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 찾아 떠나는 탐매의 황홀함에 빠져보세요!

'천진스러운 태도에 단정한 얼굴, 하얀 치마에 깨끗한 소매, 우의와 예상으로 눈같이 흰 고운 살결, 옥 같은 얼굴에 윤이 흘러 산뜻하다.'

조선 초기 정도전이 <삼봉집>에서 매화의 모습을 읊은 내용이다. 매화꽃에 흠뻑 반한모양이다.

이런 얘기도 있다. 단원 김홍도는 끼니를 걸러야 할 만큼 집안 살림이 가난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나무를 팔려고 찾아왔다. 살 돈은 없었지만 김홍도는 그 매화나무가 썩 마음에 들었다. 이때 단원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단원에게 마음에 드는 그림을 청하고 사례로 3000냥을 주었다. 김홍도는 3000냥 중에 2000냥은 매화나무를 사고, 800냥은 여러 말이나 되는 술을 사다가 친구들 불러 매화 감상하며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고 한다. 남은 돈 200냥으로 쌀이랑 나무 사서 집에 들여놓았는데 세상에 하루 지낼 양식 밖에 되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곧바로 이혼 사유다. 김홍도 사모님 왈 "그러고도 '삼시세끼'를 찾는다니. 간이 배 밖에 나온 모양이군. 당장 나가시오."

또 퇴계 이황은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 유언을 남겼는데 유언 내용이 걸작이다. "매화에 물을 주거라"란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가히 매화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퇴계 이황과 같은 안동 출신이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중국 베이징 감옥에서 죽은 시인 이육사의 광야에도 매화 이야기가 등장한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학창시절에 많이 외웠던 시다.

매화꽃은 봄이 오는 것을 제일 먼저 알리는 꽃이다. 아주 이른 봄에 꽃봉오리가 터져 꽃이 피는 봄의 전령사 중 하나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선비들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며 우리 조상들 사랑을 듬뿍 받은 나무가 바로 매화나무다.

끼니 때우기도 힘들던 시절 매화 감상을 떠나는 이들은 대부분 양반가의 선비들이나 풍류를 즐길 수 있었던 시인 묵객들이었다. 이른 봄에 처음 피어나는 매화를 찾아 나서는 것을 심매(尋賣) 또는 탐매(探梅)라고 한다. 꽃송이에 살짝 코를 대보면 왜 매화를 찾아 나서는지를 한 순간에 느낄 수 있다. 오래된 매화나무 등걸에 고고하게 피어있는 꽃의 자태를 보면서 은은한 매향을 음미하다보면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 보낼 수 있다. 물론 시간과 여유는 찾는 이의 몫이다.

매화나무는 장미과의 갈잎 중간키 나무로 꽃을 강조한 이름이다. 열매를 강조하면 매실나무가 된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다른 나무보다 꽃이 일찍 피어서 꽃 중의 우두머리란 뜻으로 화괴라고도 부른다.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서 부르는 이름도 다르다. 일찍 핀다 해서 조매, 추운 날씨에 핀다 해서 동매,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라 부른다. 설중매는 술 상표로 더 잘 알려진 매화 이름이다. 꽃잎 색에 따라서도 다르게 부르는데 흰색 꽃이 피면 백매. 붉은 색 꽃이 피면 홍매. 꽃잎은 똑같이 하얗게 피는데 꽃받침 색이 초록색이면 청매, 팥죽색이면 백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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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넘게 살다 최근에 고사한 정당매./윤병렬

옛날 기생들 이름에도 아름다운 매화를 의미하는 이름이 꽤 많다. 춘향전에 나오는 춘향 어미 이름이 월매다. 그 외에도 옥매, 설매, 매향 같은 이름도 많이 사용했다. 매화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 중 대표적인 것은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출병했을 때의 일화다. 조조 군사들이 길을 잃어 무척 피곤해 할 때 아무리 둘러봐도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곳이라 군졸들이 모두 갈증을 못 이겨 도저히 더 행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지략이 뛰어난 조조는 큰 소리로 '저 산 넘으면 거기에 큰 매화 숲이 있다. 어서 가서 매실 따먹자'라고 외쳤고 매실 따먹을 생각한 병사들 입에 금방 침이 돌아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온 고사성어가 매화 '매(梅)', 수풀 '림(林)', 그칠 지'(止)', 목마를 '갈(渴)' 자를 써서 매림지갈(梅林止渴)이다.

