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보다 소 주인 지갑이 먼저다'

유리창 너머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짖어대는 강아지, 창 밖 낯선 인간을 쳐다보는 고양이, 흰 가운을 입고 새를 만지며 교감하는 수의사 등이 내가 본 동물병원 풍경이다. '우리 곁에 또 하나의 구성원인 반려동물, 그들의 생과 사를 다루는 직업 수의사'라고 생각하고 동물병원 원장을 만났다. '대동물병원'과 '소동물병원', 두 종류 동물병원이 있다는 것은 인터뷰 후에 알게 되었다.

365일 진료는 현장에서 

"병원으로 오지 마시고 현장으로 바로 오세요. 오늘 첫 진료는 의령군 지정면인데 함안군으로 오세요. 법수면 ○○농장에서 구제역 예방 접종할 때 인터뷰합시다." 

그의 전화기 너머로 소들의 울부짖음이 전해져온다. 그는 <피플파워> 섭외 때부터 '일주일 아니 365일 밖에서 근무한다'며 한사코 동물병원에서 실내 인터뷰를 사양했다. 12월 한파로 대지가 꽁꽁 얼어붙은 영하의 날씨에 축사 현장에서 인터뷰? '혹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는 것 아냐?'라는 불길한 예감을 안고 농장으로 향했다. 

"박 기자님 시간 정확하게 맞추어 오셨네요. 저희 일도 시간 약속이 생명입니다. 말 못하는 동물들의 생사를 다루는 직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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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수 수의사./박민국 기자

안병수(50) 원장은 타고 온 지프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고 진료 준비를 한다. 그는 흰 가운 대신 아래위가 붙은 일명 '스즈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무릎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싣는다. 그가 타고 온 지프는 이동동물진료차량이었다. 차 운전석과 조수석을 제외한 공간에는 약품과 의료 도구로 꽉 차있었다. 안 원장은 소에게 구제역 예방 접종을 위해 개량한 주사기에 약병을 달고 축사로 들어간다. 모락모락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소 배설물과 흙으로 질퍽거리는 축사에 먼저 도착한 후배 수의사 두 명은 한쪽으로 소몰이에 한창이다. 소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다. 소들을 한쪽으로 몰며 다른 쪽으로 도망간다. 안 원장과 후배 수의사들은 20여 분간 소와 승강이를 벌인 후 간신히 축사 귀퉁이로 소를 몰아 놓고 일사천리로 접종을 진행한다. 소통이 안 되는 가축을 다루는 수의사의 힘든 일상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스꽝스럽게 쳐다보는 나에게 안 원장이 헉헉거리며 말한다.

"소 표정 보면 대충 그날 작업 분위기를 알죠. 이 정도면 말귀 잘 알아듣는 놈들이에요. 여기서는 400두 정도 주사 놓아야 합니다. 젓소 구경 마음껏 하고 계세요. 한 시간 후에 인터뷰합시다." 

산비탈에 둘러싸인 축산농장, 소들도 달리고 수의사들도 따라서 달린다. 가만히 구경하는 회견자 몸으로 찬바람이 파고든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소들과 한판 전쟁을 치르는 수의사를 찍으려 달려보지만, 인간과 동물의 경계 담장인 축사 울타리는 낯선 이방인을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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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수 수의사 차량은 이동동물병원차다. 의료도구와 약품으로 가득하다./박민국 기자

