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잘 살 수 있었던 데 대한 보답…남은 재산·인생 사회에 환원할 것"

우리나라 시장경제는 분배를 외면한 채 성장만을 강조해왔습니다. 이 탓에 불공정한 경쟁이 판을 치고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중산층이 줄고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국민 대다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양극화 심화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습니다. 경쟁 속에서 주위를 둘러볼 여력도 없이 앞 만보고 내달리다 보니 어려운 이웃들은 더욱 외면받고 있습니다.

시장경제가 발달한 선진국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기부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자본주의 부작용 속에서도 그 사회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기부문화가 싹을 틔워 조금씩 확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너소사이어티가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너소사이어티는 지역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기부문화를 성숙하게 이끌어 사회공동체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사회지도자 모임입니다. 1억 원 이상 기부하는 개인에게 자격조건을 줍니다. 1월 현재 경남에는 모두 48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습니다.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도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인터뷰 기획을 연재합니다. 그들은 어려운 현실에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난관을 극복하면서 성공한 삶, 행복 삶을 일구어 왔습니다. 기부라는 명제를 제쳐 두더라도 그들이 살아온 궤적은 또 다른 이에게는 길이 되고, 등대가 될 수 있습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 삶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고대웅(69) 사장은 2013년 2월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도내 26번째 회원이지만 경남 부부 회원 1호로 더 유명하다. 그의 뒤를 이어 부인 박영신(64) 씨도 같은 해 5월 기부를 약속했다. 부부 각각 1억 원씩이다.

고대웅 사장을 만난 날은 기온이 뚝 떨어져 찬바람까지 몹시 부는 날이었다. 함안군 칠북면에 있는 ㈜거산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탓인지 난방이 안 된 그의 사무실은 다소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다.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한다는 양해를 구하자 "제가 명찰 좀 붙일게요"라며 이름표를 찾아서 달았다. 꼼꼼한 성격이 엿보였다. 첫인상도 좋았고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졌지만 표준말 탓인지, 싸늘한 실내온도 탓인지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다. 짧은 시간 대화와 몸짓 등에서 엿볼 수 있었던 당당하고 진취적인 성향, 원칙적이고 자신에게 더욱 냉철한 사람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고 사장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그의 인생을 좀 더 깊이 들여보게 되면서 거리감은 점점 좁혀졌다. 인터뷰가 끝났을 때에는 그 공간을 차지했던 냉기는 사라지고,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영화 <국제시장> 절반은 내 이야기" 

나이와 고향은 미리 알아봐 둬야 할 기본 정보이지 질문으로는 적절치 않다. 성의없고 준비 안 된 인터뷰임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 사장 인터뷰에서만은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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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던지자마자 그는 "며칠 전 집사람하고 영화 <국제시장>을 봤어요. 거의 절반이 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태어났거든요. 아버지 유학 때문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왔고요. 아버지는 6·25 전에 장교로 국민방위군에 들어갔어요. 때문에 전쟁이 나면서 고향에 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누이는 어쩔 수 없이 함흥에서 영화 속에 그 배를 타고 거제로 피난을 왔죠." 

할아버지가 대지주였지만 피난을 오면서 그때부터 가족들은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고성군 일대에서 피난 생활을 하다 연합군이 서울을 수복하면서 고 사장 가족은 고모가 살고 있던 서울 영등포에 정착을 하게 된다. 역시 <국제시장>처럼 고모집 옆 부엌도 안 딸린 단칸방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누이까지 모두 여섯 명이 끼니 걱정을 하면서 살아야 했다.

"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 끓인 팥죽을 온종일 함지박에 이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팔아서 연명했어요. 아버지는 일이 없었고요. 인텔리였던 아버지는 휴전 후에도 정치판에 휩쓸려서 정치인들 따라다니느라 별다른 수입이 없었어요. 나중에 시의원으로 당선됐지만….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쌀 조금 사와도 저희에게는 돌아오지도 않았죠. 우리는 거의 개떡, 수제비 등을 먹고살았죠. 정말 힘든 시기였지만 그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이야기해봐야 다 하소연이죠."

기술자의 길 그것은 운명 

이후 고 사장 어머니가 군복장사를 시작하면서 그때부터 조금씩 가정형편이 나아졌다. 덕분에 어렵지 않은 여건에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고, 대학 진학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법이었던 군복장사가 단속으로 된서리를 맞으면서 가세는 다시 기울었다. 그는 결국 대학 2학년에 군입대를 결심하게 된다.

"그냥 부모님에게 부담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군대에 갔어요. 제대해서도 복학을 못 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됐을 텐데…. 그러고도 몇 년 더 방황을 좀 했죠. 그러다 정신을 챙기고 중소기업에 취직을 했는데…. 그런데 그게 오히려 득이 됐죠. 참 잘한 선택 같아요. 운명이었는지도 모르죠."

한우물을 팠기에 성공 

취직한 회사는 인천에 있는 '서울엔지니어링'이라는 알루미늄 사형주조업체였다. 3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는 같은 업종에서 일을 하고 있다. 당시는 말단 사원이었고 지금은 업체 대표라는 직위만 달라졌을 뿐.

