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는 내 작업, 그림책을 드러내고 싶어요"

이성륙. 28세. 화가.

나는 성륙이의 웃음이 좋다. 그가 큰 입으로 활짝 웃으면 하얀 치아가 눈부시게 드러난다. 그러면 주변이 순식간에 환해지는 느낌이다. 성륙이가 웃을 때마다 이 세상에 꽃 한 송이가 피어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평소 성륙이 태도는 아주 조용하고 진지하다. 성륙이가 가만히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고 있으면 녀석이 20대 청년인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그가 지금까지 어떤 경험들을 해왔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가로수길에 있는 카페 '래티튜드 25(Latitude 25°)'. 카페 3층에 조그만 다락방이 있다. 창원시 1인 창조기업으로 등록된 출판사 '콩밭' 사무실이다. 이곳에 성륙이가 깃들어 작업을 한다. 2월 어느 날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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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륙 화가

(그가 음악을 튼다.)

"판소리에요. 어제 찾아낸 음반입니다. 이화중선이라고."

-성륙이는 국악을 좋아하는구나.

"예, 하지만, 걸 그룹도 좋아합니다."

-그렇군. 음악은 국악을 틀어놓고 영상은 걸 그룹보고 있나?

"그렇죠. 걸 그룹은 영상입니다. 형님."

(우리는 가만히 판소리를 듣고 있다.)

"근데 국악은 온종일 계속 듣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김현식 노래 같은 것도 계속 듣기 어려운 거잖아요. 편안한 연주곡 같으면 그럴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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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륙 화가

-요즘 뭐하노?

"그림책 만들고 있어요. 별아가씨란 제목인데, 작업은 다했고 그거를 전자화하는 거죠."

(별아가씨는 출판사 콩밭이 만드는 첫 번째 앱북 그림책이다.)

-콩밭 작업실이 언제부터 여기였노?

"원래 콩밭은 재작년부터 시작했고요. 1인 창조기업으로 마산합포구청 앞에 창원시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에 있다가, 지원 기간이 끝나서 알아보던 중에 일 년 전쯤에 여기 사장님이 힘들면 여기서 하라고 이야기해주셨어요."

-작업실 맘에 드나?

"공간은 아주 맘에 듭니다. 제가 아무래도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지하에 있으면 종이가 울거나 그래서 힘든 부분이 있거든요. 창원, 마산은 1층에 작업실 구하기 어렵고요. 이 정도면 그림 그리기에는 적당합니다. 무엇보다 여기는 바닥에 누울 수 있어서 좋아요."

(사실 나는 누워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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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륙 화가의 작업방.

-요즘은 책 작업만 하나?

"거의 그런 것 같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출판사 자체 작업 같은 것도 있어서 제 개인 작업과 병행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림책 만드는 거 좋나?

"그림책은 정말 매력적이고 재밌은 게 같아요. 분야가 일반 회화랑도 좀 다르고요. 회화는 한 장면으로 끝나지만, 그림책은 다음 장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어요. 글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하고. 만화랑도 또 달라요. 되게 재밌는 거 같아요. 지금은 그림책에 빠져 있다고 봐야죠. 어릴 때부터 그림책에 대한 꿈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이거 하느라 수입이 없어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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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륙 화가

-돈은 어찌 버노?

"연락 올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하죠. 미술 수업이나 작업 같은 거. 정 안되면 단기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해요. 밥값 등 들어가야 할 돈이 있으니까. 최근에는 장기 아르바이트를 구해야지 하면서도 그림책 작업 때문에 못하고 있어요. 장기적으로 그림책 출판이 어느 정도 수입이 되면 좋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부업처럼 되었으면 좋겠어요."

-요새도 술 많이 먹나?

"술자리가 계속 있는 거 같아요. 하하하."

-술을 왜 그리 좋아하는데?

"술이요…, 내성적인 성격이라 술을 먹으면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멀쩡한 정신으로 얘기하는 게 어색하구나.

"예, 좀 어색해하는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술 마신 다음 날 다시 만나면 또 어색해지나.

"그렇죠. 그렇게 되더라고요."

"형님, 근데 요즘에 술 먹으면 말이 많아지더라고요. 그게 왜 그러나 싶었더니 외로워서 그렇더라고요."

-친구가 많이 없나?

