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경남 스포츠인]진주 출신 배구인 하종화

1990년대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배구 스타' 하종화(46).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지휘봉을 놓은 이후 모교 진주동명고 감독을 맡고 있다.

그는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에서 태어나 진주봉원초-진주동명중-진주동명고에서 배구를 했다.

"당시 진주배영초등학교에 배구부가 있었습니다. 그 학교 선생님이 키 큰 선수를 찾기 위해 제가 있던 사곡초등학교까지 오신 거죠. 저는 기억이 없는데 부모님 말씀으로는 제가 해보겠다고 했다네요."

'단짝' 윤종일(46)을 만난 것도 배영초등학교 때다. 하지만 팀이 해체하면서 선수들 모두 배구를 접었는데, 유독 하종화·윤종일만 그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진주봉원초 선생님 눈에 들어 이어갈 수 있었다. 윤종일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이렇다.

"그때는 제 키가 조금 더 컸습니다(현역 때 윤종일 205㎝·하종화 195㎝). 윤종일은 바짝 마르고 우유도 못 먹을 정도로 비위가 약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포지션은 달랐지만 선의의 경쟁자이기도 했죠."

진주 출신 하종화 감독은 현대캐피탈을 마지막으로 프로 지휘봉을 놓고 모교 진주동명고로 돌아왔다. 하 감독은 "선수들 스스로 운동하는 이유를 찾게끔 이끌어주는 게 학교체육 지도자 역할"이라고 했다. /남석형 기자

둘은 이후 진주동명중-진주동명고 주축 멤버로 활약했고, 1987년 세계청소년선수권 우승 주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대학 진학 때는 진로를 각자 고민했지만 송만덕 감독 눈에 들어 한양대 전성시대를 함께 이끌었다. 실업에서도 현대자동차에서 함께했으니, 20년 넘게 호흡을 맞췄다.

현재도 둘은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하 감독은 "현대자동차 사원으로 잘 지내고 있어요"라며 근황을 전했다.

진주는 배구 고장이라 할 만하다. 하종화·윤종일뿐만 아니라 김형태·강용래·김양수·황현주 같은 선수를 배출했다. 현재도 전광인·정민수·김광국이 국가대표팀에 이름올리고 있다.

남자는 진주동명중-진주동명고-진주과기대로 연결된다. 초등학교 팀은 모두 해체됐는데 그 빈자리를 하동초등학교가 메워주고 있다. 여자부는 진주선명여중-진주선명여고가 여전한 명성을 잇고 있다. 이렇듯 학교체육 연계시스템이 탄탄하다 보니 꾸준히 좋은 선수를 배출하고 있다.

시간을 돌려보면 신갑용(78) 전 동명중학교 교장이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1979년 동명중 배구부를 창단하며 물심양면으로 선수들을 지원했다.

"배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이셨죠. 바닥을 다져주신 이런 분들이 많이 있었기에 진주 배구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주 혹은 다른 지역에서 운동했지만 하동에서 태어난 배구인도 많다. 강만수·황현주·전광인이 그렇다. 하 감독은 "지리산 정기를 받아서 특출난 배구인들이 난 게 아닐까요"라고 했다. 진주 배구인들은 '동명백구회'라는 모임을 통해 1년에 한두 번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하 감독은 자녀가 네 명이다. 아들만 야구를 하고 있고, 딸 셋은 배구를 했거나 하고 있다.

"스스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배구부 감독으로서 이런 좋은 점이 있더군요. 예전에는 학생 스카우트 하러 다닐 때 학부모에게 말하기가 그랬는데요, 이제는 제 딸 모두 배구를 하고 있으니 자신있게 권할 수 있죠. 실제로 부모님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고요."

지도자 하종화는 선수시절과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잃지 않는다. 아이들 스스로 배구를 알아가도록 돕고 있다. 지도자로서 프로팀과 비교해 학교팀은 챙길 게 많다. 학부모 관계, 학생들 진로, 초·중·대 지도자들과 호흡 등 지역사회와 계속 소통해야 한다. 하 감독은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도 식당 가면 과거를 기억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진주놈, 경상도 놈'이라서 더 많이 생각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또 배구 지도자로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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