"처음에 입사해서 품질관리부터 했죠. 매일 밤늦게 퇴근했지만 하나하나 배우면서 참 재미있게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문제점을 발견하면 대책을 세우고 해결책을 찾고 그러면서 보람을 느끼고…. 또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방위산업 육성 정책을 시작하면서 저희 사장이 방산분야에 뛰어들었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저도 같은 업계 같은 업종을 하고 있어요. 그 회사에서는 5년 정도 일했는데 부하직원 잘못을 제가 책임지고 그만두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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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퇴사 후 그는 역시 같은 직종의 중소기업에 취직하게 된다. 새 회사도 인천에 있었지만 1986년 창원으로 이전하면서 고 사장은 이 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새로 취직한 회사에서는 10년을 근무했어요. 개발영업이사직까지 승진하면서 줄곧 제품개발을 해왔죠. 합금주물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면서 한 세월을 보낸 거지요. 그 결과로 이 분야에서는 일가견을 가지게 됐지만 지금도 많이 모자라요. 더 깊이 들어가고 하니까 모자라는 부분이 나타나더라고요."

아내는 최고의 투자자 

자신의 회사 ㈜거산을 차린 것은 1993년이다. 사장과 의견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퇴사를 선택해야만 했다. 직장인으로 재취업하기에는 늦어버린 나이 마흔여섯. 그는 기술 하나만 믿고 창업을 결정하게 된다.

"집사람은 76년에 인천에서 직장 다닐 때 누이 중매로 만났어요. 나름 부유한 집에서 자랐는데 아주 검소해요. 지금 아파트에 사는데 온수만 사용할 뿐 지금도 에어컨, 보일러를 전혀 사용 안 해요. 알뜰한 아내가 모은 돈 2000만 원과 친구하고 은행에서 빌린 돈을 합쳐 7000만 원이 창업자금이었어요."

처음 공장을 차린 곳은 함안군 칠원면이었다. 말이 공장이지 투자금이 적은 탓에 200㎡(60평가량) 빈 양계장 빌려서 시작해야만 했다. 기술에는 자신이 있었다지만 일은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열심히 뛰어서 초기부터 나름 일은 조금씩 맡아서 했어요. 그런데 새로 생긴 회사다 보니 대금지급을 바로 해주지 않더라고요. 투자금 7000만 원은 창업한 지 6개월 지나니 똑 떨어졌어요. 그래서 받은 어음을 친구에게 할인해서 돈을 또 만들고…. 그해 정말 힘들게 버텼죠. 94년 말에는 쭉 돌면서 2억을 회수했어요. 빚 갚고 그 뒤론 돈 때문에 당한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이후 사업은 순풍에 돛을 올린 것처럼 순조로웠다. 고 사장은 함안군 산인면으로 공장을 넓혀 이전했다가 지금의 칠북면 공장은 2007년에 신축·확장해 들어왔다. 22년 만에 60평의 공장은 수십 배 늘었고, 3명으로 시작한 직원은 50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매출은 79억에 이른다.

"기술에 대한 자신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집사람 신뢰와 내조 덕이라 생각해요. 거기다가 알뜰하게 모아 둔 돈이 사업 종자돈이 됐으니…. 집사람이 저에게는 최고의 엔젤 투자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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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은 최고의 재산 

㈜거산은 방위산업용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부품을 제작하는 강소기업이다. K1·K2 전차, K200·K21 전투장갑차, K9 자주포, 함대함·지대공 유도무기(미사일) 등에 들어가는 구조물과 엔진·변속기에 사용되는 프레임을 주조로 만드는 업체다. 사형주조는 모래로 만든 주형에 용융된 금속을 주입해 원하는 형상을 얻는 방식으로 거산은 이 중에서도 이산화탄소성형법의 정밀주조방식에 특화된 기업이다. 이 기술로 제작된 3㎜ 두께의 가볍고 견고한 알루미늄합금 유도무기 관련부품은 일류 제품으로 인정받는다.

"두께, 강도, 결함을 컨트롤하고자 금형을 수십 번 제작해서 제품을 만들어 보고 안 되면 이유를 찾고자 또 해보고 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쳐 조금씩 끈질기게 나아갔죠. 지속적으로 투자와 연구개발에 매진하면서 기술을 업그레이드 시켜왔어요. 그러다 보니 전차, 장갑차, 자주포 알루미늄 합금주물 90% 이상이 제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산은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입에 의존하던 고가의 방산부품 국산화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또 이지스함에 장착되는 유도무기 관련 부품은 미국으로도 수출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거산과 고대웅 사장은 그동안 산업자원부 장관상, 지식경제부 장관상, 국무총리상 등을 받았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고 사장은 제품 다변화와 대형화는 물론 항공관련 부품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저희도 항공 부품 준비도 하고 있죠. 항공부품을 현재는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독일 등에서 굉장히 고가에 수입하고 있거든요. 궁극적으로 저희가 하려고 개발하고 있습니다. 개발 여지가 남은 것은 항공용 트랜스미션 케이스 등인데 의뢰가 오면 100% 자신 있습니다. 그쪽으로 사업을 확장하려고 진주·사천 항공우주산단에 5000평 공장 터 분양을 신청한 상황입니다."

