 여기 땅을 사서 2002년부터 작업실로 쓰고 있어요. 원래는 소 키우던 곳이죠."

한때 수석 모으는 취미를 가지기도 했다는 그는 1976년에 '추곡'이라는 돌을 찾으러 이곳에 왔던 적이 있었다고도 했다.

작업실은 잘 정돈돼 있었다. 흙 범벅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깔끔했다. '정리 정돈이 잘 돼 있어야 작업을 잘할 수 있다'며 작업을 할 때마다 그때그때 작업장을 바로 치워나갔다.

성 작가는 1976년 군 제대 후 첫 개인전을 연 이후 그렇게 개인전을 많이 열지는 않았다. 2000년대 들어서야 지속적으로 전시를 하고 있다. 성 작가는 지난 1976년 마산 희다방에서 첫 개인전을 했고, 1977년 마산 오양다방에서 제2회 개인전, 1983년 마산 백자화랑에서 제3회 개인전, 1995년 마산 성안백화점 갤러리에서 제4회 개인전을 치렀다. 이후 2006년 창원 성산아트홀, 대구 수련갤러리, 2008년 마산 구복예술촌, 2013년 마산 아츠풀 삼진미술관, 2014년 김해 선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선과 면이 만나 '빛의 성곽'을 담다

이번 전시는 기존 전시와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작년에 선보인 작품 4점과 신작 12점을 합해 관람객에게 내보이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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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낙우 도예가./김구연 기자

신작은 선과 면의 결합이 두드러진다. 둥근 항아리의 곡선에 육면체 면을 결합했다. 선과 면의 만남은 지난 2012년에 작업할 때 첫 시도였다. 이번에는 시각적으로 광이 날 수 있게 수금으로도 면을 살렸다.

은은한 산 풍경 회화도 곁들였다. 이성석 미술평론가는 "성곽의 이미지로 중첩된 산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은 대자연의 포용적 개념이 동반된다. 그뿐만 아니라 도자기에서 보기 어려운 원근법을 차용해 회화성을 극대화하면서 하늘과 구름의 색감을 도입해 포괄적 개념의 자연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그가 이전에 표현하는 야경의 이미지에서 부딪혔던 한계를 극복하는 쾌거를 이룬 셈"이라고 평가했다.

'빛의 성곽'은 무엇을 뜻할까.

"'빛의 성곽'은 늘 작업하는 스타일입니다. 성곽은 자기의 영토, 사는 곳을 지키려고 인공적으로 쌓은 것이죠. 제 성곽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성곽인 산입니다. 음영으로 멀고 가까움을 표현해서 '빛의 성곽'을 완성했어요. 산과 산 사이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 보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습니다."

'깊고 깊은 산을 도자기 굽는 소나무 향으로 가득 채우라'. '심곡'은 그런 뜻으로 성 도예가의 스승인 월주 원덕문 선생이 지어준 호다. 그는 단청장으로 인간문화재 48호인 원 선생에게 가서 단청을 반년쯤 배웠다. 도자기를 굽는 불을 지필 때 가장 좋은 나무가 바로 소나무. 소나무는 다른 나무처럼 불을 땔 때 튀지 않는다. 특히 백자를 구울 때는 소나무로 구워야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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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낙우 도예가./김구연 기자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도자기를 빚고 구워왔을까. 도자기를 빚고 굽는 과정은 정성이 없으면 해낼 수 없다. 흙을 주물러서 틀을 만들고, 건조 후에 800도에서 초벌구이를 하고 이후에 색을 입히고 그림을 그린다. 여기에 다시 직접 만든 유약을 바르고, 16시간 동안 1280도에서 구워낸다. 2∼3개월 작업한 10여 점의 도자기를 모아서 한 번에 굽는다. 구워낸다고 다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도자기가 굽는 과정에서 깨지기도 하고, 불에 제대로 구워지지 않기도 한다. 모든 작업을 그의 작업실에서 다 해내는 그는 1년 꼬박 작업을 해도 전시장에 내놓는 작품은 20여 점이 채 안 된다.

