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한 도시 스토리텔링이 문제다

2014년 8월 18일 프란치스코 가톨릭 교황이 닷새간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거기서 한 기자가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해줬다."

도시 스토리텔링을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문화적이면서도 중립적인 활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천만에다. 이야기에도 중립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당수의 이야기는 치열한 권력투쟁의 속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한 민족의 신화와 설화는 대부분 정복 또는 지배의 정당성을 변호하거나 지지하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다. 특정 지역에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도 그 지역의 지배권력을, 좀 더 순화시켜 표현한다면 지배구조를 옹호하는 쪽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야기가 작동하는 방식도 그렇다. 이야기에는 사람들의 행동을 규율하는 힘이 있다. 이야기에는 해당 공동체에 통용되는 가치와 금지되는 가치가 소개된다. 모범으로 삼아야 할 캐릭터와 비난받아야 할 캐릭터가 등장한다. 경쟁과 투쟁, 위험과 기회 같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도 알려준다. 

인간은 말을 배우면서부터 엄청난 양의 이야기를 무의식 저편에까지 차곡차곡 입력한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부터 부모님이 읽어주는 동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배우는 교재, 학교에서 배우는 다양한 과목의 교과서 등에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초등학교부터는 의무교육이라는 제도와 교과서라는 형식을 빌어 이야기의 내용에 국가가 직접 개입한다. 그 속에는 국가공동체가 원하는,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데 유리한 인재상이 녹아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사 국정교과서'에 대한 찬반 논란 또한 이야기에 과도하게 개입하려는 권력의 의지 때문에 빚어졌다. 

신자유주의와 도시마케팅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중립적으로 보는 경향은 '도시 마케팅'이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회자되면서부터였다. 냉정하게 말해 도시 스토리텔링은 도시 마케팅의 하위 개념이었다. 우리 도시를 잘 포장해 널리 알리고 그 덕분에 함께 잘 살아보자는 정도였기 때문에 여야와 보혁 간에 민감한 갈등을 피할 수 있었다. 더구나 도시마케팅 관련 이슈는 시민들의 실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성도 적었다. 

그렇다면 도시 마케팅이란 개념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지리학자인 임동근 매핑및모델링연구소장에 따르면 도시마케팅이란 개념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수상이 앞장서서 이끌던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작은 정부, 규제완화, 그리고 자유무역협정(FTA) 등이었다. 신자유주의는 이전의 세계경제정책을 지배하던 케인즈주의를 비판하며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본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주장하는 '통화주의'를 강조한다. 다시 말해 자본의 흐름이 국경에 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세계의 도시는 자본의 흐름을 끌어오기 위해 다른 도시와 경쟁하기 시작한다. 기업에 국적 개념이 희박해지면서 공장이 아닌 본사를 유치하는 도시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도시 이미지'니 '도시 브랜드'니 '도시 어메니티(매력)' 따위의 전문 용어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 속에서였다. '아이러브뉴욕', '아이암스테르담', '코펜하겐오픈포유' 등의 도시브랜드 켐페인도 치열해졌다. 1990년대초에 베이징과 서울, 도쿄를 잇는 '베세토 벨트'론이 한때 주목을 받은 것도 유럽과 미대륙에 거세게 불던 자유무역 협정 바람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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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마케팅 켐페인인 '아이암스테르담' /위키피디아

그 중에서도 특히 도시의 '역사'가 도시의 매력을 높여주는 중요한 자원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도시마다 경쟁적으로 문화재를 복원하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축제를 만들어냈다. 우리나라 서울에서 광화문을 새로 짓고 경복궁을 복원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쉽게 말해 역사 이야기를 매개로 글로벌 자본에게 손짓을 보내는 것이다. 참고로 국내에 들어와 있는 다국적기업 치고 강남 지역에 본사를 둔 회사는 없다. 거의 모두가 궁궐이 내려다 보이는 강북 사대문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지방자치제와 도시 마케팅

우리나라의 도시 마케팅은 1990년대 초중반 지방자치제와 함께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정권을 잡고 있던 김영삼 정부의 핵심 국가발전전략은 '세계화'였다. 김대통령은 1995년 1월에 대통령직속 '세계화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국가 전분야에서 세계화를 추진하도록 독려했다. 물론 여기에서 지역 도시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도시의 생존 전략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세계화의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시마케팅'이었다.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가 글로벌 자본과는 멀리 동떨어져 있었지만 일상 속에서 주문을 외우듯 너나 할 것 없이 세계화를 읊어대던 시기였다. 누구와, 어느 도시와 경쟁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도시마케팅에 몰두했던 것이다.

