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예향 통영]통영의 예술 유전자 삼도수군 모인 곳 전국 장인 한곳에

예향(藝鄕)…. '예술가를 많이 배출하고 예술 즐기는 사람이 많은 고을'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소설가 박경리, 극작가 유치진, 시인 유치환·김춘수, 시조시인 김상옥, 작곡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 통영에서 태어난 예술인이다. 화가 이중섭, 시인 백석 같은 이도 통영의 숨결을 작품에 담기도 했다. '인구 대비 유명 예술인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도시'라는 말에 대해 굳이 기준·통계를 따질 필요도 없는 분위기다.

여기 사람들은 '예향 통영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바다 낀 고장이 그렇듯 이곳 역시 일찍부터 무속이 흥했다. 집단으로 풍어제를 지내기도 하고, 노모 홀로 바다에 나가 아들 목숨을 빌었다. 무속은 곧 음악·춤·글이 섞인 종합예술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것이 '남해안별신굿'과 같은 자산으로 이어졌다.

서민들의 자생적 끼를 저변에 깔고 있던 통영은 400여 년 전 '삼도수군통제영'을 맞이하면서 문화예술용광로가 된다. 삼도수군통제영은 오늘날 해군사령부 격이다. 이곳은 단지 군사적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서유승(61) 통영예총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통제영 안에는 공방이 있었습니다. 많게는 16개까지 있었고, 보통 12공방이라고 하지요. 전국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장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병영품을 만들고, 남는 것은 백성들에게 팔았습니다. 임금님께 진상품을 만들어 올리기도 했고요."

복원된 통제영 전경. 삼도수군이 모인 통제영에는 전국 내노라하는 장인들의 공방이 있었다. /사진 김구연·일러스트 서동진 기자 sajin@idomin.com

특히 통제영에서는 매년 봄·가을 '군점'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경상·전라·충청 삼도수군이 모두 모여 군사·군물 같은 것을 총점검하는 의식이었다.

유용문(51) 동피랑협동조합 사무장은 이렇게 말했다.

"삼도수군통제영은 경상도·충청도·전라도를 관할했습니다. 따라서 통영은 삼도 문화가 뒤섞인 곳이지요. 매년 두 번 문화가 업데이트된 셈입니다. 그리고 한양과 끊임없이 교류했습니다."

이 나라를 지킨다는 그 기개는 오늘날 이 지역 사람들의 유별난 기질과 닿아있기도 하다.

통제영 시대가 끝나고 나서도 세대가 이어지면서 그 손길이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이것에 머물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때 통영은 대표적인 수산업도시로 성장했다. 경남·부산에서 생산되는 수산물 반 이상은 통영 몫이었다. 사람·물건·돈이 활발히 돈 것이다.

최정규(63) 시인은 에둘러 이렇게 설명했다.

"어릴 때부터 이탈리아 피렌체·나폴리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르네상스를 꽃피운 곳은 도대체 어떠한 곳일까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막상 가보니 느낀 것은 결국 인적·물적 교류 중심지였다는 것입니다. 신흥 자본이 형성되면서 이전 왕족들만 쥐고 있던 문화예술이 부를 쌓은 이들에게 옮겨간 것이지요. 통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문화도 함께 유입되었다. 경제적 여유 속에서 일본으로 유학 가는 이도 많았다. 다만 집안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일제 앞잡이가 되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자유로운 예술분야 쪽으로 유학을 많이 떠났다고 한다.

1905년 설립된 충무교회는 단지 종교적인 공간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적 세례를 받은 곳'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 끼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 청년단 악대가 자체적으로 만들어졌고, 통영인들이 중심이 된 한글 시조 동인지가 나왔다. 1930년대에는 서양악기를 파는 유명한 악기점도 들어섰고, 삼광영화회사가 <화륜>을 제작하기도 했다.

6·25 때는 전쟁통을 피해 예술인들 또한 통영으로 찾아들었다. 통영에서 여유 있는 어른들은 그림이라도 한 점 사주며 예술가들의 뒤를 받쳐주는 풍토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축적된 시간 속에서 통영의 문화자산은 단단히 영글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 자연이 내준 풍광을 빼놓으면 섭섭할 노릇이겠다.

정지용은 '남해오월점철'이라는 기행문에서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적었다. 윤이상도 '나의 음악적 재료는 통영 밤바다에 들리는 파도소리'라고 했다.

서유승 통영예총 회장은 "통영은 물빛·하늘빛이 다르고, 그 소리도 다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영의 기운이라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서민들의 무속 신앙, 400년 전 통제영 문화. 그리고 바다라는 자연이 내준 경제적 풍요와 감성은 이곳 사람들 몸과 마음에 자유를 안겼다. 여기 사람들은 "그러한 시간이 쌓이면서 곧 피에 녹아들었다. 이제는 날 때부터 예술적 끼와 감성을 타고난다"고 말한다. 그것을 '통영의 예술 유전자'라고 압축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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