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에 초대되는 만화가가 꿈?

한반도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와 소설이 몇 있다. 대부분 주인공의 노력으로 전쟁 위기를 무사히 넘기면서 끝맺는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연재하는 웹툰 <70>도 시작은 다른 작품들과 비슷하다. 정전 70주년인 2023년,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의 음모로 남북 간에 전쟁이 일어날 위기가 싹트고 이를 막기 위해 한국의 엘리트 요원들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70> 시즌 1을 끝내고 시즌 2를 준비하고 있는 만화가 김재희(27) 씨는 오히려 "전쟁을 일으켜 보자"라는 생각이다. 만화 일을 잘 모르지만 전쟁 이야기를 그린다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규모가 커지면 당연히 일도 많아질 테니까. 하지만 김 씨는 이런 상황을 오히려 즐긴다. 그는 "내가 재미를 느끼지 못 하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 공식 연재 웹툰 가운데 유일한 전쟁물 만화가 김재희 씨를 만났다.

전쟁을 일으켜 보자

-웹툰 <70>은 특별하게도 전쟁을 소재로 한 만화입니다.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없었던, 제2차 한국전쟁을 소재로 만화를 그리고 싶었어요. 성인만화 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만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웹상에서는 전쟁극화가 처음이라 그것에 의미를 뒀습니다."

-<70>이 데뷔작입니다. 연재 준비에 얼마나 걸렸나요? 

"2012년에 포털 사이트 다음 웹툰 공모전에 도전했어요. 그때 공모작이 북파공작원을 주제로 한 <돼지들>이라는 만화였습니다. 시원하게 탈락 했어요. 근데 7월 쯤에 다음에서 <돼지들>말고 다른 밀리터리물 시놉시스(줄거리·개요)가 있으면 웹툰 진행해 볼 생각 없냐고 제안이 왔어요. 처음에는 <돼지들>을 해보겠다고 밀어붙였죠. 그럼 내용을 조금 손 봐달라고 요청하더라고요. 근데 이게 새로 써달라는 얘기와 똑같더라고요. 그게 2012년 10월이었습니다. 그 당시 갖고 있던 시놉시스 중에서 <70> 시놉시스가 있었어요.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제2차 한국전쟁을 일으키는 작품은 없어요. 특수요원들이 활약해 전쟁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 정도? 근데 저는 전쟁을 일으켜 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준비는 부족했지만 머리부터 들이 밀고 본 거죠. 시즌 1 시나리오를 다음 측에 보내니까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2013년 3월부터 8월까지 원고 준비하고 8월 29일 연재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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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70> 대표이미지.

-전문적인 밀리터리 용어를 잘 아는 것 같던데, 그런 정보는 어떻게 얻었나요?

"원래 관심이 깊었죠. 초등학교 4학년 때 카드로 진행하는 보드게임을 했었는데 거기 조그맣게 군인이 그려진 카드가 있었어요. 그때부터 그림 그리면 자연스럽게 군인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어릴 때부터 관련 서적도 모았습니다. 지금 경남데파트(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 쪽으로 옮긴 책방에서 일 했었는데 거기 서고에 밀리터리 관련 서적이 있으면 사장님한테 말해서 싸게 사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이 잘 돼 있어서 영어 웹에서 정보를 구하죠. <70> 연재하고 나서는 군사 전문가들 연락이 많이 와요. 그렇게 정보를 얻기도 하죠."

-주인공 한석규를 지켜보니 적진에 잠입해 임무를 수행하는 첩보 게임 <메탈 기어 솔리드>에 나오는 주인공 '스네이크'가 생각나더군요. 또 내용이 미얀마 편, 북한 편 등으로 나뉘어 진행되잖아요? 다른 웹툰에서 볼 수 없었던 진행입니다. 이런 부분이 1인칭 시점에서 총기류를 사용해 전투를 벌이는 FPS 게임 <콜 오브 듀티>를 닮았습니다. 참고를 했나요?

