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감성 품은 컨트리뮤직이 제 음악의 뿌리죠"

조용호. 32세. 가수.

'참 쑥스러움이 많은 친구네.' 처음 용호를 만나 몇 마디를 나눴을 때 든 생각이었다. 용호는 노래를 부를 때도 부끄러워했다. 그 크고 서글서글한 눈망울은 관객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바닥이나 천장을 향했다. 한데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부끄러움 속에도 빛나는 눈빛은 녀석이 누구보다 진지하게 음악을 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공연 뒤풀이에서 용호와 제법 많은 대화를 나눴다. 여기 그 이야기들을 풀어본다.

용호하면 함안이 떠오른다. 용호는 일부러 자신이 '함안 가수'라는 걸 강조한다. 함안이라는 지역성은 용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내 고향도 함안이어서 그런가, 그런 녀석을 볼 때마다 흐뭇하다.

"제가 최근에 함안에 관한 노래를 하나 만들었는데요. 제 노래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예요. 함안의 고향 정서를 가지고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함안의 '함'자는 다른 뜻도 많지만 가득할 '함(咸)'자에요. '안'자는 평안할 '안(安)'자예요.

영어로 하면 'Full Of Peace'. 평화로 가득한 함안이라는 뜻으로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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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기타 가수 조용호./강대중

당신은 가보았나 남쪽 나라에 지금은 버려진 곳에

따사로운 햇살 집집마다 수박이 열리는 곳

선조들의 정신이 서려 있는 곳 물살이 반대로 흐르는 곳

가는 곳 길거리 곳곳마다에 도심이 흘러 넘치네

여항산 언저리에 새 아침이 밝아 오르고

새벽은 지저귀며 이 내 몸을 일깨우는데

할머니는 지팡이를 쥐고 있지만 꾸준히 농사를 짓고

강아지는 밖에서 자라나지만 여유로운 하품을 하네

-<Full Of Peace, 함안> 가사 일부 - 조용호

"2014년은 많은 것을 배운 한 해"

지난해 용호는 유독 <개>라는 노래를 자주 불렀다. 부산 출신으로 이효리 앨범에도 참여한 유명 인디가수 김태춘의 노래다. 용호는 김태춘을 아주 존경하는데, 음악적으로 가장 닮고 싶어하는 가수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한동안 음악적으로 침체한 자신을 다독여준 노래가 이 <개>라는 노래다.

"존경하는 태춘이 형님 노래인데요. 제가 그동안 개같이 살았던 것 같은데 이 노래를 듣고는 개같이 안 살려고 애쓰고 있어요. ”

난 지금 너에게 묻고 싶어

왜 그리 개같이 사냐고

실패가 두렵니 고통이 두렵니 주님이 무섭니 배고파 죽겠니

넌 이제 너의 꼬릴 잘라버리고

안방의 주님을 물어뜯어

니 몸에 박힌 개털을 뽑아라

<개> 가사 일부 - 김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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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기타 가수 조용호./강대중

용호는 지난해 음악적으로 중요한 지점을 지나왔다. 대학 후배인 권나무와 함께 공연을 하며 음악적인 각오를 새로 다지게 됐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도 뚜렷하게 느꼈던 것 같다. 권나무는 지난 2월 한국의 그래미상으로 불리는 2015년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았다. 권나무로서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용호에게는 자신의 한계를 더욱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다들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좀 적당히 계속 정체된 사람도 있고 그래야 하는데, 같이 시작했던 사람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다 점점 발전하고 있어요.

권나무는 2년 동안 저보다 먼저 수련과정을 거쳐서 자기 스타일을 완성했어요. 저는 함안에서 넋 놓고 있다가 나무랑 같이 돌아다니면서 공연도 하곤 했는데요. 너무 서투르게 음악을 다시 시작하지 않았었나, 그래서 공연을 안 해야지, 부끄러우니까 그런 마음이 많이 들었죠.

