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도 이력 알고 먹도록 하겠다"

어느 도시든 그 도시를 대표하는 병원이나 상점이 몇 군데는 있기 마련이다. "00동 00번지에서 만나자"보다는 "00병원(00빵집) 앞에서 만나자"는 대화를 주고받는 게 일상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근대 도시의 형태로 기반을 닦은 후 70∼80년대 급격한 발전을 이룬 마산지역에도 일종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영업점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국제동물병원'이다. 마산합포구 서성동에 자리잡은 국제동물병원은 마산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중심도로변에 자리잡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던 곳이다.

이곳에서 25년간 수의사이자 원장으로 일해온 허영(54) 씨가 지난해 자신의 전공을 살려 축산물품질평가원 원장으로 취임해 화제가 됐다.

그동안 관료 출신들이 원장을 맡아왔던 관례를 벗어난 현상이었고, 무엇보다 축산물품질평가원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수의사 출신이 원장이 된 데 대해 많은 관심의 쏟아진 것이다.

진주 지수면인 고향인 허 원장은 지수초등학교(천전초등학교)와 진주남중, 대아고등학교, 경상대학교를 졸업한 후 89년께 마산에서 터를 닦았다. 마산이 제2의 고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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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 축산물품질평가원 원장.

마산 국제동물병원 25년 운영해온 토박이

- 동물병원을 개원할 당시 시장성이라든지 제반 여건은 어떠했나.

"동물병원이 많이 없었을 때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거의 3년간 병원에서 잤다. 7평짜리 병원에서 시작했는데, 아픈 개가 있으면 그 옆에서 박스를 깔아놓고 같이 자면서 간호를 했다. 침대 놓을 공간도 없고, 바닥에 누워 동물 옆에서 자고 일어나면 온몸에 냄새가 진동하기도 했다. 동물이 설사를 하면 피 냄새 같은 게 심하게 난다. 그때는 동물병원밖에 몰랐다. 개를 맡긴 주인이 아침에 제 행색을 보고 깜짝 놀라곤 했다. 일주일에 3일 정도는 그렇게 병원에서 밤새 동물 간호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다 보니 냄새도 씻을 겸 아침마다 사우나를 가는 게 일상이 됐다." 

허영 원장은 국제동물병원을 개원하기 전 진주에 있는 한 축산 병원에서 근무했다. 당시 서부 경남 거의 모든 곳을 안가 본 데가 없었다고 한다.

"남해, 하동, 산청, 함안 등 진료가 필요한 곳이면 가방을 둘러메고 다녔다. 가축 임신 감정을 할 때는 직접 팔을 항문에 집어넣어야 한다. 그걸 하루에 수십 번씩 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팔이 마비되곤 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기도 했다. 진료하는 우리도 그렇지만 소·돼지를 키우는 축산업 자체가 막노동에 가깝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분들의 경쟁력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FTA 등으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 오랜 기간 동물을 진료하면서 특별히 체득한 삶의 교훈 같은 게 있을까?

"말을 못하니까, 끊임없이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경험이 중요하고 동물의 상태를 살필 수 있는 감이 필요하다. 생명이 있는 존재니까. 아마 그때 돈을 생각했으면 그렇게 열심히 못 했을 것이다. 노인들에게는 50%를 깎아주거나 무료로 진료해주기도 했고……. 돈을 따라가면 안 되고 사람을 따라가는 게 맞는 게 아닐까 싶다."

- 고향을 떠나 축산물품질평가원이라는 곳에서 근무할 뜻을 품은 이유는 무엇인가.(축산물품질평가원 본원은 경기도 군포에 있다.)

"제 전문분야이기도 하고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을 늘 품고 있었다. 원장 공모에 지원하기 전에 축산물품질평가원 감사직을 맡았는데, 당시 청렴도 평가 1등을 한 점도 원장으로 취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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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 축산물품질평가원 원장.