도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 대략 세 가지 세부 전략이 언급됐다. 첫 번째가 '도시 브랜드 개발'로 랜드마크나 슬로건, 로고타입을 만드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도시 축제 및 이벤트 개발'이었으며, 세 번째는 도시의 '경관 관리'였다. 이른바 씨아이(CI, City Identity)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깜찍한 디자인의 로고와 국적불명의 슬로건들이 범람하던 때가 바로 이 때다. 하루가 다르게 지역 축제가 만들어지고, 그래서 어중간한 축제들이 난립하던 시기도 이 때다.

1997년 아이엠에프(IMF) 이후에는 도시 마케팅의 중요한 방법론으로 스토리텔링이 크게 주목 받았다. 그 전환점은 김대중 정부의 등장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아이엠에프를 탈출하기 위해 정보산업(IT)과 문화산업(CT)을 전략적으로 육성했다. 그리고 문화산업의 출발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라는 담론을 만들어냈다. 이야기 하나를 잘 만들면 쏘나타 승용차 수천 대를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선전했다.

지역 도시들도 이 논리를 그대로 받아 시정에 반영했다. 1990년대 말부터 지자체들 사이에 갑자기 스토리텔링 붐이 일기 시작했다. 홍길동을 두고 전남 장성과 강원 강릉간에 소유권 분쟁이 일어났고, 심청이를 두고는 충남 예산과 전남 곡성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영험하다는 팔공산 갓바위를 두고도 대구 동구청과 경북 경산시가 경쟁적으로 축제를 만들기도 했다. 

지자체들이 이처럼 서로간에 소송을 불사하면서까지 이렇게 이야기에 매달리는 이유도 역시 돈이다. 지역 도시 수준에서 글로벌 금융자본을 당겨오지는 못하겠지만, 이야기를 만들기에 따라 '국고' 수십억 원 정도는 챙겨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한 지자체 문화원이 개최한 스토리텔링 세미나에서 나온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다. 도심 한가운데서 펼쳐지는 줄다리기 축제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이냐가 핵심 과제였는데, 주최측의 관심은 온통 '포장(고증)'을 잘해서 '(무형)문화재'로 등록시킬 것이냐에 집중돼 있었다. 문화재로 지정되면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일정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스토리텔링 잘하면 지역경제가 살아날까?

우리나라 도시가 마케팅 개념을 도입한 지는 어언 20년이 넘었고, 그 중에서도 스토리텔링에 열을 올린 것도 15년이 다 돼간다. 앞서 살펴본 대로 마케팅과 스토리텔링의 근본적인 목표는 도시에 돈, 즉 자본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목표는 과연 달성되고 있을까?

자본 유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단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기준으로 삼아보자. 우리나라 통계청이 운영하는 '나라지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 전국 평균은 2005년 56.2%에서 2014년 44.8%로 꾸준하게 하락했다. 특히 2013년과 2014년 사이에는 무려 10.3%나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서울과 광역시는 80.3%에서 61.5%로 20% 가까이 줄었고, 도는 36.6%에서 29.0%로, 시는 40.6%에서 31.7%로, 군은 16.5%에서 11.4%로 각각 줄었다. 줄어든 만큼 비는 예산은 물론 중앙 정부 예산으로 채워졌다. 지난 10년간 지방자치단체들의 중앙정부 의존도가 가파르게 증가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도시마케팅 목표 중의 하나가 중앙정부 예산을 많이 유치하는 것이라고 볼 때 성공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늘어난 중앙정부 예산은 대부분 지자체의 결정권이 제한된 '위탁 예산'들이다. 지역의 마케팅 역량으로 중앙정부로부터 '투자' 개념으로 유치한 예산은 그 사례도 극히 드물 뿐더러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한 수준이다. 