그래도 지난해를 평가하면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음악을 다시 할 수 있었던 것,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 것도 좋고요. 거진 반은 외톨이처럼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제 음악에 관심을 두신 분들, 다들 보니까 다 자기 영역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줄 얘기들이 있는 거예요. 그게 2014년에 얻었던 거다 싶어요. 저도 진짜 제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최근 작업은 90년대 음악으로 돌아가는 과정"

용호의 음악은 '컨트리'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대중적이거나 상업적이지 않은 장르다. 용호가 최근에 만든 노래 중에 <블루요들 No 14>이란 곡이 있다. 이 노래 가사에 최근 음악과 관련해 용호가 품은 고민이 들어 있다.

"컨트리 음악을 공부해야지 하고 찾아봤는데 지미로저스라는 가수가 있더라고요. 처음으로 컨트리 음악 싱어송라이터로 대중적인 인기를 끈 분인데요. 컨트리 음악에 요들을 처음 도입했고요. 이분이 '블루요들'이라는 약간 슬픈 요들 시리즈를 13번까지 냈어요. 그래서 '나는 14번째다' 하고 요즘 분위기를 담아서 만들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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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기타 가수 조용호./강대중

나에게 어려운 길이었던가

어울리지 않는 옷인가

난 대체 모르겠네

나에게 쉬웠던 길은 어디로 가고

빈 주머닐 뒤적이나

세상에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춤을 추지만

난 하나도 재미없네

내가 찾았던 멋은 어디로 가고 긴긴 슬픔에 빠져 있나

<블루요들 No 14> 가사 일부 - 조용호

언제가 용호가 자신이 하는 음악의 뿌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펑크와 얼터너티브록인데 이런 요소는 드문드문 그의 노래에 드러난다.

"제 원류는 섹스피스톨즈(1970년대 등장해 펑크 음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록밴드)예요. 저는 얼터너티브 이런 거도 잘해요. 혼자 하기 그러니까 안 하지. 제가 어릴 때 엑스재팬 좋아하다가 섹스피스톨즈로 펑크에 눈뜨고, 너바나를 좋아하면서 90년대 문화를 느꼈고요. 거기서 블루스나 그런 걸 좋아하게 됐어요. 사실 약간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그런지(얼터너티브록의 한 장르, 너바나가 대표적) 한 음악이나 그런 음악들이 사실 저한테는 제일 맞는 음악임에도 뭔가 제 관념 속에서는 촌스러운 음악이 돼버렸던 거예요.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저한테 진짜 맞는 거는 진짜 90년대 음악이었어요. 지금은 제가 그런 (90년대) 음악으로 돌아가는 과정인 거 같아요."

"잠시 음악 접고 글을 써볼 생각"

용호는 지난 2월 말 마산, 진주, 김해 순회공연을 끝으로 긴 음악적 칩거에 들어갔다. 앞으로 공연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 '완벽한 자기 음악'에 대한 고집은 이해하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쉽기도 하다.

"물론 음악에 관한 관심은 계속 품고 있을 건데 공연은 안 하려고요. 지난해 쭉 공연들을 해봤는데 음악적인 한계랄까요. 그런 게 느껴졌어요. 저한테 음악이란 건 엄청난 충족감을 주는 거였는데 공연을 하고 나면 소진된 느낌만 있더라고요. 예술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은 다들 멋지게 음악을 잘 해내고 있었어요. 그렇게 잘하는 사람들을 제가 따라가지 못하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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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기타 가수 조용호./강대중

용호는 공연 대신에 새로운 분야를 발견했다고 한다. 글쓰기다. 계기는 엉뚱하게도 김해에 있는 카페 '재미난 쌀롱'에서 했던 철학강의였다.

"지난 연말 재미난 쌀롱에서 파자마 파티 같은 걸 했는데요. 전 무얼 할까 하다가 철학강의를 하게 됐어요. '개똥 조용호 선생 철학강의'라고, 3일 준비해서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공연할 때보다 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몇몇 분들은 깨달은 바가 크다는 말도 해주시고. 음악 할 때는 없던 자신감이 생기고, 진짜 내 것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이 분위기를 이어서 글을 써보려고요. 퍼뜩 든 생각은 논문을 쓰고 싶다는 건데요. '김태춘론'이요. 정식 논문 형식은 아니더라도 김태춘 형님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방면에서 살펴보고 싶어요. 노트에다 기록을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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