현장 지휘로 방만 경영 관행 개선 성과

- 취임 후 조직 내 여러 변화도 뒤따랐을 것 같은데.

"저는 거의 현장에서 살고 있다. 전국 각 도를 돌면서 지원을 방문하고 있고 도축장이나 등급판정 현장에서 제일 많이 머물고 있다. 방만 경영 관행을 개선하는 노력에 제일 먼저 나섰고 성과 역시 좋다고 자부한다. 제일 중요한 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믿고 맡기는 일이었다. 신나게 일해라, 혹 안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의 책임은 제가 지겠다는 자세였다.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 평가원이 좀 더 전문화하는데 기여하고 싶다. 축산업을 대변할 수 있는 공기업으로는 우리 기관이 거의 유일하다. 우리가 선도적으로 전문성을 키워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낙후되면 축산업 발전 역시 멈춘다. 소고기 이력제와 품질 등급을 매기는 우리 역할이 중요하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중간에 있는 우리 기관이 공정성을 잃는 순간 우리 조직이 죽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축산업 발전 또한 멈추고 만다."

- 원장 취임 후 '가치관 경영'이라는 기치를 내세운 걸로 알고 있다. 간략히 설명한다면.

"기관 창립 25주년을 맞아 국민 눈높이에 맞는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초석을 놓는다는 의미였다. 이를 위해 조직 운영 패러다임 역시 개혁해야 했다. 그래서 미션(Mission), 비전(Vision), 공정, 전문성, 소통, 도전 등의 핵심 가치를 제시한 것이다."

- 당장 당면한 과제가 있나.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한 돼지고기 이력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품질평가 매뉴얼을 확정하고 구체적인 사업 프로세스를 개선해야 한다. 또한 우리기관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통계자료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보다 정교한 조사설계와 분석을 통해 <한국 축산물 유통>이라는 책자를 개정 발간할 예정이다. 

또한 지난해 12월 말 꿀에 대해서도 시범사업이 도입돼 한국양봉농협, 양봉협회 등 꿀 관련 관계기관과의 업무협의를 통해 다각적인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적인 축산물품질체계 기반구축을 위해 품질공정평가 매뉴얼을 확정하고 구체적인 사업프로세스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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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 축산물품질평가원 원장.

"고향 발전 위한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겠다"

- 한우에 대한 등급 판정 외에도 돼지고기 이력제 사업도 추진한다고 하는데 좀 자세히 설명해 달라.

"돼지고기에 대한 거래 단계별 정보를 기록하고 관리함으로써 문제발생 시 이동경로를 추적해 신속한 조치로 소비자를 안심시키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전면 시행을 앞두고 지금은 법령 등 제도보완, 전산시스템 구축, 현장실사 등을 추진하고 있다.

농장식별 번호를 부여하고 종돈의 개체식별표시를 위한 귀 표 배부를 위한 돼지가축사육시설 현장조사는 96.7% 완료한 상태다. 10월까지는 농장식별번호 발급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제도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 정부에 인력증원을 요청한 상태며, 현장중심의 지도교육을 강화해 돼지고기이력제가 조기에 정착되도록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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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 축산물품질평가원 원장.

허영 원장은 마산에서 국제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팔각회, 로터리클럽 등에서 봉사활동을 꾸준하게 했고 경남유도협회 회장도 7년 여간 맡았다.

그리고 지난 2012년에는 창원마산합포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후보 출마를 준비하기도 했다.

- 당시 출마 배경은.

"20여 년간 여러 사회활동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또 다른 길로 나라에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는 능력이 모자랐던 것 같다. 지금 이곳에서 일하는 것도 또 하나의 나라를 위한 봉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고향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일에 제 역할이 있다며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허영 원장은 현재 경기도 군포에 있는 사택에서 기거하고 있다. 가족은 모두 마산에 있다. "혼자 있으니까 좋죠. 숙소에 갈 때 수백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들고 가서 읽는 게 일이죠. 공부를 많이 하게 됩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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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 축산물품질평가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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