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경남의 섬]소금 절인 고등어 보관하던 '간독', 마을 번창·주민 삶 이끌어 준 보물

통영 욕지도 자부마을. 이곳에는 한창 고등어 좋던 시절 흔적이 남아 있다. 고등어를 소금에 절여 보관하는 '대형 간독'이다. 가로·세로 2m가량 되고, 높이는 어른 키 세 배가량 된다. 제명수(84) 할머니는 이 간독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친정아버지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해방되면서 아버지가 일본 사람한테 배를 물려받았어. 이름을 해방호라 지었지. 그걸로 고등어잡이를 20년 정도 했지. 고기 잡아 오면 주로 마산·부산으로 팔러 갔어. 차에 큰 간독이 있기는 해도 다 못 들어가면 다른 데 보관해야 할 거 아니야. 그래서 여기에 간독을 크게 만든 거지."

할머니도 아버지를 도와 고등어 간독 일을 했다고 한다.

제명수 할머니가 '욕지도 고등어'에 대한 옛 기억을 들려주고 있다.

"그때는 일꾼 30~40명이 온종일 일했지. 고등어 창자 빼는 사람, 바닷물에 씻는 사람, 소금 간 하는 사람…. 간독에 사다리 놓고 두어 명 들어가서는 작업한 걸 착착 재는 거지. 이 넓은 공간을 고등어로 다 채웠어."

할머니는 아버지 몰래 이웃에게 인심을 쓰기도 했단다.

"아줌마들이 옆에 있으면 일부러 고등어를 부러트려. 그러고는 '이건 못 팔겠네'라면서 발로 슬쩍 밀어주는 거지. 일하는 사람들도 돈 대신 고등어를 받아갔고. 고등어잡이 배가 들어오면 곡식을 뱃사람들한테 주고 우리는 고등어를 받아오지. 고등어는 창자도 젓갈로 해서 먹으니 하나도 버릴 게 없지."

욕지도 자부마을 항구는 잘나갈 때 도시 번화가 못지않았다고 한다.

"고등어 배가 얼마나 많이 들어왔다고. 뱃사람들 북적거리니까 여기서부터 저 끝까지 밤 장사하는 사람들이 깔렸지. 술집에 아가씨 5~6명씩은 데리고 있었어. 새벽 내내 노랫소리가 들리니 주민들은 시끄러워 잠도 못 자는 거고. 여기 섬사람들은 일할 때는 강하게 하고, 놀 때는 또 확실하게 놀아. 내 나이 정도에 지르 박 못 추는 할배·할매 없을 거야. 관광 떠날 때는 서울사람 못지않게 멋쟁이로 변신하지."

제명수 할머니가 '고등어 대형 간독'을 보여주고 있다. 빈 간독에 물이 차고 고양이들이 자주 빠져 장판으로 덮어 놓았다.

5~6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욕지도 인근에서 고등어를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바다 온도 변화 등으로 멀리까지 나가야 한다. 대신 사람들은 양식에 눈 돌리고 있다.

고등어 대형 간독은 욕지도 전체에 세 개 있었는데, 두 개는 형태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빈 독에 물이 차고 고양이 같은 짐승이 빠지다 보니,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연탄재로 막아버리거나 헐어버렸다는 것이다. 할머니 간독도 지금은 장판을 덮어 두었다. 그래도 반가운 소식이 있는 듯했다.

"이거 보러 오는 사람이 제법 되거든. 그래서 시에서 보존할 건가 봐. 위에 천장을 만들어 준다고 하데. 다른 데서는 큰 물통 같은 걸 주로 이용했고 이런 간독은 보기 어려우니까.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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