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단순히 집을 짓는 것이 아닌 삶을 담는 과정"

처음으로 건축사를 인터뷰했다. 건축은 순도 100% 기술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인터뷰 도중 자꾸만 인문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건축사가 왜 인문을 이렇게까지 강조하는 지 이해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건축사는 참 좋은 직업

창원시 진해구 구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김석철 건축사(50)의 사무실이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편안한 얼굴을 한 건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건축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셨나요?

"제 고향이 의령인데, 당시 건축이 좋을 때였습니다. 한창 공업화를 하면서 건축 현장에 사람이 많이 필요할 때였죠. 그리고 제 아버지께서 목수 일을 하시는데, 그러다보니 옆에서 자연히 도면도 보게 되고 건축이 적성에 맞다 싶었습니다."

-학교는 어디 나오셨나요?

"마산창신공고 건축과에 가서 공부를 해 보니 공업고등학교가 다 그렇듯이 현장 중심의 교육을 주로 하다보니 이론적인 기반이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크게 되려면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울산공대(현 울산대학교) 건축학과에 1984년에 입학했습니다. 지금은 경상대 건축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내년에 논문 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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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철 건축사./박민국 기자

-건축학과가 있고, 건축공학과도 있는데 차이점이 뭔가요?

"둘 다 비슷해 보이지만 방점을 찍는 곳이 다릅니다. 건축공학과는 시공을 중심으로 두고, 건축학과는 이론과 디자인을 중심에 두는 학과입니다."

-학교에서 주로 뭘 배우셨나요? 제가 듣기로는 선생님이 전통건축에 조예가 깊으시다고 들었는데.

"지금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로 계시는 김봉열 교수님을 포함해 울산공대 건축학과가 전통건축 분야에 교수님이 많이 계셨습니다. 자연스럽게 조금 많이 배웠는데, 당시 1980년대는 그야말로 공업화시대니까 전통건축을 배워도 써 먹을 데가 없었죠. 지금처럼 사람들의 관심이 없었으니. 일부 소수의 사람만 하는 학문적인 것이었고, 실제로 시공하는 곳도 거의 없었죠."

-학교 졸업하시고 어디로 가셨습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창원에서 설계사무소에 취직을 했습니다. 1988년도 정도 됩니다. 2~3군데 설계사무소를 거치면서 실무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제 때는 건축학과 졸업생이 실무를 5년 이상 해야 건축사 자격증을 딸 조건이 됩니다. 실무를 어느 정도 쌓고 1997년에 건축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아마 제 또래는 대부분 1997년 전후로 건축사 자격증을 다 땄을 겁니다."

-1997년이면 그해 IMF 외환위기가 터졌지 않습니까?

"그 시기 다 힘들었겠지만 저도 힘들었습니다. 제가 개업 준비하는 중에 외환위기가 터졌습니다. 저야 젊으니까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런데 기존에 있던 건축설계사무실은 인원 감축부터 나섰습니다. 굉장히 잘못 됐다고 생각하는게 당시 건축설계사무실을 운영하던 선배들(현재 50후반 이상 세대)이 직원을 모두 감축해 버렸는데, 그래서 건축설계 이 분야에 중간다리가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다시 뽑으려 해도 이미 일을 버리고 다른 분야로 넘어가버렸기 때문에 수급이 안 됩니다. 이 때문에 1997년 이후 건축설계분야에 일종의 암흑기가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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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철 건축사./박민국 기자

-대학에서 계속 졸업생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세대 공백이 생기나요?

"기술자가 하루 아침에 양성이 되질 않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와도 실무능력은 떨어집니다. 4~5년 트레이닝을 해야 합니다. 또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건축설계사무실 일은 밤새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니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죠. 저도 그게 늘 아쉬웠는데, 그래서 제가 사무실을 열고 나서는 직원들에게 주5일 근무를 강제적으로 했습니다. 아마 전국에서 굉장히 이른 시기에 주5일 근무를 한 건축설계사무소일 겁니다. 이틀 동안 쉬면서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좀 많이 보고 오라는 겁니다."

-제가 듣기로 사모님도 같은 일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제 처가 건축사는 아니고요. 제가 젊을 때 다른 설계사무소 밑에서 일을 하면서 여직원이 있었습니다. 그 여직원의 친구입니다. 나중에 제가 사무소를 차리고 나서는 저를 도와 같이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건축사 일이 참 자유롭고 매력적입니다. 남의 인생을 다루는 것입니다. 제가 설계한 것에 그 사람이 맞춰 살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아파트가 아니라면 모든 집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건축설계는 그 사람의 개성이나 생활하는 모습이 다 담겨야 하기 때문에 기술과 예술과 경제가 어우러진 종합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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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철 건축사./박민국 기자

인문적 기반없인 건축도 없다

-2006년에 마창건축사협회 총무를 하신 걸로 나오는데, 창원시에 건축설계 사무소가 몇 개나 있습니까? 

"마산과 창원에 170개 정도 있습니다. 인구에 비해 굉장히 많은 것이고 경쟁이 치열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고객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저가 설계로 자꾸 빠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답답합니다."

