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곧 도시이야기다

도시 이야기가 도시 마케팅의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난 글에 강조했다. 이야기가 갖는 본질적인 의미에도 맞지 않고, 그런 프로젝트를 수행할 만한 힘을 가진 도시가 세계적으로도 몇 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통해 마케팅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특히 역사적인 콘텐츠로 도시의 매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고증 등의 학술연구에 들어가는 비용과 역사콘텐츠의 복구 및 유지보수에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수준이 상당하지 않고 어설프다면 대외적인 인지도를 높이기는커녕 방문객의 조롱만 사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우리나라 도시 중에 이같은 투자를 자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곳은 서울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대부분의 도시가 중앙정부 예산에 목을 매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도시 이야기의 대상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외부인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야기를 가공할 것이 아니라, 내부인인 시민이 공감할 수 있는 '자기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야기의 본질적인 의미로도 그것이 맞다.

내가 사는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는 어떤 곳인가? 우리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현재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가? 도시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가? 이 도시에 사는 것이 희망적인가 비관적인가? 후손들도 이 도시에서 살게 할 것인가 떠나게 할 것인가? 이 같은 질문들에 대답하는 것으로부터 도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이 질문과 해답을 찾는 과정은 오롯이 도시정치와 직결된다. 도시의 리더십을 형성해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 좌표를 설정하며, 현실적인 장애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정치활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이야기의 골간은 도시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상당수의 옛날이야기도 따지고 보면 그 당시의 정치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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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 불가능한 도시이기에 정치가 중요

하지만 꼭 이런 사람이 있다. 정치라고 하면 손사래부터 치는 사람. 정치는 권력을 얻기 위해 언제든지 말과 태도를 바꿀 줄 아는 부도덕한 사람이나 하는 것 쯤으로 여기는 사람. 나아가 정치에 무관심하고 문외한인 것을 이 시대의 교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러나 백이숙제처럼 수양산에서 고사리로 연명할 작정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도시에서 계속 살겠다면,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시는 자급이 불가능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식수와 식량, 그리고 에너지 거의 대부분을 배후지에 의존한다. 배후지로부터 식수, 식량,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생길 때 도시는 순식간에 생존 자체가 위협 받는다. 

도시에 '힘'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후지를 넉넉하게 확보하고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할 리더십이 필요하다. 기존 배후지가 공급지로서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는 새로운 배후지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때 무역과 외교적인 방법이 주로 사용되지만, 드물지 않게 무력 시위와 전쟁 같은 폭력적인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지난 순서에 소개했던 신자유주의도 20세기 말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세계의 메트로폴리탄들이 새로운 배후지를 확보하기 위해 국경을 무력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진행된 다양한 형태의 자유무역협정(FTA)은 무역 장벽을 최대한 낮춰 서로가 서로에게 배후지가 되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그 효과가 얼마나 호혜적일지에 대해 논란이 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역 차원에서도 배후지 확보를 둘러싼 갈등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식수를 둘러싼 도시간의 갈등, 교통망을 보다 유리하게 끌어오기 위한 갈등, 덩치를 키우려는 쪽과 유지하려는 쪽의 갈등이 하루가 멀다하고 분출되고 있다. 특히 자급 불가능한 도시가 인류의 정주공간을 차지하는 비율(도시화율)이 증가할수록 이 같은 갈등의 양은 커질 수밖에 없다.

도시권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이야기

여기서 도시이야기의 중요한 소재 하나가 등장한다. 바로 도시 운명을 결정할 주체인 '도시의 권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왕정시대에는 왕족과 귀족간의 정치가 이야기의 핵심 소재였다. 우리가 일상으로 접하는 역사물이나 사극의 대부분이 새로운 권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린 것이었다. 공화정도 마찬가지다. 절대 왕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켜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운 이야기가 지금 공화국들의 정체성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어떤가? 형식적으로는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도시 권력을 시민의 손으로 창출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과연 시민들은 지금의 도시 권력을 자기 손으로 창출했다고 '느끼고' 있을까? 도시 권력의 주인이 시장이 아니라 시민이라고 충분히 '체감'하고 있을까?

