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굽기만 하면 되는 감자

감자구이

감자는 원래 여름·가을이 제철이지만 품종 개량으로 사시사철 먹고 있다. 강원도 일부와 제주도에서 재배하는 겨울 감자가 대표적이다.

물론 '개량'이 꼭 좋은 결과만 낳는 건 아니다. 찐득함이 강한 '수미'라는 품종이 시장과 농가를 평정하면서 푸슬푸슬한 식감을 자랑하던 '남작'은 만나기 어려워졌다.

감자구이는 그럴 듯하게 분위기를 잡고 싶을 때 메인 요리를 뒷받침하는 음식으로 제격이다. 밥반찬으로도 훌륭하지만 스테이크나 와인·맥주에 곁들이면 더없이 잘 어울린다.

만들기도 쉽다. 감자를 적당히 썰어 구우면 끝인데 무슨 레시피가 필요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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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동우 기자

그래도 지켜야 할 디테일이 있다. 우선 감자는 '껍질째' 썬다. 구워진 껍질의 식감이 최종적인 맛에 꽤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12~16등분 정도면 적당하다. 감자 크기가 작고 좀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다면 2~4등분도 상관없다.

자른 뒤에는 10분 정도 삶아야 한다. 생감자를 프라이팬에 올리면 잘고 얇게 손질하지 않는 한 속까지 익히기 어렵다.

삶을 때는 끓는 물에 감자를 넣는 게 아니라 찬물에서부터 시작한다. 중·약불을 유지하며 삶고 소금도 넣지 않는다. 감자 겉 부분의 과도한 익힘과 부서짐을 막기 위함이다.

이제 굽기다.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른 프라이팬에 물기를 제거한 감자를 올린다. 불은 중불에서 시작해 약불에서 오래오래 굽는 게 알맞다. 센불은 겉면만 타기 십상이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감자 각 면이 갈색 빛이 돌 정도까지 요리조리 뒤집어가며 구우면 보통 30분 이상 걸린다.

까다롭게 생각할 것은 없다. 다른 음식 만드는 와중에 틈틈이 뒤집기만 하면 된다. 30분 뒤에 근사한 요리 2개가 탄생하는데 주저할 게 무엇이랴.

간은 소금으로 한다. 감자 각 면에 골고루 간이 밸 수 있도록 중간중간 뒤집는 시점에 세 차례 정도 흩뿌린다.

다 됐다 싶으면 통후추 갈은 것과 파슬리 적당량으로 마무리한다. 일부에선 이 타이밍에 버터를 듬뿍 넣어 고소함을 더하기도 하지만 권하고 싶지 않다.

이런 식의 감자구이는 사실 튀김, 오븐구이와 유사한데 팬이라고 맛이 밀릴 것은 없다. 튀김기름 뒤처리와 오븐 청소 등을 감안하면 장점이 외려 많다.

시래기된장국

그러고 보니 시래기(무청 말린 것)야말로 진정한 인내의 음식이다.

늦가을~초겨울부터 한두 달은 그늘에서 말려야 탄생하는 게 시래기고, 볶음이든 국이든 조리하려면 10시간 정도는 찬물에 담가 불려야 하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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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동우 기자

말릴 때 일교차, 햇볕 차단 등 신경 써야 할 것도 많다. 밤과 낮 기온 차가 클수록 맛이 좋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불릴 때도 챙길 게 적지 않다. 중간중간 물을 갈아야 잡냄새가 사라진다. 탁한 물이 안 나올 때까지 간다.

끓는 물에 삶고 뻑뻑한 겉껍질을 '일일이' 벗기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래야 부드러운 시래기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미리 불려놓은 시래기를 구입해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믿어선 안 된다. 그대로 요리했다간 너무 질겨 제대로 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잘 불렸으면 9분 능선은 넘은 것이다. 좋은 육수만 있으면 시래기된장국은 다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멸치다시마육수를 추천한다. 찬물에 마른멸치와 다시마, 으깬 마늘을 넉넉히 넣고 끓이면 충분하지만 취향에 따라 북어(머리), 마른고추, 양파 등을 더해도 좋다. 멸치다시다 같은 화학조미료를 쓰면 편하긴 하겠지만 맛이 천양지차라는 사실만은 알아두자.

팔팔 끓는 육수에 된장을 버무린 시래기를 넣으면 되는데 양 조절이 고민이겠다. 대략 육수 7컵일 때 시래기 300~400g, 된장 1~2큰술 정도면 적당한 것 같다. 싱겁다 싶으면 막판에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되니 너무 짜지 않게만 하자.

잊은 것 없냐고? 다진 마늘? 흔히 된장과 다진 마늘을 함께 시래기에 버무리지만 이미 육수를 우릴 때 마늘을 썼으니 필요 없다. 국물이 지저분해지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이런저런 레시피를 보면 무슨 요리든 다진 마늘이 빠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일종의 습관이고 관성이다. 마늘 맛을 좋아하면 육수 우릴 때 많이 넣으면 된다. 즙을 내거나 2~4등분 해서 쓰는 방법도 있다.

시래기가 완전히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이면 된장국 완성이다. 20분가량이면 충분할 것이다. 바로 먹는 것보다 몇 시간 정도 두었다가 먹으면 시래기에 간도 배고 더 맛있어지니 참고하도록 하자.

먹기 전엔 송송 썬 대파도 약간 올린다. 매콤함을 원하면 청양고추를 더하면 된다.

맛이 어떤지. 해장에도 좋고 아침·점심·저녁 가릴 것 없이 어느 때나 잘 어울리고. 시래기된장국에 김치 몇 조각이면 든든한 식사로 모자람이 없다.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하찮은 식재료로 여겼지만 지금은 건강식으로 대접받는 시래기다. 있는 사람들은 이런 음식을 먹고 여전히 없는 자들은 인스턴트 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고. 세상이 좋아지고 있는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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