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경남의 성씨-성씨제도의 새 물결

우리나라에서 성씨제도는 혈통을 잇는다는 문제뿐 아니라 그 자체로 독특한 문화가 되어 발전했다.

"우리나라 성씨제도는 단지 혈통의 표시에 끝나지 않고, 사회조직의 기초를 이루고 있어 사상 문화 도덕 관습의 근본이 되고 있다. 곧 성씨 체제는 역사적 사건이 적층으로 쌓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제도로, 여느 민족과 구별되는 한민족의 전형적인 문화적 양태라 할 수 있다." (서해숙, 한국 성씨의 기원과 신화, 민속원, 2005)

하지만 '양성평등'과 '다문화'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요즘, 성씨제도와 관련해 새로운 문화들이 생기고 있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 후반 시작된 부모 성(姓) 함께 쓰기를 들 수 있다.

이는 아버지 성씨만이 혈통을 표시하지는 않는다는 생물학적인 기초에서 비롯한 양성평등 운동이다. 시작은 1997년 3월 9일 당시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 참가자들이 부모 성 함께 쓰기 선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한의사이며 우리나라 대표적인 여성운동가인 고은광순 씨는 언론 기고에서 다음과 같이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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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경향신문에 보도된 '부모(姓) 함께 쓰기' 기사.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의 목표는 부계혈통제의 생물학적, 정치적 부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성과 본만을 쓰도록 강제하는 민법 제781조가 폐기되면 아들 선호, 여아 낙태, 출가녀 차별 문제, 최근 급증하고 있는 재혼 가정에서의 자녀 성 문제 등은 모두 사라질 수 있다. 다른 나라들처럼 부모 한쪽의 성을 쓰든, 섞어서 쓰든, 새로 만들든, 중간에 고쳐 쓰든 그것은 국가가 이를 강제할 필요가 없다. (중략)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은 '모계'를 '부계'의 반대편에, 대립적인 지위에 세우자는 취지가 아니라, 소외되어 온 모계를 살리고, 더 나아가서 근본적으로 '가문'이라는 헛된 개념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고은광순, 2001, 프레시안)

이 취지에 따라 한때 부모 성 함께 쓰기가 유행처럼 번진 적도 있지만 요즘은 보기 드물다. 그래도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이름을 표시할 때 부모 성을 함께 쓰는 이들이 주변에 영 없지는 않다. 금속노조 경남지부에서 일하는 이김춘택 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90년대 후반 부모 성을 함께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이를 지키고 있다.

이김춘택 씨는 지금도 남성 지식인들에게서 왜 부모 성을 함께 쓰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별로 묻지를 않는다. 이름이 왜 그러냐고 물어도 그냥 부모 성을 같이 쓰는 겁니다, 하고 대답하면 대개는 그러시구나, 하고 끝이다. 하지만 남성 지식인들은 추가 질문을 많이 한다. 부모 성을 같이 쓰면 뭐가 어떻게 달라지느냐, 라든지 자식들은 성을 어떻게 하느냐, 라는 식이다."

우리나라가 다문화사회가 되면서 최근 부쩍 늘어난 외국인 창성·창본도 새로운 현상이다. 창성·창본이란 성씨와 본관을 새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법원통계월보를 보면 지난해 경남지역 법원 외국인 창성·창본 사례는 601건이다. 매달 50개씩 새로운 본관과 성이 생긴 셈이다. 올해도 지난 3월까지 100건이 넘어섰다.

이처럼 외국인 창성·창본이 활발한 것은 내국인보다 절차가 쉬운 까닭이기도 하지만, 한국 국적을 얻은 후 외국 이름을 그대로 쓰기보다는 한국식 성을 만드는 게 살아가기가 편한 때문으로 보인다. 그만큼 성씨제도와 관련해 우리나라 문화가 배타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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