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 없는 경남은 모터사이클 라이더의 천국

우리가 봄을 기다리는 까닭

1월3일은 올해 첫 토요일이었다.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서울, 경기, 강원, 충청지역, 그리고 경북 북부와 호남 서해안지역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은 더욱 그렇다.

한겨울에는 수시로 눈이 내리고, 기온이 영하에 머무는 날이 많아서 모터사이클을 타기 어렵다. 눈이 내린 날 모터사이클을 타는 것은 거의 미친 짓에 가깝다. 두 바퀴로는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 멀리 가지 못한다. 눈이 녹은 뒤에는 모래가 문제다. 도로관리기관에서 뿌려놓은 모래는 모터사이클을 안전하게 운전하는데 크게 방해가 된다. 바퀴를 미끄러지게 하기 때문이다. 도로에 뿌려놓은 모래는 이듬해 봄까지 라이더를 위협한다. 한바탕 제법 많은 비가 쏟아지고 나서야 노면이 말끔하게 청소된다. 그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살점을 떼어내는 듯한 추위도 모터사이클을 타는데 방해꾼이다.

가끔 이런 우스개 질문을 받는다. "진정한 모터사이클 마니아라면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달려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너무 추우면 안전에 문제가 생겨서 타기 어렵다"라고 대답하고 넘기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한 번 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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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안 타본 사람들은 모른다. 얼마나 추운지.

영하 날씨에 바람까지 불고, 구름까지 낀 날은 최악이다.

가죽 장갑은 물론이고 고어텍스 등 고기능성 소재로 만든 장갑을 껴보지만 온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손가락이 아파지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감각이 없어진다. 손가락이 제자리에 붙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돼버린다. 체온도 급격하게 떨어진다. 외부에 노출된 채 시속 80~100km로 달리기 때문에 여러 겹 옷을 껴입어도 한기가 파고들거나 체온을 외부로 뺏겨서 덜덜 떨게 된다.

헬멧을 쓰지 않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 헬멧을 쓰지 않으면 우선은 찬바람에 눈물이 흘러서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둘째는 귀가 시려서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셋째는 머리로 체온이 다 빠져나가서 금세 동태가 된다.

이렇게 체온이 떨어지고, 손가락에 고통이 느껴질 정도가 되면 운전을 하는데 집중력이 크게 떨어져서 안전운행을 위협하게 된다. 이런 지경에 되면 "왜 하필 이런 날 끌고 나와서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을까?"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면서 후회를 하게 된다.

그래서 북쪽지방 라이더들은 겨울 동안은 모터사이클을 타지 않는다. 모터사이클에서 배터리를 분리해 따로 보관하고, 모터사이클은 전용 덮개나 비닐 등을 씌워서 겨울잠을 재운다.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은 이것을 '봉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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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경남을 부러워하는 까닭

하지만, 경남처럼 한겨울에도 비교적 영상 기온인 날이 많은 남쪽지방 라이더들은 봉인을 하지 않는다.

경남은 한겨울이라도 기온이 영상인 날이 많고, 영하로 떨어지더라도 한낮에는 영상으로 올라가는 날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경남은 라이더들에게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서울 등 북부지방 라이더들은 경남지역 라이더들을 부러워한다. 내 블로그 이웃들도 그렇다.

올해도 우리 산천을 모터사이클과 함께 달리는 나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1월3일 그 첫 번째 여행을 했다. 클럽 '블랙라벨'의 단체 여행이었다. 전국의 클럽은 통상 3월쯤에 시즌 오프닝 여행을 하지만, 봉인이 없는 우리 클럽은 새해 벽두부터 '달림질'을 시작한 것이다.

투어 목적지는 합천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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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결지는 함안군 가야읍의 한 편의점 앞이었고, 9시30분에 집결해 10시에 출발하기로 약속되어 있다. 한 달에 한두 차례는 하는 투어지만, 언제나 설렘과 기대 때문에 그 전날 밤잠을 이루지 못해 늦잠을 자기 일쑤다. 이번에도 그랬다. 허겁지겁 옷을 챙겨입고 BMW R1200 RT의 시동을 걸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오고 나서 2분쯤 후에 계기판을 봤더니 기온이 -5도라고 표시되어 있다. 제법 추운 날씨다. 이런 날씨에는 조심해야 한다. 물기 있는 노면이 얼게 되면 굉장히 위험해진다. 이럴 때는 속도를 줄이고 노면을 상태를 주시하면서 달리는 수밖에 없다.

창원시 내서나들목 앞, 마산대학, 산인 고개를 지나는 1004번 지방도를 타고 가야읍으로 달렸다. 거의 출발시각에 딱 맞춰 집결지에 도착했다. 회원들의 장난기 어린 비판을 받았다. "학교 다닐 때 보면 말이야, 집 가까운 사람에 항상 지각한단 말이야."

