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경남예술인]북한에서도 인정 받는 이원수, 권환, 윤이상

"미래를 바라보면 경남은 소중한 문학 자산을 가지고 있다. 권환과 이원수다. 왜냐하면, 북한 문학에서도 가르치기 때문이다. 경남문학이 통일문학에 이바지를 하는 대목이 여기에 있다." (우무석 시인, 2015)

북한에서도 인정받는 예술인 중에는 경남 출신이 많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만일 '통일시대'가 열린다면 경남은 훌륭한 남북 예술 교류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여기 그 기반이 될 예술인들을 소개한다.

아동문학가 이원수

한 번쯤은 북한 아이들이 앙증맞은 한복을 입고 '고향의 봄'을 열창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살던 고향은~'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남쪽의 대표적인 동요이면서 북쪽에서도 즐겨 부르는 것이다. 가락을 지은 이는 작곡가 홍난파, 노랫말을 지은 이는 아동문학가 이원수다. 이원수(1911~1981)는 양산에서 태어나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향의 봄은 소답동을 배경으로 한 노래였다.

"소답리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읍내에서도 볼 수 없는 오래되고 큰 기와집의 부잣집들이 있었다. 큰 고목의 정자나무와 봄이면 뒷산의 진달래와 철쭉꽃이 어우러져 피고, 마을 집 돌담 너머로 보이는 복숭아꽃 살구꽃도 아름다웠다." (이원수, 1980)

현재 창원시 서상동에 이원수문학관이 있어 그의 삶을 기리고 있다.

시인 권환

대표적인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 시인, 권환(1903~1954)은 창원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토대학을 졸업한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카프 활동을 주도했다. 해방 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마산에서 교사를 지내다 1954년 지병으로 눈을 감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카프 활동을 했던 문학가들이 대거 월북한 것과는 달리 권환은 마산에 남았다. 하지만 북한문학사에서는 권환을 중요한 시인 중의 하나로 다루고 있다. 창원시는 매년 진전면 오서리에서 '권환문학제'를 열고 있다.

작곡가 윤이상

지난 1984년, 평양에 윤이상 음악연구소가 문을 연다.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남쪽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음악 거장을 북쪽에서 받아 안은 것이다. 윤이상(1917~1995)은 통영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음악을 배웠다. 통영여고, 부산사범학교 교사를 지내다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에서 명성을 쌓아갔다. 19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후 1971년 독일에 귀화해 베를린예술대학교 작곡과 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남쪽에서도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란 수식어가 붙어 윤이상의 음악성을 치켜세우고 있다. 통영시는 매년 윤이상을 추모하는 '통영국제음악제'를 열고 있다. 통영시 도천동에 윤이상기념공원이 있어 그가 남긴 발자취를 살필 수 있다. 윤이상기념공원에 있는 전시실에는 북한에서 만들어 보낸 윤이상 흉상이 전시돼 있다.

▶ 참고문헌 : <창원이 낳은 한국대표예술가>(고향의봄기념사업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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