"흙은 거짓이 없습니다. 정성을 들이고 만진 만큼 좋은 작품이 나와요. 얼마만큼 도자기를 만들고 굽는 과정을 성실해 하느냐에 따라서 다 다른 작품이 되는 거죠."

이렇게 힘든 인고의 과정을 거치는 도자기를 왜 선택했을까. 성 도예가는 1968년 마산공고 요업과(무기재료학과)에 진학하면서 도자기를 처음 접했다.

"유리공업, 위생도기, 타일, 시멘트 작업 등을 하는 것이 요업인데, 도자기는 그 중 한 분야예요. 우리 동기 중에 도예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어렸을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고등학교에 가면서 흙에다, 도자기에다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초창기에는 청자, 백자를 만들고 그림을 그렸고, 1970년대 후반부터 현대 도요 작업을 했다. 3번째 개인전을 할 때 현대 도자기 작품을 선보였다.

힘들었던 배움의 시절

과거 얘기를 묻자 힘들었던 경험들이 속속 되살아났다.

"촌에서 국전, 공모전 출품한다고 작품을 싸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마산, 창원에서 20명, 김해에서 20명 등 경남에서 다해봐야 40∼50명이 도자기를 만들었죠."

1968년 국립도자기연구소가 지역에 생겼고 경기도 이천에서 도자기 물레 대장이 내려와서 이곳을 이끌면서 이곳에서 도자기를 배운 이들이 많았다고. 경남에서 옹기를 만드는 이는 있었지만 도자기를 한다는 사람이 드물었던 시절이다. 80년대에 들어서야 김해 진례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이들이 생겨났다. 1976년 성 도예가가 첫 개인전을 할 당시에는 마산에서 작업해서 도자기를 구워낼 곳이 없어서 경북 문경까지 가서 도자기를 구웠다. 지역에서는 경남대 병설 전문대 요업과(무기재료학과)나 고려애자, 대한애자 등 가마가 있는 곳에다 부탁해야 쓸 수 있는 정도였단다.

"도자기를 만들었다고 바로 구워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먼 거리에 싣고 갈 때는 차에서 작품이 다 부러지기도 했죠. 비포장도로를 견뎌내지 못한 작품은 문경 도착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며칠 동안 다시 만들어서 가마에 구워내기도 했습니다."

이후 조그마한 가마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작업실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굽는 전 과정을 한 번에 해낼 수 있게 가마도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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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낙우 도예가./김구연 기자

성 도예가는 1970년대 초반 고등학교 졸업 후 도자기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유약 연구를 했다. 전통 도자에서 현대 도자로 작품을 변화하는 밑거름이 됐다.

다양한 작품을 시도해보고자 조형 도자도 시작하게 됐다. 기존 작품들이 물레를 돌려서 항아리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색다른 시도로 손으로 직접 흙을 빚는 과정도 작품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됐다. 어려운 말로 '수공성 성형'이라 한다. '손으로 성형을 한다'는 뜻이다. 발로 물레를 돌려서 만드는 항아리 작품보다 훨씬 많은 수고로움이 있다. 도자기 틀을 만들려면 흙 띠를 만들어서 한 층 한 층 쌓아올리고, 매끄럽게 하려고 손으로, 도구로 문지르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번에 작업을 다 해내지 못하고 쉬었다가 다음번에 이어서 하면 그사이에 흙이 마르면서 틈이 생겨서 도자기를 구워냈을 때 깨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고, 구워봐야 알 수 있다고. 그래서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항아리 외에 손으로 작업한 작품이 포함됐다.

성 도예가는 현재 창원전문대에서 도자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도자기 작업을 한 지 50년 가까운 세월이 됐기에 곳곳에 그의 제자가 있다.

"강의를 하면서 계속 도자기 작업을 해나갈 것입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작품을 꾸준히 만들 계획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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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낙우 도예가./김구연 기자

그는 경상남도미술대전 동상, 최우수상 2회, 특선 3회, 서울신문사 도예공모전 특선 및 입선 6회(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신문갤러리), 한국미술대전 대상(서울디자인센터),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2회(국립현대미술관)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현재 한국미협, 마산미협, 경남산업디자이너협회, 경남도예가회 회원, 마산대동제 대회장, 심곡도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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