"없어요. 근데 최근에 많아지긴 했어요. 요즘에 느끼는 거긴 한데 애써서 인간관계를 맺지 말아야겠다 싶어요. 제가 사람을 넓게 사귀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또 아무리 친한 분이라도 연락을 먼저 하는 성격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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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새, 호랑이./이성륙 화가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좀 타는 편이가.

"제 외로움은 혼자 있다거나 여럿이 있다거나 그런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외로움은 보통 사람 만큼 타죠. 보편적인 수준인 거 같아요. 제 경험으로는 정말 외로움을 안 탈 것 같은 분도 외로움을 많이 타시더라고요. 누구나 저만큼의 외로움은 느끼고 사는 것 같아요. 어찌 됐거나 안 외로울 수는 없으니까 차라리 술을 좀 적게 먹으려고요."

-니 말투가 조곤조곤해서 그런가 니가 좀 느린 이미지가 있다.

"느리진 않아요. 근데 느리게 살려고 노력해요. 뭐든 빨리하려고 하면 실수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작업할 때도?

"작업도 좀 급하게 하는 편인데요. 어떤 분이 제 그림 보고, 다 좋은데 선이 너무 급한 것 같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 말을 그렇게 의식은 안 하는 데 작업도 좀 천천히 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대학교 다닐 때는 일부러 급하게 작업을 해보기도 했는데 급하게 하면 급하게 한 느낌이 나더라고요."

(아버지. 어느 날 성륙이는 아버지가 스님이라고 고백한 적 있다.)

-아버지 얘기해도 되나?

"숨길 이야기는 아니지만 너무 개인적인 얘기는 싫어요."

-아버지가 언제 스님이 되셨노?

"제가 중학교 때 출가하셨어요. 어릴 땐 원망도 했지만 지금은 도움이 많이 됐다 생각해요."

-어떤 부분에서?

"아버지가 직접 가르쳐 주신 거는 없지만 덕분에 종교적으로 사상적으로 불교에 관심을 두게 된 거 같아요."

-그림은 언제부터 그맀노?

"어릴 때 형 따라 그림 그리기 시작했죠. 만약 형이 그림 안 그리고 음악을 했으면 저는 지금 음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우리 형이 저보다 예술적 재능이 더 뛰어납니다. 형 중학교 때 그린 그림을 지금 제가 봐도 감각이 있어요."

-형이 공부를 잘했나?

"잘했지요. 맏이라서 책임감을 느껴 그런지 그냥 공대 들어가서 취업해서 서울에 있어요. 지금은 다시 글쓰기나 예술 쪽으로 관심을 다수 두는 것 같아요."

(성륙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얼마 전에 문득 다시 느낀 건데, 저는 그림 그릴 때가 좋더라고요. 광적으로 좋다, 뭐 그런 건 아닌데 마음도 편안해지고, 행복한 순간 중에 하난 거 같아요. 물론 안 행복할 때도 그림을 그리긴 하지만.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야 뭐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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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이성륙 화가

(성륙이는 지난해 밀양 송전탑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사회 참여 활동에 관심이 많나?

"그동안 전혀 관심도 없고 무지하기도 했었어요. 지나치게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작업을 하는 건 싫지만, 밀양송전탑 같은 건 현실적으로 저한테도 피부로 느껴지니까. 그림으로 꼭 사회적 참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는 아니지만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하게 될 거 같아요. 제가 실제로 느끼는 게 있으면 그걸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겠죠."

(성륙이는 지난해 전시회를 열 때도 그렇고 이번 그림책에도 자기 이름 대신 '이사람'이란 말을 쓴다.)

-왜 이사람이야?

"그림책 할 때 쓸려고 지은 건데요. 그냥 필명으로, 크게 의미는 없는데 안 튀는 이름으로 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보편적인 이름 같은 걸로 지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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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이성륙 화가

-제가 안 드러났으면 싶었거든요. 나중에 혹시나 유명해 지더라도 얼굴 같은 거 공개 안 하려고 했는데 근데 어느 작가 분이 이미 그러고 계시더라고요. 제가 얼굴 공개 안 하면 이분 따라하는 것 같긴 한데, 아무튼 확실히 제 이름이나 다른 개인적인 부분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신 제 작업만 드러나면 좋겠어요. 제가 또 잘 휘둘리는 성격이어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러면 작업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을 거 같아요. 될 수 있으면 조용하고 편하게 있고 싶어요."

(성륙이는 자주 이렇게 인터뷰해서 어디에 쓸거냐고 물었다. 여기에 이런 식으로 쓴단다, 성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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