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경남의 성씨-전남 여수 '밀양 박씨 집성촌'

전라남도 여수에는 '밀양 박씨' 집성촌이 여럿 있다. 밀양 박씨가 여수에 들어오게 된 건 1592년으로 거슬러 간다. 박웅도라는 자가 벼슬아치들 파벌 싸움을 못마땅히 여겨 조용한 곳을 찾아 흘러들어온 곳이 여수시 율촌면 반월마을이라는 곳이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영남지역 사람들이 전란을 피해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로 몰려들었다. 이순신 장군은 지금의 여수 돌산읍 쪽에 자리를 내주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여수 돌산읍 평사리 월암마을은 '밀양 박씨'들이 거처하면서 거주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이곳 월암마을을 찾으니 문패는 하나같이 '박○○'이었다. 박정남(76) 씨는 "이 마을에 65~70가구 정도 사는데, 밀양 박씨가 45가구 정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공동체 분위기는 예전만큼은 아닌 듯했다.

"제각도 있었고, 공동 제사도 모시고 했지만 이제 그런 건 없어. 삼촌·조카 간 재산 때문에 다툼이나 있고…."

이 마을을 찾은 이유를 설명하자 박 씨는 다른 곳을 소개해 줬다. 이웃해 있는 돌산읍 서덕리 서기마을이었다. 이곳에서 박춘하(74·사진) 씨를 만났다.

"우리는 남해군에서 옮겨와 7대에 걸쳐 살고 있지. 1대를 보통 40년으로 잡으니 300년 가까이 된 거지. 함께 모여 살면 친척 간 단합도 되고, 서로 의지할 수 있으니 좋지. 남해에서 들어온 사람들이지만, 밀양 박씨가 대다수니 텃세를 부려도 우리가 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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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는 이 마을 밀양 박씨가 일대에서는 최고 부자 집안이라고 했다.

"윗대 할아버지 몇이 모여서 사채 장사를 한 거야. 같은 밀양 박씨들이 돈 빌려주라고 해도 못 갚을 것 같으면 절대로 안 줬다고 해. 그 정도로 악착같이 했으니 돈을 엄청나게 번 거지. 현금을 집에 쌓아두고, 이 마을 땅도 대부분 다 사고 말이지. 부자는 망해도 몇 대가 간다고 그러잖아. 그 부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여기 돌산읍 안에서 서기마을 밀양 박씨가 제일 부자지."

돈이 많아서인지, 도시로 떠난 이들도 많다고 한다. 지금은 10여 가구가 집성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 마을 밀양 박씨들이 다 모이면 방마다 바글바글했어. 많을 때는 130명이 모여서 시조할아버지 보러 밀양에 가기도 했지. 돈이 많으니 묘소에서도 고기를 한껏 먹고 그랬어. 지금도 1년에 두어 번 모이고 그래."

하지만 갈수록 이러한 분위기가 옅어지고 있어 걱정하는 눈치였다.

"여기 어른들이 서울 사는 후손한테 돈 몇천만 원 주면서 문중을 키워보라고 하는데, 잘 되겠어? 우리 세대가 저 세상 가면 끝이라고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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