재수 넘어 삼수, 수위 넘어 수의, 개 넘어 소

경남 마산이 고향인 안병수 원장은 부모님이 모두 교직에 계셔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그의 부친은 2남 1녀 중 장남인 안 원장에게 어릴 적부터 호연지기를 강조했다. '사내 녀석은 포부가 커야 해야 한다'는 아버님 말씀은 그가 고등학교 진학 후 토목·건축 분야로 꿈을 키우는 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순탄했던 그의 학창시절도 대학입시 앞에서 두 번의 쓴잔을 운명처럼 맞아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문과 대신 이과를 선택했어요. 고속도로를 닦고 다리를 만들고 빌딩을 짓고 뭐 이런 일들이 멋져 보이고 하고 싶더라고요. 그러나 꿈은 현실과 거리가 멀더군요. 첫해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해서도 낙방하고, 제가 원했던 대학의 토목·건축공학과를 허락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오기로 세 번째 입시에 도전했죠. 대학 원서를 상담하려고 모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수의학과를 가라고 하시는 것에요. 처음 듣는 순간에는 '수위학과'인 줄 알았어요. 아파트 경비하는 '수위'말이죠. 허허. 사실 낙방 트라우마도 무시할 수 없더군요. 미래의 꿈보다도 학력고사 점수에 맞추어 경북대학교 수의학과 86학번으로 입학했죠. 눈치 작전하며 원서를 썼다가 포기했던 서울대학교 수의학과가 그 해 정원 미달이었어요. 지지리 운도 안 따르더군요."

토목공학도를 희망했던 안 원장이 수의사의 길을 운명처럼 받아들인 것은 졸업과 동시에 수의사 국가고시를 치른 후였다. 그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수의대 입학 후 3학년이 되어 기숙사에서 음식물 남은 밥을 가져와 교수연구동 실험용 개에게 주는 것으로 수의학도로서 동물에 대한 애정 표현을 대신했던 그였다. 그러나 그에게도 대학 졸업은 냉혹한 현실이었다. 대학 재학 중 결혼한 그에게는 부양해야할 만삭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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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수 수의사./박민국 기자

"4학년 때 선배 동물병원으로 실습을 나갔는데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당시 6.5평 이상 진료실에 진료대와 처치실 정도만 갖추면 동물병원을 개업할 수 있었죠. 그런데 온종일 병원에 앉아서 개와 고양이 등 소 동물을 기다린다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더라고요. 졸업할 때까지는 소구경도 못했는데 이왕 수의사의 길, 큰 동물을 다루자 그래서 국가고시 치르고 면허를 획득하면 다시 배우리라 마음먹었죠."

그는 대동물 수의사, 소와 함께하는 길을 선택하며 마음 한구석에 묻어 놓은 '호연지기'를 꺼내었다. 그는 처음부터 다시 소를 배우기로 했다. 대학 시절 배운 이론만으로 세상과 부딪힐 수 없었다. 목표를 세우니 마음이 동했고 몸이 움직였다.

"국가고시 치른 날 무작정 강원도 033, 114로 가장 큰 목장 전화번호를 문의했죠. 삼양축산 대관령 목장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더군요. '수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할 것 같은데 일 좀 할 수 없느냐고' 전화를 했죠. 때마침 목장에서 수의사를 고용했는데 오지 않는다고 내일 5시까지 면접 보러 오라는 거에요. 다음날 경남 마산에서 서울을 거쳐 강릉행 버스를 타고 가는데 아무래도 면접에 늦을 것 같은 거에요. 휴게소에서 담배와 음료수를 사서 고속버스 기사에게 부탁했죠. 인생을 건 취직을 위해 횡계에서 살짝 내려 달라고요. 운명은 장난 같아요. 횡계에서 내려서 택시 타고 목장에 도착해서 면접을 무사히 치르고 나오는데 먼저 취업 예정이었던 수의사가 목장으로 '내일부터 출근하겠다고' 전화가 온 거에요. 그때 그 전화 받으시던 목장 공장장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수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입니다. 의사 소통이 되는 사람 간의 약속도 안 지키는 분에게 어찌 말 못하는 소의 목숨을 맡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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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수 수의사./박민국 기자