-일반설계와 저가설계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잘 모르는 사람 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당장에는 그 차이를 알기가 어려울 겁니다만 살다 보면 나의 삶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돼 있는 지 차이점이 드러날 겁니다. 집이라는 것이 최소 억 단위가 들어가는 고가의 상품이고, 나중에 바꾸기도 어려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설계를 치밀하게 잘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건설산업의 경기가 죽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건축설계 이쪽 일은 어떤가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늘 어렵습니다. 요즘엔 서울에 있는 사무소들이 지방에 있는 일도 가져갑니다. 예전에는 쳐다도 안 보던 작은 프로젝트도 가져갑니다. 어찌보면 큰 업체는 큰 프로젝트를 가져가고, 작은 업체는 작은 프로젝트를 가져가서적절하게 균형이 맞춰져야 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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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철 건축사./박민국 기자

-창원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지금 진해로 오신 이유는 뭡니까?

"솔직히 설계를 하는 데 지역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지역에 있던 전국의 어디서라도 프로젝트를 딸 수 있습니다. 여기 진해로 온 이유는 고등학교 동기인 진장일 건축사와 장문철 건축사와 함께 뭉쳐서 'Green Space(약칭 GS)'를 만들었습니다."

-요즘 개인병원도 그렇고 아무래도 뭉치면 사업적으로 효율이 있나요?

"합작을 하는 것은 자기 희생을 하고 양보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와해가 됩니다. 저희가 합작을 한 것은 우리는 이미 지역에서 어느 정도 정착이 됐으니 우리 후배들이 일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자. 우리 사무실을 후배들이 물려 받아서 운영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주자는 생각에서 같이 한 것입니다."

-최헌섭 두류문화원장과 친한 친구분이라 들었습니다. 최 원장님은 역사나 생태나 지역문화를 주로 연구하시는 분이신데, 같이 어떻게 사회에서 만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희 같은 건축사에게는 인문학이 참 중요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인문학을 공부 안 하고 설계를 하겠다는 것은 참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계층을 만나고 다양한 요구가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 사회성이고 사회성에서 역사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농사 짓던 분의 집을 짓는데 그 분의 삶이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집을 짓는다면 그 분에게 편리하고 알맞은 설계가 나올 수 있을까요? 저는 최 원장님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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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철 건축사./박민국 기자

그의 사무실에 빼곡하게 꽂힌 인문, 사회관련 책들이 그의 말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한옥, 10년 안에 대중화 길 열릴 것

-전통건축, 한옥 하면 불편하다는 인상이 먼저 떠오릅니다.

"요즘엔 그렇지 않습니다. 설비가 다 현대화 돼 있으니 현대생활과 접목이 잘 돼 있습니다. 화장실이나 부엌이나 창호 같은 것도 다 현대에 맞춰 시공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래도 한옥이 일반 건축물 보다는 비싸다 들었습니다. 비용이 얼마나 차이가 있나요?

"딱 잡아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만 2~3배 정도 든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이 격차는 갈수록 줄어들 것입니다. 먼저 인건비가 크게 차지합니다. 물론 한옥을 짓는 목수들도 많이 있고, 도제교육 방식의 교육기관이 제법 있습니다만 사람이 적고 기술도 고급기술이고 수작업이니까 공사기간도 많이 걸리는 겁니다. 그래도 요즘엔 목재를 수급하고 가공하는 과정이 단순화 됐습니다. 그리고 나무 수급이 어렵습니다. 원래 한옥은 우리 나무를 써야 하지만 아직까지 경제수림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30년 이상은 지나야 산에서 집을 지을 만한 나무가 나올 겁니다. 그래서 캐나다나 미국, 핀란드 산 나무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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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철 건축사가 설계한 한옥./Green Space 제공

-한옥 의뢰는 일년에 얼마나 들어옵니까?

"프로젝트의 20~30%가 한옥입니다. 한옥은 설계에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한옥은 일단 공간의 개념이 '칸'의 개념입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가 칸인데 이를 잘 조합해서 공간을 나누는 겁니다. 그리고 집과 자연지형을 맞춰야 합니다."

-부자들은 한옥을 요즘 많이 짓던데, 언제쯤 한옥도 대중화가 될까요?

"10년 안에는 대중화된 대안이 나올 겁니다. 그 근거로 최근 한옥조립 시간을 1/4로 줄일 수 있는 자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젊은 친구들 중에 머리가 좋고 기술도 빨리 습득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건축계에 진출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토부에서 만든 <한옥 설계의 원리와 실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일종의 표준안인데 저도 검수로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관련 기술들이 공유되면서 발전이 빨라질 겁니다. 저도 꿈이 나중에 한옥을 짓고 사는 겁니다."

-한옥의 좋은 점이 뭐가 있을가요?

"한옥의 멋은 삶의 여유입니다. 삶의 방식과 자연에 녹아 있는 재료 자체가 친환경적이고 여유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대한 로망도 구현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과거의 불편한 점들은 거의 다 해소했습니다. 난방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는데 그것도 이제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시공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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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철 건축사가 스케치하고 있는 한옥 모습./Green Space 제공

-끝으로 집을 지으려는 분이 있다면 어떤 점을 조언하고 싶습니까?

"시공사만 찾지 말고, 먼저 건축설계사무소를 찾아주십시오. 그리고 한 군데 말고 3~4군데 사무소를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건축은 일반인이 인터넷으로 찾는 자료 가지고 따라오기는 힘듭니다. 건축사가 객관적인 검증을 해 줄 수 있습니다. 금액은 이렇게 나오고 어떤 자재와 기술이 들어가는 지 정확히 정리해 줍니다. 그리고 공정 중간에 감리를 꼭 넣어야 합니다. 그리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닙니다. 설계대로 하고 있는 지, 정상적으로 집을 짓고 있는 지 일반인이 봐서는 알 수가 없으니 감리를 꼭 넣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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