"한석규부터 말씀드리면 '스네이크'보다는 <스플린터 셀>이라는 게임 주인공에 가깝죠. 외모나 이력 면에서요. 제가 인정하는 이미지는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한석규가 연기한 주 과장입니다. 과격하고 쏘아붙이는 말투와는 달리 부하를 챙기는 인물이죠. 진행이 게임의 그것과 비슷한 것은, 깨놓고 말해서 제가 인물 중심 사건을 잘 못 만들어요. 처음부터 사건 위주로 글을 씁니다. <콜 오브 듀티>는 사건이 있으면 인물이 등장해 역할을 맡아 해결하고, 또 다음 사건이 일어나는 식이잖아요. 제 만화가 딱 그렇죠. 미얀마 편 끝나고 한국 들어와서 잠깐 쉬었다 북한 편으로 이어지고…. 나름대로 의도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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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 만화가./최환석 기자

-혼자 작업을 하는 걸로 아는데요?

"네. 같은 마산 출신 친구가 채색을 도와줘요. 마감 마지막 날 하루 동안만. 다른 것은 저 혼자 해요. 목요일이 연재일이면 금요일은 쉬고, 토요일에 시나리오 정리를 합니다. 그 뒤에 콘티를 간단하게 짜고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드로잉을 해요. 드로잉 끝나면 수요일 새벽부터 친구 불러서 채색을 합니다. 드로잉이 가장 오래 걸립니다."

-컴퓨터로 작업을 하니까 과거에 비해 작업하기 편리해진 점은 있죠?

"작업에 들어가는 시간이 훨씬 줄었죠. 네다섯 명이 붙어서 할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그래서 옛날보다 어시스트 구하기가 힘들어요. 혼자서 자기 작품할 수 있는 조건이 되니까요."

김재희에게 댓글이란?

-일본에 토가시 요시히로 같은 만화가는 잦은 휴재 때문에 독자에게 욕을 많이 듣죠. 웹툰 작가들도 휴재를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네티즌에게 욕도 듣고요. 작가님도 휴재 때문에 욕을 좀 들었죠.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다고?

"30화 할 때 몸이 엄청 안 좋았어요. 병원에 가니까 의사 선생님이 왜 이제 왔냐고 그래요.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것 없다면서요. 그때 31화, 32화, 후기가 남았었죠. 지금 마무리된 것보다 더 길게 진행했어야 했는데…. 이젠 건강관리 똑바로 해서 욕 안 먹도록 해야죠."

-무기에 대한 설명이라든지, 국내외 배경 설정이라든지 고증이 상당한 수준이던데요. 댓글을 보니까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더러 있더군요. 반대로 작가님 편을 드는 사람도 있고요.

"일단 틀린 정보가 있으면 제 자신부터 자존심이 상하죠. 밑도 끝도 없이 나쁜 말을 하는 것 아니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 많아요. 기억나는 댓글이 있는데요. 기관총 총탄도 종류가 있어요. 파열탄도 있고, 파쇄탄도 있고요. 파쇄탄은 맞으면 총탄이 깨져서 가루가 되는 것을 말해요. 저도 나름 근거를 두고 작품에서 파쇄탄을 언급했는데, '작가가 파쇄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썼다'는 댓글이 있었어요. 그렇게 댓글 쓴 사람은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뒤에 만화를 보러 온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어? 진짜 파쇄탄이 없나?' '작가가 없는 걸 지어냈나'하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 댓글은 문제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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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 만화가./최환석 기자

-댓글 얘기를 좀 더 해보면, 작품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등장하는 때 마침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작품에 정치적 해석을 부여하는 사람들이 많던데요.

"작품 속 정보 사령부와 국정원 대립 구도에서 국정원을 약하게 그리긴 했죠. 하지만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마침 국정원 관련해 사건이 많았죠. 그래서 그런 거겠죠. 저는 작품에 정치색을 넣지 않으려고 했어요. 비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정치적인 의도를 작품에 담으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는 만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니까요. 우리나라에 전쟁이 났는데 내부에 적이 있었다, 그러니 하나로 뭉쳐야 한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전문성 갖춘 만화가가 되고 싶다

-고향이 마산인가요?

"태어난 곳도 마산이고 학교도 대학을 빼고는 마산에서 다 나왔죠. 전학도 가본 적 없어요."

