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경남예술인]경남에 머물다 간 예술 거장

결핵문학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에 있는 국립마산병원은 결핵 연구와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이 병원은 1946년 같은 자리에 세운 '국립 마산 결핵요양소'로부터 시작됐다.

가포동은 일제강점기에 이미 요양소가 생길 정도로 공기가 맑은 곳이었다. 별다른 결핵약이 없던 시절, 맑은 공기는 유일한 치료제였다. 결핵은 '가난한 글쟁이들이 잘 걸리는 병'이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마산결핵 요양소는 유명한 문인들이 요양차 많이 찾았다. 지역 문인들은 이들과 교류하며 지역 문화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

일제강점기에는 소설가 나도향, 시인 임화, 소설가 지하련 등이 요양소를 찾았다. 마산 요양소에서 꽃핀 임화와 지하련의 사랑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해방 후에는 시를 쓰고 사회활동도 활발했던 이들이 많이 찾았는데 시인 권환, 시조시인 이영도, 시인 김상옥, 시인 구상, 시인 김지하, 시인·사상가 함석헌, 시인 김춘수, 시인 서정주 등이 마산에서 지냈다. 작곡가 반야월의 '산장의 여인'도 마산 결핵요양소에서 지낸 경험을 담았다. 이들이 마산에서 치료를 받으며 적은 글은 '결핵문학'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들이 작품 속에 남긴 '마산 이야기'를 들어보자.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에서 바라본 마산앞바다. /경남도민일보 DB

"마산의 바다는 좋습니다. 바다의 공기를 마시고 그것을 내뿜을 때는 마치 바다를 삼켰다가 배앝는 듯한 때가 있습니다. 구마산 지저분한 부두에 섰을 때라도 바다를 내다볼 때, 멀리서 흰 돛을 단 배가 유리 같은 바다 위로 미끄러져 갈 때에는 돛대 끝에 내 맘 한 끝을 매고 한없이 먼 나라로 나의 마음을 끌어가는 듯합니다." <피묻은 편지 몇 쪽>(나도향, 1926)

"뒤로 무학의 봉우리를 등지고, 멀리는 진해만두에 거제섬이 아련히 바라보이고, 가까이는 호수 같은 마산만 밖엔 저도(돝섬)가 울창한 송림을 머리에 이고 앉은 풍경은 굴곡과 변화 많은 해안선과 더불어 남해연안에 유수한 명승으로 굴지할 만하다. 해수는 동해와 같이 맑지는 못하나 근해에는 거의 동해와 서해에서 나는 여러 어류가 서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멀리는 진해만 외에 흘러드는 낙동강 하구를 위시로 가까이는 또한 대소 하천이 이리로 모여 담해양서의 살진 고기가 섞여 가위 금상첨화를 이룬 감이 있다."<조어비의> (임화,1941)

1948년 가포 국립마산병원 모습.

▶참고 문헌 : <휴양과 치유의 마산문학 - 결핵문학의 산실>(마산문학관, 2009)

피난 미술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대부분 미술가는 임시 수도인 부산으로 피난했다. 하지만 마산·진해(현 창원시)와 충무(현 통영시)로 전쟁을 피해 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6·25 동란(한국전쟁)과 격동기에 도상봉(1902~1977), 이중섭(1916~1956), 최영림(1916~1985) 등의 피난 미술인들이 일시 체류하면서 지역 미술과의 교류가 있었다."(경남도립미술관, 2008)

피난 미술가들의 삶은 팍팍했다. 전쟁통이라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당장 식생활의 고달픈 나날을 보내면서 군수 물자로 연명하기도 하고 부두 노동 등 잡종직을 찾아 나서기도 하였다. 그중 부산 영도의 한 도자기 회사에 도화 그리는 일에 투입되면서 화가들에게는 호구지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또 학교의 미술 강사, 극장가의 선전 간판, 간판소에 종사하는 정도였다."(황원철, 2010)

작가 이중섭

이런 시기에도 전시회는 꾸준히 열렸는데 이런 것이 지역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부채질했다.

"피란 작가들에게 자극받은 부산 토박이 화가들의 '토벽동인회'와 피란 작가들이 합류한 '후반기 동인전'은 모두 6·25 전란기에 생성 발전하여 남방문화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이런 광경을 목격한 마산 토박이 작가들도 '흑마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1950년대 전국 최초의 가두 전시를 열어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조명받고 있다. 당시 마산의 흑마회 창립 멤버를 보면, 이림, 이수홍, 배기준, 최운, 이준, 이상갑, 김주석, 문신, 김재규 등이 있다." (경남도민일보, 2010)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간 피난 미술가들 덕분에 지역 예술인들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경남이 한국전쟁 때 피해가 덜하다 보니 예술인들이 피난을 오곤 했고, 그러다 보니 지역에 있는 미술인을 도와주고 그랬다. 특히 옛날에는 미술인들이 남해 쪽으로 오면 무조건 통영으로 갔다. 통영 지역 예술인들은 다른 지역 예술가들에게 술도 사주고, 회도 사주고 그러면서 친분을 쌓았다. 반대로 지역 예술인들이 서울에 가면 서로 소개를 해주며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높이기도 했다."(한국미술협회 김상문 경남지회장, 2015)

▶참고 문헌 : 경남도민일보 2010년 6월 28일 자 기사 <부산·마산 피란 작가가 건넨 영감> 황원철 창원대 명예교수, 경남도립미술관 '20세기 경남미술 1 - 회화' 전시 소개(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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