물론 길 가던 시민 아무나 붙잡고 질문한다면 대부분 '도시의 주권자는 시민'이라는 정답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머리 속 생각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가슴으로 느낄 때 참여와 행동이 일어날 수 있다. 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이야기'다.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다, '도시의 주권자는 시민'이라는 선언을 곧잘 하면서도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도시권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시민들의 이야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투표 한 번 했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민의 염원과 참여를 통해 새로운 권력체제를 만들고, 그것으로 도시의 변화가 실현되었을 때 비로소 시민의 가슴 속에 내면화된 이야기로 각인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도시권력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매우 부실했다. 우리나라의 도시정치는 지방자치제도와 함께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 독재정권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손에 쥐어진 권한도 따지고 보면 민주공화국으로 출발한 대한민국 초창기에 비해 여러모로 불완전하다. 초창기 지방자치제에는 읍면동장과 읍면동의회까지도 주민 손으로 직접 뽑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걸핏하면 훼손된 지방자치

대한민국에서 지방자치법이 만들어진 건 정부수립 직후인 1949년이었다. 일제에 패망한 대한'제'국 대신 민주공화국으로 출발한 대한'민'국 제헌헌법 제8장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전쟁이 일어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지방선거는 1955년 5월에야 비로소 시행됐다. 

전쟁이 끝난 뒤 얼마 뒤였지만 자치에 대한 열망은 뜨거웠다. 당시 서울에서는 245명의 동장을 선출하는데 입후보한 사람만 816명(경쟁률 3.3 대 1)에 달했다. 시장도 아닌 동장에 이처럼 많은 숫자가 관심을 보인 것은 쌀배급권과 같은 실질적인 권한이 동장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승만이 이끄는 자유당 정권은 시민주권에 제동을 건다. 1958년 12월 지방자치법 4차 개정안을 통해 선출직이었던 자치단체장을 임명직으로 바꾸고, 시의원의 임기도 4년에서 3년으로 줄였다. 1959년으로 예정됐던 제3차 지방자치선거는 자동 취소됐고, 야당 성향의 자치단체장은 일제히 해임됐다. 물론 1960년 3월 15일에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대비하기 위한 한 것이었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건 3·15 부정선거에 격분한 국민이 4월 19일 혁명이 일으키고 자유당정권을 몰아낸 뒤였다. 혁명 이후 도지사 직선제를 골자로 한 제3차 지방자치법이 통과되고 그해 12월 특별시도의회 선거(12일), 시읍면의회 선거(19일), 시읍면장 선거(26일), 특별시장도지사 선거(29일)가 차례로 진행됐다. 

하지만 자치의 꿈은 오래 가지 못하고 이듬해 5월 16일 박정희의 쿠데타로 다시 군홧발에 짓밟힌다. 한 달 뒤인 6월 20일에 전국의 자치단체장들은 임기 6개월도 채우지 못한 채 일제히 해임됐고, 그 자리를 쿠데타에 참가한 군인들과 그에 동조하는 관료들이 차지했다. 그 후 30년간 시민이 자기 도시의 권력구조를 만드는 데 주권을 행사할 기회 자체가 차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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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치의 희망이 싹튼 건 1987년 6월 항쟁 이후였다. 그해 야권은 양김씨의 분열로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했지만, 이듬해 4월 총선에서 분발해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야3당이었던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은 지방자치제를 1989년 내에 온전한 형태(단체장과 의원을 함께 선출)로 조기에 실시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그러나 거기에도 암초가 있었다. 국회에서 통과된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대해 노태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지방자치법개정안은 연말에 가서야 대통령과 야3당 총재의 합의로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 또한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무력화되고 만다. 이듬해인 1990년 1월 22일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등장한 공룡 여당 민자당이 지방자치제와 관련한 모든 일정을 무기한 연기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의 지방자치제도는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 졸지에 소수 야당 당수로 전락한 김대중 총재는 의원직 사퇴라는 초강수를 내걸고도 지방자치제도 도입에 실패하자 그해 10월 8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고, 13일간의 단식 끝에 정부와 여당으로부터 지방자치제를 시행하고 내각제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1991년 3월 26일에 열린 기초 및 광역 지방의회 선거는 이같은 과정을 거쳐서 겨우 이뤄졌다. 하지만 이듬해에 열리기로 합의된 자치단체장 선거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일방적으로 연기하는 일이 벌어진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 선거를 14대 총선 결과와 연계시키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행히(?) 이 선거에서 민자당은 38.5%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그 결과 1995년 6월 27일에야 비로소 단체장까지 함께 선출하는 제1회 동시지방선거가 열리게 됐다.