"기부, 잘 살 수 있었던 데 대한 보답"

고대웅 사장이 아너소사이어티에 문을 두드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굿 네이버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에 꾸준히 기부를 해 왔을 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주말 등 시간이 나면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아내와 자원봉사 등의 일을 하고 있다. 특히 목소리가 매력적인 그는 시각 장애인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녹음봉사를 3년 넘게 해 왔다. 그러던 차에 그는 회사 창립 20주년을 맞아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을 위해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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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해 2013년 제주도로 가려고 했는데, 회사 창립 20주년 되는 4월이었어요. 직원 40여 명과 함께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여행경비를 지급해 놓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 세월이 너무 고마운 거라. 참 20년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저 혼자만 잘살아서 잘 산 게 아니잖아요. 내가 잘해온 이유가 뭐냐 생각하니 직원에게도 고맙고, 사회에도 고맙고 물론 아내도 그렇지만…. 사회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생각을 하다가 기부를 결심했어요. 행복이라는 큰 선물의 이자 일부를 갚는 거죠"

그는 올해도 직원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고자 창사 기념일을 맞아 울릉도 단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새해 초에는 직원들에게 처음으로 신년 메시지도 보냈다. 앞으로도 직원 복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러분이 있어서 회사가 발전했고 저 또한 행복했다. 그동안 열심히 해줘서 고맙고, 올해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은데 자신의 건강을 먼저 챙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최우선이 가정의 평화니까 가정에 충실하고 회사일은 차후로 생각해 열심히 해달라고. 뭐 대충 이런 내용을 보냈어요. 아무튼 직원들이 제게는 보배잖아요. 어려울 때부터 오래 같이한 동료도 아직 많고…. 뭐 가족인데 잘 해줘야죠."

도내 최초 부부 아너소사이어티 

2013년 2월 20일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한 고 사장의 나눔 바이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 박영신 씨를 감염시켰다. 박영신 씨 또한 같은 해 4월 경남 제27호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두 사람의 가입은 새로운 기록을 남긴다. 경남 제1호 부부 아너소사이어티 탄생이었다.

"제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한 게 2월 20일인가 그럴 거예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집사람에게 바로 못하고 2∼3일 있다가 말했어요. 어떤 반응일까 좀 눈치를 살폈죠. 그랬더니 집사람이 바로 '아이고 잘했다'며 손뼉을 쳐 주더라고요. 그러다가 아내도 며칠 지나 자신도 기부하겠다고 하더군요. 아∼ 그래서 바로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화해서 기부를 하겠다고 하니 부부 1호가 된다고 축하해 주더라고요. 그 후로 ㈜위딘 권동현 사장 부부, 고려철강㈜ 한철수 회장 부부에 이어 최근 창녕에서 4호가 탄생했죠. 저희처럼 부부 회원이 많이 늘어 조금 의미가 있긴 하네요. 허허."

박영신 씨는 남편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전업주부로 살아오면서 알뜰살뜰 저축한 돈과 앞으로 모을 돈으로 기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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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사장은 "집사람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몹시 검소해요. 체중이 46㎏ 나가는 데. 약하죠. 가사도우미를 불러라고 해도 혼자서 집안일 하고 또 봉사활동도 다니고…. 아무튼 불편할 정도로 검소하게 살면서 나름대로 생활비 아껴 저축한 돈을 기부하는 거죠. 지금도 저축하고 있는데 얼마를 모았는지 저에게는 이야기를 안 해요. 그동안 살아온 걸 보면 꽤 될 거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약정식 하면서 울더라고요. 자기가 '이렇게 뜻 깊은 일을 하게 될지 몰랐다'고 하면서 좋아서 울더라고요. 감격스럽고 보람을 느꼈나 봐요." 

"남은 재산·인생 사회에 환원할 것"

고대웅 사장 특히 어려운 환경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관심이 많다. 자신이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자수성가한 탓도 있을 터다. 아너소사이어티 기부에 그치지 않고 그는 남은 재산을 그들을 위해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다.

"저는 어린이와 청소년에 비교적 관심이 많아요. 이 친구들은 조금만 도와주면 정상적으로 성장해 성공할 수 있죠. 우리 사회가 어렵다 하지만 열심히만 하면 기회가 열린다고 생각해요. 이 친구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도울까 고민 중이죠. 결국은 제가 죽으면 모든 재산을 기부하려고 생각해요. 제가 먼저 갈 수 있으니 아내 것은 떼놓고…. 딸이 둘 있는데 서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저희 판단이 옳다고 생각해요. 또 미리 이야기 다 했어요. 부모에게 받은 돈은 금방 써 버리거든요. 돈은 자기들이 땀 흘려서 벌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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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힘이 있을 때까지 자원봉사를 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여생 또한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다.

"지금 사업이 기복이 큰 사업은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제가 과연 언제까지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아내는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그렇게 지내요.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봉사방법을 찾아서 마지막까지 제가 받은 것들을 되돌려 주고, 또 베풀면서 더욱 의미 있는 인생 후반부를 보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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