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슬까슬 너그 집 볕

 포실포실 우리 집 볕

 손바닥으로 싹싹 긁어서

 생선장수 울 엄마 언 발밑에 깔아줬으면

 시장바닥 금산댁 시린 등허리에 둘러줬으면

생선장수 금산댁(77). '금산띠'로 불렸다. 내리 딸 넷을 낳고 서른둘에 아들 하나 얻고 신이 나서 어떤 일이든 마다치 않고 나섰단다.

경남 진주시 천전동 남강유등체험관 앞. 낡은 담부락에다 알록달록 그림을 그려놓았다. 이 동네는 해마다 10월이면 '축제병'을 앓는다. 남강유등제, 개천예술제 등 연일 계속되는 축제의 중심 장소가 이곳 동네 앞을 흐르는 남강과 둔치이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담부락 앞 좁은 평상에 예닐곱 명 할매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다. 볕살이 좋은 건지 옆에 앉은 동무의 체온이 좋은 건지 흐뭇한 얼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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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전동 할매들은 하루 온종일 붙어있다가 해가 져야 집으로 돌아간다./권영란 기자

 "어머이 참 예삐네예."

 "머시라꼬? 쭈글쭈글 할매들이 머시 예삐?"

 구박하듯 그리 말을 내뱉지만 얼굴에 있던 엷은 웃음은 금세 함박 터졌다.

 "어머이 택호가 머시라예?"

 "그건 말라꼬?"

 "이름은 안갈차주끼고 다들 택호는 말해주데예."

 "저는 하동띠, 저게는 합천띠, 저 뒤는 금산띠, 요기 할매가 머시더라…."

거제띠, 경주띠, 삼천포띠…. 참 오만 데서 시집왔다. 사전적으로는 이름 대신에 집주인의 벼슬이나 고향 동네 이름을 붙여서 그 사람의 집을 부르는 말이다. 택호가 처음 쓰일 때는 양반 세도가들 사이에 나왔을 것이다. 반상 구분 없는 세상이 되었을 때 너도나도 택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단다. 예를 들면 안주인의 친정 동네 이름을 붙여 ○○댁이라하는데 이 경우 그 집 바깥주인은 ○○양반이라 불렀다. 안주인이 금산댁이면 바깥주인은 금산양반이 되는 것이다. 처음 쓰임새와는 달라졌지만 그러고 보면 택호는 안주인이 일 순위다. 한국 사회에서는 좀체 없는 일이다.

 "어매는 오데서 왔는데예?"

 옆 동무들 택호는 일일이 말해주고는 자기 택호는 말하지 않는다.

 "아이고, 와 자꾸 물어보노? 내는 요띠다. 요띠~"

 그래놓고는 요띠도 하동띠도 거제띠도 다들 마구 웃고 있다.

 '요띠? 요가 어디지?' 아하, 정말 아주 잠시였다.

 "요서 나고 요서 시집? 평생 요기서 산 기라예? 아이고. 에나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난다예."

택호로 시작한 이야기는 소설 12권 파란만장 이야기로 이어진다. 예닐곱 할매들이 점점 불어 열두어 명이 될 때까지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금산띠 이야기에 이어 하동띠 이야기로 합천띠 이야기로.

 "아이고 인자 갈랍니더. 담에 더 해주이소. 근데 어머이 집에 안 갑니꺼?"

 "아직 해가 한참 남았다아이가."

 천전동 할매들은 좀 많이 예쁘다. 오데가 예쁘냐고 섣불리 묻지들은 말길. 딱히 답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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