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젊은 나이에 화려한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짚신이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 향기 미소가 가득. 봄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사무실 앞에서 작자 미상의 중국 사람이 썼다는 글귀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 글 밑에 다음 글이 있었다. '봄을 행복으로 바꿔 읽어보세요.'

주인장의 재치가 돋보이는 글이었다. 그러고 보니 하동 들녘과 딱 어울리는 글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작업장 문을 열고 나온다. 하동군 하동읍 매화골먹점길 9번지에서 하동찰빵을 굽는 '복을만드는사람들'의 조은우(36) 대표다.

하동특산품 먹거리 만들자 '복을만드는사람들' 설립

나이도 젊은 사람이 어떻게 먹거리 사업에 뛰어들 생각을 했을까? 자리에 앉자마자 궁금한 것들을 쏟아냈다. 조 대표는 "하동이 사시사철 관광지로 유명한데 통영꿀빵이나 경주빵 같은 먹거리가 없는 것에 착안했습니다. 하동 관광특산품으로 개발해보면 성공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디어가 참 기발했다.

이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조 대표는 2013년 6월 '한다사푸드'라는 이름으로 빵 공장을 세웠다. '한다사'는 하동의 신라시대 지명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후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해 12월 '복을만드는사람들'로 회사 이름을 바꿨단다.

조 대표가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10월이다. 이후 본격적인 판매는 그해 12월부터 이뤄졌다. 하지만 초창기엔 하동 주민이나 관광객 모두 '하동찰빵'에 대한 인식이 없다 보니 호응이 별로였다. 그래서 두 번째 상품을 개발한 것이 '하동찰호떡'이었다고 한다.

"찰빵이란 이름이 관광객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새로 개발한 제품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숙한 '호떡'으로 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하동찰호떡'을 내놓았는데 이 상품이 히트를 쳤습니다. 덕택에 찰빵도 덩달아 알려지게 됐죠. 여세를 몰아 '하동크림치즈호떡'도 개발했습니다. 시중에 치즈호떡은 있지만 크림치즈호떡은 아마 우리가 만드는 것이 유일할 듯합니다."

조 대표는 상품에 '하동'이란 이름이 붙어있는 만큼 재료는 당연히 하동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동에서 생산되는 쌀은 물론 녹차와 딸기, 블루베리, 단호박 등으로 찰빵과 찰호떡을 만들었다.

'빵인 듯 빵 아닌 떡 같은 빵' SNS 입소문 매출 급성장

그런데 조 대표가 방금 구워 온 찰빵을 보니 빵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하다. 어쩌면 떡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조 대표는 "떡 같지만 분명 빵입니다. 빵인데 떡 같은 질감을 냈기 때문이죠. 손님들이 찹쌀로 만들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전분성분이 풍부한 카사바와 쌀로 만든 빵입니다."

조 대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한 지 불과 몇 달도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강소농 반열에 들었을까? 판매량이 어느 정도 될까?

"아직 많이 생산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지는데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이 열심히 빵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나마 하동찰빵은 자동생산시스템을 갖췄습니다. 다른 부재료를 제외하고 떡쌀로 매일 30∼40㎏ 정도 소비하고 있는데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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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찰빵'을 손으로 빚는 조은우 대표. 하동의 대표 농특산물인 녹차와 딸기, 검정깨, 단호박 등으로 색깔을 낸 찰빵이 먹음직스럽다. /김구연 기자

주로 선물용으로 많이 나가는데 공장을 차린 이후 두 번 맞은 명절엔 1500∼2000상자씩 판매했단다.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 동안 올린 매출이 1억 6000만 원으로 매월 5000만 원 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다.

공장을 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매출이 가능할까? 조 대표는 SNS를 통한 입소문도 주효했지만 화개장터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한 판매가 매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제품을 판매하자 카카오스토리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가더군요. 우체국 쇼핑몰을 통해 판매되는 물량도 많지만 화개장터에서 가장 많이 판매됩니다. 화개장터에서는 장사하시는 분들이 찰빵과 호떡을 가져가 관광객을 상대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조 대표는 요즘 즐거운 고민거리가 생겼다고 한다. SNS 등을 통해 소문이 나면서 체인점을 개설하고 싶다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 하지만 조 대표는 지금 당장 체인점 개설로 수익을 내기보다는 제대로 시스템을 갖춰 대응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더 나을 거라고 보고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

"곳곳에서 체인점 문의가 오지만 아직은 미완의 상태입니다. 인테리어라든지 상품판매 시스템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내년 봄쯤 화개장터 매장을 리모델링 해 체계화된 시스템을 갖출 계획입니다. 내년엔 매장에 우리 직원이 상주하면서 상인들에게 정보도 제공하는 등 프랜차이즈화를 고민해볼 계획입니다."

20대에 맛본 고깃집 사업의 대박

조 대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애늙은이'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대체로 사람들은 기회가 왔을 때 사업을 키우려고 하는데 조 대표는 굉장히 신중하다. 침착함이 30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유가 있을까?

진주가 고향인 조 대표는 도립거창전문대학 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조 대표는 그러나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학에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많이 한 덕택에 졸업을 하고서 자연스럽게 사업을 구상했고, 27세 때인 2006년 첫 사업으로 고깃집을 차렸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고깃집을 열었습니다. 그게 성공할 리가 없었죠. 그냥 조용히 망했습니다. 이후 직장생활을 잠시 했는데 여전히 고깃집에 미련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진주시 평거동에서 '화씨화로'라는 고깃집을 다시 열었습니다."

