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이나 천왕문이 나오지는 않는다. 대신 입구에서부터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길이다. 오른쪽 산자락으로는 아름드리 붉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왼쪽 계곡 자락으로는 편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다솔사는 이름 그대로, 소나무 편백나무 숲길이 그대로 일주문이다.

경남 사천 봉명산 다솔사(多率寺).

1500년도 훨씬 전에 연기조사가 창립했다지만 대양루(大陽樓)만 남겨두고 1914년 화재로 전부 소실됐다. 현재 건물은 이후 재건한 것이다. 신라시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셔온 자장율사를 비롯해 고운 최치원과 만해, 효당 등과 인연이 깊은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한국 차 문화의 성지'로 불리고 있다. 다솔사 뒤편에는 다솔사 차밭이 산자락을 물고 있다.

지난 5월 9일 무심코 찾아간 다솔사였다. 평소와는 달리 입구 주차장부터 사람들이 웅성거림에 조금 놀랐다. 주말 등산객들은 아니었다. 그제야 입구 펼침막이 눈에 띈다. 10일까지 이틀 동안 이곳 다솔사에서는 '다솔사 선차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올해로 벌써 세 번째.

04.jpg
제3회 다솔사 선차축제 펼침막./권영란 기자

9일 오전 개회식을 시작으로 가족·가정 차회 시연 및 차 마시기, 잎차 시연 및 차 마시기, 떡 차 시연 및 차 마시기, 가루 차 시연 및 차 마시기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었다. 또 대양루 안에는 특별전시 '선차묵'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부산한 절 마당을 피해 절 뒤 숲으로 가는 길에도 곳곳에 차를 마시고 쉴 수 있는 쉼터가 마련돼 있었다. 이번 선차축제에서는 반야당과 봉일암에서 마련된 선차(禪茶)체험도 있었다. 두 손으로 차 한 잔을 받쳐 들고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번뇌를 털어내는 '무심거배행선차'는 다솔사이기에 가능한 체험일 듯했다.

03.jpg
숲길 끝에서 만나는 다솔사 돌계단. /권영란 기자

가장 눈에 띄는 건 '숲속 걷기 명상 차 체험'이었다. 일반 대중들의 참여도가 높은 듯했다. 특별한 격식이 있는 것이 아닌데다 서늘한 숲에서 가능한 체험이기 때문이리라. 숲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의 정화가 일어나는데 거기에다 차 한 잔의 여유와 평온을 가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다.

다솔사 주지 동초 스님은 이번 선차축제를 앞두고 "오늘날 선차(禪茶)라는 말이 예사롭게 됐지만 형식에 치우치거나 외물에 의존하는 느낌이 크다"며 "다솔사의 선차는 일상생활에서 의식을 일깨워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차를 마시면서 마음과 정신, 몸을 수행하는 의미를 담았다"며 "누구든 오셔서 즐기면 된다"고 선차축제의 의미를 강조했다.

02.jpg
다솔사 입구 연못. 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이곳을 거쳐 다시 계곡으로 내려간다./권영란 기자

다솔사는 푸른빛이 깊어지는 숲길 끝에 있다. 500m가 넘는 숲길을 걷다 보면 부처를 만나기도 전에 번다했던 마음이 차분해져 있다. 바쁠 것 없이 느릿느릿 헤매다가 절 마당 입구에 있는 물 한 모금, 때로는 차 한 모금 입안에 머금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앉았다가 되돌아오면 된다. 봉명산 자락 다솔사에서는.

01.jpg
다솔사 뒤편 산자락에 있는 차밭. 마침 햇살이 곱다. /권영란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