간판 없는 출장 전문 동물병원

안 원장의 이같은 첫 직장 입사 이야기는 함안 법수면 축산 농장을 나와 함안 대산면 농장으로 다음 진료를 가던 길, 중국집에서 허기를 달래며 들었다. 찬 바람에 떨어서일까? 그의 이야기도 짬뽕 국물도 술술 넘어간다. 따스한 안락함도 잠시, 농장주의 호출 전화가 끊임없이 인터뷰를 방해한다. 안 원장에게 <피플파워> 독자를 위해 잠시만 전화기를 내려놓고 시간을 내달라고 정중한 부탁을 올렸다. 찬바람에 현장을 지켰던 보람은 있었다. 그는 후배 수의사에게 다음 일정과 업무를 지시하고 함안군 칠원면에 있는 자신이 운영하는 동물병원으로 차를 돌렸다.

간판도 없는 사무실에는 수의학 관련 책자와 의료 도구 그리고 알 수 없는 공식으로 빼곡히 적힌 보드가 전부다. 개, 고양이도 보이지 않는 동물병원 내부는 그 흔한 상상도 용납하지 않았다.

"왜 간판이 없는지 궁금하시죠. 우리 병원은 출장전문으로 허가를 냈어요. 그래서 야외 현장에서만 진료하죠. 개나 고양이, 새 등 소동물도 치료는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안 되죠. 지나가던 개가 다쳐서 이곳에 들어와 치료를 받으면 불법입니다. 그리고 우리 병원은 산업동물인 소, 돼지, 말 등등 대동물 전문이고요."

그는 첫 직장 이후 이야기도 이어갔다. 안 원장은 운명처럼 입사한 대관령 목장에서 3000두 소를 관리하며 이론으로 배운 수의학에 실습과 임상이란 경험을 바탕으로 수의사로 살아갈 토대를 마련했다. 그의 삶을 통틀어 가장 집중적으로 공부한 시기이다. 낮에는 근무하며 축산 현장 데이터를 쌓았고, 목장일을 마친 저녁에는 개원을 위한 책장을 넘기며 살아있는 지식을 축적했다. 한 집안의 장남이자 한 가족의 가장인 그가 가족 곁으로 돌아오는 데는 딱 10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두 달간 개원 준비 끝에 1993년 경남 함안에 '소'를 위한 출장전문 동물병원을 열었다. 경남에서도 소 사육 농가가 많지 않은 함안에 개원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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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료하는 안병수 수의사./박민국 기자

"소로 동물병원을 열고 승부를 보려면 그때나 지금이나 축산 농가가 가장 많은 경기도에 개원해야지요. 사실 저는 대학 시절 결혼하면서도 아내에게 절대 분가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세웠어요.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마산 중리 근처인 함안에 개원했죠. 암튼 소 돌보는 남편을 만나서 아내가 고생하죠."

그는 병원 문을 열며 두 가지 약속을 스스로 다짐했다. 그의 병원을 실습 현장으로 찾는 후배 수의사들에게도 강조하는 다짐은 이랬다.

'첫째 농장주는 수의사를 믿고 가축을 키운다는 것, 그래서 거래처 전화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무조건 받아라. 또 하나 소는 반려동물이 아니라 축산주 재산인 산업동물이다. 소를 지키는 것보다 농장주의 지갑을 지켜라.'

안 원장의 병원경영 약속은 빛을 발휘했다. 농장주의 신뢰를 얻고 소의 가치를 높여갔지만 24시간 365일 개방된 그의 전화기에 벨이 울려 갈수록 가족과 함께 공유하지 못하는 공간은 커졌다. 개원 2년 차 때 수의학회지에 실린 경영기법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 길로 경기도 파주 유우진료소로 향했다. 무작정 취업을 위해 대관령 목장으로 향했던 이후 두 번째 호연지기가 시작된 것이다.