요약하자면 지금의 지방자치제도는 두 번의 독재정권과 한 번의 보수 정권을 견뎌내며 어렵게 어렵게 자리 잡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덧 민선 6기 당선자들이 지방자치단체를 이끌고 있다. 햇수로는 강산이 두 번 바뀐다는 20년이 막 지났다. 많은 것이 변했다. 긍정적으로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들이 중앙당 못지 않게 시민들의 눈치를 보는 풍토가 조성되었고, 지역 현안에 밀착한 정책들도 상당히 많아졌다. 그만큼 시민들에게 도시의 주권자라는 자각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 흐름도 그에 못지 않게 커지고 있다. 과거처럼 노골적인 독재정권이 다시 들어서지는 않았지만 지방정부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욕구는 꾸준하게 강화되는 추세다. 2005년에 56.2%이던 지방자치단체의 전국평균 재정자립도는 10년 뒤인 2014년에는 44.8%로 무려 12% 가까이 떨어졌다. 중앙정부 예산은 공짜가 아니다. 거기에는 예산 타가는 법에서부터 집행하고 결산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조건'이 걸려 있다. 예산 의존도가 커질수록 지방정부는 자치조직이 아닌 중앙정부의 대행기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는 지방자치정책이 노골적으로 퇴행하고 있다. 교육감선거와 기초의회를 폐지하고 광역시 이상 구청장은 임명직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여권 내부에서 거론되고 있다. 권력을 잡자마자 시민들의 자치권부터 앗아갔던 독재정권의 행태를 쫓아가고 있다. 시민 입장에선 자기 도시의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갈 수 있는 여건이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도시가 조선시대 이전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유?

우리나라는 대내외적으로 민주공화국임을 표방하지만 특이하게도 화폐 인물은 모두 왕조국가인 조선시대 인물들이 차지하고 있다. 대다수의 공화국들이 공화국을 만든 주역들을 화폐 인물로 삼는 것과 대조적이다. 예를 들어 베트남은 호치민을, 타이뻬이는 쑨원과 장제쓰를, 중국은 마오저뚱을, 터키는 아튀투르크를 화폐 인물로 채택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왜 우리나라는 공화국이면서 공화국을 만든 주역을 화폐 인물로 사용하지 못하는 걸까? 마땅한 인물이 없어서일까? 의견이 분분해서일까? 모르긴 해도 해방 이후 민주공화국으로 국가 권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명쾌하지 않기 때문 아닐까?

우리나라 도시들이 애용하는 이야기 대부분이 현재가 아닌 조선시대 이전 것인 데에도 비슷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과연 누가 만든 것일까? 시민들의 뜻과 힘으로 만든 도시인가, 아니면 정치 엘리트들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조성된 곳인가? 도시의 공간과 경제 구조는 누가 결정했는가? 그 과정에 시민이 얼마나 참여하고 주도권을 행사했을까? 이들 질문에 대한 답변을 충분하게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도시가 과연 몇 개나 될까? 지금 살아가고 있는 도시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워낙 부실하기에 지금의 도시 권력들이 과거 이야기에 매달리는 것 아닐까.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도시 이야기는 백지에 가깝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지방자치제도도 여전히 빈틈 투성이인 데다가 지금의 정권 아래에서는 누더기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우리 힘으로 새로운 도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시민이 주도하는 도시 정치, 시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도시 권력을 만들어가는 여정이야말로 더 없이 매력적인 도시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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