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경남의 섬]해방 이후부터 다시 주민 거주 전등소 관사·탄약고 등 보존
거제 지심도는 '동백섬'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편으로는 '일제 군사시설 유적의 섬'이라 할 만하다. 일제는 중국 침략을 위해 지심도 군사기지 계획을 세웠다. 10여 가구 되던 주민은 강제로 쫓겨났다. 1936년 100여 명 규모 포대가 들어섰다.
그 흔적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둥근 콘크리트 구조물인 포진지 4곳은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탄약·포탄을 보관하던 지하 벙커식 탄약고는 4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벽면 군데군데 있는 관광객 낙서가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욱일기 게양대에는 지금 태극기가 대신 달려 있다. 그 외 일본군 서치라이트 보관소, 일본군 방향지시석도 당시 상황을 상상하게끔 한다.
일본군 전등소 관사는 적산가옥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부대 막사, 식당, 중대장 관사였던 곳은 민박집으로 이용되고 있다.
국방부 소유인 지심도는 2016년 6월 거제시로 완전 이전된다고 한다.
15가구 되는 지심도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았다는 박계아(80) 할머니를 만났다.
"해방 이후 사람들이 다시 띄엄띄엄 들어왔는데, 들어온 순서대로 좋은 집을 차지했겠지. 지금도 100년 된 일본식 가옥 3~4채가 남아 있지. 우리집은 예전에 일본군 전기발전소 창고로 쓰였던 곳이야. 시아버지가 여기 들어와서는 방으로 개조했고, 집 대문은 우리집 양반이 만들었고. 나는 거제 장승포 살다가 6·25전쟁 막 끝나고 여기로 시집왔거든. 전기도 없고 물도 없었어. 막막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
박 할머니는 이곳에서 벌어진 많은 일을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 한번은 미군 헬기가 불시착해서 마을 보리밭이 쑥대밭이 됐어. 섬사람들은 또 헬기 구경한다고 우르르 몰려나왔지. 미군이 뭐라 뭐라 하는데 알아들을 수 있나. 아마도 '미안하다' 그런 말이었겠지. 그러고는 그냥 가버리데. 보리밭 주인은 농사 망친 거지만 누구한테 말도 못하는 거고."
일본 사람들과 관련한 기억도 전했다.
"여기서 근무했던 일본 군인이었던가 봐. 그 사람이 죽으면서 지심도 앞바다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한 거지. 자식들이 유해를 지심도에 들고와서는 뿌리고 간 적이 있어. 지금도 일본 군사기지 보러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와. 학자들, 공부하는 학생들도 오기도 하고. 지심도가 그런 걸로도 이름 나긴 났나봐."
그 옛날 일본 군인들이 내려다보던 바다를 박 할머니는 쳐다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렇게 있으면 마음이 탁 트이기는 하는데, 우울한 마음도 많이 들어"라고 했다.
동백철 아닌 평일 지심도는 관광객이 많지 않다. 파도·바람 소리 느끼기 더없이 좋다. 70~80여 년 전 일본 군인들 마음에는 여기 섬 소리가 어떻게 다가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