"24시간 대기에 주말도 따로 없는 출장 전문 수의사가 정말 고단한 직업입니다. 그런데 계약진료와 분업화 경영을 접한 거에요.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주말이면 후배 수의사에게 일을 맡기고 경기도 파주로 갔지요. 딱 3개월을 쫓아다녔더니 경영 방법을 알려주시더라고요. 부산우유 촉탁수의사를 하며 계약진료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수의사 간에 협업하는 제도를 도입했죠. 대관령에서 배운 수의학에 파주에서는 전수받은 경영기법을 더 한 거죠. 출장 전문 동물병원 수의사가 자유롭게 시간 내서 가족들과 여행을 갈 수 있는 것도 혼자가 아닌 여럿이 공동으로 경영하는 시스템 덕분이죠. 여가뿐 아니라 저 보드판에 공식이 소 혈액에 포함된 전해질 분석 자료입니다.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되면 공부도 하고 소똥 밟으면서 연구하는 수의사들이 되는거죠"

축산 경영자문에서 울릉도 호랑 약소까지

간판 없는 그의 동물병원에서 진행한 호사스런(?) 인터뷰는 한 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현장에서 진료 중인 후배 수의사로부터 마산합포구 구산면 내포리 ××농장 송아지가 위급하다는 전화가 왔다. 결국 인터뷰 마무리를 위해 안 원장 지프 조수석에 앉았다. 하루 평균 200㎞, 연 8만㎞를 주행하는 그의 이동동물 병원차, 1년 365일 현장을 누비는 차치고는 뜻밖에 안락했다. 

그는 현장 수의사 경험을 바탕으로 체계적 학업을 위해 석사에 이어 전남대학교에서 수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학업 성과를 축산 농가와 나누기 위해 택한 방법은 축산경영자문, 2009년 경북대 수의학과 동문과 뜻을 모아 HACCP 코리아 법인을 설립했다. '소보다 소 주인 지갑이 먼저'라는 안 원장의 경영자문은 입소문을 타고 경남·북 축산농가에 퍼져나갔다. 농식품부 지정 경남북 컨설팅 전문기업으로 성장하며 철저한 사후관리로 축산 농가 신뢰를 확보하며 친환경 축산업 구축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에게 울릉도 칡소는 세 번째 호연지기를 실천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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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마산합포구 구산면 내포리 목장에서 안병수 수의사가 송아지를 진료하고 있다./박민국 기자

"울릉군 축산농가에 HACCP 인증 컨설팅을 하러 갔는데 칡소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40여 농가에서 키우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구나 싶더군요. 토종 약초를 먹고 자라는 때 묻지 않은 우리 민족의 소를 지킨다는 것도 뿌듯한 사명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2013년 울릉도에 동물병원을 개원했지요. 이것도 다 공동 경영하는 후배 수의사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세 명이 교대로 함안과 울릉도를 넘나들며 병원을 운영하지요. 울릉도에서는 소뿐만 아니라 개도 새도 진료를 합니다. 울릉도가 인구 대비해서 반려동물이 많은 편입니다. 간혹 흑비둘기도 치료하곤 하죠. 대동물인 소만 다루다 소 동물들과 교감하려니 서식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합니다. 후후."

안 박사는 현재 울릉도에 서식하는 400여 두의 칡소 아니 그가 명명한 호랑 약소를 1500두까지 늘리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구산면 내포리 ××축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40분. 축사에서 꺼낸 송아지 눈꺼풀이 힘이 없어 보인다. 안 박사가 청진기로 송아지와 교감한다. 그리고 이내 후배 수의사에게 링거를 처방한다. 그리고 진료를 지켜보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박 기자님 젖소 송아지 한 마리가 요즘 얼마인지 아세요. 3만 원 정도 합니다. 그런데 저 약값은 얼마인지 아세요. 다행히 이곳은 계약진료라 돈은 받지 않지만 이럴 때 수의사는 정확한 판단을 농장주에게 내려주어야 합니다. 내 주머니가 아닌 농장주 지갑을 고려해야 하죠. 그래야 같이 살죠."

아침 11시 함안 법수면 농장을 시작으로 7시간째 그를 지켜보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가 우직한 소를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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