-만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외사촌형이 다섯 분 정도 계신데요. 그 중 두 명이 만화가를 하고 싶어 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인데요. 형들이 달력 찢어서 만화 그리는 모습을 자주 봤죠. 원래 선생님이 되는 것이 목표였어요. 고등학교 때는 공부도 곧잘 했어요. 근데 사건이 하나 있었죠. 다니던 학원에 회비가 밀렸는데요. 학원 선생님이 절 부르더니 회비 내라고 하더군요. 알겠다고 대답했죠. 수업 준비하는데 선생님이 문을 세게 차고 들어오더니 '학원 회비를 한 달 미뤘으면 말이라도 잘해야지'라면서 학부모 욕을 하는 겁니다.

근데 들어보니 우리 어머니 얘기입니다.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서 집에 갔더니 엄마가 울고 계신 겁니다. 학원 회비 안 냈다고 어머니한테 심한 말을 한 거죠. 그때 생각했어요. 내가 공부해서 선생이 돼 봤자 저런 인간밖에 더 되겠냐고. 그래서 어머니보고 공부 안 하겠다고 말했죠. 근데 또 어머니가 이 말을 잘 못알아 들었어요. 학원 안 다니고 혼자 공부하겠다라는 말로 해석한 겁니다. 서로 뜻이 어긋난 거죠.(웃음) 어쨌든 그렇게 만화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열심히 준비해서 대학에 붙었어요. 근데 등록금이 없었죠. 어린 마음에 집에 500만 원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친척들에게 연락했는데도 돈 구하기 쉽지 않았어요. 

지금도 기억하는데요. 2월 14일이 졸업식이었어요. 마침 대학 등록 마감일이랑 겹쳤죠. 다른 친구들은 신나게 밀가루 맞고 졸업 사진 인터넷에 올리는데, 저는 아침부터 돈 마련하려고 분주했죠. 혹시나 누가 돈을 보내주면 바로 등록하려고 농협 건물 계단에 아침 10시부터 앉아서 전화기만 보고 있었어요. 오후 5시에 등 뒤로 은행 문 닫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어쩔 수 없다'라면서 체념하고 집에 가는 길에 엉엉 울었어요. 그 기억을 안고 재수를 했는데요. 그때 1년 목표, 5년 목표, 10년 목표를 잡았어요. 1년 목표는 일단 대학에 가는 거였죠. 직접 돈 벌어서 학원비 내면서 준비했어요. 그렇게 재수해서 대학에 가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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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 만화가./최환석 기자

-1년 목표는 대학 진학이었다면, 5년, 10년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5년 목표는 '군대 다녀와서 만화를 계속 하겠다'였고요. 10년 목표는 '만화가로 등단하겠다'였어요. 세부적인 목표도 많았어요. '고양이를 키우겠다'부터 '복층 오피스텔 작업실을 구하겠다'까지. 다 이뤘어요. 지금 목표는 군 관련 행사에 초청받는 만화가가 되고 싶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미국 작가 톰 클랜시는 미국 국방성에서 장관이나 장성들 모아 놓고 국제 정세에 대해 강연을 할 정도로 전문가였어요. 저도 전문성있는 만화가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나라 국무회의에 참석해 한마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앞으로도 계속 밀리터리 만화를 그릴 생각인가요?

"향후 5년 정도 진행할 수 있는 시놉시스가 있어요. 1년에 한 작품 한다면 5년 정도 가능해요.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다음 작품도 가능하니까 일단 <70> 시즌 2가 잘 되고, 시즌 3이 잘 돼서 5년 동안 계속 밀리터리 만화를 하고 싶어요."

그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지역에서 그림 공부하고 만화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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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 만화가./최환석 기자

"대학이 꼭 답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대학은 일종의 과정이죠. 필수과정이 아닌, 선택이 됐으면 좋겠어요. 정답은 아니지만, 만화가 밑에서 2주 만에 배울 것을 대학에서 몇 년에 걸쳐 배우기도 해요. 좋은 선생님 만나면 바로 갈 수 있는 길을 빙 둘러 가면서 돈 버리고 체력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열심히 재수를 준비해 호서대에 당당히 입학했고, 1학기 만에 학교를 그만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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