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대형조선소 건설 위해 내어준 땅 물질적 풍요 안겼지만 고향 잃어…고부가 해양플랜트 사업 전환 기대감·허탈한 한숨 뒤섞여

뭐든 그렇듯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거제는 대형조선소가 들어서던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큰 부침을 겪었다. 거제 옥포만에 지금의 대우조선해양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적어도 330만㎡(100만 평)가 필요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2600명에 이르는 원주민을 장승포읍 능포리로 이주시켜 우선 198만㎡(60만 평)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리고 산 하나를 깎아서 나온 흙을 바다에 메워 나머지 132만㎡(40만 평)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주 과정에서 보상이야 있었지만, 한평생 살던 터전을 억지로 떠나야 하는 이들 마음은 오죽했을까.

이와 함께 농사짓던 땅은 몇백 배 몇천 배로 뛰었다고 한다. 그 덕을 본 사람들은 고향 땅을 떠나고, 그 자리는 장사꾼들이 대신 채웠다고 한다.

이 지역 향토사학자 이승철(77) 선생은 이렇게 전한다.

"물질적으로는 괜찮아졌지만 마음의 풍요는 멀어졌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아마 제일 각박한 곳이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창원시 진해구 수치·죽곡마을은 여전히 마음 앓이를 하는 곳이다. STX조선해양이 들어서면서 환경오염·소음·어업 터전 상실 등에 시달린 이 마을 주민은 이주를 원하지만 15년 가까이 현재진행형이다.

고성군은 해안선이 186km에 걸쳐 이어져 있다. 차 있는 사람들이라면 드라이브하기 좋은 고장이다. 하지만 온전한 바다만 만나지는 못한다. 가다 보면 이내 조선소가 중간중간 자리하고 있다.

고성군은 예부터 기름진 땅, 수산물 가득한 바다를 끼고 있어 배 곯는 고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래 먹거리를 찾으면서 2007년 조선산업특구로 지정됐다.

개발 앞에 그렇듯 이곳 역시 주민에 따라 기대감과 못마땅함이 뒤섞였다. 지금도 '땅'이라는 글이 간판에 크게 적혀있는 부동산이 에둘러 설명한다. 이를 여전히 달가워하지 않는 동해면 주민은 이렇게 말한다.

"세수가 늘고 상권이 활성화됐지. 하지만 인구 증대에는 별 재미를 못 봤어. 인근 마산 같은 데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고, 정작 주소는 이쪽으로 안 옮기지. 오히려 지역에서 농사짓던 젊은 애들이 기술자 되고서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기도 했지. 동해면 같은 곳은 아름다운 경관이 많이 상하기도 했고."

고성조선산업특구 지정 당시 5만 5144명인 인구가 곧 10만 명 넘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솟았다. 하지만 지난 4월 기준으로 5만 5591명에 그치고 있으니 주민 말에 일리가 있다.

지난 시절 기대감을 보여주는 간판.

고성군은 좀 더 넓게 눈을 돌려 지난해 조선산업특구에서 조선해양산업특구로 변경 승인받았다. 특화사업자는 삼강엠앤티(주), 고성조선해양(주), 삼호조선해양(주)이다. 중소형 선박에서 고부가 해양플랜트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고성 동해면 봉암리 공룡 발자국 화석지 해안에서 바다 건너에 눈을 두면 조선소 크레인이 눈에 들어온다. 인근 통영 안정산업단지에 자리한 성동조선이다. 이곳 조선소 주변에는 '참고 또 참았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추가 자금지원 실시하라'와 같은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최근 수출입은행이 신규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혀 회생 불씨가 살아나고 있어 다행이다.

조선소 경기는 곧 그 지역 경기와 직결된다. 통영 미륵도에는 21세기조선, 신아sb, 삼호조선이 몰려있지만 매각, 법정관리, 파산으로 휑한 분위기다. 인근 식당 할머니는 "갈 데가 없어 그냥 이러고 있다"라고 한다. 할머니 푸념도 모자라 인근 나무 그늘에서는 "지역 조선소가 남아나질 않네"라는 두 남자의 한숨까지 듣게 된다.

여기 조선소들이 휘청하면서 기술자들 또한 외지로 떠나는 분위기다. 통영 한 조선소에서 수십 년간 일했던 이 모 씨는 지금 광양지역 조선소 협력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경남 조선산업의 지난 시간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해도, 자신에 대한 부분은 들추려 하지 않았다.

문을 닫은 21세기조선 본사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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