작년 말 송년회 때 나는 임기 2년을 마치고 클럽 회장 자리를 넘겨주었다. 출발 시각에 새 회장님이 간단하게 주의사항과 당일 일정 등을 브리핑하고 출발했다. 10여 대의 모터사이클이 의령을 지나 합천으로 달렸다. 의령읍을 거쳐 20번 국도를 타고 대의면까지 가서 33번 국도로 갈아탔다. 20번 국도의 대의고개 구간이 이번에 4차로로 확장되면서 고개 아래 터널이 개통됐다. 그래서 고개 위로 가지 않고 시원하게 뚫린 새 도로를 타고 달렸다. 대의고개 구간은 굴곡이 심해서 사고 위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살짝살짝 코너를 탈 수 있어 나름 재미가 있는 구간이다. 또 고개 정상에는 휴게소가 있어 쉬어가기에도 좋은 곳이다. 이제 터널이 개통됐기 때문에 일부러 고개 위로 가지 않는다면 다시 갈 일이 없게 됐다.

산청에서 합천을 거쳐 경북 고령군까지 이어지는 33번 국도도 대부분 구간이 4차로 확장 공사가 완료됐지만 삼가면 구간은 아직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구간 공사가 완료되면 의령·합천 등 경남 내륙 지역 간 이동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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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이나 그늘이 많은 도로는 결빙구간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굴곡이나 그늘이 많은 좁은 도로를 피해 큰길로만 달렸다. 그것이 사고 위험을 줄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길에도 위험은 도사리고 있었다. 합천읍에서 합천댐으로 향하는 길은 100리 벚꽃길로 유명하다. 4차로로 정비도 잘 되어 있다. 영상테마파크를 지나 댐 수문 쪽으로 가는 길 중간에 언덕에서 흘러내린 물이 도로에까지 흘러서 결빙된 구간이 갑자기 나타났다. 다행히 맨 앞에 달리던 회원(로드 마스터)이 이를 빨리 보고 속도를 낮추라는 수신호를 해줘서 모두 안전하게 지났다.

12시쯤 합천호에 도착했을 때는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 있었다. 하늘도 맑아 쾌청한 날씨였다.

합천호의 청명한 기운을 받고 귀갓길로

점심은 합천호 맛집 황태 마을에서 먹었다. 식당 황태 마을은 합천군 대병면 회양리 회양관광단지 안에 있다. 황태구이와 황태찜이 대표 메뉴다. 이 식당이 어떤 연유로 황태를 주메뉴로 삼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근에서는 꽤 유명한 식당이다. 경남 도내는 물론이고 대구, 부산지역 모터사이클 라이더들도 많이 찾는다.

황태구이는 그리 맵지도 짜지도 않고, 달달한 맛이 느껴진다. 육질은 부드럽다. 큰 것 한 접시면 2~3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보통 이 식당을 찾은 사람들은 황태구이와 황태찜을 같이 주문하는데 대부분은 다 먹지 못하고 남기게 된다. 그래서 식당 주인에게 얼마나 주문하면 좋겠는지 물어보고 주문하는 것이 도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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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마당에서 합천호의 청명한 기운을 받는다. 호수와 하늘이 모두 파랗다.

건너편에 댐 수문과 물 문화관이 보인다.

합천댐은 1984년 4월 공사를 시작해 1988년 12월 말에 준공된 다목적댐이다. 물을 가두어서 전력을 생산하고, 하류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홍수조절기능을 기본으로 한다. 높이 96m, 길이 472m다. 댐에 가보면 100m 아래 까마득한 높이를 체감할 수 있다. 댐 길이는 500m에 가까운 것으로 나와 있지만 실제 달려보면 그보다 훨씬 짧게 느껴진다. 높은 곳에 있다는 긴장감 때문일까? 아니면 주변에 보이는 풍광 때문일까?

본댐에서 하류 쪽으로 가면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영상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있고, 그 앞에 보조댐이 있다. 이 보조댐은 아침에 피어오르는 안개로 유명하다. 사진·영상 작가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겨울에는 날도 빨리 저문다. 김해 집까지 가야 하는 회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씩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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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 길에 올랐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인 것처럼 복귀도 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달려왔다. 의령읍에서 쉬기로 했다. 함안군 군북면과 의령군 의령읍을 경계 짓는 것은 남강이다. 이곳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카페가 하나 있다. 라이더들은 이곳에서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하지만, 남자들의 수다도 만만치 않다. 이야기의 주제는 주로 모터사이클이지만 그것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커피는 '할리데이비슨 다이나슈퍼글라이더'라는 새 애마를 장만한 회원이 쐈다. 막걸리를 한 통 사와서 간단하게 고사를 지냈다. 보이지 않는 신에게 안전을 비는 것이다. 미신을 믿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2015년 클럽 첫 투어의 공식 일정이 마무리됐다.

올 한 해도 부디 나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져서 마음껏 달릴 수 있는 행복이 허락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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