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마창노동운동

옛 마산수출자유지역 후문 쪽에는 지금도 양덕시장을 비롯해 상가가 형성돼 있다. 이곳에는 여전히 수출 노동자들에 대한 기억을 안고 있는 이들이 있다.

양덕파출소 안쪽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함안갈비는 여기서 40년 된 집이다. 김순희(62)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는 갈빗집이 아니라 밥집이었거든요. 한 끼 500원부터 시작했는데, 한창나이 때니까 밥을 좀 많이 먹겠어요. 밥은 솥에서 알아서 무한정 떠먹도록 했죠. 밖에서 데모한다고 최루탄 터지고 그런데도, 식당 안에는 실습생들이 바글바글했죠. 라면 사 와서 자기들끼리 알아서 끓여 먹기도 하고…. 식권으로 받고 한꺼번에 정산하는 식이었는데, 외상값 안 받은 곳도 있어요. TC전자에 135만 원 받으러 갔는데, 노동자들이 데모하고 있더라고요. 전부 다 아는 얼굴들이지. 그런 상황에서 회사 들어가 돈 달라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와 버렸어요."

마산수출자유지역 후문 길 건너편에 형성돼 있는 상가. /남석형 기자

그때 단골 중 여전히 발걸음 하는 이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때 미남·미녀던 친구들이 이젠 쭈글쭈글해져서 찾아와요. 자기들끼리 '가스나야' '머스마야' 그러면서 옛날 이야기하기 바빠요. 무슨 모임도 있어서 40명에서 많게는 80명까지 단체로 오기도 해요."

인근에 있는 '소화집'이라는 식당도 노동자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여전히 장사하고 있지만, 식당 주인은 4~5년 전 바뀌었다고 한다. 김순희 사장이 대신 이렇게 전해줬다.

"지금 남아있는 데는 거기하고 우리 둘 정도죠. 소화집 옛날 사장님 있을 때는 좀 심하게 말하면 김치찌개 하나를 두고 30명이 먹을 정도로 양이 푸짐했어요."

마산수출자유지역의 긴 시간과 함께한 곳은 식당만이 아니다. 낡은 인쇄소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유인물 같은 건 여기서 안 찍고 음지에서 하지. 노태우 정권 들어서면서 인쇄물도 조금씩 양지로 나왔는데, 우리는 골치 아플까 봐 정치적인 건 주문 안 받았지. 그때 최루탄 터지면 셔터 내리고, 눈 밑에 치약 바른 채 일하기도 했고. 그래도 장사 방해된다고 그 사람들 싫어한 적은 없어. 좀 더 나은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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