매화나무 원산지는 타이완을 포함한 중국 동남부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쓰촨성, 후베이성 산악 지대에서부터 양쯔강 유역에 많이 분포한다.

중국 동남부와 한반도, 일본 등에도 매화가 분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데 주 분포지는 따뜻한 남쪽이다. 우리나라에 매화 얘기가 가장 먼저 나오는 자료는 고려시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다. 고구려 대무신왕 24년 8월에 매화꽃이 피었다란 기록이 실려 있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는 기원전에 매화가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 문신 강희안이 정리한 '양화소록' 매화 편에는 "매화는 운치가 있고 품격이 있어 고상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비스듬히 기울어 성기고 여윈 것과 늙은 가지가 기이하게 생긴 것을 귀하게 여겼다고 쓰고 있다. 강희안의 조부인 강회백이 산청 단속사에 심었다는 정당매는 600년 넘게 살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였는데 2013년 무렵에 안타깝게도 고사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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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단속사지 옆 운리야매./윤병렬

앞서 언급한 대로 매화나무는 주로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매화 축제가 열리는 광양시 다압면과 하동군에 가장 많이 심어져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매실은 맛이 시고 독이 없으며 기를 내리고 가슴앓이를 없애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또 갈증과 설사를 멈추게 하고 근육과 맥박의 활기를 되찾아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된 드라마 '허준'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 매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매화나무도 그 때부터 더욱 많이 심기 시작했다.

매화꽃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섬진강 매화마을 주변이다. 봄이 오면 섬진강 따라 양쪽 언덕이 온통 매화꽃 천지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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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남사마을 원정매./윤병렬

경남에서는 산청 남사마을, 단속사지, 남명 조식 유적지인 산천재 근처에 있는 600년에서 400년 된 산청 3매가 가장 유명하다. 산청 3매는 산청에 있는 정당매, 원정매, 남명매를 일컫는 별칭이다. 남명매는 남명 조식이 산천재를 지을 때 손수 심은 매화로 수령은 400여 년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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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 자장매./윤병렬

남사 마을에 있는 원정매도 600년이 넘은 매화인데 지금은 손자 매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김해건설공고에도 오래된 매화나무가 많기로 유명하다. 1927년 김해농업고등학교 개교 당시 한 일본인 교사가 심고 가꾼 것이다. 교문을 들어서면 줄지어 서있는 고매를 감상할 수 있다.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와 영취매, 구례 화엄사의 화엄매, 고성 옥천사의 홍매, 백매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매화들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읍성 근처에 있는 금둔사 홍매는 남도에서도 일찍 피기로 이름난 매화다. 홍매 외에도 100여 그루의 매화가 절 전체를 감싸듯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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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매화./윤병렬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 동쪽에 있는 선암사에는 620년생 무우전 백매(천연기념물 제 488호)와 550년생 무우전 홍매(천연기념물 제 488호)를 비롯한 100~300년생에 이르는 매화 30여 그루와 비교적 최근에 심은 매화 30여 그루가 어우러져 핀다. 3월 하순경에 활짝 핀 매화를 감상할 수 있고 때를 잘 맞추면 바람에 흩날리는 매화 꽃비를 만날 수도 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조금만 눈여겨 살펴보면 우리 사는 주변에서도 더러 매화꽃을 볼 수 있다. 아파트 화단, 도심 공원, 대학 캠퍼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볼 수 있고 동네 뒷산 기슭 밭에서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봄날 가기 전에, 매화꽃 지기 전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코를 벌렁거려 보면 의외의 장소에서 매화꽃, 매화 향기 만날 수 있다. 고고한 달빛 아래 은은하게 퍼지는 매화 향기 맡으며 막걸리 한잔 나누면 신선이 될 수도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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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홍매./윤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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