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1500년 전 문명 실증적 증거 인정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 등재

지난 2013년 12월 11일 김해·함안 가야고분군(Gaya Tumuli of Gimhae·Haman)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Tentative List)으로 등재됐다. 이 목록에 1년 이상 올라 있는 유산만 세계유산(World Heritage)으로 신청할 수 있다.

"약 1500년 전에 만들어진 고대국가 가야 문명의 실증적 증거이며,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여러 고대국가의 발전 단계와 교류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역사·문화적 가치가 매우 큰 유산이다. 또 가야 당시의 원형을 지금도 잘 보존·관리하고 있다는 점 등을 인정받았다."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이런 고고학적인 유산 이외에 국내 문헌학 연구를 살펴봐도 가야 여러 나라 중에서 김해 가락국, 함안 안라국은 단연 돋보인다. 중국 역사서 <삼국지>에도 이름이 보이고, 광개토대왕비 중 남정(南征) 기록에 등장하는 가야 국가도 이 두 나라다.

◇가야의 '상징'이 된 김해 가락국 = 우선 가야, 하면 김해를 떠올릴 정도로 김해 가락국은 많이 알려졌다. 문헌 자료가 비교적 풍부하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가 대표적이다. 특히 알에서 태어났다는 김수로왕과 인도 쪽에서 바다를 건너와 김수로왕과 결혼한 허 황후 이야기는 누가 봐도 매력적인 설화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 옆 가야인들을 형상화한 조형물.

기원후 42년 가락국이 성립하기 전까지 김해지역에는 9개 촌락이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이른바 9칸(干) 시대다. 청동기를 쓰며 살던 이들 앞에 철기 문화를 지닌 강력한 외부세력이 등장한다. 김수로 집단이다. 여기에 또 다른 외부세력인 허 황후 집단이 가세한다. 이후 가락국은 김수로왕을 대표로 하는 강력한 중압집권 체계가 형성된다. 김해 대성동 고분 발굴로 김해 가락국이 적어도 4세기까지(최근 발굴 결과는 이를 5세기 중엽까지로 보기도 한다) 가야 문화권을 대표할 만큼 큰 세력을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김해 지역은 철 생산이 풍부하고 대외 교역이 편리한 항구(지금 김해평야는 당시 모두 바다였다)였다. 가락국은 고대 중국, 한반도, 일본 지역을 아우르는 중계 무역 국가로 번영했다.

김해 봉황동 유적지에 재현한 가락국 건축. /이서후 기자

그렇다고 김해 가락국이 당시 모든 가야 국가를 지배했다는 뜻은 아니다. 1970년대 이후 고고학적 발굴은 고령, 함안, 합천 등 경남 내륙 지역에서도 강력한 정치 집단을 입증할 만한 유적과 유물을 찾아냈다. 하지만 김해 가락국은 적어도 동시대 가야 나라들 중 가장 발전하고 세력이 큰 '선진국'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해 가락국 철판갑옷.

◇가야 시대 꾸준한 강대국, 함안 안라국문헌 자료가 풍부한 김해 가락국이 가야 대표 주자로 주목을 받으면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게 함안 안라국이다. 기원 전후에서 6세기에 이르는 가야 역사를 4, 5세기를 기준으로 전기, 후기로 나눈다. 학자들은 전기 대표 주자를 김해 가락국, 후기는 경북 고령 가라국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전기와 후기를 통틀어 꾸준하게 강대국이었던 게 함안 안라국이다. 경남 사람들에게는 '아라가야'로 많이 알려졌는데, 김해 가락국을 '금관가야'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두 신라말에서 고려 초에 붙여진 이름이다.

함안안라국 굽다리 접시.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말산리에 있는 말이산 고분군은 안라국 역사의 보물 상자다. 말이산 고분군은 일제강점기부터 발굴을 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일본이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해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 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고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하였다는 설이다. 이는 <일본서기>란 일본 고대 역사서에 기초한 생각이다. 이 책에 꽤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안야'다. 안라국의 이전 이름이 '안야국'이었다.

함안 안라국 덩이쇠.

역설적으로 <일본서기>는 안라국이 그 당시 일본에 얼마큼 큰 영향을 주었는지 증명한다. 학자들은 안라국이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가야 문화권을 위협하자 왜(倭)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이용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안라국은 가야 나라들 중 외교 역량이 뛰어났다. 6세기 백제, 신라의 압박에 맞서고자 가야 국가 대책회의를 주도한 것도 안라국이었다. 이른바 고당회의(高堂會議)다. 당시 가야에 우호적인 왜의 사신들이 주로 머물던 곳이 안라국이었다.

말이산 고분군에서 나온 불꽃무늬토기는 안라국을 대표하는 토기다. 이 토기는 불꽃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함안 안라국의 역사를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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