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마산 씨름]'씨름 고장의 후예'마산중학교 선수들 하루

모두 9명인 마산중학교 씨름부 아이들은 1999∼2001년생이다. 1970∼1990년대 모래판을 주름잡았던 '마산의 호걸' 김성률·이만기·이승삼·강호동 경기를 직접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 선배님들과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그 속에는 '마산 씨름'에 대한 단단한 자부심이 배어 있다. 마산 씨름 명성을 잇기 위한 아이들 땀방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전 5시 40분. 마산중학교 씨름부 아이들은 힘든 몸을 일으키며 또 하루를 시작한다. 합숙소를 나오면 깜깜한 어둠과 겨울 추위를 맞이한다. 운동장으로 이동해서는 몸풀기 체조를 한 후, 구보를 시작한다. 한두 바퀴 이어지면서 입고 있던 점퍼를 운동장에 내팽개치는 아이가 늘어난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오더니 "우리 아이 약 좀 전해 달라"고 한 후 이내 사라진다. 1학년 (박)준원이 아버지다.

아이들은 마지막 스무 바퀴째는 전속력으로 달린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어둠 속 운동장을 가득 메운다. 가장 덩치 좋은 3학년 (김)민균이는 특히 힘들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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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숨을 고른 후 쪼그려뛰기를 시작한다. 왔다 갔다를 두 번 반복한다.

다음으로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한 사람이 다리를 잡아주면 팔심만으로 걷는 '일명 게걸음'이다. "더 안 가고 뭐하나!" "다 와서 왜 쉬어!"라는 심우현(37) 감독 불호령이 계속된다.

그 사이 조금씩 동이 트기 시작한다. 이어 목말 태운 채 뛰기, 팔굽혀펴기, 턱걸이, 고무줄 당기기가 이어진다.

오전 7시 40분. 합숙소로 돌아와 아침 준비를 직접 한다. 밥만 하고 반찬은 부모들이 싸준 것으로 해결한다. 급식인 점심 빼고 아침·저녁은 당번을 정해 이렇게 직접 차려 먹는다.

이후 씻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 8시 30분부터 오전 수업을 받는다. 지금은 시험 기간이다. 시험을 끝낸 아이들이 합숙소로 하나둘 들어온다.

평소 잘 웃는 2학년 (강)태욱이는 더더욱 싱글벙글한 얼굴이다. "체육에서 몇 개 안 틀린 것 같아요."

낮 12시 30분이 되자 학교 급식소로 향한다. 다른 학생들은 줄을 길게 서 있지만, 씨름부 학생은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은 작은 특권이다. 오후 수업 없는 시험기간이라 간단히 먹을 수 있는 햄버거가 나왔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평소와 다름없이 오후 훈련을 해야 하는 씨름부 아이들 처지에서는 부족해 보인다. 그래도 아이들은 불평 없이 맛있게 먹는다.

점심을 먹은 다음 오후 3시까지는 휴식시간이다. 아이들은 합숙소에서 시간을 보낸다. 낮에는 보일러를 켜지 않아 거실 바닥이 차다. 옹기종기 모여 TV를 보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아이들이 씨름을 시작한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성격이 서글서글한 3학년 (김)희태는 스카우트된 경우다.

"함안에서 씨름대회가 있었는데, 학교 선생님이 한번 나가보라고 해서 나갔다가 1등을 했어요. 현장에서 본 마산교방초등학교 씨름부 감독님 권유로 시작하게 됐죠."

2학년 (김)승준이는 또 이렇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가 씨름부에 가보자 해서 따라갔다가 시작했어요. 그 친구는 관두고 저만 하고 있는 거죠. 재미는 있는데, 좀 힘들기는 해요."

유일한 1학년 (박)준원이는 씨름하는 또래에 비해 덩치가 작다. 형들은 "때 되면 쑥 큰다"며 힘을 준다.

아이들 중에는 휴학해서 1년 더 다니는 경우도 있다. 더 좋은 성적을 내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다.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휴학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만큼 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씨름에 모든 걸 거는 셈이다.

오후 2시 30분. 아이들은 훈련을 위해 마산용마고로 향한다. 이때는 초·중·고 할 것 없이 지역에 있는 학교 선수들이 뒤섞여 훈련한다. 경쟁자이기도 한 마산용마고와 창원경상고도 이때는 동반자가 된다.

오후 3시가 되자 지도자 없어도 아이들은 알아서 훈련 준비를 한다. 체조, 원을 돌며 달리기, 단거리 뜀박질 훈련이 이어진다. 이어 체격에 맞춰 2명씩 짝을 이뤄 실전훈련을 한다. 마산중·마산용마고·경상고 감독들은 자기 선수 구분 없이 조언한다. 마산 씨름의 기술·비법이 한곳에 모여 집단으로 학생들에게 전수되는 모습이다.

2시간 훈련을 마친 마산중 아이들은 다시 합숙소로 돌아와 오후 5시 30분에 저녁을 먹는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마지막으로 오후 7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근육훈련을 한다. 씻고 합숙소로 돌아와 잘 준비를 한다. 밤 10시, 16시간의 일과가 마무리되고 합숙소 불이 꺼진다.

이런 하루하루가 금요일까지 계속된다. 수요일 오후에는 축구를 하는 것이 좀 다른 일정이다. 3학년은 금요일까지, 1·2학년은 토요일 오전까지 합숙소 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가족 품에 있다 다시 합숙소로 와야 할 때는 마음이 꽤 심란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미 모래판 위 매력을 알고 있다. 더군다나 마산에서 씨름하고 있다는 것은 든든한 힘이 된다. 아이들은 이만기·강호동 경기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며 각자 꿈을 키우고 있다.

3학년 희태는 이렇게 말했다.

"상대방을 쓰러뜨렸을 때 짜릿한 쾌감을 느끼죠. 씨름하는 사람들은 승부욕이 장난 아닙니다. 다른 종목보다 더 강해야 하는 것 같아요. 마산에는 이만기·강호동 같은 선배님이 있다는 자부심이 크죠. 저는 기술에서는 이만기, 들배지기에서는 강호동 선배님 같은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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