물론 상세히 들여다보면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관광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나오고 있다. 도시마다 스토리텔링 바람이 불면서 예전에 묻혀 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햇빛을 보게 됐다. 문화관광 해설사들이 많이 육성됐고, 지역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홍보물도 제작됐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장을 제공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삼고, 아웃도어 열풍에 공공 캠핑장 없는 지자체가 없을 정도가 됐다. 덕분에 관광객의 숫자와 그와 관련된 수입도 일정 부분 늘어났다.

그러나 관광에만 국한되다시피 한 이 정도의 성적표를 두고 도시 마케팅과 스토리텔링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애초에 마케팅과 스토리텔링을 시작할 때 내세웠던 거창한 슬로건을 생각한다면, 최소한 재정자립도가 증가하고 인구 유입도 늘고, 새로운 일자리 또한 만들어지는 등의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나마 성과가 있다는 관광분야도 해당 도시의 마케팅과 스토리텔링보다는 2000년대 이후에 전국 규모로 진행된 제2차 국도 확장사업과 이 사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 한국관광공사의 (길이 뚫렸으니 많이 다니자는 식의) '구석구석 캠페인'에 더 큰 빚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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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석곡리에 위치한 해양드라마세트장. MBC 〈김수로〉, KBS 〈공주의 남자〉 등 드라마 7편이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됐다./경남도민일보DB

마케팅 울타리에서 해방시켜야 할 이야기

니체는 '진리가 무엇인지 묻지 말고 진리를 말하는 자가 누군지를 물어라'고 말했다. 도시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의 질문이 필요하다. 바람직한 도시 이야기를 논하기에 앞서 누가 도시 이야기를 주도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현재 도시 스토리텔링은 도시 마케팅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했다. 관청을 기준으로 보자면 홍보 관련 부서나 관광 관련 부서에서 담당함직한 업무로 분류되어 있다. 도시의 정체성과 구조, 그리고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정을 홍보하거나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도구적인 의미 수준으로 이야기 상품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도시 이야기의 한계는 명확하다. 몇몇 실무자의 아이디어와 열정, 그리고 그를 지휘하는 상관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도시 이야기는 춤을 출 수밖에 없다. 운좋게 훌륭한 조합을 이뤄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더라도 인사이동이 일어나면 없었던 일이 돼버리고 마는 풍전등화 같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신화가 그랬던 것처럼 도시의 기원과 정체성을 결정짓는 힘 있는 이야기가 현대 도시에서는 사라진 걸까? 도시의 주권을 적극 옹호하고, 도시의 제도와 풍습을 결정 짓고, 공간과 장소에 질서를 부여하는, 설계도면의 청사진 같은 이야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도시는 살아 있다. 그 안에서 다양한 힘들이 부딪히기도 하고 겨루기도 한다. 경쟁에서 이긴 힘은 자기에게 유리한 제도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이기지 못한 힘은 이긴 힘이 도시를 전횡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견제한다. 힘 간에 갈등이 지배할 때가 있는가 하면 그 사이에 조화가 꽃필 때도 있다. 당연히 도시의 정체성은 고정돼 있지 않고 움직인다. 사람이 바뀌고 힘의 구도가 바뀌면 도시의 성격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야기다. 공동체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기반으로 새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도시정체성이 결정된다. 그 이야기를 잘하는 공동체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정체성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공동체는 허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정체성밖에는 만들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야기를 마케팅의 울타리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관광지나 문화유적에 관한 이야기를 발굴해 몇 가지 홍보물을 만드는 수준에서 벗어나 우리 도시의 '진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야기는 본래 한가하고 냉랭한 것이 아니다. 이야기는 치열하고 뜨거운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에 따라 도시 권력이 바뀌고 돈의 흐름이 결정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에 따라 도시 공간이 바뀌고 제도와 풍습이 변화해야 한다. 중립적이지 않은 힘을 발휘하는 도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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