조 대표는 지난 사업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엔 제대로 준비를 했다. 서울에 가서 나름대로 고깃집을 돌며 벤치마킹도 했다. 그게 2008년 스물아홉의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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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을 줄여 시럽이 흘러내리지 않는 찰호떡.

"화씨화로를 운영하면서 돈을 제법 벌었습니다. 체인점도 냈습니다. 이후 꽃집도 하고 고기출장뷔페도 차려 통영 펜션 등지에 고기를 납품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저것 참 많이 했는데 실제론 고깃집을 해서 돈을 벌었지 나머지는 모두 실패한 셈입니다."

하동찰빵 체인점에 주저하는 이유를 나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조 대표의 사업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실패도 한순간, 서울서 연 죽집 망해 무일푼 신세

"돈을 좀 벌고 나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한 번 해보자는 것이었죠. 그래서 진주 화씨화로는 그대로 둔 채 2009년 겨울 서울로 가 죽집을 열었습니다. 고령화시대인 만큼 노인 환자도 당연히 많을 것이니 병원 인근에 죽집을 내면 성공할 것 같았습니다. 유명 브랜드 죽집처럼 제품을 잘 만들어 트렌드를 따라가면 될 줄 알았죠."

하지만 서울에서 연 사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쫄딱 망해 진주에서 성업 중이던 고깃집까지 처분해야 했다.

"그러나 죽집을 하면서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죽집에 오는 손님들 중 젊은 엄마들이 이유식을 많이 찾는다는 것을 알았죠. 그래서 이유식 판매에 눈을 돌렸고, 이유식 판매를 생각하다 제조업을 알게 됐습니다. 이유식을 만들어 택배로 발송하고 온라인으로도 유통하려면 제조업 등록을 해야 하는데 일반 가게에서는 할 수 없었죠. 그때 하동과 인연이 닿았습니다."

2012년 하동이 고향인 후배와 하동에서 '에코맘 산골이유식'을 차렸다. 서울에서의 실패와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한 이유식 사업은 적중했다. 승승장구해 불과 몇 년 만에 연 매출 10억 원이 넘는 회사로 성장했단다.

그런데 왜 잘 나가던 사업을 두고 또다시 '하동찰빵'을 만들었을까?

"동업을 한다는 것이 장점도 많았지만 '둘 다 어려워질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다른 사업을 해봐야 겠다고 마음먹고 후배에게 모든 것을 넘긴 뒤 빠져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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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우 대표가 도농기원 이영미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듣고 있다.

봉사가 인연이 돼 만난 하동사람과 결혼

참 화려한 이력의 조 대표다. 대학 졸업 이후 10년 가까이 일만 하던 사람인데 결혼을 했을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주에서 사업을 할 때 로타리클럽에 가입해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하동에서 생활하면서 '하동청년새마을포럼'이란 곳에 가입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그곳에서 아내를 만났습니. 결혼은 작년에 했고, 아내는 지금 예쁜 공주를 낳아 산후조리 중입니다."

 사실 조 대표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단다. 결혼자금도 없는 데다 살 집도 장만해야 했고, 새로 시작한 사업도 안착시켜야 하는데 가정을 꾸리기엔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청년새마을포럼에서 본 아내의 헌신적인 모습에 청혼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아내가 군청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할 때 보살피던 독거노인 한 분이 있었는데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휴대전화를 보니 아내 전화번호 하나만 입력돼 있더라는 것입니다. 아내의 정성 어린 돌봄이 그분에겐 고마움 이상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도 그런 아내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에 반해 결혼하게 됐습니다."

조 대표는 어릴 때 꿈이 제대로 된 노인요양원 같은 것을 운영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봉사활동을 다녀보니 요양원은 행정기관이 설립해 운영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아이디어를 구상 중이다.

"찰빵과 호떡사업이 잘 되면 푸드카를 만들 계획입니다. 푸드카를 몰고 요양원 등지를 찾아다니면서 우리가 만드는 찰빵과 찰호떡을 나누는 것도 의미 있는 봉사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울 '무명식당' 납품 이어 세계시장도 넘봐

조 대표는 화개장터를 생각하면 답답할 때가 잦다. 먹거리 장터여야 하는데 상품이 다양하지 않고 약초장터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래서 다양한 음식이 개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깨알 같은 자랑을 좀 할게요. 제과제빵 자격증이 있는 직원에다 제 디자인 실력을 합치면 금방 새로운 아이디어가 상품으로 탄생합니다. 지금은 찰빵과 찰호떡이 주력 상품이지만 조만간 아이스크림 등 다른 간식거리도 개발할 겁니다."

최근엔 서울을 중심으로 인기있는 프랜차이즈 '무명식당'에 납품을 하게 됐단다. 1차로 딸기호떡을 비롯해 녹차, 단호박, 검은깨, 일반호떡 등 500만 원어치 상당을 보냈다. 무명식당은 전국 각지에서 공수한 엄선된 건강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15일에는 경남도가 미국 LA 슈퍼 바이어 9명을 초청했는데 그 자리에 제가 하동찰빵과 찰호떡을 소개했습니다. 그 자리서 납품계약은 못했지만 바이어들 반응이 좋아 샘플을 미국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남들은 평생 한 번도 겪지 못할 수도 있는 사업 실패와 성공의 경험들. 그런 것을 20대에 체험한 조 대표는 이제 하동찰빵과 찰호떡으로 하동을 넘어 전국을 물론 세계시장까지 넘본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가 사무실 입구에 쓴 글귀를 다시 읽어본다. 이번엔 봄 대신 '성공'이란 단어를 넣어서…. '하루 종일 성공을 찾아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짚신이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 향기 미소가 가득. 성공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마치 조 대표가 자신에게 거는 주문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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